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지휘관인 알마 알로이가 마즈다리를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알마는 마즈다리의 악명을 잘 알고 있었다.
단리 연합왕국은 위협이 될만한 모든 마법사를 체크하고 있었지만 그 중 사도에 오른 마즈다리의 힘은 독보적이라고 할만했다. 분노하는 자의 힘이 아니라면 사실상의 대항이 불가능했다.
물론 이런 이유에는 연합왕국이 마법사 전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었다.
분노하는 자, 그러니까 플레이어 헤게모니아는 마법을 배제하는 빌드를 택했다.
통일되고 일관된 체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마법 배제는 일반적인 빌드였고, 성운도 자주 사용했다. 오히려 성운의 마법을 받아들이는 빌드는 예외적이고, 이번의 경우엔 특별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그대신 기술 발전만큼은 착실하게 흑린 제국을 쫓고 있었다.
본래 기술 발전과 지식 체계에 그다지 중점을 두지 않았음에도, 그러한 경향을 가진 흑린과 발을 맞출 수 있는 이유는 마법을 배제한 덕분이었다.
알마가 말했다.
“사도가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까?”
“예. 하지만 같은 시기에 일어난 다른 몇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델이 계속해서 말했다.
“바세니올 비행선착장에서 천둥지기가 목격되었습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분명 착륙했었고요.”
“착륙이요?”
“네.”
알마가 말했다.
“그 전후로 있었던 다른 사건은 없었습니까?”
“그 직전에 저희 작전이 있었습니다. 마즈다리가 나타나 방해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계획의 일부였지요.”
“또?”
“음, 자동성이 근접했습니다. 본래 경로를 이탈했었는데…”
“아, 그건 다른 일 때문입니다. 저희 부대 하나가 제국의 보급창 하나를 박살냈거든요. 군수물자를 옮기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다른 특이한 일은 없습니까?”
“흠.”
“제가 모르는 것이라면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델이 잠시 고민하는듯하다 입을 열었다.
“별 건 아니지만, 저희가 회유하려고 했던 뱀파이어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바세니올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진 말입니다. 지금은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알마는 무언가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엔 시체 까마귀가 움직이는 이유가 두 가지 정도 떠오릅니다. 하나는 로난테-오로반 동맹의 힘이 약해진 잠깐 동안 다른 전선에 힘을 실어주려는 거죠.”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습니까?”
알마가 말했다.
“천둥지기가 착륙했었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예?”
“그 시체 까마귀는 하늘을 날아답니다. 자기가 저주를 극복했다는 사실을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굳이 비행선을 타기 위해서 착륙하라고 명령할 필요가 없지요. 의전에 연연하는 사람도 아니라고 알려져있고.”
“아.”
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군가가 천둥지기에 올랐다는 말인데… 그 뱀파이어가 마음에 걸리시는 겁니까?”
“예.”
“하지만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과거가 불확실한 부분이 있긴 하나, 그리 눈여겨볼만한 활동을 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흐음, 그럴지도 모르지요.”
델은 무언가 더 말해주길 기다렸지만 알마는 뱀파이어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알마는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돌아갔다.
“용사 하나를 움직여야겠습니다.”
“용사… 말입니까?”
“네.”
용사는 로스트 월드의 시스템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은 아니었다.
다만 플레이어가 특별히 눈 여겨보는 개체가 있는 법이고, 그런 개체는 당연히 높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그런 개체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한다면 다른 개체들과는 다르게 부각되는 존재가 된다.
그것을 만신전에서는 선택받은 자라고 부르듯 분노하는 자의 신전에서는 용사라고 불렸다.
많은 용사들이 치적을 쌓았고 연합왕국의 영웅이 되었다.
이름을 널리 떨친 용사들은 왕국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노래와 시가 지어졌다.
안타깝게도 그런 시기도 전쟁 이전까지의 이야기였다.
어디까지나 연합왕국의 기준이지만, 제국의 사악한 힘으로 말미암아 이전 시대의 용사들은 스러져갔다.
이 시대에 용사가 된다는 건 영웅이 되어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버려 명예로운 후일담으로 남는 것을 의미했다.
“…마힘을 보내야겠습니다.”
“용기사 마힘 말입니까?”
“예. 천둥지기를 찾고 그에 대적해야 한다면 마힘이 제격이겠지요.”
물론 마힘만으로는 만신전의 사도를 상대할 수 없다.
