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짙은 초록 위로 자줏빛 온기가 마지막 지평선을 그리고 있었다.
곧 땅거미가 완연히 질 것이다.
나선 날개에 올라 비행하는 바센 라크 오라즌은 뒤를 돌아 동쪽 하늘을 본다.
이미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야천이시여, 사도시여, 그리고 우리 대륙의 신들과 수호자들이여, 부디 축복하소서. 그대들이 바란 대로 우리는 약속된 시련으로 향하고 있으니.’
바센과 특수 임무를 맡은 모험단은 귓가로 웅웅 울려 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때 낮지만 거대한 울림이 그 대기를 밀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쿵…!
이동성이다.
아무런 규칙도 없이 아무 방향으로 나 있는 스물 세 개의 다리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성을 받치는 토대에 달려 있다.
크고 단단한 바위인 토대 위에는 깎이고 쌓여서 솟은 성벽이 존재하고, 그 성벽 안쪽으로 횃불과 화로들이 밝혀져 있다.
회색의 건물들은 이끼와 들풀이 틈틈이 자라나 있지만 위세는 굳건하다.
바센은 나선 날개가 없었더라면 이동성 그 자체와 전투를 각오하거나, 더 극단적인 규모의 소수 정예를 구성했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높이 솟은 내성은 거대한 회색 돔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저기 드래곤이 있다고 했던가.’
다행스럽게도 이동성을 움직이는 제어실이란 곳은 돔과는 거리가 떨어진 탑이었다.
라크샤사들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아슈라다는 어지간한 소란으로는 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라크샤사들끼리의 부족 싸움이 있었던 때에도 아슈라다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다 와 가는군.’
바센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른 나선 날개들에 문제가 있는가 확인했다.
불안한 기술임이 틀림없지만 다행히도 이탈된 나선 날개는 없었다.
흑린의 솜씨 좋은 기술자들과 좋은 원자재 물품이 2차 원정대에 포함되어 있었고, 마즈다리의 마법을 통해 궁에 있는 기술대와 연락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오구리들의 솜씨는 자신들의 기술 수준으로는 충분히 훌륭했지만, 흑린의 기술과 물건으로 나선 날개의 결함 몇 가지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럼 이 나선 날개를 흑린에서도 쓸 수 있을까?’
바센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고무 동력기의 고무는 우리 대륙이 아닌 보다 따뜻한 땅에서 나는 두두바 나무에게서만 원료를 채취할 수 있지. 티오네의 말에 따르면 항로가 완전히 개척되기만 한다면 수급에 큰 차질이 없다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바센의 고민은 답을 찾지 못했다.
우선 바센은 기술 과학을 활용하는 것에는 충분히 뛰어난 지략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새롭게 만드는 데는 별다른 재능이 없다는 점, 또 다른 문제는 더 고민해 볼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동성 우측에 뭔가 솟아오릅니다!”
바센은 그 외침을 따라 이동성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자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희미한 석양만이 남은 하늘 위로 무언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드래곤? 아니야. 너무 작다. 그리고 한 마리가 아니군. 새인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날개를 활개 치는 모습이 꼭 새처럼 보였다.
하지만 열 댓 마리의 실루엣이 점차 다가오자, 그것들이 생각한 것만큼 작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름을 아는 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와이번이다!”
두 장의 날개는 얇은 피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늘을 나는 파충류, 와이번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없었지 않나?”
바센이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즈다리가 자신의 나선 날개를 가까이 붙여 온 것이었다.
바센이 말했다.
“글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건, 우리의 기대였을 뿐이지.”
“놈들이 어떻게 와이번을 길들였는지가 궁금한데.”
바센은 학자적 궁금증에 신경 쓰지 않았다.
별다른 호기심이 없는 게 그 자신의 장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선 무사히 착륙한 뒤에나 말하지.”
바센은 동력기의 마찰을 조금 풀면서 말했다.
“화살을 들어라! 1조는 날아올라 시선을 끈다! 그 사이 2조는 성벽 안쪽으로 침입해라!”
와이번의 존재를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적의 공격이 있을 거라고 상정해 둔 상태기 때문에, 원정대는 바센의 말을 듣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와이번들은 1조로 구분된 바센의 조를 향해 솟아올랐다.
