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헤캅을 따라 마차가 올라서자, 거대한 성이 보였다.
성은 몇 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첫 번째 단은 십이각형으로 각 꼭짓점에는 탑이 솟아 있고, 하나의 면만 하더라도 1킬로미터는 될 듯 길었으며 높이 또한 수 십 미터는 될 것 같았다.
그 위로 보다 작은 높이의 단이 쌓아져 있고, 다시 또 단이 올라가는 식으로 여섯 번 반복 되었다.
그렇게 올라 마지막 단은 삼각기둥으로 이어져 각 면은 벼락 또는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기하적인 무늬로 장식되어 있었다.
라민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탑이 엄청난 넓이긴 했지만,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탑의 지름 보다 저 성이 훨씬 커보이는데요.”
“실제로 그렇다.”
비온이 답했다.
라민은 그 이상의 설명을 기다렸는데, 헤캅이 성을 향해 다시 이동하는 동안에도 딱히 말을 하지 않았다.
탑의 주변은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고, 다양한 종족의 사람들이 정원을 거닐거나, 푸른 들판에서 공을 가지고 놀았고, 정원 안의 작은 정자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아래와 크게 달라보이진 않네요.”
“당연하지.”
“조금, 무례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크게 달라보이지도 않고요.”
“그렇다.”
“그럼 시험은 왜 치르는 거죠?”
비온이 답했다.
“사람들이 그걸 바라니까.”
“사제들이 꿈을 통해서 사후세계를 들렸고, 시험의 탑을 들여다보았다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모두 진짜라면 사람들이 그걸 바란다는 게 좀 이상해보이는데요.”
“이상하지 않다.”
비온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 하지만 그걸 확인할 명확한 지표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없었다. 여기 시험의 탑이 생기기 전까지는.”
“여기에 올라오고 싶어서 시험을 치는 게 아니라, 시험을 치고 싶었고 그걸 쳤기 때문에 여기에 올라올 자격이 생겼다는 말인가요?”
“그렇다. 그래야만 여기 윗세계, 만신전에 들 수 있지.”
헤캅은 또 문을 지나치는가 싶더니, 또 벽을 기어올랐다.
“이번에도 안 들어가는 건가요?”
“이쪽이 더 빠르다. 안이 궁금한가?”
“제국에서 살면서 만신전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요?”
“첫 단은 주로 도서관으로 쓰인다. 과거의 지식은 물론이고 제국에서 쓰이게될 미래의 지식들이 쌓여 있지.”
“미래의 지식?”
“인과율에 의해 만신전의 지식은 지상 세계로 내려가지 못한다. 반면에 만신전에 든 이들은 이미 지상 세계의 지식을 넘어섰지.”
사이란이 말했다.
“내가 보여준 힘도 그에 속한다.”
라민이 흥미를 가지고 되물었다.
“총알을 빗겨나게 하거나, 검을 날려버린 힘이요? 그게 미래의 지식이라고요?”
“그래. 그 힘은 너와 같이 선택받은 자의 힘이다. 단지 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사용 방법도 달라지는 것이지.”
“저는 그런 방법을 모르는데요.”
“알게 되겠지.”
“그냥 가르쳐주실 수는 없고요? 가끔 사람들이 꿈에서 선조를 뵙고 막혀 있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고 하던데요.”
사이란이 가로저었다.
“인과에 위배된다. 신들께 허락을 받으면 조금은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을테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라민이 말했다.
“역시 의아하긴한데요.”
“어떤 부분이?”
“죽은 사람들은 먹고 마실 것도, 잠을 자고 쉴 공간도 특별히 필요없는데 신들께서 이렇게 위대한 공간까지 지어놓으셨잖아요. 그런데도 뭐가 더 필요해서 학문을 연구하고 지식을 모아두는 거죠?”
다시 비온이 답했다.
“앞서 말한 답과 같다. 저들은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했기 때문에 이곳에 있고, 그것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신들께서 그러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들이 신들 가까이에 오게 된 것이지.”
라민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
‘그럼 신들에 가장 가까운 존재, 그러니까 신들 자신도 그렇다는 걸까?’
