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다 떨어져 죽게 생겼는데 무슨 태연한 이야길 하는 건데요? 아, 알겠다. 자기는 날개가 있으니까 괜찮다?”
“날개와 하늘을 나는 건 항상 인과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
“무슨 말이에요?”
“그리고,”
마즈다리가 말했다.
“나는 추락한다고만 말했지 다 죽는다고 이야기하진 않았다.”
라민 솔로스트 무엘이 내심 안도했다.
마즈다리는 대마법사이자 사도이기도 하다.
천둥지기에 있는 모두를 죽게 내버려두진 않을 것은 당연했다.
“역시 방도가 있군요?”
마즈다리가 가로저으며 말했다.
“방도? 딱히 내가 나설 일은 없다.”
“네?”
“천둥지기는 본래 기낭이 완전 파손되어 추락하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어서 건조된 비행선이다. 낙하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경착륙을 연착륙으로 바꿀 수는 있지.”
그 말에 라민은 바쁘게 뛰어다니고 용을 쓰는 병사들이 뭘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병사들은 날개 양쪽에 달린 추진기의 방향을 지렛대를 통해 돌리고 있었다.
본래 전방으로 쏘아나가도록 되어 있는 나선날개들을 아래에서 위로, 그러니 비행선이 어떻게든 양력을 얻도록 바꾸려는 것이었다.
마즈다리가 말했다.
“기낭이 완전히 파손 된 것도 아니니 수리가 가능하다. 마법사 몇몇은 이미 수소 합성을 시작했으니 기낭을 채울 가스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고, 찢어진 기낭을 수리할 자재도 가지고 있지.”
마침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덜컹, 하고 선체 양쪽에서 소리가 났다.
기울어가던 추진기 양쪽이 모두 직각으로 각도를 바꾼 것이다.
리자드맨 선장 플로이 탄센의 명령에 양쪽 추진기 나선 날개가 돌아가자, 낙하 속도가 몸으로 체감될 정도로 늦춰졌다.
병사들이 환호하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다.
라민이 다리를 쪼그려앉았다.
“왜 사람을 놀래켜요?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줄 일이 있는지 봐야겠네요.”
“라민, 이해를 못했군. 우리가 살아서 땅에 도착한다고해서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다.”
“또 뭔데요?”
“우리가 추락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추락했는지가 문제인거지.”
그제야 라민이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연합왕국의 용기사들을 만났으니, 당연히 천둥지기가 전선을 넘었다고 봐야한다.
마즈다리가 말했다.
“우리는 남쪽 대륙, 단리 연합왕국의 가장 깊숙한 땅에 떨어진 거다. 우리 발 아래에는 수 많은 연합왕국의 병사와 무기들이 있겠지.”
라민이 당황했다.
“내심 비행선이 추락하길 바라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전선에 도달하기 전까지 떨어지길 바란건데. 야천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는데 착오가 있으셨나 보네요.”
“…역시 그랬나.”
마즈다리는 라민에게 핀잔을 주려다가 별 소용이 없을 것을 알고 관두었다.
“적들이 얼마나 빠를 지는 몰라도 천둥지기를 수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전투는 피할 수 없을 거다.”
“그럼 결국 저흰 다 죽는 거네요? 사도님은 날아서 도망치고?”
마즈다리가 부리를 부딪쳐 딱 하고 소리를 냈다.
마즈다리는 지금까지 자신의 짧은 대화를 대신하여 언제나 쓸모있는 성과를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눈매로 라민을 바라보았으나, 이 뱀파이어에게는 별 성과가 없었다.
마즈다리는 한숨을 참고 말했다.
“난 도망치지 않는다, 라민.”
“다행이네요.”
“도망쳐야 하는 건 너다.”
라민이 되물었다.
“네?”
─┼
철옹성이라는 말이 어울릴법한 거대한 강철 성채.
성채는 고딕 양식을 따라 서로 다른 높이의 하늘을 찌를듯한 첨탑 수 십 개로 이루어져 있고, 그 첨탑을 잇는 아득한 높이의 회랑 다리들창에는 불분명한 표징으로 이루어진 스테인드글라스로 가득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손님 때문에 그 역할을 잃어버린 가고일들이 첨탑이나 회랑의 난간에 앉아 성채 밖의 공허를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았다. 누군가 찾아오는 것은 물론이고 빠져나가지도 못할 감옥같은 성이었다.
