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성운은 만신전의 꼭대기, 삼각의 제단 위에 서 있었다.
성운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없었다.
성운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잠시 머리 위의 별들을 응시했다.
성운 앞에는 월드 메세지가 떠 있었다.
「플레이어 ‘네뷸라’가 ‘대영역:하늘’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모두의 머리 위 창공은… 플레이어 ‘네뷸라’의 것입니다.」
성운은 여타의 고랭크 플레이어들처럼 대영역에 도전하기 전, 자신이 어떤 대영역에 도전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그 때가 언제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때에 얼마나 방해받지 않고 대영역을 쟁취해내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건 헤게모니아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이지만…’
하지만 헤게모니아는 여러번 다투었음에도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이지 못할만큼 강적이었다.
그러니 성운으로서는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 도중 얻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대영역 또한 그런 수단이었다.
‘그러니 내가 준비하고 있었던 건 발전기 특허권이 아니라, 대영역이었지.’
성운은 대영역을 얻을 때의 방해를 예상했고, 이 방해를 이겨나가기 위한 최단 루트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런 순간 발전기의 발명이 이루어지고 오웬이 나타난 것이다.
성운은 전기가 언젠가 나타날 거라 예상은 했지만 바로 이때라고 예측하지는 못했다. 전기의 이용과 발전기의 발명은 우발적인 사고에 불과했다.
마침내 그렇게 숨어다니던 오웬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폴리비아에서 발명가 옆에 있던 오웬의 존재는 성운에게 있어 이 모든 아이디어를 제공한 단초였다.
‘애초에 헤게모니아를 이길 방법 따위는 열 개라도 떠올릴 수 있어.’
현재 혁명의 기세와, 퍼져나가는 세속주의자들의 변혁을 조금도 꺾지 못하는 연합왕국이다.
당장은 거꾸러뜨리기 어렵지만 취약점들을 하나하나 공략해나간다면 장기적으로 성운은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이번 보이지 않는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해상 봉쇄로 제국이 직접적으로 폴리비아를 지원하기는 어렵지만, 연합왕국 내부의 혁명파들은 체제를 제법 완성시켰기 때문에 폴리비아의 이티모 가문을 지원할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로난테-오로반 동맹의 신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이미 분열의 씨앗이 놓여져 있었다.
누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꽁무늬를 쫓자 만신전의 뜻을 따르지만 그 밖으로 나와버린, 오웬과 같은 떠돌이들이 신들의 도움 없이 저혼자 외로운 싸움들을 해내고 있었다.
바둑으로 치자면 힘싸움을 이어가는데 이미 착수된 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 부분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통제되지 않는 개체들이 많은 건 성운으로서 곤란하다 생각했다.
‘초기 라크락의 기조 때문인가?’
어찌되었든 그들은 성운과 만신전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성운은 폴리비아에 필요 이상의 자원을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헤게모니아와 그 동맹인 수평아리, 블라디미르에게 괜히 카드를 내보일 필요도 없는데다, 무엇보다도 오웬만으로 성운의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운의 목적은, 헤게모니아와의 모순 예언을 통한 싸움에서 ‘패배’하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러 패배하려는 것을 들켜서는 곤란했다.
그래서 성운은 보여줄 수 없는 카드들은 숨긴 상태로, 마치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성운의 연기는 다른 쓸모도 있었다.
‘대영역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소영역의 레벨도 올려야했으니까. 기왕이면 의미 없는 경험치 파밍 보다, 이런 연기를 위해서 쓰이는 쪽이 낫지.’
이후 기대했던 것과 같이, 성운은 패배했다.
발전기 특허권은 빼앗겼지만 정작 빼앗은 팔렛 가문은 그 특허권을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을테고, 대부분의 상인들은 팔렛 가문이 일어서려는 것을 막을 것이다.
폴리비아의 시의회도 있었다.
폴리비아가 정상화 된다면 팔렛 가문은 모든 책임을 져야할 터였다.
헤게모니아는 성운이 대영역에 도전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모순 예언에서 성공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그럼 다시 특허권이 돌아올 수도 있어. 아니면 오웬이 지켜넨 시모가 개선된 발전기를 만들 수도 있지.’
어느 쪽이든 시스템상의 모순 예언의 패배 그 자체를 생각하면, 필멸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성운은 딱히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특허권 보다 특허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더 중요하니까.’
성운 뒤로 누군가 걸어왔다.
위즈덤이었다.
“네뷸라, 데려왔다.”
위즈덤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성운에게 내밀었다.
성운은 그것을 잠시 내려다보았다가 말했다.
“수고 많았어.”
“흠, 이 일에서는 우리가 한 일은 딱히 없어보이는데.”
“예의상 한 말이야.”
“나도 겸양을 피운 것이지.”
둘 다 멋쩍게 웃었다.
위즈덤은 아래에서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돌아갔다.