“이동성에서 화살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바센은 2조를 향해 별도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느린 속도의 나선 날개라도 올 것에 대비하고 노리지 않는 이상 맞추기가 어렵다. 총이 그러한데 하물며 화살은 더 어렵지. 더군다나 움직이고 있는 것은 나선 날개만이 아니야.’
바센의 예상대로였다.
이미 앞서 날아가던 2조의 나선 날개들이 성벽을 넘어 착륙하기 시작했다.
많은 화살들이 나선 날개를 빗겨 갔다.
이동성 또한 느리지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대륙 전쟁에 참여해 마상 사격의 어려움을 알고 있는 바센과 탐험대로서는 거칠 이유가 없었다.
가능하면 나선 날개가 파손되지 않도록 착륙하길 기도했지만, 대부분의 탐험대원들이 달려오는 라크샤사를 상대하거나 1조를 노리는 활잡이들을 노리기 위해 나선 날개가 내려앉기도 전에 내던지듯 빠져나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제 이쪽의 차례군.’
바센은 조종간을 놓고 활을 들었다.
총이라면 더 좋겠지만, 화승에 불을 붙일 시간이 없었다.
“흡!”
느리게 하강하는 나선 날개, 그리고 바센을 향해 최단거리, 즉 직진해서 날아오는 와이번의 머리통, 이 직선을 바센은 명백히 직감했다.
‘지금.’
쉭 하고 바람소리와 함께 화살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바센이 빗나갔다고 아쉬워 한 순간, 가장 앞서 날던 와이번이 그대로 날개에 힘을 잃고 느슨히 떨어져 내렸다.
바센은 떨어지는 와이번을 구경할 사이도 없이 다음 화살을 쟁였다.
그 짧은 시간에 와이번들이 1조에 들이닥쳤다.
화살이 쏘아지거나 이따금 총소리, 와이번의 날카로운 괴성, 그에 대응하는 탐험대원들의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나선 날개의 중앙 날개는 가죽과 나무로 만들어졌을 뿐 구조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튼튼하다고 할 수 없었다.
바센처럼 솜씨 좋게 와이번을 떨쳐 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동성을 코앞에 두고 추락하는 나선 날개들도 있었다.
‘이런, 조금만 더!’
바센은 2조의 절반 정도가 착륙하며 1조가 내려앉을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라크샤사와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센은 아래쪽 탐험대원의 나선 날개 위에 붙은 와이번을 향해 화살을 메겼다.
-크르르르…!
바센이 처음 느낀 것은 창공의 한기를 막는 갑작스런 온기였다.
그 다음 나선 날개가 흔들리는 느낌, 그 즉시 돌아보자 피비린내와 함께 와이번의 머리통이 보였다.
“먼저 죽은 게 네놈 짝이었나 보군!”
바센은 그대로 몸을 돌려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와이번의 목이 쭉 펼쳐지는 속도도 발군이었다.
화살은 와이번의 아래턱을 뚫고 박혔지만, 와이번의 날카로운 이빨 또한 바센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캬오!
나선 날개가 반쯤 기울었다.
와이번이 나선 날개를 찢어 놓으며 바센에게 주둥이를 디밀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나선 날개였기 때문에, 바센은 한쪽 팔로 나선 날개의 동체를 붙잡아야만 했다.
기울어진 나선 날개는 와이번이 발톱으로 쥐어뜯듯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와이번이 집어 올린 상태였다.
와이번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가, 뭔가 깨달은 듯 기쁘게 울었다.
-크르르르!
자신이 집고 있던 나선 날개를 놓으면 그대로 바센이 떨어져 죽을 걸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나운 야수에 대응해 온 사피엔스들이 늘 그랬던 것처럼, 바센이 더 빨랐다.
“흥!”
바센은 콧김을 뿜고는 자신의 품속에 있던 단검을 꺼내 와이번의 발과 나선 날개를 관통해 꽂아 넣었다.
-캬오오오오!
와이번은 나선 날개를 몇 번인가 내치려다가 실패하자, 다시 긴 목을 내빼 아직 매달려 있는 바센을 향해 디밀었다.
