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가족이라니.’
라민 솔로스트 무엘은 자신의 이름을 휘 주란 무엘이라고 밝힌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 쌍의 사슴뿔은 라민에게도 조금은 익숙하게 느껴졌다.
먼 옛날 휘경이 가지고 있었던 바로 그 뿔이었다.
라민이 보기에 휘경이 조상이라는 건 사실인듯 싶었다.
그래서 라민은 다른 의문을 지적했다.
“전제가 틀렸어. 나는 휘경을 어버이로 생각하지 않아. 뱀파이어들은 자길 뱀파이어로 만들었다고 부모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그럼 어떻게 여깁니까?”
“어, 음… 좀 복잡해. 말하고 싶지 않아.”
“감정에 대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정돈 말해줄 수 있지 않나요?”
“굳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하면 부정적인 쪽에 가깝지. 다른 종족이 가족을 기꺼이 여기는 것과는 달라.”
“가족이란 원래 그런 거죠. 본래라면 남이었을 것을 핏줄이 이어졌단 이유만으로 서로 맞지 않아도 부대껴 살아야지 않습니까?”
라민이 주란을 어처구니 없다는듯 바라보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긍정적인 부분이 더 큰 거 같기도 해.”
“말씀하신대로 기꺼이 여기는 것도 가족이죠.”
라민이 도움을 구하기 위해 고르고타 팔루를 바라보았지만 고르고타는 운전중이었다.
마즈다리를 바라보았다.
마즈다리가 말했다.
“주란은 내 마법사 제자다.”
“저희 가문은 제 증조할머니 때부터 마탑을 관리해왔지요.”
“휘 라비다 무엘은 내 친구였지.”
마즈다리가 설명했다.
“신들께서 말하시길, 라민 너는 흑린 안에서 휘경과 만나고 아직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다. 너 말곤 휘경을 찾을 단서를 찾기 힘들다.”
라민은 당황했다.
“휘경이 절 뱀파이어로 만들긴 했지만 그렇게 깊은 관계는 아니었어요. 단리에서 나고 자라긴 했지만 너무 오래전이고요. 휘경이 계속 한 장소에서만 있었을 것 같지도 않고.”
“상관없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것 보단 낫지. 여기 있는 우리는 휘경을 대면해본적도 없다. 휘경과 직접 대면해본적 있는 이가 나서는 건 당연한 거지.”
그렇게 말한 마즈다리가 이번에는 주란을 가리켰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찾을 것도 없다.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힐 수만 있다면 주란에게 있는 ‘뿔’이 휘경을 감지할테니까.”
주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뿔이 이야기하길, 같은 핏줄이라면 자신이 들어차 있었던 자리를 감지할 수 있다는군요.”
라민이 말했다.
“알겠어요. 이 모든 게 만신전의 뜻이라면 따라야죠. 그런데 왜 휘경을 찾아야 하는 거죠?”
“그건 비밀이다.”
라민은 마즈다리의 표정을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마즈다리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종족이 다르기 때문에 읽어내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같은 가루다라고 하더라도 마즈다리의 의중을 알아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 왔습니다, 사도님.”
“비행장 안으로 계속 달려라, 요원.”
“네?”
라민이 고개를 돌려 차량의 앞을 보았다.
비행선착장 건물 옆으로 커다란 비행선이 내려앉아 있었다.
크고 거대한 고래를 떠오르게 만드는 유선형의 경식 기낭 아래에 나무로 엮어 만든 동체, 그 동체 옆으로는 추진력을 제공하는 거대한 나선 날개가 한쌍 붙어 있었다.
마즈다리가 말했다.
“저기 정박해있는 비행선이 우리가 탈 비행선 ‘천둥지기’니까.”
─┼
천둥지기에는 이미 많은 군인들이 올라타 있었다.
이리저리 수상쩍은듯 둘러보는 라민에게 고르고타가 말했다.
