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
002화
그림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황해하며 혼잣말을 하거나 알딘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임을 통해 로스트 월드의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 행성에는 과거 찬란했던 문명이 꽃 피웠고, 다양한 종족들이 조화롭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신들은 떠나갔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 행성에는 신을 잃은 가여운 존재들이 황야를 떠돌며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 후보자를 찾기 위해 저 행성의 존재들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찾아냈고, 그곳에서 저 행성을 닮은 게임 로스트 월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만두고 돌아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장소에 대한 기억을 잃을 겁니다.”
성운이 질문했다.
“도전한다면?”
“예?”
“포기한다면 기억을 잃는다. 그럼 계속해서 도전해서 결국 승리하면 뭘 얻는 거지?”
알딘은 성운을 향해 말했다.
“도전하는 것만으로 당신은 신이 됩니다. 로스트 월드에서 겪었듯 처음엔 초라한 것들만 당신을 믿겠죠. 하지만 당신을 믿고 의지하는 존재를 불려 나간다면, 당신은 이 행성의 유일신이 될 수도 있겠죠.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있을 겁니다. 하나의 세계를 얻는 겁니다.”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알딘의 말에는 빈틈이 있었다.
“지금 포기하면 되돌아가는 건 알겠어. 그런데 도전하겠다고 한 다음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다른 신들에게 패배하면…”
“신다운 최후를 맞이하겠지요.”
성운이 기대한 답변이었다.
모든 것을 얻기 위한 게임이라면 자기 목숨 정도는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대로라면 목숨을 거는 것 이상을 걸어야 할지도 몰랐다.
“승리 조건은 게임 로스트 월드와 똑같나?”
“예.”
로스트 월드의 승리 조건에는 동맹 승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명목에 불과했다. 거대한 적을 두고 동맹을 만들더라도 결국 누군가는 뒤통수를 치기 마련이었고, 보통은 그런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의 단기적인 목표를 두고만 동맹이 생기는 것이 일례였다.
‘그야 단독 승리가 레이팅 점수가 더 많이 오르니까. 여기에서도… 아마 비슷하겠지.’
레이팅 점수로 랭킹을 올릴 수는 없지만,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못하는 유일신이 될 수 있다.
성운은 이곳에 모인 사람의 숫자가 서른두 명, 즉 로스트 월드를 플레이하기 위한 최대 인원이라는 걸 알았다.
“도전에 대가가 따른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겨우 게임을 플레이한 걸로 도전할 자격을 줘도 괜찮은 건가?”
“물론이죠.”
알딘이 말했다.
“여러분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로스트 월드를 통해 세계를 수백 번, 수천 번 구해 냈습니다. 여러분에겐 로스트 월드에 익숙할 인터페이스도 그대로 제공될 겁니다. 물론, 이건 정말로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 행성에 사는 생물들은 글자 그대로 살아 있고, 그만큼 많은 변수를 담보하고 있습니다.”
성운은 묻고 싶은 것이 더 있었지만, 알딘은 가볍게 손을 내밀며 제지했다.
“이제 선택할 시간입니다. 포기하실 분은 지금 말씀하십시오.”
“도전할 이들은?”
“그대로 계시면 됩니다.”
곧 몇 사람이 입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질문을 던지거나, 포기한다는 선언처럼 보였다.
드문드문 그림자들이 사라졌다.
성운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신이 된다고?’
성운은 돌아가서 남은 자신의 삶을 생각했다.
게임에, 로스트 월드에 그토록 몰입했던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가족은 불화했고, 재산이라곤 빚뿐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성운의 머릿속 계산이 맞다면, 이곳에 남아 신이 되는 것이 더 행복할 가능성이 컸다. 어렵지 않은 계산이었다.
성운은 로스트 월드를 잘했다.
잘할뿐더러, 좋아하기도 했다.
‘포기할 이유가 없잖아.’
