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사르쵸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설마 신의 뜻을 어기는 게 신을 따르는 길이라는 겁니까?”
오웬은 별 말 없이 미소만 지었다.
사르쵸는 잠시 고민했다.
생각해보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신들이 전지전능에 가까워 보이긴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불민한 생각이로다.’
사르쵸는 자신의 가슴에 대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분노하는 자의 문장을 그렸다.
그럼에도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분노하는 자께선 우리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고 하시지만, 그와 동시에 자손을 번성시켜야 한다고도 하시지. 정말로 모두가 목숨을 건다면 자손을 번성시킬 수야 없겠지. 언제나 모순이 있다. 우리 사제들은 그 적당한 기울기를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지.’
사르쵸가 말했다.
“그럼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신의 뜻과 일치한다고 한들, 우선 당신은 신의 뜻을 어겼고, 저와 분노하는 자를 도운 셈입니다. 정말로 다른 뜻이 없는 게 맞다면요.”
“다른 뜻은 없다네. 그러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저는 어르신에게 더 없는 빚을 졌군요. 목숨이 구해진 것에 더해서요.”
“목숨?”
오웬이 가볍게 손을 마주쳤다.
“아아. 자네는 그 둘을 따로 생각하고 있는 거로군?”
“예?”
“내가 자네에게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의 혁명당이 루베일 혁명파와 접선을 하려는 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 그리고 ‘목숨을 구해준 것’ 이렇게 둘로 말이야.”
“…아닙니까?”
“아닐세. 둘은 같은 문제에서 비롯된 거야. 자네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머리가 둔했던 모양이군.”
사르쵸는 머리가 둔하다는 평가 정도라면 가볍게 수긍하기로 했다.
“설명해주십시오.”
오웬이 말했다.
“우선 자네의 목숨을 노린건 공화국의 정보실이야.”
“그건 압니다. 제 과거의 업보가 저를 덮친 거지요.”
“자네가 연합왕국의 끄나풀이었다는 거? 흠, 언젠가는 청산해야될 문제일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번은 아니야.”
“이야기를 다 듣고 계셨던 거 아닙니까?”
“자넬 죽이려고 한 정보실 요원은 그렇게 말했겠지. 하지만 그 요원은 어떻게 그걸 알았단 말인가? 조사를 했다지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
오웬이 앉아있는 창틀을 두드렸다.
“그 말인 즉, 누군가 자네를 죽이도록 정보를 풀었다는 말이지.”
“…누가?”
“자네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 게 다인만은 아니겠지.”
“…의심하는 이들이라면 좀더 많겠지만, 몇몇 동지들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혁명파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과거 첫 번째 혁명의 동지들과 관계된 이들에게 접촉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중 정보실에 앉은 이는 누구지?”
사르쵸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롤즈요?”
“드디어 맞췄군.”
사르쵸는 인상을 썼다.
롤즈에 대해서라면 잘 알고 있었다.
롤즈는 다인과 사르쵸에 의한 두 번째 혁명파가 조직되었을 때, 다인에 의해서 영입된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 퇴역 장교였고, 무미라는 계급으로 장교가 될만큼 충분히 유능했다.
단순히 유능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열성적인 혁명 지지자였고, 혁명군 결성 당시 사르쵸 만큼이나 위험한 싸움에 뛰어들기도 했다. 누구도 그 열정의 진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가 그럴리 없습니다.”
“왜? 그가 진실된 ‘동지’이기 때문인가?”
“예.”
“그 누구보다 혁명파를 위할 인물이니, 혁명파 의원인 자네를 위협할 일이 없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틀렸어. 자네는 사람을 너무 평면적으로 보고 있어. 롤즈는 혁명파를 위해서 자네를 죽이려고 한 거야.”
사르쵸가 습관적으로 머리를 털었다. 버그베어들에게 있어 털에 먼지가 묻거나 물에 젖으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이지만, 인간의 고개를 절래절래 휘젓는 행동과 뜻이 같았다.
“말도 안됩니다.”
오웬이 “흥”하고 콧소리를 냈다.
“받아들이게, 젊은이. 자네는 과거의 잘못 때문에 죽을뻔한 게 아니야. 롤즈 같은 이들에게 있어 그저 다른 혁명파와의 규합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하지.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은 당장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조금만 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온갖 문제가 산적해있어. 분노하는 자의 힘을 피해갈 수 있다고해서 꼭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는 것이지. 연합왕국은 강대한 나라지 않나. 저너머에선 제국과 전쟁 중이고 내부로는 혁명으로 혼란하지만, 당장은 고꾸라질 거란 생각이 들질 않는군.”