“제가 군인이었을 때도 천둥지기는 유명했습니다. 동부와 남부 전선을 오가며 오십 회 이상의 작전을 수행했고 아직도 추락하지 않았죠. 각 군에선 승리의 징표로 여겨지는 전설적인 비행선입니다.”
“저야 최근의 전쟁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런 것치곤 별다른 무장은 보이지 않는데요. 비행선 한 척이 전장에 그렇게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나요?”
“그야 마즈다리 님이 올라타는 비행선이니까요.”
“…아하.”
함교에서 마즈다리가 말했다.
“가능하면 이 비행선을 타고 그대로 서쪽 대륙까지 가는 게 목표다.”
“‘가능하면’요?”
“어려울 수도 있지. 천둥지기는 높은 고도로 날 수 있고, 내 마법을 더한다면 평균보다 더 높게 오를 수도 있다.”
“그런데요?”
“하지만 단리도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으니까.”
기낭에 수소 주입이 끝난 뒤, 이제 비행선은 지면 위에서 한껏 떠있었다.
천둥지기와 지면을 묶어주는 건 몇 개의 밧줄 정도였다.
“운이 좋다면 단리의 용기사와 분노하는 자의 눈을 피해 한 번에 서쪽 대륙까지 파고들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요?”
“전선을 넘지도 못하겠지.”
천둥지기의 리자드맨 선장이 명령하자 선원들이 밧줄을 동시에 끊어냈다.
천둥지기가 부유하기 시작했다.
라민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계획이 미뤄지겠군요?”
“그럴리가.”
마즈다리가 말했다.
“어떻게든 전선을 넘어야지.”
“하지만 육로로 연합왕국이 지배하고 있는 남쪽 대륙의 아래까지 간다고해도, 바다는 어떻게 넘죠?”
“제국의 도움을 받기 힘드니 어떻게든 밀항해야겠지. 다행스럽게도 배에 들키지 않고 올라탈 수 있다면 연합왕국 내에서야 까다롭게 수색하진 않겠지.”
“그, 서쪽 대륙에 도착한 다음도 문젠데요. 연합왕국 안에서 적발될 가능성도 높잖아요.”
“연합왕국은 제국처럼 철도 연결이 잘 되어 있다더군.”
라민은 그 기나긴 여정을 가늠해봤다.
“그러면 다음 학기까지도 못 돌아오는 거 아니에요?”
“죽는 걸 먼저 걱정하지 않는건가?”
“뱀파이어들은 모두 자기가 한 번은 죽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미련을 덜 가지죠.”
마즈다리는 한쪽 눈썹을 슬쩍 올렸다.
“흥미롭군. 아무튼 고단한 여행이 되지 않길 바란다면 천둥지기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도록해라.”
라민은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인지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예감이 들지 않았다.
─┼
단리 연합왕국, 남쪽 대륙의 어딘가.
고대 유적의 폐허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서 있다는 표현은 부적절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종족이 라미아였기 때문이다.
인간이나 엘프를 연상하게 닮은 상체와 달리 하체는 긴 꼬리를 가진 뱀의 모습이다.
이 뱀꼬리가 워낙 두텁고 길기에, 수 백년 전만 하더라도 라미아는 다른 종족들에게 괴물로 여겨질 정도였다.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들에게 라미아는 켄타우르스나 가루다와 같은 희귀 종족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이런 종류의 종족들이 다 그렇듯, 종족의 개체수를 늘리는 것이 어렵지만 힘이 억세고 지능이 높고, 다른 종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사회성 문제의 경우 다른 종족보다 조금 더 난항인 부분이 없지 않았고, 그 때문에 많은 플레이어들에겐 버려지다시피 하는 종족이었다.
라미아는 식인 기호가 있기 때문이다.
라미아와 동맹 관계인 종족이라 하더라도, 라미아 개체 중 일부는 동맹 종족의 어린아이를 유괴해 잡아먹는 일이 발생했고, 덕분에 그런 동맹이 길게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종족에 따라 상대 종족이 잘 맞지 않아도 피해를 감수하는 법이지만 라미아의 경우엔 치명적이었다.