바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허리춤에서 뽑은 장검을 와이번의 턱에 꽂아 넣었다.
와이번의 머리통이 축 늘어졌다.
바센이 와이번의 발에 박힌 단검을 뽑아내자 와이번이 그대로 추락했다.
나선 날개의 주 날개가 퍼득퍼득 소리를 내며 다시 돌기 시작했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모자란 것 같은데?’
바센이 내려다보자 이동성의 성벽까지 모자랐다.
그대로 수직 낙하는 아니지만 이동성의 아래로 추락할 듯싶었다.
“뛰어내리지!”
바센이 돌아보자 바로 아래 마즈다리의 나선 날개가 날고 있었다.
바센이 외쳤다.
“무게가 안 될 텐데?”
“믿어!”
대화할 시간도 없었다.
바센은 마즈다리를 믿고 뛰어내렸다.
바센과 마즈다리의 팔이 교차하며 서로의 손목을 잡았다.
“솟아라!”
그 말과 함께 마즈다리의 나선 날개가 고무 동력을 푸는 것만으로는 낼 수 없는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바센을 받아 냄과 동시에 추락하던 나선 날개가 꾸물꾸물 다시 솟더니 이윽고 이동성의 성벽을 넘었다.
바센과 마즈다리는 성벽을 넘는 동시에 그대로 성벽 위로 뛰어내렸다.
가볍게 한 바퀴 구르며 착지한 바센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사뿐하게 내려앉은 마즈다리를 돌아보았다.
마즈다리가 설명했다.
“난 원래 동족의 숙원을 위해 마법을 배웠다.”
“뭐?”
“날기 위해서 마법을 배웠단 말이지.”
마즈다리가 자신의 날개를 가볍게 씰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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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으로 이동성 성벽 안쪽에 도착한 것은 바센을 포함해 46명이었다.
잠깐이지만 라크샤사들을 따돌리는데 성공하자, 바센은 조장으로 삼을 수 있는 탐험대원 둘을 더 불러서 말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놈들은 우리가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나름의 대비를 해 두었을 것으로 짐작되니, 작전을 다소 변경하겠다.”
탐험대원들은 대답하면서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시 조를 나누겠다. 세 개의 조로 나눠 1조는 조종실로 이동하고, 2조와 3조는 소란을 일으켜 놈들의 주의를 끈다. 교전을 하되 최대한 안전을 구가하면서 이동해라. 놈들에게 대단한 병장기가 없다 한들, 라크샤사들은 트롤과 같은 체구이고 나름 대비를 해 두었을 거다.”
바센은 각 탐험대원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한쪽은 방화를 해서 시선을 끌고, 한쪽은 계급이 높은 라크샤사들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는 식이었다.
인원까지 어느 정도 나누고 나자 탐험대원 하나가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1조는 아무도 없습니다. 누가 1조 역할을 합니까?”
바센이 말했다.
“나 혼자 간다.”
“하지만 그러면 단장님이 너무 위험합니다!”
“적들은 이미 조종실에 대한 대비를 해 뒀을 거다. 그러니 요란 법석을 떨면서 조종실로 몰려가는 것 보다는, 적들의 주의를 흩트리고 그 사이 혼자서 조용히 진입하는 쪽이 옳다.”
탐험대원 하나가 입을 열려고 하자 바센은 손을 저었다.
“토 달지 말도록. 회의는 끝났다. 이동한다.”
바센이 그대로 돌아서자 탐험대원들은 바센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바센 또한 가볍게 담을 타넘고 조종실이 위치한 탑을 향해 이동했다.
잘 보이지 않는 짧은 회랑에 누군가 서 있었다.
바센은 가볍게 경계했다가 얼굴을 보고서 말했다.
“마즈다리?”
마즈다리가 별빛 아래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너의 부하들을 못 믿는 건 아니겠지? 내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제 할일을 못할 거라거나?”
“글쎄. 그럼 너는 날 못 믿어서 온 건가?”
“그래.”
바센이 마즈다리를 지나쳐 걸으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이동하지.”
“흐음.”
마즈다리는 바센을 까다로운 사내라고 생각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