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회의실이 넓지 않았더라면 모두를 휘감았을지도 모를 거대한 푸른 불꽃이었다.
-야천!
그 불꽃 사이에서 큼지막한 부리가 솟구쳤을 때 성운은 움직이지 않았다.
현신한 상태가 아니라면 만신전 내부에서 신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도 한데다,
“…버릇 없긴!”
수확자 케이주가 뛰어들어 그 부리를 잡아챘고, 이어서 특공대 오빈 마브루가 부리 뒤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푸른 불꽃이 어느 정도 걷히며 나타난 것은 새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
불꽃은 새의 몸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붙잡힌 불사조 아루나가 말했다.
-이것 놔라! 필멸자!
마빈이 말했다.
“그럼 가만히 계시죠, 아루나.”
-하지만 저 놈이…! 아무도 날 강제 소환할 수는 없어! 그게 신이라고 해도 말이야!
성운은 아루나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고 사도들 보다 높은 자리로 걸어올라갔다.
마즈다리가 말했다.
“그야 아루나 당신이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호출 때마다 오지 않으니 그러신 것 아닙니까?”
-난 바쁘다고!
“하는 일이 없는데 바쁠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른바 “불새”로 불리는 아루나는 신수였다.
현재 만신전에도 다른 신수들이 포섭된 상태지만 사도까지 올라선 것은 아루나 뿐이었다.
아루나가 사도까지 오른 이유는 단순했다.
강하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신수들은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강함이라는 파라미터를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별로 그렇지 않은 신수들도 있다.
불사조는 로스트 월드에선 강한 신수였다.
플레이어들이 불사조를 강한 이유로 꼽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 이름 그대로 죽지 않는다. 즉, 탱킹이 된다.
둘, 불타고 있으니 옆에만 있는 것만으로 도트딜이 들어간다. 즉, 살아만 있으면 딜링도 된다.
특히나 불사조의 푸른 불꽃은 피아를 구분해 태울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었기에 아군과 함께 운용할 수도 있었고, 날개가 달렸으니 이동 속도도 빨랐다. 당장은 크기를 줄인 상태지만, 날개 편 길이는 최대 백미터로 큰 편이라 덩치가 작은 드래곤과는 몸싸움도 된다.
개체에 따라 능력 편차가 있는 신수들과 달리 불사조면 어쨌든 아군으로 삼을만하다는 것이 플레이어들의 중론이었다.
성운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지만, 불사조가 발견 되었을 때 룬다와 엘다르는 물론 RD와 크람푸스, 솔롱고스, 심지어 장완까지 적극적으로 중용을 원했다. 만신전 인원의 상당수가 받아들이는데 호의적이었으므로 성운은 받아들이긴 했다.
‘하지만 역시 안 받아들이는 게 나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받아들인 불사조 아루나는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담당은 명목상 플레이어 솔롱고스였지만 제대로 말을 듣도록 다루지는 않았다. 다들 아루나를 들여서 실컷 멋있다고 호응은 하지만, 들인 다음에 관리하는 것은 성운의 차지였다. 어째서인지 귀여운 강아지를 들였다가 밥 주고 똥 치우는 일을 맡은 부모의 심정이었다.
‘내가 왜 이런 기분을…’
성운은 플레이어들이 불사조를 선호하는 이유에는 단순히 강함만이 아니라 멋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강해서 좋은 게 아니라 멋있어서 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능력치만 보면 개차반인 성격을 감수할 정도긴 한데.’
아주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의 의견을 묵살했을 것이다.
아루나가 자신의 부리를 붙잡은 케이주와 목덜미를 잡은 오빈을 털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드래곤들 조차도 내게 경의를 표하거늘!
“여기선 아니니 자중 좀 하십시오.”
마즈다리가 지팡이를 들었다.
중력을 다루는 마즈다리의 오른손 문신과 지팡이에 그려진 문장이 공명하며 아루다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아니, 이놈이!
아루나가 이번엔 마즈다리에게 달려들자 케이주와 오빈이 다시 달려들어 넘어트렸다.
-커헉!