“…어르신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혁명파를 위해서 제가 죽어야 한다고?”
“나 말인가?”
오웬이 말했다.
“나는 당연히 아니지. 그렇게 생각했다면 자네를 왜 살려놓았겠나?”
오웬이 계속 말했다.
“자네는 혁명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해.”
사르쵸가 말했다.
“저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다른 동지들처럼 똑똑하지도, 지혜롭지도 않습니다. 다인처럼 누군가를 휘어잡을 매력도 없고, 롤즈처럼 계책을 세울 능력도 못됩니다.”
“바보 같은 말이군.”
“예?”
“그 많은 사람들이 다인과 그 동지들을 보고 따랐을 거라고 생각하나?”
“예. 전 장점이 없습니다.”
“아니야, 자넨 셈을 할 줄 알아.”
사르쵸가 물었다.
“셈이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안다는 말이지. 요즘 말로는 정의를 안다고 할까.”
“다들 정의가 뭔지는 압니다.”
“아냐. 사람들은 정의가 뭔지를 몰라. 어디서 들어봤을 뿐이지. 낚시꾼을 보았다고 낚시를 할 줄 아는건가? 인쇄 기계를 본 적 있다고 인쇄를 할 줄 아는건가? ‘안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그걸 해보기는 했어야지 않겠나? 자넨 정의가 뭔줄 알고, 해보기도 했어. 사람들은 정의를 모르고 방황하다가, 자네를 보고 따라온 거야.”
사르쵸는 반박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주저했다.
그러기를 몇 번, 결국 입을 닫았다.
사르쵸는 오웬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곧장 반박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사르쵸가 말했다.
“어르신. 저는 정의롭다기엔, …죄가 깊습니다.”
“누군들 안 그렇겠나? 아니면…”
오웬이 말했다.
“위선자라는 소리가 두려운가?”
그 질문을 듣고나서야 사르쵸는 인정했다.
사르쵸는 저열한 평판이 자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좋다는 걸 깨달았다.
중요한 건 그런 일이 아니었다.
“…롤즈가 정말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를 막아야 합니다.”
“혁명군이 연합정부에게 패배하더라도 말인가?”
사르쵸가 말했다.
“사람의 군대와 사람의 군대가 마주하면 그건 응당 사람의 업보입니다. 하지만 신의 군대와 신의 군대가 마주하면 그건 사람의 운명을 떠난 일이 됩니다. 무엇보다도, 죽지 않아도 좋았을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겠지요.”
사람끼리 싸우는 전장도 참혹하다.
하지만 신들이 개입하는 전장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무수한 생명들은 거대한 수호자의 발에 개미마냥 짓밟히고, 사도들이 일으키는 재해에 풀포기마냥 뽑혀나간다.
목숨이 가지고 있어야할 가치는 먼지와 다름없어지고, 신에 대한 열광적인 희생으로 대체된다.
사르쵸가 덧붙였다.
“그리고 혁명군이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웬은 크게 긍정도 부정도 않는 태도로 말했다.
“뭐, 그건 모를 일이지.”
“다인도 이 계획의 한패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라고 생각하네. 정보실을 만든건 다인이지만 롤즈를 신임했기 때문에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지.”
“아직 희망은 있군요. 그럼 다인에게…”
오웬이 손을 흔들었다.
“위험할 것 같군.”
“아.”
“정보실 요원들은 이미 다인을 경호한다는 명목으로 다인 가까이에 있을텐데, 접근할 수 있겠나? 자네를 죽일 생각이었어. 다인에게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
“그럼 어르신 생각은 뭡니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사르쵸는 이 늙은 리자드맨이 정보실 요원을 상대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늙어보인다지만 정말로 늙은 것은 아니다.
놀라운 능력과 기술로 무장했고, 어떤 힘을 더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롤즈를 죽여야 한다고 말할까? 아니면 우리가 먼저 루베일 혁명파와 만나야 한다고 말할까?’
둘 다 그럴듯해보였다.
이 리자드맨이라면, 사르쵸가 어떻게든 롤즈를 유인해냈을 때 단신으로도 정보실 요원들과 그 수장인 롤즈를 암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결과 정보실에는 공백이 생길테고 인적 자원을 수급하는데 어려움이 생기겠지만, 이 땅이 신들의 놀이판이 되도록 두는 것 보다는 나았다.
