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사르쵸는 죄를 자수한다는 명목으로 단상 아래 치안대를 대기 시켜놓았고, 그대로 감옥으로 잡혀들어갔다.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의 법원은 형사 처벌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었다.
사르쵸는 자신이 응당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다.
사르쵸는 법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다만 공화국의 법원은 자연스럽게 연합왕국의 법을 많이 따르고 있었고, 사르쵸 스스로 판단하기에 이와 같은 적국과의 내통 혐의는 교수형도 자비로운 처벌이었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이 찾아왔다.
사르쵸는 자신이 군법을 통해 변호할 기회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난생 처음 보는 변호사가 사르쵸를 지지해주겠다고 나섰다.
드워프 변호사는 놀란 사르쵸에게 말했다.
“저만 변호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의원님에 대한 기사를 보자마자 콜레고튼에 있는 모든 변호사들이 선생님을 변호할 기회를 얻고자 했습니다. 저는 그 대표로 왔을 뿐입니다.”
“전 돈이 없습니다.”
“모두 다 당연히 그걸 알고도 자원한 겁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검사는 사르쵸가 수 많은 동지들을 죽이는데 일조했으며 적국인 연합왕국에 동조했다는 것을 이유로 사형을 언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1심에서 법원은 검사 측 의견을 받아들였다.
사르쵸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드워프 변호사는 다른 방향의 전략을 짜보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몇 가지 편법을 써서 재판을 지연해보죠.”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저희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겁니다.”
드워프 변호사가 말했다.
“의원님은 잘 와닿지 않으시겠지만, 저 법원 밖에서 선생님을 구명하기 위한 운동이 한창입니다.”
“그럴리가요.”
“의원님 때문에 청문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참석하실 일이야 없지만, 의원님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다른 동지들이 있다고요.”
“그분들을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아뇨. 그분들은 의원님을 구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문회에는 콜레고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기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멀리 제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럴리가요.”
사르쵸는 그게 사실이라면 나라를 혼란하게 둘 수는 없다며 변호사의 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애초에 사르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변호사는 알아서 일을 했다.
그 결과 2심에서 재판이 뒤집어졌다.
드워프 변호사는 콜레고튼 건국 이전에 죄를 저질렀다고해도 소급적용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 말이 받아들여져 이번에는 극적으로 무죄가 선고되었다.
검사측은 즉시 항소했다.
도중에 변호사가 바뀌어, 드워프가 아닌 엘프 변호사가 사르쵸에게 면회를 왔다.
“그분은?”
“자동차 사고로 다치셨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당분간 변호를 맡긴 어려우실 것 같네요.”
“어쩌다 그런 일이…”
엘프 변호사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했다.
“정보실이 관여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 이런.”
“심지어 검찰 측에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마구잡이로 퍼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선생님의 내력이 너무 깨끗해서, 검찰 쪽에선 당황스럽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르쵸가 뭐라 말을 하지 못하자, 엘프 변호사가 말했다.
“하지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놈들도 과감한 행동은 못해요. 청문회 이후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습니다. 다들 세속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면 선생님은 또 재판을 하셔야 할 겁니다.”
“예?”
“선생님의 연설이 무단으로 인쇄되어 팔리고 있습니다. 무료로 증정되면 모르겠지만 어떤 놈들은 돈을 받고 팔고 있다더군요. 선생님의 말씀이니 당연히 인쇄물의 인세는 선생님이 받으셔야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게…”
최종심이 열렸다.
엘프 변호사는 법원에 들어선 사르쵸를 향해 말했다.
“오늘 재판은 좀 시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예? 이유가 있습니까?”
“법원 앞 시위에 허가가 떨어졌거든요.”
재판 시각이 되자, 법원 밖에서 군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지만 사르쵸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르쵸를 석방하라”, “우리가 사르쵸를 용서한다” 따위의 말이었다.
검사는 비록 건국 이전이지만, 슈바넬 혁명파의 핵심 인원들이 관여되어 있고, 혁명 정부를 꾸릴 계획이 있었던만큼 그 전신인 혁명파에 대한 범죄 또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엘프 변호사는 그와는 반대되는 논지를 펼쳤다.
만약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사르쵸는 자신에 대한 범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건국에 이바지한 것이냐고 되물은 것이다.
