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시모가 말했다.
“전 꼬마가 아닙니다. 서른이 넘었다고요.”
“그럼그럼.”
시모가 보기에 오웬은 좋은 사람이지만 다른 키 큰 종족들과 다를 바 없는 부분도 있었다.
시모는 더 따져 물으려다, 대화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선생님은 폴리비아에 어쩐 일이십니까?”
“다른 볼 일이 있긴 하지만, 역시 주된 이유는 자네를 만나기 위해서지.”
“저를요?”
오웬이 말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지도 10년 정도 지나지 않았나? 그래서 시모 양의 ‘연구’가 어느 정도 진척이 있는지 궁금해서 말일세.”
시모가 오웬의 눈길을 피했다.
“별로 좋지 않습니다만…”
“흐음.”
오웬은 턱을 긁고는 말했다.
“가능하면 직접 보고 싶은데.”
“노상에서요?”
“지금은 어디서 살고 있나?”
“어, 조금전까진 이 건물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이제는 아니다?”
“하하… 네.”
오웬이 말했다.
“내가 묵고 있는 방으로 가도록 하지.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도 이야기 좀 하고.”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시모가 오웬을 만난 것도 전과 같은 이 노상에서였다.
폴리비아는 알게모르게 수 많은 돈이 오가고 부호와 대상들이 길거리에 있다보니, 그만큼 그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단순한 노상강도나 구걸하는 거지들도 많지만 음식을 파는 노점상, 어디선가 빈약한 마법을 배워온 요술사 같은 이들도 있었다.
시모가 보여준 것은 자신이 발명해낸 여러 기계들이었다.
과학 기술은 엄밀히 따지면 마법 보다는 인기가 덜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법을 눈요기로 여기면서도, 대체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깊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술은 다르다.
과학 기술은 누구나 다룰 수 있다.
그러니 마법 보다는 덜 신기하더라도,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깊게 관심을 가진다.
물론 시모는 처음에는 겸사겸사 고향에서 가져온 약수를 과대 선전하는 용도로 기계를 만들었지만, 그쪽에서 재능을 찾았고 그런 기술을 상인이나 다른 기술자가 사가기도 했다.
폴리비아에는 그런식의 노상 발명가들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시모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작 시모가 당시에 시연 중이던 발명품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자드맨이 다가와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을 때 친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물건이 인기가 없다고?”
“아, 네. 혹시나 하긴 했지만 역시나 입니다.
“인기가 없을 줄 알았나?”
“그럼요.”
당시 시모가 만든 발명품은 언뜻보아서는 조잡하기만 했다.
얇은 텅스텐 막대, 양쪽 끝을 감은 구리선은 뒤로 이어져 쇠막대를 둘둘 감은 모습이었다.
종이를 텅스텐 막대에 가져다대면, 스파크와 함께 종이에 불이 붙었다.
“전기니까요.”
시모가 어색하게 웃었다.
“제국의 선택받은 자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국에 가게 되면 먼 발치에서나마 보게 될 때도 있고, 운이 나쁜 사람들은 전장에서 만나기도 하죠. 마신의 힘을 받아서 사용하는 천둥벼락에 비하면 이런 전기는 정말… 보잘 것 없죠.”
시모가 변명하듯 계속 말했다.
“물론 관심을 보인 사람들도 있어요. 더 큰 전기로 만들 수 있느냐 물어보신 분도 있고. 여기 감아놓은 구리선을 전지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이 전지만 충분히 크다면 가능 할 거라고 했죠. 하지만 대충 계산한 값을 알려드리고, 이 전지가 소모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가버리시더군요. 그렇게 크고 무겁고 비용이 든다면, 그냥 선택받은 자를 어떻게든 고용해보는 게 나을 거라고요.”
“흐음.”
시모의 자조하는 말에도 오웬은 떠나지 않았다.
“재미있군.”
“…재미있으십니까?”
“내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어떤 이야기길래…”
그때 오웬이 했던 이야기는 전기가 가진 힘에 대한 것이었다.