플레이어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종족의 귀결이 그러하듯 게임 중반부 쯤에서 멸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물론 지금 남아 있는 많은 종족들이 그러한 본성을 어떻게든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이 여성 라미아도 어느 정도는 본성을 억제하고 있었다.
이 라미아의 상체에 입고 있는 검은 제복과 견장을 본다면 단리 연합왕국 출신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남부 전선에서 싸워온 흑린의 군인이라면 먼 발치에서나마, 아니면 뜬 소문으로나마 이 라미아의 이름을 알고 있을 터였다.
“알마 알로이 님, 여기 계셨군요.”
라미아 알마는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붉은 가면을 쓴 검은 옷의 이빨 요원이 서 있었다.
“델. 바세니올에서의 작전이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빨 요원인 델이 바세니올의 주요 인원을 끌어들여 대규모 좀비 역병을 퍼트린다는 계획이었다.
계획과 실패 과정에 대해서는 알마도 이미 알고 있었다.
계획에 활용하려고 했던 인물 중 하나는 그들의 생각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
흑린의 첩보부는 단리가 은밀하게 옮겨놓았다고 생각한 좀비 역병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델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뇨. 그리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저도 분노하는 자께서 요구하신 많은 일들을 실패했으니까요.”
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알마를 바라보았다.
알마 알로이는 분노하는 자의 다섯 번째 사도였다.
흑린의 기준에서 서쪽 대륙, 단리는 중앙 대륙이라고 불리는 땅, 제2 대륙에서 연합 왕국의 통일 전쟁을 벌일 때 몇 번이나 연승을 쌓아온 전쟁 영웅이다.
라미아라는 육체적인 능력도 뛰어나지만 전장을 지휘하는 용병술과 병사들에 대한 카리스마로 유명했다.
죽을 것을 알았으나 분노하는 자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산제물의 성녀’, ‘제 꼬리를 삼키는 뱀’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델이 말했다.
“알마 님이 지휘를 맡으신 동안 저희 북부 전선은 흑린에게 전선을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선을 전혀 밀지도 못했죠. 입에 발린 말은 됐습니다, 델. 마신과 그 치하의 적들이 얼마나 두려운 힘을 가졌는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연합왕국에서 야천은 마신으로 통칭되었다.
연합왕국 내부에서 흑린 제국을 악의 제국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일종의 프로파간다 전략은 로스트 월드에선 일반적이긴 했다.
지배 당하는 개체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상대를 악마화 하여 전쟁과 전쟁범죄를 거침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성운은 이런 전략을 적극적으로 하긴 어려웠다.
우선 흑린 제국의 기조가 제국의 적은 무지한 상태이며 최후에는 포용해야할 아군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절대악이 존재한다는 사상을 대두시킬 경우, 사상적인 모순이 발생할 수 있었다.
로스트 월드의 초보 플레이어들이 범하는 실수가 이런 사상적 모순을 도외시 하는 것이었다.
전략은 한 게임에 둘 이상 가지게 된다면, 플레이어에 속하는 개체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신앙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
스스로 모순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신앙을 버리거나 반란을 일으키고, 심하면 적대 세력에 흡수되기도 했다.
그리고 성운이 생각하는 다른 걱정도 있었다.
이 로스트 월드에는 진짜 ‘악’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고대의 악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플레이어가 당장 간섭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고 불시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왕국을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한다면 진짜 악이 나타났을 때 곤란해질 수 있었다.
물론 헤게모니아는 자신 혼자서도 어떤 상황이든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그런 일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알마가 말했다.
“그래서, 전달할 소식이 있다고요?”
“예. 정보원 중 하나가 알려왔습니다. 제국의 사도 하나가 전선을 이탈해 움직이고 있다고요.”
“사도라면?”
“3석입니다.”
알마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시체 까마귀. 마신의 증오스런 힘을 휘두르는 새 말이군요.”
지휘관인 알마에게 있어선 괴롭다못해 공포스러운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