“그가 다시 혁명파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재판을 벌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는 언제고 이러한 사실을 고백하려고 했고 평생을 묻어둘 수도 있었던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 건국 이전의 범죄에 대가를 치룰 수 있다면, 당연히 건국 이전 그의 성취도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엘프 변호사는 이에 덧붙였다.
사르쵸는 의원직을 가진 것에 비해 큰 돈이 없었는데, 그 이유가 최소의 생활비를 제외하면 모두 첫 혁명파 희생자 가족을 지원하는 기금에 기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사실을 알고 있는 희생자 가족에게 사과를 전했던 것, 그리고 일부 희생자 가족에게 용서를 받았던 것까지 말했다.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최종심 결과, 사르쵸는 20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 받았다.
사르쵸가 비록 정부의 전신인 혁명파를 기만해 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 죄를 저질렀으나, 정작 사르쵸 자신은 연합정부가 가진 잔인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이후로도 계속해서 후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음을 인정했다.
엘프 변호사는 사색이 되어 사르쵸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르쵸는 가로저었다.
“이미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는데, 뭐가 죄송하시단 겁니까?”
사르쵸는 자신이 언도받은 것이 사형이 아니라는 것에 놀라면서도, 내심 기뻐했다는 사실에 자조했다.
‘목숨을 걸었다느니 반성한다느니 해봤자, 결국엔 살고 싶다는 거지.’
슈바넬에서 교화소로 이송되는 차량에 올라타던 날, 그제서야 사르쵸는 자신을 향한 거대한 군중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절 구했습니다!”
“사르쵸는 무죄다!”
“혁명은 끝나지 않는다!”
“당신을 용서해요!”
온갖 목소리들이 사르쵸가 슈바넬을 빠져나가기까지 쏟아졌다.
사르쵸는 먼 훗날까지 살아남아 바뀐 모습의 공화국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리 생각했는데.”
몇 개월 뒤, 사르쵸는 슈바넬로 돌아왔다.
법원으로 돌아온 사르쵸는 구속되지도 않은 상태로, 응접실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다인이었다.
“특별사면이야.”
“…특별사면.”
“대통령의 권한으로 처벌을 면해주는 거지. 입법 절차를 밟느라 늦었어.”
사르쵸가 말했다.
“절 위해서 입법이 되었다는 말입니까?”
“그래.”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을텐데요.”
다인은 동의했다.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정보실 공작이 드러났어. 내부자 고발로 검사들과 연관점이 있다는 게 밝혔고, 기자들이 완전히 해부해버렸지. 모든 걸 지휘했던 롤즈 동지는 이제 사르쵸 동지가 있었던 감옥방을 쓰고 있어. 곧 첫 재판이 열릴 거야.”
사르쵸는 믿기지 않는다는듯 가로저었다.
“국민들은요? 제가 교화소에서 죽길 바라는 사람이 한둘은 아닐텐데요.”
“그런 사람이 있긴 하겠지. 하지만 여긴 공화국이야. 일부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 일이 벌어지진 않아. 모든 건 절차를 밟아야 해. 그리고 극단적인 생각들은 그 절차를 넘기 힘들지.”
“하지만 정보실은 루베일 혁명파와 손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에 대해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텐데요.”
다인이 말했다.
“그 계획은 무산됐어. 당신의 연설 덕분에.”
“정말입니까?”
“당신이 감옥과 교화소에 있는 동안 신문에서 두 번째로 많이 나온 단어는 속세주의일 거야.”
다인이 설명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야. 사람들은 지칠 수 밖에 없어. 80년이 넘는 동안 전쟁을 했다고. 제국이 망할놈들이라고 해도 그렇게 오래 싸울 수는 없어. 우리가 그토록 고통받는 노동으로 삶을 가득 채워야 했던 것도 따지면 모두 전쟁 때문이니까. 우리는 모두 전쟁 도중에 태어났으니 모르지만, 기록을 보면 그 이전엔 이토록 고통스럽게 살지는 않았어. 싸우고 싶은 놈들이 있다면…, 서로 그러라고 해.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는 거지.”
사르쵸는 동의했다.
독립된 국가가 된 이상 연합왕국과 같은 길을 따를 필요는 없다.
연합왕국이 저토록 전쟁에 매달리는 이유는 모두 제국 때문인데, 그 전쟁의 발로는 결국 신들의 싸움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신이 속세주의에 대해 ‘암묵적’으로나마 허락한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속세주의를 따를 것이다.