아니면 루베일 혁명파와 먼저 만나볼 수도 있었다.
‘대화로 잘 풀어내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휘 주란 무엘과 같은 거두에게 테러 행위가 일어날 경우,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과 루베일 혁명파 사이의 거리가 크게 멀어질 것이다.
협상은 자연스럽게 중단될테니 오웬과 사르쵸의 의도대로다.
사르쵸로서는 둘 다 폭력이란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내키진 않았지만,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할 터였다.
“우선은…”
오웬이 말했다.
“자네가 본래 하려고 했던 일을 하면 좋겠지.”
“…예?”
“의회에서 국교를 정한다지 않았나? 자네는 그걸 정하지 않는 채로 두거나, 분노하는 자의 교단으로 두고 싶어했고.”
“그야 그렇지만… 저 혼자서 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네를 믿지 않나?”
“모두는 아닙니다.”
“그럼 모두로 만들어 봐.”
오웬은 사르쵸의 긴장했던 모습으로부터, 엉뚱한 상상을 했음을 읽어내고 말했다.
“자네가 가져본 적도 없는 얼토당토 않은 재주를 부려볼 생각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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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웬이 “이러다가 제자에게 들통나겠군, 자리를 옮겨야겠어.” 이란 말과 함께 사라진 뒤, 사르쵸는 오웬의 말대로 했다.
다행히도 정보실은 두 명의 요원을 잃었던 것이 큰 상실이었던 모양인지 사르쵸에게 직접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고, 사르쵸는 나름대로 치안대를 움직여 경호를 받았다.
그러는 한 편으로 오웬의 말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들었다.
처음에는 간결한 논리였다.
마신의 영향을 받는 혁명파와 손을 잡으면 큰 벌을 받을 거라는, 분노하는 자의 교단 소속 사제라면 누구나 할 법한 소리를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잘 먹히지 않았다.
애초에 콜레고튼은 연합왕국 전체를 따졌을 때 가장 신앙이 낮은 지역 중 하나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 조상들은 먼 곳에서 고향을 떠나온 이주민이거나 자신의 뿌리도 잃어버린 이들이고, 그저 도시에서 관습적으로 가르치는 분노하는 자의 교단 의식에 참석했기 때문에 분노하는 자를 믿을 뿐이었다.
당장이야 오랜 시간 믿은 신앙을 배반하지 않으려 한다지만, 루베일 혁명파를 통한 실질적인 이득, 그리고 야천 특유의 배교자들을 포섭하는 능력을 계산하면 전망이 밝다고 할 수는 없었다.
‘두 신앙의 대립구도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겠군.’
그래서 사르쵸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놓았다.
하나는 세속주의였다.
종교와 삶을 분리해야하며, 신들의 싸움이 사람의 싸움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었다.
이 새로운 개념은 사람들 사이에서 흥미롭게 받아들여졌고, 이제서야 사르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르쵸는 찾아온 기회를 잡아챘다.
‘이제 신들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에 대해서라면 다른 누구보다도 사르쵸가 잘 알고 있었다.
모두가 검은 상복을 입는 통일절 행사 당일, 사르쵸는 기념사를 낭독해야 했다.
하지만 사르쵸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념사의 서두를 내뱉었다.
“2년 전 통일절, 그날 죽은 817명의 목숨에 저는 그 누구보다 큰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르쵸의 고백이 시작되었다.
사르쵸는 혁명파를 잡기 위한 자세한 내막과, 그것이 어떻게 연합왕국의 이빨 요원들과 교단의 사제들이 엮이어 있는지를 낱낱이 밝혔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연합왕국의 혁명파 잡이의 일환이 아니라, 분노하는 자의 계시가 내려왔음을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분노하는 자의 교단을 배교하는 이들이 생기겠지.’
사르쵸는 분노하는 자를 변호했다.
분노하는 자께서도 저 무시무시한 마신을 상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리라고.
그러니 이 근본적인 문제는 신들의 싸움에 우리가 이용되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싸움에서 벗어나, 사람의 문제는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똑같은 비극이 생기지 않으리란 것이다.
“…이상으로, 기념사를 마치겠습니다.”
군중은 조용했고, 사르쵸는 잠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사르쵸는 바로 다음 순간 그대로 단상에서 끌어내려지거나, 돌이 날아올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르쵸가 눈을 떴을 때 들려오는 것은 박수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