라크락은 아루나와 다른 사도들이 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옆에서 껄껄 웃고 있었고, 툴보는 동경어린 눈으로 아루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소 소란이 있는 가운데 도르돌이 말했다.
“야천 님, 4석은 소환하시지 않으신 겁니까?”
성운이 답했다.
“4석은 이미 오고 있으니까.”
성운이 문을 가리키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을 양손으로 열어 젖히고 나타난 것은 트롤이었다.
라크락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군, 레딘.”
플레이어 위즈덤의 사도, 레딘 비알 오서였다.
위즈덤의 첫 번째 사도 레딘은 죽었었고, 막대한 신앙 자원을 소모해서 되살렸다.
“자원 낭비군, 네뷸라.”
위즈덤은 레딘을 부활시키는 일에 반대했었다.
레딘을 부활시킨 것은 연합왕국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당시 막 마즈다리를 사도로 정한 뒤, 사도의 숫자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위즈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레딘을 되살리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당장 사도가 될만큼 충분한 역량을 갖춘 이들이 없다는 건 알아. 우리가 회유한 신수 중에도 마뜩잖은 것들이 대부분이고. 하지만 사도 부활은 소모되는 자원에 비해서 큰 쓸모가 없다는 게 중론 아니었나?”
“알아.”
한 번 죽은 사도는 그대로 사망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꽤 많은 자원을 소모해서 사도를 되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도 부활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사도는 자신의 업적과 위명을 힘으로 삼지. 하지만 한 번 패배하고 죽었던 사도는…”
“그만큼 명예를 잃지.”
사람들은 패배한 존재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승자야말로 모범이며 본을 따를 가치를 지녔다.
패배자는 그렇지 않다.
“레딘을 부활시켜봐야 디메리트 스킬을 달고 나타나겠지. 안 그런가?”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었다.
“넌 이론을 좋아하니, 다른 이론을 들이밀어 보지.”
성운의 말에 위즈덤은 순순히 응했다.
“좋다.”
“우리가 했던 로스트 월드는 나온지 고작 1년 밖에 안 되었던 게임이었어. 꽤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긴 했지만 게임 데이터의 방대함 덕분에 완전히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지.”
“그렇다만.”
“그러니 ‘부활’이라는 딱지가 붙은 사도를 사용한 플레이어도 그리 많지 않아. 이미 안 좋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실제로 한 두번 사용 해봤을 때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연구가 잘 되지 않았을 거란 말이군.”
“그래.”
“그럼 네뷸라 너의 연구가 있다는 말인가?”
성운이 말했다.
“정확히는 내 연구는 아냐. 연구 게시물 하나를 봤었는데 그럴듯하다고 생각했었거든.”
성운이 본 게시물은 이러했다.
부활한 사도는 당장은 부활했다는 딱지 때문에 필연적으로 페널티가 붙는다.
하지만 패배한 이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앙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니 부활한 사도 자체는 페널티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득이다?”
“실험 횟수가 많지 않아서 그렇게 신빙성이 높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유효하다는 생각은 들었어. 그리고 패배를 통해서 이전까지의 스킬들이 의미를 잃는 부분이 있지만 새로운 역사를 쌓아나가기도 유리하다고 하고. 해당 개체에 대해서도 마냥 나쁘기만 한 건 아니란 거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성운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걸 바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제3 대륙에서 성운과 다른 신들의 싸움은 마신과의 싸움만큼이나 장렬한 역사로 남았고, 그중 가장 비중이 컸던 위즈덤은 여전히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모든 나라가 흑린 제국이라는 이름하에 통일 된 이후에도, 위즈덤의 영토였던 석면국의 사람들 중에는 레딘을 기리는 이들이 있었다.
위즈덤이 말했다.
“그건 네뷸라 너의 잘못이다. 깔끔하게 정리를 할 수 있었지 않은가?”
성운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위즈덤은 자신의 영토였던 것들에 대해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고 애착도 적은 것 같았다.
“그렇게 했다면 반발이 심했겠지. 놔둔 덕분에 반란군 숫자를 크게 줄였으니 이득을 봤어.”
