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7
017화
벌레의 축복을 받은 라크락의 전사들 서른 명은 숨을 한 번 들이킬 시간에 열 명의 프로그맨 전사들을 죽였다.
연회를 준비하던 리자드맨들과 프로그맨들이 순식간에 일어난 피바다에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르가 말했다.
“혼란에 뛰어들지 마라. 침착하게 무기를 든 전사들을 찾아 먼저 죽여라.”
전사 중 하나가 물었다.
“회갈색 리자드맨들이 공격하면 어쩝니까?”
“되도록 제압하되, 여의치 않으면 죽여라. 어쩔 수 없다.”
“예.”
라크락은, 프로그맨들이 리자드맨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을 가능성은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때문에 유르와 전사들에게도 충분히 유의를 할 것을 당부해 둔 상태였다.
라크락은 멀리서 함성을 외치며 달려드는 프로그맨 전사들을 보면서 혀를 찼다.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인가?’
라크락은 이미 첫 번째 만남 이후에 프로그맨들과의 싸움을 각오한 상태였다.
라크락은 그때 이미 오웬에게서 그 얼굴을 알아차렸다.
‘고통받는 이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을 본 것은 라크락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굴종을 읽었고, 누군가는 패배를 읽었다.
숨기고 연기한다고 속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같은 리자드맨이라서 읽을 수 있는 것일지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 프로그맨은 이미 리자드맨의 적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문제는 때와 방법이었다.
라크락만큼이나 프로그맨들도 경계심이 심했다.
겉보기에는 물물교환 자리에서 화기애애했지만, 부족의 정찰대끼리는 신경전이 치열했다.
라크락은 자올과 유르, 별잡이 같은 이들은 물론, 믿을 만한 이들을 단속해서 방법을 강구했다.
때문에 다섯 번이나 되는 물물교환의 시간을 가지며 기회를 엿보았는데, 결과적으로 방법은 단순했다.
“부족장, 놈들이 원하는 대로 빠져 줍시다.”
“그러다 위험에 처하면?”
“저희에겐 신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부족장은 그분에게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가려고 들면 그분께서도 저지하실 겁니다. 그리고 옳은 길로 가려하거든…”
“…도와주시겠지.”
그 말에 유르도 동의했다.
“그리고 저희 전사들은 강합니다. 하나하나가 놈들 셋은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놈들에겐 활이 있는데도?”
“예.”
“유르, 자신감만으로 화살을 막을 수는 없다.”
유르는 가로저었다.
“화살이 날래더라도 저희가 머리에 두른 물소 머리뼈를 꿰뚫지는 못할 겁니다.”
“머리통이야 눈을 똑바로 뜨고 있으면 맞지 않을 거다. 보다 중한 몸은 어찌 지키려고?”
“저건 어떻습니까?”
유르가 그때 가리킨 것은, 라크락이 가져온 갑충의 외피였다.
“창을 두 손으로 드는 게 제일 좋지만, 저희 전사는 이제 신에게 축복을 받아 한 손으로도 놈들의 맨들맨들한 피부를 찢어 놓을 수 있을 겁니다. 다른 한 손으로 저걸 들고 몸을 막으면 됩니다.”
이른바 갑충의 외피를 방패로 쓰자는 의견이었다.
갑충의 몸에서 비교적 작은 부분을 떼어 왔기 때문에 몸 전체를 가릴 수준은 아니고, 방패를 들면 상체의 절반 정도를 가릴 수준은 되었다.
라크락은 처음엔 그걸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자리에서 유르와 창을 맞댄 다음 투창을 막아 내는 걸 확인하고 인정하기로 했다.
“좀 더 잘 들 수 있으면 좋겠군. 손으로 잡을 나무를 대거나 손목에 묶거나.”
“예, 맞습니다.”
“…그래도 전사들이 기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께서 어떤 방법으로 날 도울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우리가 승리하게 되더라도, 나는 우리 전사들의 손실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옆에 있던 자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위태로운 승리가 아닌 결정적인 승리를 손에 넣어야죠.”
라크락이 기대에 찬 눈으로 자올을 바라보았다.
“전사 무리를 나눌까? 하지만 우리 정찰대의 정보가 맞다면 놈들은 우리보다 두 배는 되는 전사들이 있을 거다. 전사 무리를 나누면 그만큼 열세일 테지. 우리에겐 다른 전사들은 없고.”
“전사가 아니더라도… 싸울 녀석이 있긴 하죠.”
─┼
프로그맨들의 비명이 쏟아졌다.
