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대륙에 있는 모든 신자와 사원으로부터 얻는 신앙 자원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매순간 소모하는 신앙 또한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신앙 자원을 어디에 얼마나 투자하느냐는 결정되어 있는 편이지만, 문제는 제4 대륙에 신앙을 투자하면서부터였다.
성운을 비롯한 만신전의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최악의 경우가 일어날 가능성을 상정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신앙을 투자할 수 없었다. 언제나 최악의 경우에 사용할 신앙을 남겨 둬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제4 대륙에서 소모해야 할 자원은 제4 대륙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만큼으로 한정할 필요가 있었다.
위즈덤이 말했다.
“하지만 창조물만으로 불충분하다면?”
“그럼 어쩔 수 없지. 신앙을 더 소모해야 할 거야.”
“그럴 거라면 처음부터 안전할 만큼의 신앙을 사용하는 게 좋지 않나?”
성운이 말했다.
“아슬아슬하다고 생각하나?”
“솔직히 좀… 그렇군. 확실하다고 할 만한 전력은 아니다. 저 아슈라다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는 미지수인 지점도 있고.”
성운이 말했다.
“하지만 매번 안전한 싸움을 하게 되면 다른 플레이어들과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어.”
특히나 지금의 상대인 위대한 아슈라다는 드래곤이었고, 플레이어가 드래곤을 상대할 때는 추가적인 신앙 소모 페널티가 있었다.
성운이 볼 때는 드래곤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 카드들은 지나친 낭비인데다, 솔직히 말해서 확실한 지도 알 수 없었다.
현재 레벨대에서라면 아슈라다 수준의 드래곤이라면 현신한 플레이어도 쉽게 상대하지 못할 터였다.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결과적으로 낭비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
위즈덤이 중얼거렸다.
“저들이 믿음을 주는 만큼 믿어 보란 말인가.”
정지한 이동성 위에서 싸움이 이어졌다.
─┼
사람이 피어 올린 횃불의 불빛이 수 미터 솟은 먼지들 안에서 빛났다.
-감히…!
그 위로 위대한 아슈라다가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었다.
위대한 아슈라다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용각류의 공룡을 닮았다.
목이 아주 긴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몸길이는 짧아 보인다.
하지만 이 기이한 비율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담이 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30여 미터 높게 솟은 머리, 거기에 박힌 노란 눈은 고대의 예언이 노래하는 종말을 부르는 불길한 쌍성처럼 빛났으며, 자유롭게 굽는 손가락과 그 끝의 예리한 손톱은 그 예언을 현실로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슈라다의 머리 위로 붉은색 왕관과 같은 실루엣이 떠올랐다.
마즈다리가 외쳤다.
“마법이다!”
야천의 창조물이자 만신전의 문지기, 거대한 장수풍뎅이 헤캅이 말했다.
-알고 있다, 야천의 마법사여!
아슈라다와 헤캅의 거리는 어림잡아 일백 미터.
두 괴수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리 먼 거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즈다리가 보았을 때, 헤캅이 달려들어 아슈라다의 마법을 제지하기에는 충분히 먼 거리처럼 보였다.
하지만 헤캅의 전략은 마즈다리가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헤캅은 자신 옆에 있던 제 몸집만 한 바위 아래로 뿔을 박아 넣었다.
쿠궁.
마즈다리는 상상으로도 움직여질 것 같지 않았던 바위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헤캅은 그대로 고개를 쳐들며 바위를 바닥에서 뽑아내 드래곤을 향해 내던졌다.
-…!
거대한 바위가 반쯤 회전하며 그대로 드래곤의 몸통을 향해 내리꽂혔다.
-쾅!
바위가 땅에 내리꽂히는 것만으로도 이동성을 이루고 있던 작은 벽돌과 부서진 돌 파편이 비산하였고, 대기가 떠밀리며 마즈다리와 바센 라크 오라즌을 휘몰아쳤다.
바센이 탑 꼭대기에서 내려와 마즈다리에게 말했다.
“마즈다리, 나는 탐험단을 이끌고 와야겠다.”
“…화약이 쓸모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바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 드래곤은 마법을 통해 폭발을 막아냈다.”
“…분명 나와 같은 현상을 본 것 같은데.”