성운은 자신에게 걸려온 화상 채팅을 승낙했다.
성운은 시끄러운 고함 소리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네뷸라.”
화면에 떠오른 것은 헤게모니아였다.
헤게모니아는 성운을 바라보지도 않고 고개를 떨군 상태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한테 설명해.”
다만 성운이 자신의 감정과 동조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투구 안쪽의 불꽃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성운은 태연하게 말했다.
“뭘?”
헤게모니아가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해서 모순 예언에서 패배했으면서, 대영역을 바로 얻을 수 있었지?”
성운은 이를 가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성운이 답이 없자 헤게모니아가 계속 말했다.
“분명 모순 예언에 패배했으니 신앙 자원과 경험치가 날아갔을 거란 말이다. 내 계산이 맞으면 레벨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신앙 자원을 백만까지 채운 거지? 불가능 하잖아?”
성운이 담담히 말했다.
“이 게임이 완벽한 게임이 아니라는 거 알아?”
성운의 말에 헤게모니아가 되물었다.
“…완벽한 게임?”
“그러니까… 우리는 이 게임 시스템을 잘 쓰고 있긴 하지만, 완벽한 존재가 만든 게 아니라서 빈틈이 있다는 말이지. 단순히 게임의 요소들 간의 밸런스가 안 맞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허점이 있다고.”
“예를 들면?”
“너의 ‘대횡단’ 플레이 같은 게 있겠지.”
만약 실제 세계라면 연합왕국의 문명 초기는 어처구니 없다고 판단될 것이다.
헤게모니아는 자신의 부족을 계속 서쪽으로 이동시켜 두 개의 대륙을 횡단시켰다.
제3 대륙 뿐만 아니라 제1 대륙에도 과거에는 연합왕국의 땅이 있었으니, 실상 연합왕국은 4개 대륙 모두를 영토로 삼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대횡단 플레이 자체는 헤게모니아만의 특별한 전법이 아니었다.
로스트 월드에서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종족을 만나게 되면 ‘문명 충돌’이라는 이벤트가 일어나면서 상당한 양의 경험치를 얻게 된다.
그러니 게임의 극초반에 대륙을 횡단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여러 플레이어와 접촉해내면 다른 플레이어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게 된다.
필멸자들한테는 손해지만, 게임 시스템 상으로는 이득이다.
물론 이런 대횡단 플레이는 항상 권장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플레이어들의 세력 균형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공공의 적이 되기 때문에 극히 위험한 도박이다.
헤게모니아는 대횡단 플레이를 성공한 입장에서 당당했다.
“그래서? 너도 그런 일을 했다는 건가?”
“그렇지. 나는 전부터 신경 쓰였던 모순 예언의 허점을 이용했지.”
“설명해.”
물론 성운은 헤게모니아에게 꼭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성운이 이 방법을 설명한다고 성운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미래를 생각해야 하니까.’
성운은, 위즈덤에게 받았던 물건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게 힌트야.”
헤게모니아는 그 물건을 곧장 알아보았다.
“…봉신상이잖아?”
“그래.”
플레이어가 사망할 경우, 플레이어는 봉신상이라는 아이템으로 변환된다.
성운은 지금까지 자신이 지니고 있지 않던 봉신상을, 위즈덤에게 새롭게 받았다.
“그게 누구의… 잠깐. 그래. 알겠어. 젠장. 왜 생각을 못했지? ‘겹 예언’이었어?”
성운은 자신이 들고 있는 ‘장완의 봉신상’을 내려다보았다.
헤게모니아가 떠올리지 못한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겹 예언이라고 불리는 플레이는 로스트 월드에서 이미 초기에 알려져 있었다.
이 겹 예언이라는 건 모순 예언에 대한 또 다른 모순 예언을 걸어 이득을 취하는 것을 말했다.
우선 성운과 헤게모니아가 모순 예언을 벌인다.
이 예언은 특허권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이때 ‘희생양’ 역할인 장완이 만신전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장완은 계획된 그대로 성운을 제외한 만신전의 다른 플레이어들 각각과 모순 예언을 벌였다.
이 두 번째 모순 예언은, ‘네뷸라와 헤게모니아 중 누가 모순 예언 대결에서 이기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때 희생양 장완은 네뷸라의 승리에 걸고, 만신전의 개개인은 헤게모니아의 승리에 걸었다.
‘내가 승리하는 쪽에 걸고 승리를 하는 그림도 가능했지만, 어차피 초과하는 신앙 자원은 의미가 없고 승부를 위해 연출 외의 불필요한 자원을 소모할 필요는 없으니까.’
결과적으로 성운이 패배하고, 헤게모니아가 승리하면서 성운은 대략 20만 가까운 신앙을 잃었다.
그리고 장완도 만신전 플레이어 여덟 명과의 대결에서 각각 15만에 가까운 신앙을 잃었다. 잃어버린 20만의 신앙을 제외하고도 성운의 신앙 레벨 기준 1백만 한도치를 가득 채우는 신앙치였다.