리자드맨들의 화살 대책은 고대 갑충 방패만이 아니었다.
라크락은 오웬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복잡하겠지. 그럴 땐 움직여야 한다.’
라크락은 오웬을 멍청히 있게 두지 않았다.
“오웬! 부탁이 있다.”
“예, 예?”
“여기 연회장 주변에 마련된 모닥불을 집어 들고 집을 모두 불태워라.”
“예?”
연회장은 마을 중심에 있었고, 감시를 위해 대부분 리자드맨들의 집으로 지어져 있기도 했다.
게다가 잘 타는 건조한 집은 모두 리자드맨들의 것이었다.
프로그맨들은 대체로 진흙집을 선호했다.
“어쩔 수 없다. 놈들이 멀리서 화살을 쏜다면 시야를 방해하는 쪽이 좋다. 마른 집은 불태우면 연기가 나지. 그리고 그게 다른 신호도 될 테고…”
“하지만…”
“서둘러라! 필요하다면 리자드맨들을 설득해라. 저 검은 리자드맨들이 프로그맨들로부터 우릴 구해 줄 거라고 말해라!”
화살 하나가 날아왔다.
라크락은 손을 쓰지도 않고, 꼬리로 튕겨 냈다.
“놈들은 우리 적수가 되지 못한다. 우리 전사들은 프로그맨들을 상대해야 하니 바쁘다. 서둘러라.”
“아, 알겠습니다.”
오웬은 불구덩이에서 타고 있는 커다란 장작을 꺼내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웬은 첫 번째 집이 비어 있는 걸 확인하고 불을 놓았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골목으로 쏟아졌다.
프로그맨 전사들인가 싶어 질겁했던 오웬은, 그들이 같은 리자드맨인 걸 알았다.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뭐 하는 거야? 오웬?”
“너희는?”
“오보이 님이 검은 리자드맨들을 죽이라고 했어. 마을 연회장으로 가는 중이야.”
여위고 마른 불쌍한 리자드맨들이 손에 무기도 되지 않을 나무 곤봉을 들고 있었다.
오웬이 말했다.
“나는 집을 불태울 거야.”
“뭐라고?”
“슈넨 님의 명령인가?”
“아니. 저기 저 검은 비늘을 가진 리자드맨이 부탁했어.”
“그게 무슨…”
오웬이 말했다.
“저들이 프로그맨들을 박살 낼 거야.”
“…뭐라고?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그 누구도 머리 둘 달린 흉신을 죽일 수는 없다고.”
그 말에 오웬의 마음도 출렁거렸다.
‘라크락이 그걸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오웬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그건 몰라. 하지만 나는 저들을 돕겠다고 마음먹었다.”
“만약 저들이 지면? 그때는 어쩔 건데? 저들을 도왔다는 걸 알면 슈넨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오웬이 그 말에 큭큭 웃었다.
“멍청하긴.”
“왜 웃어?”
“우리는 우리의 집을 불태우는 거야. 프로그맨의 재산이 아니라 우리의 것을 불태우는데 뭐라고 하겠어?”
“왜 집을…”
“그래야만 프로그맨들이 화살을 제대로 쏘지 못할 테니까.”
그 말에 회갈색 가죽의 리자드맨들이 침묵했다.
오웬은 이 회갈색 가죽의 리자드맨들 사이에서 가장 똑똑했다.
이 협잡꾼이 모든 것을 걸었다면, 자신들 또한 따라서 걸어 볼 만하다는 걸 직감했다.
리자드맨들의 곤봉 끝에 불이 붙었다.
프로그맨 마을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
아울로이의 심복이자 슈넨의 친구, 프로그맨 전사 오보이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마을은 불타고 있었고, 연회장에 있던 전사들에겐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연회장에 열 명, 연회장에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보낸 게 다섯. 이놈들은 죽었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슈넨에게 열다섯 명, 나에게 열 명.’
오보이는 상위 계급 마을에 있는 열댓 명과 섬을 지키는 네댓 명을 어서 하위 계급 마을로 보내라고 심부름꾼을 보내 두었다.
오보이는 현재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 외곽에 있었다.
‘놈들이 갑자기 공격해 온 건 틀림없다. 놈들은 모두 서른. 우리의 총 숫자가 더 많더라도, 한 번에 습격하지 않으면 불리하다. 그럼 각개 격파당할 거야.’
하지만 오보이는 상황이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연회장에 있던 열 명의 전사들이 호락호락 당했을 리도 없거니와, 다른 회갈색 가죽 리자드맨들에게 포위하라고 보내었다.