그 뒤로는 분노하는 자의 의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델이 말했다.
“제 다음 행선지로 가는 길에 그분이 계신 비룡 둥지를 지나칠듯 합니다. 어디로 가라 이르면 될지요?”
“지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델은 품에서 지도를 꺼내들었다.
알마가 손가락으로 짚은 곳은 델이 생각한 것보다 더 아래였다.
“전선은 그 위쪽이지 않습니까?”
“시체 까마귀가 전선에 폭격을 가한다면 그쯤 있겠지요. 하지만 전선을 지나쳐서 내려올 요량이라면, 저 창천의 하늘길을 따를 겁니다. 우리가 눈으로는 볼 수 없을 저 창공의 끝을 날겠지요.”
“…전선을 지나칠 거라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고작 뱀파이어 때문에요?”
알마는 델의 질문을 무시하며 말했다.
“마힘을 이리로 보내십시오. 기사단을 대동하고 와이번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거기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하십시오. 거기 천둥지기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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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민 솔로스트 무엘은, 이 여행이 생각보다 괜찮지 않은가 자문했다.
라민의 첫 번째 걱정은 태양이 너무 가깝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는데, 생각과 달리 비행선이라는 구조는 원하지 않는다면 햇볕을 쬐지 않고 생활하기가 좋은 공간이었다.
특히나 한낮에는 거대한 기낭이 태양을 가려주었기 때문에 갑판으로 올라와 바람을 쐴 수도 있었다.
게다가 마즈다리가 마법사인만큼 라민의, 순전히 흥미 본위인 지식열을 충족시키기도 좋았다. 물론 마즈다리는 자신의 방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바빠보였고 자신의 제자인 휘 주란 무엘과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런 경우에는 천둥지기 내부에 마련된 서재를 이용할 수 있었다.
분명 전쟁을 위해 건조된 배이긴 하지만 사실상의 전력을 마즈다리 또는 함께 탑승하고 있는 다른 마법사들에게 기대고 있는만큼, 생활과 편의를 위한 공간도 잘 마련된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제국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마법사들은 모두 고위 장교였다.
공군과는 큰 접점이 없는 고르고타 팔루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지내다가 틈틈이 라민에게 말을 걸었다. 라민이 보기엔 퍽 지루한 모양새였다.
고르고타가 말했다.
“사도님을 서스럼없이 대하는 건 놀랍군요.”
“나이는 나랑 비슷하거든요.”
“…역시 그 부분이었습니까?”
“오히려 제가 놀란 부분은 고르고타 씨가 제 나이를 알고도 전과 같이 대한다는 부분이었는데요. 라크락께서는 늙은이들에게서 지혜를 구하려거든 우선 대우를 해주어라 하시던데.”
“…제가 여기서 얼마나 더 극진히 대해드려야 할런지?”
“바로 그 부분!”
라민이 따져들려고 할 때였다.
갑판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르고타가 문쪽으로 급히 나가며 말했다.
“제가 확인하고 오지요.”
나갔던 고르고타가 몇 초 뒤에 다시 들어왔다.
“습격입니다!”
라민이 고르고타를 따라 갑판으로 나가자, 푸른 창공이 보였다.
구름이 드문드문 껴있지만, 땅을 내려다보면 지평선의 둥근 모습이 보여질 정도다.
산소가 희박해질만큼의 높이지만 마법사 하나가 전담해 선체에 공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에 호흡에 문제는 없었다.
고르고타가 라민에게 말했다.
“왜 올라온 겁니까? 습격이니 방 안에 계시라고 했잖습니까?”
“방 안에 있으면 배가 떨어질 때 아무것도 모르고 죽을 거 아녜요? 배가 떨어질만큼의 위협이 아니면 큰일이 아닐테고요.”
고르고타는 잠깐 고민하면 반박할 논리를 떠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아, 그래요, 좋습니다.”
마즈다리가 뒤이어 빠른 걸음으로 갑판 위로 올라왔다. 뒤에는 주란이 따라왔다.
병사 하나가 달려와 말했다.
“용기사들입니다. 숫자가 제법 많습니다. 아직까지 접근하고 있지는 않지만…”
“직접 확인하지.”
“예. 약 500미터 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구름이 없어 자신들이 발견된 건 알고 있을 겁니다.”
마즈다리가 갑판 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먼 거리였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보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 형상이 날개짓을 하는 무언가라는 것 정도는 알아볼 것이다.