대영역을 얻기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신앙의 양이기도 했다.
‘어떤 플레이어들은 한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을 수 없는 분량의 자원이 새롭게 생겨나니까 겹 예언이 게임의 오류라고 말했지만, 그건 아니야. 모순 예언에 패배한 사람이 잃어버리는 자원과 승리한 사람이 얻는 자원이 거의 같기 때문에 착각하지만, 패배한 사람의 자원이 승리한 사람에게 이동하는 게 아니까.’
실제로 만신전에서 탈퇴한 장완의 총량은 7만 가량 뿐이었다.
장완은 경험치 또한 여덟 번의 패배 때문에 24레벨에서 1레벨 이하로 레벨 다운이 되면서 봉신 되었다.
그래서 장완의 봉신상이 자연히 만신전에 들어왔고, 위즈덤이 그것을 다시 성운에게 건네었던 것이다.
랭크전에선 불가능한 플레이다.
동맹을 맺었으면 계속 함께 가야하는 동료인데, 이 경우 희생양을 맡을 사람이 없다. 낯선 플레이어들끼리 봉신을 풀어준다는 약속을 지킬지 어떨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봉신을 푸는데는 복잡한 의식이 필요하고 막대한 자원이 들어가므로 약속을 하더라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겹 예언은 이른바 ‘예능 플레이’라고 불리며 스트리머들 사이에서나, 아니면 승패에 관계없이 컨셉을 가지고 하는 플레이어들만이 종종 사용했고, 그마저도 유행이 지나자 잊혀졌다.
랭커들은 계속해서 바뀌는 메타에 순응해야하므로 이미 고릿적에 버려진 예능 플레이 따위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리고 승리에 도취되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니까.’
헤게모니아의 불꽃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겹 예언… 이었다고…? 어떻게 희생양 역할을 받아들인 거야? 협박이었나?”
“아니. 부탁이었지.”
“그런… 그런 부탁을 들어줄 사람은 없어.”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겠지.”
“그게 무슨 말이야?”
성운의 말에 헤게모니아는 이해를 잘 하지못한 것 같았다.
성운은 봉신상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날 싫어한다는 건, 날 싫어하는만큼 알고는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성운은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성운에게는 다른 방법도 있었다.
모순 예언을 승리할 수도 있었다.
오웬과 같은 다른 떠돌이들을 폴리비아에 끌어들일 수도 있고, 힘으로 해상 봉쇄를 풀어버릴 수도 있었다.
양면 전쟁 따위는 제국이 계속해서 치뤄왔던 일의 연장일 뿐이니까.
오웬에게 접촉해 어떻게든 시모를 빼낼 수도 있었다.
오웬에겐 충분히 그럴 역량이 있었다.
위즈덤이 제안하거나 임춘식이 말했던 아이디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아이디어도 대영역을 곧장 얻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에, 성운은 겹 예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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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게모니아는 황망했다.
승리했다고 믿은 순간의 패배, 게다가 이미 알고 있는 전법에 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렇게 되면…’
헤게모니아는 재빨리 형세를 파악했다.
제국의 공세와 연합 왕국의 내부에서 들끓는 내전을 어떻게든 저지해냈지만 이제는 불가능할 것이다.
대영역은 여러 이점이 있지만, 단순히 전투로 볼 때 지금까지 막대한 신앙을 불어넣어야만 가능했던 자연재해들을 비교적 쉽게 쓸 수 있게 만든다.
대영역을 얻었다는 말은 그만큼 인과율에 간섭할만큼의 역량을 얻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끝난 건 아니야.’
헤게모니아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이번 게임 동안 겪은 숫한 패배 끝에, 이번에는 명백하게 더 큰 오점 하나를 써넣었다.
‘멍청한 짓이었어. 진작에 잘 하는 방법으로 승부를 봤어야 했는데 네뷸라놈 때문에 나답지 않은 플레이에 말려들어간 거야.’
그리고 더 강해졌다.
‘더한 열세에서 승리한 적도 있어. 언제나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있지.’
확률적으로 더 낮다는 것 정도는 안다.
하지만 헤게모니아는 자신이 승부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낮은 확률에 들이박아 게임을 이겨왔기 때문에 2위였던 것이다.
헤게모니아는 자신의 뿔투구를 벗어 내던졌다.
헤게모니아는 긴 머리카락이 흩날리자, 헤게모니아는 머리를 빗어넘겼다.
“설마 끝났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성운은 처음으로 헤게모니아의 투구 안쪽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여자였다. 눈동자는 깊고 눈매가 사나웠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물 것처럼 이를 드러냈다가, 아랫입술을 물었다.
“진짜 전쟁은 시작도 안 한 거야.”
성운은 헤게모니아의 모습을 보고 잠시 놀란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곧 응수했다.
“얼마든지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