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2
022화
하지만 성운의 걱정과 달리 라크락은 이미 흥미만만인 듯했다.
모험을 거절하기에는 이미 라크락은 젊은 나이부터 너무 많은 자극을 받아 온 리자드맨이었다.
부모를 잃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황야로 내쫓겼을 때 무리를 지키기 위해 검치호와 맞섰다.
그 뒤 성운의 눈에 들어 무리를 이끌 부족장의 자질을 보였고 신의 뜻을 대행하는 제사장이 되었다.
신의 힘을 빌려 오래 전의 난폭한 리자드맨 부족장 뷰에를 물리치고, 그가 기르던 드레이크를 맨손으로 넘겼고, 또 다시 황야를 가로지르게 되었을 때 거대한 고대 갑충을 물리치기도 했다.
이어 생전 처음 보는 프로그맨 부족의 속임수를 간파하고 그들의 저급한 흉신이 자신이 믿는 푸른 벌레신의 수호자에게 토막 나는 것을 보기까지.
자극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왔다.
라크락에게 새로운 모험이란 위험하다기보다 앞으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동력에 지나지 않았다.
라크락이 고대 유적에 직접 가겠다고 하자 반대가 있었지만, 라크락의 고집이 꺾이진 않았다.
자올은 라크락이 가는 대신 반려인 자신도 가야 하겠다고 말했는데, 이번엔 라크락이 논리로 이기지 못했다.
다음날 라크락과 자올이 전사 여섯을 대동했고, 길잡이 임무를 맡은 오웬이 함께 이동했다.
성운은 조금 걱정이었다.
‘고대 유적은 좀 다르거든? 실망할 수도 있을 텐데.’
일단 플레이어들의 신성 레벨에 어느 정도 비례해 등장하는 흉물과 흉신과는 달리, 고대 유적은 게임이 시작될 때 위치가 정해져 있으므로 도전할 수 있는 난이도 또한 정해져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단계에서는 흔히 말하는 ‘입구컷’, 즉 입구에서 틀어 막혀서 라크락이 실망하는 그림이 그려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고대 유적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긴 해. 당장은 쓸모가 없을지라도 라크락은 문자에 관심이 많으니까. 라크락의 무리나 그 후손들이 발견하게 될 수 있으니까.’
고대 유적은 일단 돌입에 성공하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몇 종류로 정해져 있었다.
‘일단은 고대 지식이 있지.’
고대 지식, 또는 고대 기술.
말이 ‘고대’지 게임 로스트 월드에서 고대의 것들은 최첨단 문명에 버금가는지라, 이런 종류의 고대 유적에 들어서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손상이 된 첨단 지식과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 문명 수준이 낮으면 입구를 지나지도 못해.’
아무리 그래도 우연히 문을 여는 경우는 없다고 봐야 했다.
여러 고고학 지식을 필요로 하거나, 바로 아랫단계의 기술 문명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운은 사실 로스트 월드의 게임 진행을 돕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기술 파밍 던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고대 지식을 얻는 유적은 이 시점에 필요가 없는 셈이고. 그럼 등위 지식이나 기술일까?’
등위 지식이나 기술은 목축이나 농경처럼, 현재에도 지식과 기술을 얻을 수 있는 대신 문명 수준이 낮은 걸 의미했다.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젠가는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꼭 고대 유적에서 발견할 필요는 없지만, 어차피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얻을 수 있다면 나쁠 건 없었다.
‘당장 보기엔 등위 지식이나 나오는 게 제일 좋을 것 같군. 적당히 라크락이나 자올, 오웬의 경험치도 올릴 수 있을 테고.’
반면 나왔을 때 기분은 좋지만, 사용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불가사의.’
고대 유적 중에서도 유적 그 자체가 특별한 힘을 가진 경우가 있었다.
특수한 자원을 자동으로 생성하거나, 특정 생물이 군집을 이루고 있거나, 아니면 특정 자원을 다른 자원으로 환원하거나, 아니면 주변 지역에 저주나 축복을 내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소유’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부족이나 종족에게 특정한 상태 이상을 일으키거나.
‘불가사의 자체는 좋지. 문제는 불가사의 대부분은 고정형이야. 목축을 생각하고 있는 라크락의 무리는 제대로 활용하기 힘들지.’
무리를 나누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지리적 위치도 문제였다.
불가사의 자체가 항상 좋다고 볼 수도 없거니와, 성운은 이미 라크락의 무리를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거리가 먼 반도 안쪽으로 끌어들인 상태였다.
불가사의 자체가 좋은 편이라고 하더라도 그 영향력을 제대로 활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보자들은 불가사의를 먹으면 어떻게든 빌드를 불가사의를 활용하려는 쪽으로 뜯어고치려고 들지만, 실제로 게임 승률에서 불가사의가 유의미하게 작용하는 경우는 적다.’