한 단을 올라가자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
멀리있던 것에 다가가면 그 모습은 가까워져야, 즉 크게 보여야할 것인데 어째서인지 더 멀어보였다.
“그건 지상 세계의 규칙일 뿐이다.”
두 번째 단에는 검을 휘두르거나 총을 쏘는 등 군사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고, 세 번째 단에는 마법사들이, 네 번째 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작은 호수 같은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호수가 아니라 지상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이윽고 헤캅이 천문대였던 다섯 번째 단을 넘어 길다란 삼각 기둥 형태인 여섯 번째 단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위에는 뭐가 있죠?”
“신들이 계신다.”
“…전부 다요?”
“어쩔 수 없지만 전쟁 중이니만큼, 몇 분은 자리를 비웠을 거다.”
“저희를 기다리실 이유를 모르겠는데요.”
“궁금해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다 와가서 하는 말인데, 저랑 대화가 좀 안되는 거 같네요.”
비온은 라민을 빤히 보다가 다시 헤캅이 향하는 위쪽을 바라보았다.
라민이 해석하기엔 무슨 뜻인지 이해도 못한 것 같았다.
라민은 긴장하고 헤캅이 올라선 다음 마차 바퀴가 단의 가장자리를 넘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도 곧장 뭔가 나타나진 않았다.
마차에서 바라보자 보이는 건 수 십 개는 되는 계단이었다.
헤캅이 말했다.
“마차를 끌고 올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여기서부턴 직접 걸어올라야 한다.”
비온이 말했다.
“나를 따라와라 사이란과 휘경이 함께 서고 그 뒤로 라민과 주란이 뒤따르라.”
라민은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천천히 계단을 따라올랐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만약 휘경의 걱정대로 휘경이 죄를 물어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 사실은 너무 슬플 것 같았다.
‘사이란을 도와 휘경을 구할 수 있을까?’
어처구니 없는 상상이었다.
방금전 야천이 세상을 기워넣는 모습을 보았다.
그 어떤 필멸의 존재도 흉내내지 못할 모습이다.
대항한다는 건 상상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일이지.’
휘경은 충분히 고통받았다.
더이상 고통 받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휘경이 돌아보자 주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듯 눈빛이 불안했다.
눈이 마주치자, 휘경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셋이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계단을 오르자, 회백색의 사각형 돌들을 짜맞추어 이룬 바닥이 저 멀리까지 이어진 것을 보았다.
그 끝에 열 개의 왕좌가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세 자리가 비워져 있었고, 나머지 자리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다.
“네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
그렇게 말한 것은 가장 끝에 앉은 이였다.
엘프였다.
종족을 넘나드는 미라지만 한때 인간이었던 라민의 눈에는 엘프와 공유하는 미의식 덕에 더 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춤추는 그림자신, 무영이다.’
라민은 그 자리에 앉은 이들이 모두 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피부가 검고 머리에 뿔이 난 무진과 흰 드레스를 입은 만결, 별모양의 머리를 가진 속선, 얼굴을 가린 암본, 도깨비 같은 머리통의 창류.
‘그리고 야천까지.’
가운데 자리에 앉은 야천이 말했다.
-휘경.
멍하니 있던 휘경이 답했다.
“네.”
휘경이 엉거주춤 몸을 숙이자 야천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난 인세의 예법에 관심 없다.
“아, 네.”
-내가 왜 널 불렀는지 아는가?
휘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벌 주기 위함으로 압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유는… 많습니다.”
-고하라.
휘경이 말했다.
“그대의 뜻을 어기고 자동성을 영원히 가지려 했습니다. 그리고 흡혈귀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탐하며 살아남았습니다. 끝내 분노하는 자에게 속았습니다. 그 신에게 붙들려 그대의 이름을 빌려 많은 이들을 미몽에 빠트렸습니다.”
-틀렸다.
그 말에 휘경이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죄입니까?”
-너는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니 너를 벌주기 위해 불렀다는 그 생각이 틀렸다.
성운이 말했다.
-나는 사과하기 위해 너를 불렀다.
라민은 단 한번도 신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 상상해본 적 없었던 단어 때문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휘경이 말했다.
“사과라니요?”
성운이 말했다.
