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필스와 다른 요원이 리자드맨을 향해 총구를 들었을 때 사르쵸는 싸움이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르쵸의 생각은 맞았다.
단지 승자가 달랐을뿐.
방아쇠가 당겨지기도 전에 리자드맨이 달려오며 검을 휘둘렀고, 두 줄기의 번개 가닥이 두 명의 요원에 닿았다.
대기를 태우는 희미한 파열음이 들릴 정도로 약한 전류였지만, 두 사람을 정지시키기엔 충분했다.
리자드맨은 그대로 미끄러지며 두 사람의 목을 순서대로 베었는데, 가벼운 칼놀림에도 칼날이 목뼈 사이로 지나갈만큼 깊었다.
사르쵸가 말했다.
“…당신은?”
리자드맨이 말했다.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묻는건가? 아니면 내 이름을 묻는건가?”
“둘 다입니다.”
리자드맨이 검을 검집에 꽂아넣으며 말했다.
“곤란하군.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말해도 자네는 받아들이기 힘들테고, 내 이름을 말해도 누구인지 모를텐데.”
사르쵸는 긴장하느라 곤두섰던 머리털들을 습관적으로 쓸어내렸다.
“어르신이 무얼 하시는 분인지 알아야 어르신이 왜 저를 도와주셨는지 알 수 있을테고, 어르신의 이름을 알아야 저를 구해주신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겠습니까?”
리자드맨이 익숙한 동작으로 곰방대를 꺼냈다.
그리곤 능숙하게 약초를 곰방대에 구겨넣고는, 손끝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불을 붙였다.
리자드맨은 길게 곰방대를 빨았다가 연기를 뱉어냈다.
“떠도는 리자드맨이라고 들어봤나?”
“예? 그건 그저 전승되는 민담…”
“이라고 알려져 있지.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게 모두 나는 아닐테지. 하지만 몇몇 이야기에 나오는 떠도는 리자드맨은 나야. 예를 들어, 한 손을 잃은 하프빈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지.”
사르쵸는 심호흡을 크게했다.
‘이야기 속의 사람이 내 눈 앞에 있다고?’
리자드맨이 말했다.
“참, 이름은 오웬이라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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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쵸는 오웬을 따라 슈바넬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혁명 탓인지는 몰라도 빈집이 좀 생겼더군.”
“혁명 이후 슈바넬을 빠져나간 귀족들이 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긴 빈집을 조사중에 있긴한데, 여유가 되지 않는지라…”
“그럼 좀 빌려써도 될테지.”
오웬이 초대한 집안은 한 건물의 3층이었다.
최근 사람이 발을 들이지 않은듯 바닥엔 먼지가 쌓여 있었다.
오웬이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손님이 왔지만 아쉽게도 대접할 건 없군. 육포가 있는데 좀 씹을텐가?”
“아뇨, 괜찮습니다. 그보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니… 사실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습니다.”
오웬이 주머니에서 육포 조각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오웬이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밤이 길어질지도 모르겠군, 물어보게.”
사르쵸는 잠시 생각했다.
궁금한 것이 아주 많지만, 우선은 중요한 질문부터 하고 싶었다.
“…당신은 역시 ‘선택받은 자’입니까?”
전쟁에 나가보지 못한 사르쵸라고 하더라도 오웬이 사용한 번개를 알아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선택받은 자’라고 불리는 마신 야천의 추종자들의 악명은 전장에서 가장 거리가 먼 이 슈바넬까지도 잘 알려져 있다.
일종의 성인으로 취급되는 선택받은 자들은 사도 라크락 이후로 꾸준히 나타난 마신의 살육자들로, 제국의 최전선에서 적군을 벼락으로 태워죽였다.
전장에서 선택받은 자들과 마주쳤다가 운 좋게 살아남은 병사들은 폭풍이 오는 밤이면 실성하며 마신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말도 있었다.
오웬이 말했다.
“그렇다네.”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던 사실임에도 당사자에게 확인받자 사르쵸는 숨을 쉬기 힘들었다.