“막아냈다는 말은, 맞고 버틸 수 없다는 말이겠지. 눈대중으로도 두터운 가죽이지만, 분명 생물이라면 여린 부위가 있을 테니, 총도 통할 거다.”
마즈다리는 아슈라다를 돌아보았다.
“좋아. 나는 저 수호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알아봐야겠군.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지.”
“괜찮겠나?”
“괜찮지 않아도 해야 할 일 같은데.”
바센은 씩 웃고 덧붙여 말하지 않았다.
마즈다리는 달려가는 바센을 잠깐 보았다가, 자신이 기억하는 주문 목록을 떠올렸다.
마즈다리의 왼손이, 마즈다리에게 말을 걸었다.
-또 미친 짓에 끼어들었군.
‘그러게 말이지.’
-저 드래곤이 했던 말 중에 틀린 말이 딱히 없었다는 걸 알고 있나?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저 드래곤이 너를 회유하려고 들었다는 것도?
마즈다리는 그것도 알았다.
그리고 저 드래곤은 지금도 마즈다리를 회유하려는 것 같았다.
이 싸움에서 드래곤을 편들면 싸움의 향방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뭐라고?
─┼
아슈라다는 헤캅이 내던진 바위를 어렵사리 받아 냈다.
겉보기엔 큰 타격이 없어 보였지만,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 바위를 받아 냈던 아슈라다의 양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겨우 신들에게 사육되는 짐승 주제에…!
하지만 아슈라다는 그리 오래 말하지 못했다.
아슈라다가 돌을 받아 내는 그 잠깐 사이 헤캅이 거리를 좁혀 달려든 것이다.
-흡…!
헤캅이 아슈라다의 옆구리를 찔러 들었고, 아슈라다는 양 손으로 뿔을 잡아냈다.
잠깐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아슈라다는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하자, 결국 힘 싸움을 포기하고, 뿔을 옆으로 밀쳐 냈다.
때문에 뿔에 직격 당하는 것은 피했지만, 헤캅은 능숙하게 머리통을 옆으로 디밀면서 아슈라다를 넘어트렸다.
-…쿵!
다시 먼지구름이 솟아오른다.
아슈라다는 여유를 잃고 재빨리 몸을 굴려 두 발과 두 팔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놈!
하지만 아슈라다는 다시 헤캅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다시 힘 싸움을 벌였을 때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육체적인 힘은 야만에 근거할 뿐.
아슈라다는 호흡을 들이켜 볼을 잔뜩 부풀렸다.
로스트 월드의 드래곤들이 사용한다는 브레스, 다른 말로는 ‘숨결 주문’이었다.
헤캅은 제2 회의실의 모의전을 통해 아슈라다가 어떤 종류의 숨결 주문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예측해 두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드래곤의 생김새를 통해서 그 능력을 유추할 정도의 데이터를 갖추고 있었다.
‘놈의 주둥이 주위가 환하게 빛나는군. 불덩이! 그렇다면…’
헤캅은 다시 아슈라다에게 달려들었다.
아슈라다가 내뱉은 것은 헤캅이 예상한 대로 화염의 숨결이었다.
쏘아지듯 내뱉어진 거대한 불덩이는 헤캅에게 직격했다.
-소용없다!
화염이 이글거리며 헤캅의 외피에서 이글거렸지만, 곧 그대로 식어 사라졌다.
헤캅은 힘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것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 단순함이야말로 무기였다.
성운은 언젠가 이런 ‘무기’가 필요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위대한 아슈라다는 멀어져서 마법을 사용할 목적으로 가볍게 뒷걸음질 쳤다.
헤캅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도망치지 못한다!
하지만 맹렬히 달려 나가던 헤캅은 급작스럽게 멈춰 서야만 했다.
-…?
자신의 앞으로 작은 생명체가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여, 무슨 짓이냐?
마즈다리가 아슈라다와 헤캅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헤캅이 혹시나 마즈다리를 짓밟을까 앞으로 나서지 못하자, 아슈라다가 멈춰 서서 말했다.
-그 마법사로군. 가루다였나?
마즈다리가 아슈라다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다, 위대한 아슈라다여. 한 가지 질문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흥미롭군. 그 질문을 받아 주지. 무엇이 그 작은 머리통 속을 혼란하게 하는가?
“탑에서 들려준 그대의 말이 모두 다 진실인가?”
