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악신 샤차의 판단은 재빨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샤차의 3만에 이르는 군대 중 돌아간 것은 절반은 커녕 반의 반도 되지 않는 4천 가량이었다.
성운은 샤차의 군대가 모두 딥원으로 구성된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민물을 바닷물로 바꾸는 ‘유물’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이동 경로가 한정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차피 강을 따라서 왔으니 가는 길도 강을 따라서 갈 수 밖에 없다는 거지.”
물론 거스르는 것에 비해 수영을 잘하는 딥원인만큼 행군 속도도 훨씬 더 빠를테지만, 일반적인 길과 달리 강에는 문제가 있었다.
“첫째, 평면 상에서 길을 개척하면서도 행군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강은 이미 그 길이 정해져 있고, 둘째…”
성운은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강은 굽이친다는 거지.”
이동성의 속도는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지만 쉬지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움직일 수 있었기에 일일 평균 이동속도는 충분히 빨랐다.
그리고 그 속도에 더해 강을 따라 이동할 경우 경로가 확정된 만큼 샤차의 군대가 도달할 지점에 미리 도착할 수도 있었다.
결국 딥원 부대 3만 가량이 열심히 강을 따라 내려가다 만난 것은 강을 틀어막고 주저 앉은 이동성이었다.
포격이 강물로 쏟아졌고 딥원 시체들이 물에 둥둥 떴다.
피할 수 없는 이상, 싸울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위즈덤이 질문했다.
“우리가 유리하긴 하지만, 무리하게 딥원들과 싸울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지. 이번에 적 전력을 떨궈두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싸우게 될 테니까. 이렇게 작은 규모의 전투로 싸우느니 하루라도 더 빨리 내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맞을 수도 있어.”
“그런데 왜?”
성운이 답했다.
“샤차의 주력은 바다 안에 있고, 해양에 대한 공격은 기술 문명이 더 발전을 해야하지. 단기간에 승부 보긴 힘드니 오래 다퉈야할 거야. 그러니 지금 어느 정도 능력을 가졌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어.”
위즈덤은 수긍했다.
그래서 성운은 샤차가 지휘하는 전투를 볼 수 있었다.
성운이 생각했던 것처럼, 샤차는 유능한 플레이어였다.
병력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동성을 기어오르는 병력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작전의 일부였다.
유물을 포함한 주력 병력은 땅 위로 올라와 이동성을 우회하려 들었다.
성운이 그 사실을 예측하지 않고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더라면 샤차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병력을 살려보냈을 것이다.
고르디우스가 딥원 부대의 가운데로 뛰어드는 것만으로 수 십명의 병사가 하늘로 튕겨져 올랐다.
샤차의 창조물도 볼 수 있었다.
딥원을 거대하게 만든 것 같은 모습 때문에, 엘다르가 ‘다곤’이라고 불렀다.
차후에 알게되는 것이지만 샤차는 그 창조물의 모습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는지 엇비슷한 다곤 개체를 여럿 가지고 있었기에 성운을 비롯한 다른 플레이어들도 다곤을 곧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초로 나타난 다곤은 고르디우스와의 싸움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다.
다곤은 이족보행으로 키만 30여미터는 되어, 체격만 보자면 고르디우스에게 크게 밀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위대한 아슈라다의 몸에 새겨진 숨결 주문에 취약했다. 체격은 달려도 화염에 저항을 가졌던 헤캅과는 반대였다.
그럼에도 샤차는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
성운이 공격했던 본대, 그리고 그 본대가 가지고 있던 유물은 사실 가짜였던 것이다.
애초에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더 많은 병력을 미끼로 내던지고 진짜 유물을 가진 소수가 다른 우회로를 택해 육지로 도망친 것이었다.
위즈덤으로서는 의아했다.
“하지만 죽은 건 진짜 지휘관들이지 않나? 아니면 이쪽도 가짜인가? 그런 것치곤 창조물까지 소환해서 방어하는 건 과한 거 같은데.”
“진짜가 맞을 거야. 둘 다 살리고 싶었겠지만, 한쪽만 살릴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거지.”
그래도 승리는 승리였다.
이 전투를 계기로 샤차의 검은 교단은 성운의 만신전을 상대로 대규모 교전을 피하게 되었다.
동쪽으로는 파비랑 연합을 항복시켰고, 서쪽으로는 검은 교단을 패퇴시켰으며, 중앙의 라크샤사 부족들이 분열되었으므로 성운은 사실상 당분간은 외적 위협이 전무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AR1026이 돌아왔다.
바센이 이동성 내부를 탐색하는 것으로 신 하나를 부활시킬만큼의 시련을 충족시켰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흑린에 복속된 금안 제국령에선 축제가 벌어졌고 만신전의 최고 사제들은 이 날을 축일로 지정했다.
만신전에서 되살려진 AR1026은 성운에게 적대감을 보이고 당황한 것 같았지만, 봉신되어 있던 당시의 기억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으므로 당연한 태도였다.
상황 설명을 모두 듣자 AR1026 또한 별다른 반목 없이 동맹에 합류할 수 있었다.