“그럼 마신의 추종자인 당신은… 왜 절 구해준 겁니까?”
“흠.”
오웬은 턱을 긁었다.
“그 말은 어폐가 있는 것 같군, 어린 친구.”
사르쵸는 답하지 않고 의구심 어린 눈으로 오웬을 바라보았다.
오웬이 말했다.
“나는 자네를 푸른 벌레신의 추종자로서 구한 건 아니야. 물론 난 여전히 그분의 뜻을 따르긴 하지만, 으음, 이걸 뭐라고 해야좋을지…”
고민하던 오웬이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아, 그래. 자네는 다인의 친구 아닌가?”
“동지라는 말을 선호합니다만, 그렇습니다.”
“그럼 다인에게 했던 이야기도 들었겠군.”
“아, 예.”
“그건 내 이야기라네.”
프로그맨 부족 아래에서 고통 받던 리자드맨 부족 이야기.
사르쵸는 기억해냈지만 가로저었다.
“저희는 그런 부족 생활을 벗어난지 30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어딘가에는 그런 부족이 남아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옛날 이야기로 이해했습니다.”
“그렇지. 그 말이 맞아.”
“네?”
“300년 가까이 지난 것도, 옛날 이야기인 것도 맞다고.”
오웬의 담담한 대답에 사르쵸는 천천히 의심스럽단 표정에서 놀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설마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내가 몇 살로 보이나?”
사르쵸는 달빛을 받고 있는 오웬을 바라보았다.
본래 다른 종족의 나이는 알아맞히기 힘든데다, 리자드맨은 노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 종족이다.
“모르겠습니다.”
“올해로 200하고도 아흔 여덟이야.”
사르쵸가 가로저었다.
“하지만… 하지만 리자드맨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80살 정도면 죽습니다. 장생을 하는 엘프 같은 종족도 120살을 넘기긴 힘듭니다.”
“언제나 예외는 있지.”
“그 누구도 그렇게 오래 살 수는 없습니다.”
“단언할 수 있나?”
그 물음에 사르쵸가 곧장 답하지 못했다.
오웬이 말했다.
“세상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힘이 가득한데도?”
사르쵸는 그 말을 이해했다.
오웬이 이어 말했다.
“난 본래 떠돌이였지. 나이를 꽤 먹고 나서도 정착하지 못했어. 그래서 기왕이면 죽기 전에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고자 했지. 당시에 내가 알고 있었던 세계의 끝이었던 대양을 건너, 이 대륙에 왔다네.”
오웬은 또 육포 하나를 꺼내 씹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더군. 이따금 계시를 내려보내시던 그분의 말씀도 더는 들리지 않고, 정처없이 떠돌아 다녔지. 그러다가 고대 유적을 발견했어. 시덥잖은 함정들을 헤치고 지나가니 끝에 작은 유리병이 놓여 있더군. 목이 마르던 차에 잘 됐다고 생각해서 유리병을 비웠다네. 음…”
오웬이 웃었다.
“난 그게 30년 정도가 지날 때까지 그냥 물인줄 알았지 뭔가? 그냥 오래 살 팔자려니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도 몸의 활력이 사라지지 않고 비가 오면 시리던 팔다리도 언젠가부터 젊은 시절처럼 힘이 단단히 들어갔지. 머리도 명료해지고 밝아진 거야. 시간이 지나고보니 특별한 일이라곤 그 유리병을 비운 일 밖에 없었지.”
사르쵸는 뭔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대로 덥석 믿기도 어려워서 물어보았다.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오웬이 어깨를 으쓱했다.
“증명하면 확인할 수는 있겠나? 라크락 대왕께선 바둑을 두실 때 늘 가운데부터 뒀지. 그래서는 이길 수 없다고 말씀드려도 이건 놀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거 아닌가? 그냥 그러고 싶다는 이유로. 웃긴 건 그렇게 두시고도 몇 판 정도는 날 이기시더군. 나도 제법 괜찮게 두는 편인데도 말이야.”