아슈라다는 저음의 웃음소릴 내더니, 헤캅을 살짝 보았다가,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그래, 모두 진실이다.
“그렇다면…”
-고민이 길 필요는 없다, 마법사.
아슈라다가 긴 목을 빼어 마즈다리에게 다가갔다.
-그대가 마음을 돌려 온전한 진실로 신들에 맞설 용기가 있다면 그깟 조잡한 마법이 아닌 진정한 마법을 알려주지.
그 말에 헤캅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마법사여!
하지만 헤캅은 앞으로 나설 수 없었다.
허공에서 투명한 벽이 헤캅을 막아냈다.
아슈라다의 손에서 이미 마법이 발휘되고 있었다.
마즈다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지? 그대도 신들과 다름없다면?”
-흠, 좋다. 내가 지금 당장 하나의 마법을 알려주지… 귀를 기울여라, 이 비밀이 새어나가는 일이 없도록…
아슈라다의 머리가 천천히 마즈다리의 앞까지 내려왔다.
마즈다리는 자신을 씹지도 않고 삼킬 수 있는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 앞에서 본능적인 공포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마즈다리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고, 마법사가 된 뒤로는 그 본능이 자신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 왔었다. 마즈다리는 공포 안에서도 제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비밀이 뭐지?”
-그 비밀은…
바로 그때 마즈다리가 숨겨 둔 왼손을 뻗쳐 들었다.
드래곤은 즉각 움직였다.
마즈다리의 왼손에서 원뿔 모양의 불꽃 세례가 쏟아졌다.
아슈라다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아슈라다의 아래턱이 그슬렸으나, 대단한 상처를 입히진 못한 듯싶었다.
‘어차피 목적은 시간을 버는 것이니, 상관없다.’
아슈라다가 말했다.
-날 속였군.
“최후까지 믿지 않은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슈라다는 대꾸하려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헤캅을 보고 으르렁거렸다.
마즈다리의 기습이 제대로 먹히진 않았지만, 마법에 대한 집중을 흩트릴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아슈라다는 헤캅에게 똑같은 공격을 당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
지금까지 주문을 읊조리지 않고 마법을 사용했던 아슈라다가 마즈다리조차 알지 못하는 주문을 중얼거렸다.
헤캅이 달려들면서 외쳤다.
-작은 이여, 몸을 숙여라!
안타깝게도 헤캅의 조언은 쓸모가 없었다.
마즈다리가 몸을 숙인 순간, 드래곤의 두 손이 바닥을 짚었다.
순간 마즈다리와 헤캅, 그리고 땅에 박혀 있던 나무들, 그리고 나무뿌리에 얽힌 흙과 그 위에 쌓여져 있던 벽돌들이 솟아올랐다.
‘반전의 주문인가…!’
마즈다리는 허공에서 몸이 뒤집히는 걸 느끼며 지상이 하늘로 떨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허공으로 떨어지는 시간은 불과 수 초에 불과했지만, 그 체공 시간이 지나자 헤캅과 마즈다리는 체중을 되찾았다. 추락을 시작했다는 말이다.
백여 미터 넘게 솟아올랐던 마즈다리는 가까워지는 지면을 보고 생각했다.
‘이건 살아남기 힘들겠군.’
하지만 마즈다리의 시야 한편에 흰색의 무언가가 아른거린다 싶더니, 무언가 자신을 휘감는다는 압박과 함께 지면이 주는 안정감을 되찾았다.
“음?”
바닥에 눕혀진 마즈다리는 자신을 꽁꽁 싸맨 것이 거미줄이라는 걸 깨달았다.
거대한 흰 거미가 마즈다리를 내려다보더니, 자신의 칼날 발톱으로 마즈다리를 묶은 거미줄을 잘라 냈다.
-괜찮은가, 마법사?
흰 거미 힐로브였다.
“예, 괜찮습니다. 하지만 헤캅 님은…”
-그쪽은 걱정할 필요 없다.
마즈다리가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자, 등으로 떨어진 헤캅을 고르디우스가 앞발로 밀어 뒤집어 주는 걸 볼 수 있었다.
“난장판이군.”
바센의 목소리였다.
마즈다리가 고개를 돌리자 언덕 위에 나타난 바센과 총사들을 볼 수 있었다.
바센이 마즈다리와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고생했다, 마즈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