서른두 명의 그림자가 스물일곱으로 줄어든 이후, 포기하겠다 말한 이가 없었다.
알딘이 말했다.
“그럼 이 제단에서 카드 하나를 선택하세요. 그 카드가 여러분의 첫 번째 소영역을 결정할 겁니다.”
알딘이 뒤로 물러나자, 언제 있었냐는듯 둥근 제단이 나타났고, 카드들이 엎어져 있었다.
‘게임이랑 똑같군.’
알딘은 첫 번째로 성운을 가리켰다.
“당신이 먼저 뽑으면 됩니다.”
성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게임에서와 같이 무작위로 결정하므로 뽑는 순서는 상관없지만, 랭킹 1위이니 배려라면 배려인 것 같았다.
“카드를 뒤집으면, 이동합니다.”
다행히 성운은 최초에 선택할 수 있는 서른두 개의 소영역 모두 편차 없이 잘 다루는 편이었다.
‘그래도 승률이 조금 더 잘나오는 소영역들이 있긴 하지만…’
성운은 한 가운데 있는 카드를 집고, 뒤집었다.
카드를 뒤집은 성운은 그림을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
성운이 뽑은 첫 번째 소영역은 ‘곤충’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곤충은 아니고, 여러 절지동물과 갑각류를 어느 정도 포괄하는 범주였다.
최초로 선택할 수 있는 서른두 개의 소영역 중 평가가 그리 좋지는 않았고, 실제 데이터에서도 승률이 최하였다.
‘아무래도 곤충이 선택되면 바로 나가 버리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지금 성운은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야 했다.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다소의 편차가 있다곤 해도, 성운은 무슨 소영역으로 시작하든지 승률이 고르게 좋은 편이었다.
‘곤충은 광물이나 가축 같은 인기 소영역보다 까다로울 뿐이지.’
광물을 얻는다면 청동기 시대가 막 시작하는 시점에서 상당히 유리했다.
아마 누구보다 철기 문명을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철기의 막강함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가축도 훌륭한 소영역이다.
고기 자원을 손쉽게 불리고, 소를 이용해서 곡물 자원도 대량으로 얻을 수 있었다.
산 제물을 통해 신앙 자원 이득을 얻는 건 보너스다.
‘반면에 곤충은…’
골똘히 생각하던 성운은 곤충 카드를 품에 넣고 행성을 내려다보았다.
참고 있던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스타팅까지 구릴 줄은 몰랐는데.’
일단 대륙도 좋지 않았다.
로스트 월드는 크게 봤을 때 세 개의 대륙으로 나뉘어져 있고, 성운이 위치한 지역은 세 번째 대륙의 북반구였다.
제3대륙은 가장 큰 대륙이긴 하지만, 제1대륙처럼 자원 매장량이 많지도 않았고 제2대륙처럼 기후가 좋지도 않았다.
그 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여러 종족과 괴물들이 살고 게임에서 특별한 능력을 제공하는 유적도 많았다. 이용하기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성운은 주어진 것에 불만을 표하기보다, 불만스러운 상황에서 빠져나가는데 시간을 쓰는 편이었다.
성운은 곧 자신의 의지대로 허공에서 움직이거나, 지표면을 확대해서 바라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은 신이 되었다는 느낌은 들었다.
성운은 가볍게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훑으며 종족과 부족들을 파악했다.
그 땅은 제3대륙 동쪽 끝에 위치한 반도였다.
‘조금만 더 서쪽에서 시작해도 좋았을 텐데.’
성운은 로스트 월드의 초중반, 그러니까 청동기에서 중세 시대 전투에 자신이 있었고 다른 신들과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반도는 진출에 불리한 부분이 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초반에 안전하다고 봐야겠지.’
성운의 머릿속으로 빌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게임 로스트 월드는 평균 게임 시간이 네 시간인데 비하면, 시간도 많았다.
조금 더 서두른다고 크게 유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다.