‘놈들은 발이 묶여 있겠지. 회갈색 가죽의 리자드맨들은 그저 시간만 벌어 주면 된다. 슈넨, 나 그리고 상위 계급에서 병에 걸리지 않은 전사들과 섬을 지키던 놈들 모두를 모으면… 마흔 다섯은 된다. 마을이 불타고 있어 활쏘기가 까다롭지만, 어차피 한 발씩만 맞추면 되니까.’
오보이는 초조해하지 않고 전사들을 독려했다.
“모두 독 개구리는 챙겼나?”
“예!”
“언제 전투가 일어날지 모른다. 화살을 한 대씩 준비해 둬라. 슈넨 님이 오면 바로 움직일 것이다.”
오보이는 당장 있는 열 명의 전사들에게 전투를 준비시켰다.
전사로서의 감각이 위험을 예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언젠가 코카트리스를 죽였을 때처럼… 심장이 뛰는군.’
오보이는 그 직감이, 단순한 느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수풀 너머에서 뭔가가 옵니다!”
“수풀 너머?”
오보이는 의아해했다.
그곳은 마을의 반대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검은 리자드맨들이 전사 몇 명의 숫자를 속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공격 준비!”
오보이는 수풀이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 무언가가 드러난 순간 외쳤다.
“쏴라!”
독 두꺼비의 독이 묻은 화살들이 일제히 수풀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수풀 너머에서 등장한 그것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프로그맨들이 경악할 때까지 계속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길고, 거대했다.
“자올 님, 마눈이 화살에 맞았습니다.”
“저런. 혹시 눈에 맞았나?”
“아뇨. 마눈은 눈이 작잖습니까. 이빨에 한 대 낀 거 같습니다. 이런, 먹어 버렸네요. 아니, 다시 뱉네요.”
최근에도 성장을 거듭해 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드레이크, 마눈은 화살을 씹어 대다 퉷 하고 뱉었다.
이 어린 드레이크는 제 종족을 기준으로 아직도 이갈이가 끝나지 않은 참이라, 뭐든 입에 들어오면 씹어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맛없음에 짜증이 난 것인지, 크게 한 번 짖었다.
-크왕!
마눈의 등 위에는 자올과 그 심부름꾼이 타고 있었다.
프로그맨들은 거대한 괴수의 외침에 움찔한 상태로 굳어 있었다.
그 등 위에 리자드맨들이 타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자올이 가볍게 마눈의 등을 때렸다.
“마눈!”
-크왕?
“넌 투정이 너무 많구나. 저기 저녁 식사가 있잖느냐? 오늘은 그만 먹으라고 안 할 테니, 밥이나 먹어라.”
-크와아앙!
마눈이 전면에 서 있던 오보이에게 달려들었다.
오보이는 그래도 노련한 전사였다.
오보이는 뒤로 구르며 화살을 빼 들었고, 마눈은 엉거주춤하며 그 옆에 있던 다른 전사를 낚아챘다.
그리고 어금니 사이에 목이 들어가더니 그대로 뜯어먹었다.
‘코카트리스에 비교할 게 아닌 괴물이다!’
오보이는 재빨리 화살에 독을 바르고 활을 매겼다.
‘눈을 노릴까? 아니, 독을 먹이려면 입 안에… 아니, 아니다.’
오보이는 자신의 허리춤에 묶여 있던 독 개구리 발을 뜯어냈다.
독 개구리가 발작을 해 댔다.
“다들 독 개구리를 풀어라! 저 괴물의 입에다 던져 넣어!”
하지만 오보이는 처음 화살을 쏘아 댔을 때, 저 드레이크에게 독이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마눈은 마치 라크락이 먹이를 던져 줄 때처럼, 턱을 날렵하게 놀리며 독 개구리들을 입에 받아 쩝쩝 삼켰다.
등 위에 있던 자올이 심부름꾼에게 물었다.
“저것들이 뭘 하는 것이냐?”
“허리에 개구리를 차고 있던데, 그걸 뜯어서 던졌습니다.”
“그건 나도 봤는데. 왜 자기네 간식을 던져 주는가?”
독 개구리라면 자올도 잘 알고 있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이후 독 개구리는 리자드맨의 다소 자극적인 식사였다.
그리고 독과 질병의 저항성이라면 드레이크는 축복을 받은 리자드맨들 보다도 더 강했다.
고민하던 심부름꾼이 답했다.
“일종의 호의일까요?”
“그런가? 이제 와서? 마눈, 너무 늦었다고 전해 줘라.”
자올은 다시 마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크왕!
마눈이 다시 오보이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