-자동성을 잇기 위해선 인간의 자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사이란에게 계시를 내보였다. 다만 사이란은 내 기대 이상으로 일을 잘해내었지.
사이란이 휘경 옆으로 걸어와 절했다.
“제 잘못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떨어져 있음을 버틸 수 없었나이다.”
-내가 애초에 계시를 내보이지 않았더라면 될 일이다. 결국 내 선택이 분노하는 자에게 빌미를 주었다. 이것이 내 과오다. 사이란 너는 신이 내린 계시와 이별이 만든 고통 사이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휘경이 가볍게 가로저었다.
“그렇담 결국 제 부덕이…”
-휘경, 넌 부덕하지 않다. 너는 연인을 위해 싸웠고 연인을 위해 고통 받았다. 너 또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 내 진작에 알아보아야 했었다. 내 세상만사의 변화를 읽기에 날 믿는 이들의 사소한 마음을 잃는 일을 소홀하였다. 이 역시 내 과오다.
─┼
“굳이, 그렇게까지?”
휘경에게 사과를 하겠다는 성운의 말에 장완이 빈정거렸다.
“지금까지 그보다 더한 일도 해왔잖아. 그런 일에 대해서도 다 사과하진 않았잖아. 이번이 좀더 특별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진 몰라도.”
“그렇지.”
“그런데? 전략에 도움이 되나?”
“장기적으로는 그럴지도.”
장완은 성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사과하겠다는 사람 어디갔어.”
“간접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간접적으로.”
“개체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보다는 마음이 편한게 낫겠지. 게임은 결국 멘탈 싸움이거든.”
장완이 성운을 손가락질했다.
“아, 결국 그거구나. 진짜 미안해서 사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그러고 싶다고.”
“그런걸지도 모르지. …그런데 사과하는 사람들은 사과를 하면 마음의 평안을 찾는 거 아냐?”
“알 바야?”
“하긴 넌 안해서 모르겠지.”
“….”
“시비 건 거 아냐.”
“알아.”
“단지 사실을 적시한거지.”
“…더 짜증나.”
장완이 말했다.
“그런데 정말로 무슨 바람이야?”
“바람?”
“그냥, 지금까지처럼 무시하고 지나가도 상관 없는 일이잖아.”
성운은 턱에 손을 가져가서 잠시 생각했다.
“취미야.”
“뭐라고?”
“알디가 욕조 위에서 둥둥 떠다니거나, 크람푸스가 술을 마시거나, 에이알이 프릴 달린 옷을 만들거나, 위즈덤이 고무줄로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것처럼 나도 여가 생활을 하겠다는 거지.”
장완은 당황했다.
취미라곤 게임 밖에 즐기지 않던 성운이 취미를 즐기겠단 것까진 좋지만, 결국 그 취미란 것도 게임인 셈이었다.
‘이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취미를 왜 가지는지 이해를 못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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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이 계속 말했다.
-지상 세계의 전쟁이 위중하여 부득이하게 내가 내려서지 못하고 너희를 불렀다. 사과를 받고 싶을지 어떨지를 가늠하지도 않고, 내가 이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했다.
“…가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미안하다, 휘경. 사과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시간을 고칠 수 없다.
“아닙니다. 이미 과분합니다.”
휘경이 눈물을 참기 위해 눈을 깜빡였다.
라민은 신이 사람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
잊히지 않을 광경이었다.
라민은 이제서야 신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할 것 같았다.
신은 사람을 도구처럼 사용하기에 그저 그러한 격차로만 받아들였다.
쓰다가 쓸모없어지면 버려지기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은 사람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사과할 수도 있는 존재였다.
그 말은 신이 모진 시련으로 사람을 밀어넣을 때 고통을 느낄 거란 말이기도 했다.
신들도 고통을 알았다.
‘우리 세계는 그런 고통을 감내하면서라도 도달해야할 곳으로 가고 있는 거야.’
성운이 말했다.
-다만… 오래전 시작도 하지 못했던 일을 끝마칠 수는 있겠지.
“네?”
-비온, 시작하라.
비온이 성운을 향해 허리를 한껏 숙였다가 일어났다.
“지금부터 사이란과 휘경의 결혼식을 시작한다. 하객들은 입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