영역과 땅이 정해지면, 플레이어는 첫 번째 종족과 부족을 정해야 했다.
로스트 월드에는 인간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종족들이 있었고, 그 종족들은 크고 작은 부족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에 택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부족뿐이었다.
‘신이라고해도 처음엔 아주 작은 힘밖에 없으니까 말이지.’
신이라고해서 마음대로 할 수는 없었다.
로스트 월드에서 신은 인과율이라는 필터를 거쳐야만 행성 위의 생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인과율을 넘기 위해서는 ‘신앙’이 필요했다.
처음 가진 신앙은 겨우 10.
이걸 잘 이용해서 자신이 정한 종족에게 신의 존재를 믿게 하고 의지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만 신앙이 상승하고, 상승한 신앙으로 더 많은 기적을 보여 줄 수 있었다.
‘일단 두 개 무리 정도가 눈길을 끄는데.’
하나는 리자드맨 무리였다.
피부는 푸른빛에 얼룩덜룩한 반점이 있는 녀석들로, 리자드맨치고 크기도 왜소하고 빼빼 말랐다.
숫자도 부족이라고 불리긴 적은 서른 명 남짓.
아마 모두가 혈연관계에 속하는 씨족일 것이다.
‘더 큰 무리에서 힘 싸움에 밀려 내쫓긴 놈들이겠지.’
실제로 이 무리가 멀어져 가는 곳에는 작은 오아시스를 터전으로 삼은 같은 리자드맨 종족들이 무리 짓고 있었다.
이쪽은 백오십 명 정도 되었다.
하지만 성운은 더 큰 쪽보다 작은 쪽에 관심이 갔다.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다.
무리가 클수록 작은 기적에 연연하지 않는다.
큰 무리를 처음부터 얻는 건 이득일지도 모르지만, 신앙 10을 모두 소비하는 모험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반면 무리가 작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일수록, 신을 쉽게 믿고 따랐다.
‘신앙은 개체의 믿음 정도, 얼마나 신의 존재를 믿고 마음을 의탁해 오는지, 그리고 실제로 의존하는지에 따라 갈리니까. …하지만 꼭 처음부터 험한 길을 택할 필요는 없어.’
사실 성운이 리자드맨에 끌린 가장 큰 이유는, 리자드맨이 바로 ‘곤충’을 먹기 때문이다.
다른 종족도 필요하다면, 그러니까 인간이나 엘프도 극한 상황에서 곤충을 먹긴 하지만 문화적 혐오감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혐오감이란 건 어디까지나 곤충을 먹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병균이나 기생충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자드맨은 그 부분에 있어서 내성이 높은 편이기에 곤충 생식에도 혐오감이 없었다.
인간에게 ‘가축’ 소영역이 식량을 얻기 용이하다면, 리자드맨에게 ‘곤충’도 조금은 유용한 것이다.
‘물론 곤충 사육은 기술 수준이 제법 있어야 하지. 게다가 똑같이 곤충을 먹는다면…’
이번에 성운은 두 번째 무리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프로그맨 무리였다.
실제로 곤충을 더 즐겨 먹는 건 이 수생 생물이자 양서류 인간들이었다.
청동기 문화 수준으로도 곤충 양식이 가능한데다 문명이 발전하는 강과 호수에서 터전을 잡고 시작하기도 했다.
실제로 성운이 내려다보고 있는 황야의 남서쪽에 위치한 프로그맨 무리는 무려 500명으로 첫 부족으로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무리였다.
‘하지만 수생 생물이라는 게 꼭 강점이라고 할 수는 없어. 물가가 없는 곳에서는 높은 기술 수준을 가지기 전까지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지. 이 게임은 모험을 부릴 여유는 없을 거야. 유연한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녀석들로 가능할까?’
성운은 한동안 고민을 했다.
‘파충류냐, 양서류냐.’
그리고 첫 부족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