사르쵸는 그냥 믿기로 했다.
“이 땅으로 오신 뒤부터 마신의 뜻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럼 절 구한 이유가 뭡니까?”
오웬이 말했다.
“자네는 모를지도 모르지만, 나는 흑린에서 이야기꾼이라고 불렸다네.”
“이야기꾼?”
“떠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대가로 끼니를 해결하는 거지. 물론 아무 이야기나 한 건 아니야. 내가 다인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내 이야기고, 그 이야기에서 날 도와준 리자드맨은 라크락이거든.”
“…아.”
사르쵸는 어째서인지 그 이야기가 익숙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사제인만큼 사르쵸는 마신과 마신을 믿는 이에 대한 지식도 배우게 되는데, 야천교가 성립되던 시기의 오래된 이야기에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보았음을 기억해냈다.
오웬이 계속 말했다.
“나는 라크락과 그분께, 그리고 내가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죽어야 했던 다른 이들에게 빚을 졌지. 라크락 대왕께서 날 구했을 때, 생을 다 바쳐 살자고 생각했는데… 내 죄가 어찌나 컸던지 아직까지도 살아 남았군.”
사르쵸는 오웬이 오랜 세월 동안 감정이 무뎌지고 쇠했음을 알았다.
이 늙은 리자드맨은 자신의 눈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전혀 놀라지 않고 겸허히 대처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리자드맨에게 마음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켜켜이 쌓여 더 없이 단단해진 그 의지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만으로는 무너트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신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믿는 건 분노하는 자입니다.”
“그건 알지. 하지만 내가 이미 한 번 이야기 했었지 않나? 자네와 나는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그건 이빨 요원으로 위장했을 때 이야기 아닙니까?”
사르쵸가 이해하기로는 그랬다.
이빨 요원은 당연히 분노하는 자를 믿을테니, 다인이 루베일 혁명파와 손을 잡으려는 것을 막는 것이 이빨의 뜻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빨 요원이 사실은 늙은 리자드맨이며 야천을 따르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리자드맨이 여전히 야천을 따르고 있다면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이 야천을 신봉하도록 하는 것이 원하는 바 아니겠는가?
“아닐세.”
오웬이 부정했다.
“루베일 혁명파가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이 접촉하면, 야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겠지만 동시에 분노하는 자가 직접 개입할 명분도 주겠지. 물론 그분께선 언제나처럼 분노하는 자를 혼쭐내시겠지. 하지만 그 사이에서 고통 받는 것은 이 도시에 사는 자네의 동지들이겠지. 안 그런가?”
사르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러니 자네의 뜻과 나의 뜻은 같아.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야. 어떻게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는가의 문제지.”
사르쵸가 말했다.
“…그게, 당신의 뜻입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는 것?”
오웬은 잠깐 창 밖을 보았다.
오웬이 말했다.
“단순히 그렇게 말하긴 힘들지. 목숨이 붙어만 있는 건 의미 없지 않은가? 기왕이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가끔 가진 걸 몽땅 다 걸기도 해야해. 그 일에 목숨을 걸지 말란 법이 없지.”
“….”
“하지만 모두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는 없어. 그렇다고 싫다는 사람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고. 그래서 내가 한 일은 적당히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을 찾아서 그 욕망에 불을 지펴주는 정도였지. 모든 준비가 끝났고, 누군가 등을 떠밀어줬으면 하는 사람들 말일세. 내 말 이해하겠나?”
사르쵸가 말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됩니다. 당신은 루베일 혁명파가 콜레고튼에 진입하려는 걸 막으려는 것으로 마신의 큰 뜻을 방해한 것 아닙니까?”
오웬이 듣고보니 그럴듯하다는 듯 주억였다.
“그치만 옛말이 있어.”
“옛말이라니요?”
오웬이 말했다.
“‘검은 비늘 부족 전사들 중 일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부족장의 명령을 어기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