용기사들은 와이번을 타고 다닌다.
와이번은 시기적으로 따지자면 가장 최후에 가축화된 괴물이었다.
몸길이는 8미터, 편 날개 길이는 15미터가 넘는다. 물론 그 길이의 대부분을 꼬리와 날개가 차지하고 있어 실제 체격만 따지면 더 큰 괴물이 많지만, ‘땅에는 드레이크, 하늘에는 와이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와이번은 사납고 위협적이었다.
와이번 목축은 물론 기승이 가능해지자 떠오른 것은 와이번을 타고 싸우는 일이었다.
비룡기사, 이른바 용기사들은 전장에서 말과 같은 탈것을 탄 기사들이 총기에 밀려 상대적으로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와중에 나타난 대안 전력이기도 했다.
소총의 사격 직후를 노려, 300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로 추락에 가까운 속도로 용기사가 돌격창을 내지르며 지면을 훑고 지나가면 보병 부대를 와해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런 와이번은 나선날개의 등장 이후 중요해진 하늘에서의 싸움에서 굉장히 유효했다.
와이번은 나선날개보다 빠르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다.
천둥지기 아래의 와이번들은 대략 그 숫자가 일백 정도였다.
모두 용기사가 타고 있을 걸 감안한다면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마즈다리가 선장 플로이 탄센을 불렀다.
“플로이.”
“예.”
“저놈들이 얼마나 오래 저기 있었지?”
“저희가 발견한 건 약 1분 전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놈들보다 훨씬 거대하니…”
“우리 발견이 늦었을 수도 있군. 그렇지?”
“예.”
마즈다리는 고개를 들어 기낭을 바라보았다.
“사도님?”
“용기사들이 자주 쓰는 전략을 기억하나?”
“‘머리 후리기’ 말입니까?”
용기사라고 해도 숫자가 더 많은 공군에다 함포, 마법사를 대동한 비행선을 무작정 습격하긴 힘들다.
때문에 전형적인 용기사의 공격의 경우, 아래가 아닌 위에서 공격을 가한다.
물론 기낭은 외부가 아주 두터운 가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다 한 겹 정도는 손상이 되어도 바로 내부 가스가 새어나가지는 않기에 창날로 내지르지는 않는다.
휴대하고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 비행선에서도 용기사를 발견하기 때문에 눈속임을 위한 별도의 조를 쓰기도 했다. 이것이 머리 후리기 전략이었다.
플로이가 말했다.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용기사들이 올라오기 힘든 고도입니다.”
“으음.”
“하지만 기낭 위엔 교대 근무를 서는 병사들도 있으니…”
“평범한 용기사라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마즈다리는 몸을 돌렸다.
“라민.”
라민은 갑자기 마즈다리가 자신을 찾을 줄 몰랐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네?”
“검은… 차고 있군. 총은… 이걸 써라.”
마즈다리는 자신의 품에서 리볼버를 꺼내 라민의 손에 쥐여주었다.
“네?”
“착지는 알아서 해라.”
“뭐라고요?”
마즈다리는 답하지 않았다.
그다음 라민의 한쪽 손목을 잡고는 난간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니, 뛰어내리는 것은 라민 뿐이었다.
마즈다리의 반대편 손은 기낭과 선체를 연결하는 밧줄을 잡고 있었다.
“으악?”
라민은 이대로 자신이 비행선 밖으로 내던져진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옳았다.
단지 방향이 틀렸을 뿐이다.
라민은 마즈다리의 검게 그슬린 것 같은 왼쪽 손등 위로, 마법진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문신으로 새겨놓은 마법진이었다.
마즈다리는 라민을 내던졌다가 원형을 그리며 원심력의 추진을 받아 라민을 하늘로 쏘아올렸다.
라민은 중력을 잃어버린듯 솟구쳤다가, 가볍게 한 바퀴 돌며 기낭의 위를 보았다.
와이번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
그리고 그 와이번 뒤로, 갑옷을 입은 미노타우르스가 서 있었다.
투구를 쓰고 있어도 그 두상 때문에 미노타우르스란 걸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아래, 라민을 지켜야 하는 임무가 있는 고르고타는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이게 무슨?”
“걱정마라, 요원.”
난간 위에 올라선 마즈다리가 말했다.
“이 배에서 나를 제외하면 저 뱀파이어가 제일 강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