“…거기다 이번에는 레딘을 부활시켜서 겉도는 신도들을 완전히 통합시킨다는 건가?”
“내가 보기엔 합리적인 것 같은데.”
레딘을 부활시킬 근거는 충분히 있었다.
전쟁은 격화되고 있었고, 과거에 패배했던 영웅은 자신의 영토와 그 땅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부활하는 것이다. 과거에 적이었으나 이제는 동료가 된 사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위즈덤이 말했다.
“…좋군. 뭔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없어.”
“그럼 뜻대로 하는 것으로 하지.”
그리하여 레딘은 부활했다.
석면국의 옛 성터에서였다.
위즈덤이 레딘에게 직접 모든 것을 설명하고 납득시켰다.
“난 그대가 나의 실수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레딘은 그 말이 맞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실수였다.”
여전히 위즈덤의 충실한 신도였던 레딘이 부정하자 위즈덤이 하나하나 따져 답했다.
그렇게 열거한 이유들은 성운에게 패배했던 이유와 다르지 않았다.
“그대를 보지 않으려 한 것은 내 실수를 마주보지 않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그대를 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군. 그대는 내게 있어 최고의 기사였는데.”
레딘은 위즈덤 앞에 부복했다.
“그 말씀을 증명하겠나이다.”
라크락이 사도에 대항하고 마즈다리가 변수를 창출해낸다면 레딘은 군단의 쐐기였다.
레딘은 과거의 위명을 가져와 자신의 옛 기사들과 함께 전장을 달렸고,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박살내며 위즈덤의 말을 증명했다.
연합왕국에서 옛 왕국의 붉은 기사가 부활해 제국을 지키고 있다는 소문이 으스스하게 돌았다.
회의실에 들어서는 “적기사” 레딘은 가볍게 목례한 뒤 걸어들어왔다.
레딘이 말했다.
“비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보운다는 일시 격퇴했지만 라이틀라가 올 거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라크락이 “흐음” 하고 턱을 쓰다듬었다.
“항상 있던 레딘이 비었으니… 그럼 우리는 고르디우스라도 맞붙여야 하는 거 아닌가?”
도르돌이 말했다.
“고르디우스는 지난 전투에서 회복이 되지 않은 걸로 압니다.”
“그럼?”
라크락의 질문에 툴보가 끼어들듯 손을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도르돌이 무시하며 답했다.
“아까전 금안 님의 전언으로 강신을 해서 전력을 보강할 거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분노하는 자는?”
“당장은 전장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성운이 대화를 잘랐다.
“만결 말고도 다른 신들이 당장의 전투를 주목할테니 걱정할 것은 없다.”
사도들이 성운을 올려다보았다.
성운이 말했다.
“우리는 방어를 준비해야 된다.”
마즈다리가 되물었다.
“방어… 말씀이십니까?”
“그래. 마즈다리 너와도 관련이 있다.”
당장의 전투는 호각이라지만, 게임의 양상은 꽤 많이 기울었다.
상대가 헤게모니아만 아니라면 꽤나 안심하면서 여유 있는 플레이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어를 이야기했으니 사도들은 잘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들이었다.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당연하지.’
어지간한 플레이어라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상대 플레이어가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노릴지에 대해서 대강 알 수 있다.
빌드와 전략은 결국 상황에 맞게 정해져 있는 일들을 수행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헤게모니아가 택할 수 있는 전략은 제한적이지.’
단순 총력전이 있지만, 이미 총력전이나 다름 없는 전쟁중이다.
최소한의 인원을 남기고 가용 가능한 대부분의 인원으로 성전을 벌일 수 있겠지만, 제국의 덩치는 너무 크기 때문에 어딜 공격해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생 플레이로 전환해서 어떻게든 후일을 도모한다? 가능은 하겠지만, 승리 확률은 바닥을 치고, 헤게모니아에게 어울리는 방법도 아니지.’
상황에 들어맞지 않는 전략이나 시시한 예능 전략들을 무시한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성운이 말했다.
“분노하는 자는 마법을 봉인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