오웬이 검은 비늘 부족에 남아있던 당시, 그리고 그 이후로도 선택받은 자들이 신에게서 부여받은 전기를 활용하는 방식은 그리 다양하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라크락의 반려였던 자올은 전류에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했다.
오웬에게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웬은 자올의 말을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시모가 말했다.
“…어, 흥미로운 생각이십니다. 제 생각에 전기라는 건 다른 힘을 통해서 만들어 낼 수도, 특정한 물건에 저장해둘 수도 있고, 그 힘을 이동시킬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저는 어느 대학의 학생도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구를 볼 자격도 없고, 혼자서 연구할만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거든요.”
오웬이 말했다.
“만약 그 생각대로라면 어떤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나? 예를 들어서 화약 같은 건, 총을 만들어냈지. 전기를 이용한 발명품을 만들었을 때도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
시모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바뀔 겁니다.”
“음?”
“세상이 바뀔 겁니다.”
오웬은 그날 시모에게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오웬이 보기에는 다소 허황되어 보였다.
그 말대로 된다면, 아니, 그 말의 반의 반만 이루어지더라도 로난테-오로반 동맹 같은 제국의 골칫덩이는 해체되어 버릴 터였다.
왜냐하면 전기의 시대가 도래하면, 더이상 왕과 귀족, 처연한 전쟁들은 더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할테니까.
무엇보다 전기는 야천의 것이었다.
만신전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별로 동의 하지 않긴 하겠지만, 적어도 오웬은 그렇게 생각했다.
시모는 부모를 따라 ‘적점의 유성’이란 대륙의 주종교를 따르고 있긴 했지만 오웬이 보기에 시모는 훌륭한 야천의 신도로 보였다.
오웬은 신의 뜻의 따라 불쌍한 이종족, 솔로틀을 도왔다.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을 밝힌 뒤 전기를 연구할 수 있도록 돕고, 얼마 되지 않는 가진 재산도 털어준 것이다.
시모는 오웬을 선생님이라고 따르며 짧은 시간 함께 지냈다.
시모는 큰 부담도 가지지 않고 배교했다.
야천에게도 흥미를 느꼈지만 시모가 더 애착을 가진 쪽은 ‘날개접은 황금새’였다.
둘 다 기술자들이 주로 믿긴 하지만, 야천의 경우 아무래도 학문적 성취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날개접은 황금새의 경우엔 발명가라고 할만한 이들이 따르는 쪽이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오웬의 방랑벽이 오웬을 한 자리에 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웬은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떠났고, …오늘 다시 만난 것이다.
오웬의 숙소에 도착한 뒤, 시모가 어색하게 말했다.
“선생님이 떠나신 사이 변한 건 그리 없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지독하게 전기에 관심이 없더라구요.”
“원래 떠오르기 전의 별은 빛나고 있더라도 볼 수 없는 법이지.”
“멋진 말입니다, 선생님!”
“그래서, 문제는 뭔가?”
오웬이 곧장 본론을 들이밀자 시모가 시선을 피했다.
그럼에도 입은 열렸다.
“…역시 돈이지요.”
“돈.”
“선생님이 말한 방향으로 열심히 연구하고 개선하고, 그리고 비슷한 기술이나 발명품이 있으면 사람을 써서 폴리비아로 들여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 덕분에 선생님이 주신 돈은 금세 동났지요. 그리고 돈이 없으면 아무래도…”
“흐음.”
오웬은 시모의 연구를 확인했다.
시모가 본래 설명을 잘하지 못하는데다, 재야의 학자인지라 자기만의 단어로 설명하는 바람에 오웬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오웬이 원했던 방향이었다.
특히나 ‘전구’는 전기의 쓸모를 다른 이들에게 명백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 보였다.
“이걸 팔면 안되나?”
“사람들은 기름불이나 가스등을 더 좋아합니다. 이런 건 어디 쓰냐고들 하지요.”
“하지만 유리만 깨지지 않으면 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않는데.”
“…그건 괜찮은 판매 전략이군요. 적어둬야겠습니다.”
시모가 수첩에다 오웬의 말을 메모했다.
오웬이 말했다.
“흠, 내 생각엔 이 발명품들은 문제가 없어.”