성운은 언제나 로스트 월드의 통계를 믿었다.
그리고 이런 불가사의 말고, 되도록이면 아니었으면 하는 것도 있었다.
‘뭐, 마성(魔性) 유적만 아니면 되지 않나?’
성운의 생각에 이른바 ‘마성 유적’만 아니라면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닐 듯 싶었다.
‘고유 유적일 확률은 너무 낮고.’
고대 지식, 등위 지식, 불가사의, 마성 유적, 고유 유적 이렇게 다섯 가지를 제외하면 보통 플레이어들이 ‘잡유적’이라고 불리는 분류가 대부분이긴 했다.
라크락이 이미 얻었던 황금 서판 같은 대단하지 않은 보물들이 좀 쌓여 있을 수 있는데 이런 물건들은 중세나 근세에는 큰 가치가 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뭐, 고대 유물로 마법 아이템 같은 게 나오면 쓸모 있겠지. 앞으로의 전투에서 유리할 테고.’
성운은 라크락의 호기심과 담대함이 생각보다 나쁜 일로 이어질 것 같지 않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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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적의 입구는 단순했다.
무거운 원판 돌로 만들어져 있어서 충분한 힘을 가진 사람 여럿이서 돌을 옆으로 밀어내면 그만이었다.
들어가는 난이도가 쉽다는 점에서, 고대 지식을 얻는 던전이나 고유 유적이 아니라는 걸 성운은 알 수 있었다.
자올이 입구가 막히지 않도록 모난 돌을 주워와 괴었다.
“어두운 동굴이라 장작을 피워야 할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그렇군. 저건 야광 이끼인가?”
고대 유적의 내부는 거대한 공동이었다.
대강 어림잡아도 수백 미터, 텅 비어 있는 공간 내부는 아찔했으나, 곳곳에 피어난 녹색과 붉은색 야광 이끼들이 곳곳이 피어 있어서 공동의 전체 크기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공동 사이에는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지그재그 돌로 만들어진 아치형 다리들이 놓여 있었는데, 높이 하나가 수십 미터는 되었다.
“아마 저기 놓인 돌로 만든 길을 다 지나야 할 듯하군요.”
“한 번에 뛰어내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신께 기도를 드릴 겁니까?”
“아니 겨우 이런 걸로 귀찮게 해 드리고 싶진 않은데… 게다가 나만 내려갈 수는 없지.”
자올은 기대감에 가득 찬 라크락의 얼굴을 보며 ‘재미가 없을까 봐요?’하고 물으려다 말았다.
라크락과 자올, 그리고 오웬과 네 명의 전사는 잠시 머리를 맞대었다.
긴 덩굴을 엮어 밧줄을 만들자는 의견이 제일 그럴듯했지만, 그걸 엮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냥 만들어진 다리를 내려가는 쪽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몇 분 동안 뾰족한 방법이 없자, 회의는 되도록 빠르게 끝내는 게 낫다는 라크락의 평소 지론에 따라 바로 다음 행동으로 이행했다.
리자드맨들의 튼튼한 두 다리로 다리를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다리 위로 이동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난관이 나타났다.
“저게 뭐지?”
“쥐…처럼 보이는군요. 되게 큰.”
이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오웬이 말했다.
“뉴트리아입니다. 몇 번 잡숴 보셨을 텐데요.”
“아, 기억나는군. 뭐 이렇게 큰 쥐가 있나 싶었지. 그런데 그것보다 더 커 보이는데.”
일반적인 뉴트리아는 몸길이가 60센티미터에 몸무게가 10킬로그램 정도 나가지만, 라크락이 보고 있는 뉴트리아는 몸길이가 1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 말은 몸무게가 수십 킬로는 나갈 거라는 말이었다.
게다가 라크락이 보기에 인상적인 부분도 있었다.
“왜 기억을 못했는지 알겠군. 그 뉴트리아란 녀석들은 저렇게 떼를 지어 다니지도 않고, 저렇게 앞니를 내세우며 사람한테 달려들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흠, 그럼 뉴트리아라고 보긴 힘들군요.”
“그냥 괴물쥐라고 불러야겠군.”
단순하지만 그럴듯한 이름 짓기였다.
라크락의 생각에 일반적인 동물은 사람에게 적대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보통은 도망친다.
그러나 괴물은 달려든다. 마치 목적을 가진 것처럼.
“이곳을 지키는 놈들일지도 모르겠군. 겨우 쥐일지도 모르지만… 모두 무기를 들어라.”
전투가 시작되었으나, 금세 끝이 났다.