“그나저나, 신문에서 나온 첫 번째로 많이 나온 단어는 뭡니까?”
“당신… 우리 사르쵸 동지의 이름이지.”
“…부끄럽습니다.”
다인이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많은 사람들이 널 용서했어. 이야기가 하나 나돌고 있기도 하고.”
“이야기요?”
다인이 계속 말했다.
“사르쵸를 끄나풀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이, 사르쵸를 암살하려고 들었지. 그런데 사르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며 그 뜻대로 하라고 했다는 거야. 그 사람은 그걸 믿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수작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사르쵸는 피하지도 막지도 않고 순순히 총알에 맞았지. 그러니 사르쵸의 말은 진심이었다는 거지.”
사르쵸는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미 일어난 사건이면서, 그 당사자에게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듣는다는 것.
다른 이들이 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상상이 갔다.
다인이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해. 그날 연합왕국의 끄나풀 사르쵸는 죽었고, 우리의 위대한 혁명 동지 사르쵸만이 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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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쵸는 의원직에 바로 복귀하진 못했지만 혁명당 중진으로 인정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사르쵸를 만나고 싶어했다.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의 기자들은 물론 해외의 기자들, 그리고 개인적인 약속을 잡고 싶어하는 학자와 저 멀리 제국으로부터의 초청까지.
사르쵸는 최대한 사람을 만나면서도 너무 시간을 빼앗길 수 있는 일에는 나라의 일이 위급하니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말로 거절을 대신했다.
혁명군과 연합왕국 지방군과의 대립은 점차 완화되고 있었다.
속세주의는 혁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국의 동조자들이 불러온 혁명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이들이 사르쵸가 만들어낸 개념을 빌려썼다.
신벌을 두려워하던 이들이 혁명에 뛰어들었고, 배교를 근거로 압제를 시도하던 위정자들이 혁명파의 물결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혁명의 파도가 덮쳐오자 연합왕국의 지방군들은 당장 움직임이 없는 혁명군 보다 각지의 혁명에 신경 써야만 했다.
게다가 제국과 맞닿은 전선들이 악화일로를 겪고 있었다.
연합왕국으로부터의 소문에 따르면, 내부의 혁명을 어떻게든 버텨왔던 연합왕국이 드디어 패색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르쵸는 의회 현관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보면서 앞으로의 세계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그 가운데 콜레고튼 독립 공화국은 어떤 대처를 해야하는지, 무엇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의도치 않은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르쵸가 말을 할 때마다 귀를 기울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고민과 별개로, 사르쵸는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기시감을 느꼈다.
습관적으로 경첩을 확인했을 때, 흑연심이 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손잡이의 연고도 닦여져 있었다.
분명 침입자가 있지만, 이미 만난 떠돌이 리자드맨일리는 없고, 그렇다고 인원이 대부분 교체된 정보실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연합왕국의 이빨 요원이면 이렇게 어리숙한 침입을 시도하지는 않겠지. 도대체 누가…?’
그렇게 생각했던 사르쵸는 문 안에서 황당하게도 대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들었다.
‘내가 방문을 열어두고 갔던가? 침입자가 아니라 비서들이라던가…’
사르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권총을 뽑아들고는 문을 열었다.
“…도대체 왜 문을 벌컥 여는 겁니까?”
“또 제 탓이죠?”
“이번엔 당신 탓이 맞습니… 음?”
두 사람이었다.
먼저 말한 것은 프로그맨 남자, 뒤에 말한 것은 인간 여자로 보였다.
둘 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사르쵸는 재빨리 권총을 겨눴는데, 인간 여자는 뒤늦게 사르쵸를 발견했음에도 어느새 손에 검이 들려져 있었다.
‘잘못 봤나? 검을 이미 뽑았던가?’
하지만 사르쵸는 검으로 총알을 막을 수 있을리도 없으니 자신이 완전히 우위에 있다고 봤다.
사르쵸가 말했다.
“너희는 누구지?”
인간과 프로그맨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프로그맨이 사르쵸에게 시선을 돌리곤 말했다.
“당신을 위협하려고 온 건 아닙니다.”
“그럼?”
“저희는 오웬이라고 불리는 리자드맨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