그 중 가장 높은 첨탑, 가장 높은 단상 위의, 가장 거대한 왕좌에 앉은, 뿔투구를 쓰고 앉은 이가 있었다.
플레이어 헤게모니아였다.
헤게모니아는 왕좌 앞에 엎드린 창조물에게 말했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라.”
어딜봐도 벨로시랩터를 닮은 창조물은 헤게모니아가 몇 가지 임무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냈다.
이런 종류의 창조물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행정’ 역할이라고 불렀는데, 현재 헤게모니아는 자신의 확장된 세계를 모두 다스리기엔 너무 바빴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랩터가 머리를 바짝 숙이고서 말했다.
“천둥지기가 저희 영토에 추락 중입니다.”
“그래?”
헤게모니아가 기대하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마즈다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대 곰치가 죽었을 때 헤게모니아는 그 화면을 치워버렸다. 어차피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거대 곰치는 죽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임무를 잊지않고 해냈다.
“그럼, 드디어 사도 하나를 잡을 수 있는 건가? 아니, 아니지. 천둥지기의 추락 장소로 군대를 보내긴 했겠지?”
“예. 다섯 번째 사도 알마 알로이가 각 방면의 군대를 움직여 포위하고 있습니다.”
헤게모니아는 랩터의 보고를 받는 동시에 시스템창으로 직접 상황을 하나하나 파악했다.
“아, 좋아. 그럼…”
헤게모니아가 추가 사항을 전달하려고 할때, 눈 앞으로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플레이어 ‘네뷸라’가 귓속말을 요청했습니다.」
반사적으로 허가 버튼을 터치하려던 헤게모니아는 그 직전 멈췄다.
‘안돼! 이번에는 절대로 안 속아.’
헤게모니아를 기준으로, 지난 수 십 년의 전쟁을 요약하자면 성운에 의한 장고한 기만 전술의 역사였다.
성운은 헤게모니아에게 간단한 제안, 휴전, 부분적인 항복까지 헤게모니아가 달콤하게 여길 수 많은 말들을 걸어왔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다음 계략을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실제로 특정 전선에서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헤게모니아가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는데, 당하기 전까지는 헤게모니아가 알 수도 없었다.
기존 로스트 월드를 할 때는 네뷸라와 대화를 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그것 또한 모두 계략인듯 싶었다.
‘정정당당한 플레이를 할 것처럼 굴더니…!’
물론 헤게모니아가 단순히 성운을 신용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두 나라 간의 전쟁이 너무나 큰 규모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 무엇에 대한 인과 관계인지 한 사람의 이해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이를테면 성운이 동부 전선에서 몇 년 간의 휴전을 제안해왔을 때 그것을 응했다가, 갑작스런 휴전으로 전쟁을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려던 상인들이 파산하고 지역 경제가 무너졌던 일이 있었다. 헤게모니아가 미쳐 체크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이후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주변 지역의 치안이 불안해지고 결국 반란군을 만들어내는 등 별 것 아닌 일들이 알고보면 전쟁을 패퇴시키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야. 네뷸라의 말장난에 놀아나지 않고.’
애초에 상대가 어떤 제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상대는 이미 준비를 끝냈다는 의미기도 했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한다고 해도, 헤게모니아가 자신의 영토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는 신이라고 하더라도,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그걸 이해하는 것에는 한 사람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아냐. 그건 네뷸라도 다르지 않아. 다른 플레이어가 있다고해도 내가 만든 창조물들 보다 좀더 똑똑하고 자율적일 뿐이지. 동맹은 언제나 위험요소야.’
정작 헤게모니아 자신이 성운과 그 동맹에 대한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건 유감이었지만, 헤게모니아는 자신이 생각하는 온전한 실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한 분야의 최정상에 오른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처럼 헤게모니아는 운도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헤게모니아는 메시지를 무시하면서 랩터에게 전달 사항을 계속 말했다.
“…아, 그리고 창조물도 더 내려보내야겠어. 지금 전선을 지키고 있지 않은 창조물 중에 자리를…”
그때 홀로 랩터 하나가 뛰어들어왔다.