물론 룬다에 대해서만큼은 사이가 좋아지기 힘들어보였지만 룬다는 자신의 업보이려니 감당하는듯 했다.
하지만 제4 대륙에서의 일은 한참 남아있었다.
우선, 흑린이 확인한 제4 대륙의 영역은 제4 대륙 북쪽 지역 일부에 불과했다.
그와 비슷한 영역의 땅이 다섯 배에서 여섯 배까지 있을 터였고, 사실상의 미답지는 물론, 위대한 아슈라다와 같은 다른 드래곤들까지 존재했다.
그리고 항복시킨 RD의 뒤에는 제1 대륙의 세력이 존재했고, 동쪽으로는 샤차의 검은 교단이 여전히 강성했다.
게다가 성운이 되살리기로 결정한 봉신된 신도 둘이 더 있었다. 시련이 아직 모자랐다. 모험은 계속 되어야했다.
─┼
성운은 우선 RD를 만신전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RD는 당황한 것 같았다.
“어, 어? 왜?”
RD가 보기에 동맹이 있다면 그 몸집을 계속 늘릴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냥 자원과 정보를 빼먹은 다음 내치면 그만인 것이다.
주력을 잃은 RD는 성운도 당연히 그러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성운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
“그래. 듣기 좋은 말 보다는 솔직한 쪽이 낫지.”
“제1 대륙 놈들을 막을 방파제가 필요하다.”
“큭.”
RD의 땡그란 두 눈이 찡그려진 모양으로 바뀌었다.
성운 뒤에서 룬다가 엘다르에게 되게 귀엽다며 수근거렸다.
성운은 그 말을 무시했다.
“…이대로 너한테 이것저것 내놓으라고 하고 가만히 놔두면, 제1 대륙 놈들이 널 박살내겠지. 그럼 놈들은 어느 정도 마련된 기반과 너의 기술을 흡수할테고.”
“그래. 지금도 본토에 있던 기반 시설들을 가져갔으니 어느 정도 발전 중이겠지만…”
“아, 그건 걱정안 해. 지금 파비랑 연합 기술 수준을 가져간다고 대단한 뭔가를 만들어낼 것 같진 않으니.”
“…큭.”
성운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반대로 니가 제1 대륙놈들과 붙었을 경우에도 귀찮아지는 지점이 있지.”
“그러니 먼저 선수를 쳐서 회유를 하겠다?”
“그래.”
RD는 생각에 빠졌다.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동맹이 되더라도 제3 대륙 만신전이 요구하는 건 제1 대륙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 그리고 기술을 온전히 넘겨받을 수 있는 것이니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다.
‘아니, 아니지.’
하지만 바로 자신이 제1 대륙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화약 무기라는 제대로 된 빌드를 타고, 마법사까지 회유하는데 성공한 흑린을 보면 러버펑크와의 시너지도 고려할만했다.
‘…이건 된다.’
RD가 말했다.
“조, 좋아. 까짓 거 그래볼까.”
크람푸스가 RD의 태도를 걸고 넘어졌으나, 파비랑 연합 또한 흑린 제국에 포함되었다.
당시에 이미 제1 대륙의 공격이 임박한 시점이었으나, 이동성은 역시나 최고 전력이었다.
제1 대륙 동맹은 강신 스킬까지 사용하는 등 분발했으나 고르디우스에게 패배하고 정박한 선박 50척을 그대로 흑린에 넘겨줘야만 했다.
흑린은 제1 대륙의 첫 공격을 막은 이후, 파비랑 연합의 도시 울로르를 주요 항구로 삼고 본격적인 신대륙 개척에 나섰다.
반도에 위치한 흑린 본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제국령에서 독자적인 모험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울로르는 가까운 서쪽 항구 펜과 합쳐져 울로르-펜이라는 거대 항구도시로 성장했고, 제3 대륙에서 오는 수 많은 범선들을 맞이하는 동시에 제4 대륙에서 찾아낸 귀한 유물이나 온갖 희귀한 동식물, 두두바 고무나무, 그리고 파비랑 연합의 톱니바퀴 기술자, 끝으로 제4 대륙 입장에서의 신대륙인 제3 대륙으로 성공의 기회를 얻으려는 수 많은 팽골리안과 라크샤사, 또 다른 소수 종족들이 그 도시로 모였다.
울로르-펜에서 출발한 배들은 마가넨을 비롯한 제3 대륙의 수 많은 항구도시로 갔다가, 그곳에서 다시 모험가와 상인, 사제들을 태우고 울로르-펜으로 돌아갔다.
그야말로 모험의 세기였다.
야천을 비롯한 만신전의 사제들이 제4 대륙에 사원을 쌓았고 그곳의 신수들과 신수들을 따르는 소수 종족들과 교류했다.
특히나 팽골리안들은 흑린과 원주 종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팽골리안의 왕 마고가 신수 카튜루와 함께 그런 일들을 해냄으로 흑린의 황제에게 ‘중재자’의 칭호를 얻은 것은 널리 알려졌다.
위험은 아직 남아있었다.
대륙의 서쪽은 여전히 검은 교단의 교세였다.