괴물쥐는 스무 마리 되는 꽤 많은 숫자였지만, 라크락과 그 전사들은 베테랑이었다.
일곱 명이 바투 서면 꽉 차는 좁은 다리였지만, 괴물쥐들은 달려드는 기세 그대로 전사들의 창에 꼬챙이가 되었다.
라크락은 창날에서 괴물쥐 시체를 빼내며 말했다.
“먹을 수 있겠지?”
자올은 그 말에 괴물쥐 시체를 툭툭 건드려 보았다.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만, 왜 모든 걸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으로 나누시려는 겁니까?”
“그게 제일 중요한 문제잖나.”
“틀린 말은 아니군요. 하지만 조금 달리 볼 수도 있죠.”
“어떻게?”
“이것들도 물소처럼 ‘기를 수 있는가? 아닌가?'”
“흥미롭군… 일단 내장만 제거하고 이동하지.”
빠르게 해체 작업을 하는 동안 오웬이 질문했다.
“‘기른다’는 게 뭡니까?”
“그러니까…”
대답을 하려던 라크락은 자신도 정확히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물소를 생각하면 잡아먹기 위한 식량이지만, 드레이크 마눈을 생각하면 또 그렇지 않았다.
마눈을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노예와 같은 것인가?’
그렇다기에는 노예는 자신의 상태에 불만족하는 반면, 길러지는 것들은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노예는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반발하므로 계속 억압을 해야 하는 반면에, 길러지는 것들은 아닌 것 같았다.
“잘 모르겠는데.”
라크락은 자올이 답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바라봤는데, 자올도 고민에 빠진 것 같았다.
자올 또한 곧 포기했다.
“우리도 뭔가를 기른다는 건 해 본 지 오래되지 않아 잘 모른다. 우리는 지금 물소와 드레이크 마눈을 기르고 있는데, 물소에게선 고기를 얻지만 마눈에게선 힘을 얻는다. 그 대신 우리는 물소에게 먹을 풀을 찾아 주고 마눈에겐 먹이를 따로 주지. 우리는 이 관계가 오래되길 바란다.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기른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오웬은 그 정도면 만족한 것 같았다.
“그럼 물고기를 길러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물고기를? 물고기는 저절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아닌가?”
라크락의 생각에는 그렇게 보였다.
라크락이 살았던 늪이나 연못에서 물고기는 잡아먹다 보면 점차 줄어들다,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는 자원이었다.
하지만 큰 연못에서, 그것도 수생 생물인 프로그맨과 함께 살았던 오웬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물고기들도 알을 낳고 새끼를 칩니다. 프로그맨들은 그것들이 새끼를 치는 계절이면 잡아먹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죠.”
“놈들에게도 그런 지혜가 있었군.”
“머리 둘 달린 흉신이 나타나기 전까진 멀쩡했을지도 모릅니다.”
라크락 또한 동의했다.
“그럼 기른다는 건 어떻게?”
“크게 자라 잡아먹기 수월한 물고기들이 있지만 어렸을 때 다른 물고기에게 잘 잡아먹힙니다. 하지만 돌이나 나무로 제방을 쌓아 어린 물고기들이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물을 가둔다고?”
라크락은 그 거대하고 깊은 호수에 그런 일을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입으로 말하진 않았다.
현실적으로 어려워도 생각 자체는 특이하고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무리를 둘로 나눌 생각을 하고 있다. 떠나는 이들도 그렇지만 겨울은 남는 이들에게도 잔혹하다.’
라크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법을 한번 찾아보면 좋겠군.”
그때 괴물쥐를 손질하던 전사 하나가 “악!”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렀다.
라크락이 황급히 돌아봤다.
“무슨 일이냐?”
전사는 손을 쥐고 고통스러워했는데, 손가락에서 약하게 탄내가 났다.
“괴물쥐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물린 것 같지는 않은데?”
“그저 살아 있는 놈을 만졌는데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몸이 창날에 꿰뚫린 괴물쥐가 눈을 부라리고 있자, 다른 전사 하나가 바로 죽이려고 창을 들었다.
“잠깐!”
라크락은 그 일을 중지시키고 괴물쥐에게 손을 가져다갔다.
“위험합니다!”
“걱정마라. 그 정도 상처라면 나도 견딜 수 있다.”
라크락은 괴물쥐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파지직!
그것은 선명한 스파크였다.
겨울철 건조한 털가죽을 만졌을 때 느껴지는 정전기라는 개념에 대해 라크락은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이 감각은 그것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아팠다.
라크락은 얼얼한 손가락을 잠시 쥐었다 폈다.
“이게 뭐지?”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성운만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설마 했던 마성 유적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