“분노하는 이여!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야?”
“서둘러 북부 전선을 확인 하심이!”
헤게모니아가 화면을 띄웠다.
“…뭐야 이건?”
제국의 남부, 즉 연합왕국의 북부 전선은 일종의 참호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
사도나 창조물, 또는 전차 부대와 같은 전선 돌파 능력을 가진 이들이 전선을 돌파한 다음 그 종심을 잇는 보병 부대가 포격 후 따라 들어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상대 또한 상대의 전선 돌파를 저지하기 위해 맞대응하며 저지하면서, 다른 전선을 타격하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는 게 보편적인 전술이라고 할만했다.
두 나라 모두 오랜 전쟁 때문에 보급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 기술과 사회를 발전시켜야 하므로 각 국가들이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전선에서 보이는 모습은 그런 주고 받는 전쟁이 아니었다.
북부 전선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수 없이 많은 창조물들이 참호로 돌진해오고 있었다.
이미 헤게모니아가 이를 물고 죽여야겠다고 생각한 이른바 네임드들도 있었다.
‘스라티스가 있잖아? 저번 동부 전선 전투 이후로는 안 보이더니. 저 장수풍뎅이는 헤캅이고. 저건… 빌어먹을 세크톤이잖아.’
저중 하나만 있더라도 보병 부대를 쓸어 담을 수 있는데, 그런 창조물이 전선을 따라 수 십 마리가 줄을 지어 달려오고 있다.
분명 별 볼일 없는 수준의 창조물도 있겠지만 창조물들이 부대를 이룬다면 전선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잠깐, 저 숫자면 다른 전선에서도 창조물들을 다 뺀 건가? 그럼 다른 방면 전투를 먼저 수행하고… 아니, 아냐.’
헤게모니아는 정신을 차렸다.
전쟁 지휘에 대해서라면 성운을 상대로도 자신 있었다.
‘알겠다, 총력전을 원했던 거야. 네뷸라는 이제 더 이상 어쭙잖은 심리전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린 거지.’
그렇다면 사도 제3 석인 마즈다리나 되는 개체를 위험하게 들여보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천둥지기를 추락시킨 것도 모두 눈속임이었구나. 잠깐이라도 내가 대응할 틈을 안 주기 위해서.’
하지만 이제라도 알아차렸으니 늦은 건 아니었다.
헤게모니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아, 랩터들. 우리도 총력전으로 간다. 현재 다른 전선에서 싸우고 있지 않는 모든 사도들을 결집시켜. 1차 전선은 어차피 이런 상황에 대비한 시간벌이 용이었어. 2차 전선에서 승부를 본다!”
그때 랩터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저, 그런데 분노하는 자여…”
“뭐지?”
“…천둥지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
헤게모니아가 성을 내며 말했다.
“아직도 모르겠어? 그건 눈속임이라고. 적당히 붙잡아 둬. …단, 마즈다리 위치는 확실하게 보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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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이 위즈덤에게 말했다.
“어때?”
위즈덤이 자기 화면을 체크하며 말했다.
“말했던 대로다. 적 부대가 총집결하는군. 어떻게 알았지?”
성운이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없는 과감한 결단이니까 당연히 흥분했겠지. 그리고 걔가 단순한 부분이 있잖아?”
구체적인 전술과 전쟁으로 들어가면 제국의 위세 조차도 수그러들게 만들 능력이 있었지만, 보다 큰 범주의 전략에서는 꼭 그렇다고 보기 힘들었다.
때문에 성운이 헤게모니아를 상대하는 첫 번째 방법론으로 세운 것이 전쟁을 통해 직접적인 이득을 볼 생각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론은 늘 성공했다.
“하지만 곧장 병력을 빼면 헤게모니아도 바보가 아닌 이상 기만이란 걸 알아차리겠지.”
“그럼 손해를 보더라도 전선을 유지하는가?”
“아니, 바로 빼버려.”
“…?”
위즈덤이 몸을 돌리자 성운이 말했다.
“그대신 무엇에 대한 기만인지를 속여야지. 서부 전선에서 첩보부를 움직여야겠어. 예전에 쟁여둔 놀 피부병이 쓸모 있으면 좋겠는데.”
그사이 성운은 진짜 움직여야 할 말을 옮길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