소수의 공인받은 상선들만이 간헐적으로 교류를 했고, 딥원의 지배를 받는 소수 종족들이 검은 교단의 땅 너머로의 출입을 불허했다.
고대 유적에 잠자고 있는 많은 유물과 보물들을 찾아내기 위해 모험가들이 발을 들였고, 아직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종족들이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바센 라크 오라즌은 티오네 이티모, 마즈다리와 함께 성지라 불리는 요뵌을 발견하고 또 다른 드래곤 아트네일을 죽였다. 놀랍게도 이 싸움에선 그 어떤 신의 도움도 필요가 없었다.
요뵌은 절벽 높게 융기한 고원 지대로, 정글이 끝나는 곳이었다.
지평선 너머까지 보여지는 푸른 들판은 바센에게 있어 동생 슌이 보았다는 그 태초의 초원과 다름없이 보였다.
초원의 첨탑을 지배하는 아트네일을 죽이는 것으로 시련이 끝나고 드디어 또 다른 신들, 플레이어 임춘식과 솔롱고스가 되살아났다.
임춘식과 솔롱고스는 AR1026보다도 훨씬 당황했다.
하지만 첫째로 플레이어 모두에게 소환된 이유가 있으니 그걸 알아야 한다는 목적, 둘째로 흑린 제국의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으니 그걸 관리할 신들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만으로도 충분히 동맹을 받아들였다.
엘다르는 성운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세 번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두 사람에게 말하기도 했다.
임춘식이 말했다.
“세 번째 이유라니?”
“마음에 걸렸던 거죠. 그 사람에겐.”
“마음에 걸려?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던데.”
“그냥 제 생각이에요. 게임은 같이 즐기는 거 잖아요. 그렇게 가혹할 필욘 없으니까요.”
“흠.”
임춘식은 턱에 손을 괴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뭐, 자기는 아니라고 할테니, 직접 물어보진 마시고요.”
요뵌의 첨탑 옆에는 바센의 이름을 딴 바세니올이란 도시가 세워졌다.
바세니올은 울로르-펜을 통해 신대륙에 도착한 이들에게 그 다음 이정표가 되었다.
동시에 바세니올은 모험가들에게 있어 두 번째 고향이 되기도 했다.
북부 정글은 제4 대륙의 일부에 불과했다.
수 많은 이들이 제4 대륙을 탐험했다.
만신전의 플레이어들에게도 꺼릴 것이 없었다.
폭발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었고, 이런 개체들 사이에서 신들이 눈여겨볼 높은 능력치의 개체를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개체들 스스로 자신들이 신들이 눈여겨볼 존재임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태어날 때부터 그럴만한 자격을 갖춘 이들이 위대한 일들을 해냈다.
새로운 고대 유적이 발견되고, 또 드래곤을 죽이고, 위협받는 개척지를 보호했다.
하지만 가끔은 평범한 이들이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도 했다.
반목하는 두 부족을 화해시키고, 와이번을 길들이는데 성공했으며, 새로운 토양에 맞는 새로운 농사법을 찾아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땅에 건물을 쌓아올렸다.
한탕을 노리고 달려드는 치안이 부재한 도시에 자경단을 꾸렸다.
수원을 지키기 위해 신수와 거래를 했다.
그러는 한 편, 오라즌의 궁정에서도 위대한 발견이 나타났다.
궁의 정원에 쇠로 만든 기계장치가 놓여 있었다.
기계장치는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뉘어있었는데, 둘 사이에는 이어지는 톱니가 있었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없는 큰 것이 베틀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날실과 씨실들이 기계 사이에 걸려있으니까.
하지만 면직을 짜는 기구라기엔 사람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작은 것은 옆에 석탄이 쌓여 있는데, 언듯 보면 화로처럼 보였다.
카일 라크 오라즌이 말했다.
“럼프, 너무 긴장한 것 아닌가?”
“예? 아, 하하. 조금 그렇군요.”
“걱정할 것 없다고 보는데. 이 방향이 맞아. 나선날개를 만들기엔 너무 무거웠을 뿐이야.”
럼프는 한숨을 쉬었다.
카일이 처음 제시했던 모델은 이쪽이었지만, 나선날개를 흉내내느라 시간을 쏟았던 게 문제였다.
과거의 실패 때문에 이번 시연에서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폐하 말씀이 맞습니다. 중요한 건 저 스스로 움직이느냐니 말입니다.”
“야천께서 주신 선물 중엔 비단도 있지. 누에는 저 스스로 움직여 실을 자아내지. 야천께선 우리도 그와 같은 흉내를 내길 바라고 계시네. 알겠나?”
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겠습니다.”
럼프가 신호를 주자 기계장치 옆에 있던 기술대 관료가 작은 기계 안쪽에 불을 떼고 안에다 석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기계 안에 있던 물이 끓었고, 화로 안에 있던 석탄이 타면서 배관을 타고 밖으로 검은 연기를 뿜어댔다.
럼프가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그리고 조금씩, 작은 기계 옆의 톱니가 돌았고, 그에 맞붙은 큰 기계의 톱니도 맞춰 돌았다.
최초의 방직기가 면포를 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