“네? 그럼요?”
“부족한 건 자네의 담력이지.”
“담력과 전기와 돈이 무슨 상관입니까?”
“따라오게.”
오웬이 시모를 데리고 간 곳은 거대한 상회 앞이었다.
팔렛 가문은 폴리비아의 손 꼽히는 대상으로,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시모가 오웬을 돌아보았다.
“…왜 여기에?”
“돈을 얻고 싶으면 돈이 많은 곳으로 가야지. 왜 자네는 꼬지 하나 사먹는데에도 푼돈 아끼려고 흥정하는 길바닥에서 돈을 찾나?”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선생님. 잠깐, 선생님. 잠깐만요. 멈춰 서시죠. 선생님…?”
오웬은 양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상회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한 시간 뒤, 두 사람은 문 밖으로 쫓겨났다.
“꺼져, 거렁뱅이들아!”
들어갔을 때는 생각보다 분위기가 괜찮았다.
워낙 큰 상회이다보니 오웬과 같이 자신에게 투자를 좀 해보라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정해진 절차가 있었고, 그에 따라 상회의 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발명품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담당자는 발명품을 보고 크게 실망했고, 시모가 노상 발명가이자, 꽤나 악명 높은 위약 판매꾼이라는 게 알려지자 그대로 내쫓겼다.
시모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돈을 벌자고 약을 좀 팔았었는데…”
“흠, 자네 잘못은 아니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리고 몸에 좋지는 않더라도 몸에 해롭지만 않은 게 어디인가. 좋다고 생각하고 마셨으면 가짜약이 아닐지도 모를일인걸.”
“…이제 어떡하죠?”
오웬이 말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군. 전술을 바꿔야겠어.”
“…전술, 말입니까?”
“시모 양, 이렇게 하지.”
오웬이 고개를 숙여 시모에게 속삭였다.
그 말을 듣고 휘청거렸다.
“선생님! 그건 진짜 사깁니다!”
“위약도 팔았는데 뭐 어떤가?”
“들키면 감옥에 가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오웬은 감옥에 갇혀본 일 따위는 없기 때문에 조금 와닿지 않는 걱정이었다.
“그럼 서둘러 가보지.”
오웬이 다음 상회로 걸어갔다.
상회의 이름은 이티모 상회였다.
유명한 엘프 대상 티오네 이티모가 만든 이 상회는, 폴리비아에 차려진 상회 건물이 지부임에도 폴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컸다.
하지만 정문으로 들어간 것은 시모 혼자였다.
오웬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순간 창문으로 들어갔다.
시모는 오웬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웬은 능숙하게 창문 난간을 짚고 발소리도 없이 안쪽으로 향했다.
역시나 팔렛 상회처럼 이미 절차가 마련되어 있었기에 시모는 대기실에서 기다렸다가 담당자를 만날 수 있었다.
엘프 담당자가 말했다.
“어떤 물건을 가져오셨습니까?”
시모가 말했다.
“흠흠,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네요. 아주 신비롭고도… 위험한 물건이죠.”
“무기입니까?”
“그렇게 파괴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풍부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죠.”
“…뭐, 일단은 한 번 보는 게 좋겠군요.”
시모는 물건을 꺼내들었다.
10여년 전 오웬이 처음 보았던 바로 그 발명품으로, 이제는 더 단정하고 깔끔한 전지가 있었지만 기념삼아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시모는 여간해선 자기가 가진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시모가 장갑을 끼면서 말했다.
“힘을 발하는 물건인데, 당장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심해서 다뤄야하지요.”
“예예.”
담당자는 심드렁해보였다.
노상 발명가들이 많은만큼 사기꾼도 흔했을테니까.
시모는 발명품을 번쩍 들었다.
-콰광!
번쩍이는 전류가 발명품 주위로 맴돌고, 뜨겁게 대기를 달구었다.
깜짝 놀라 의자 뒤로 넘어갔던 담당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세, 세상에. 이건 말도 안 돼.”
당연한 일이었다.
천장 구석에 숨어든 오웬이, 시모가 들어올린 발명품에 선택하는 자의 힘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