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3
023화
로스트 월드에 있는 힘은 신성만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성운이 지구에서 마지막 게임을 승리했을 때 사용한 핵과 핵 투발 수단은 신성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었다.
그리고 신성과 과학은 중세까지는 함께 성장할 수 있지만, 근대에 들어서면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신실해지면, 사람들은 과학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과학 기술과 지식에 능해지면 신을 덜 믿기 시작하지.’
신이 해 주던 일을 과학이 대신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물론 이 낙폭은 현실 세계, 그러니까 지구보다는 약했다.
‘지구에서는 신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는 반면에, 로스트 월드에서 신들의 존재는 진짜니까.’
그리고 로스트 월드에는 신성과 과학이 아닌 세 번째 힘, ‘마법’이 존재했다.
마법 또한 신성에 반비례하지만, 과학과는 달리 고대에서부터 신성과 반비례하는 성질을 지녔다.
‘그럴 수 밖에. 마법은 극히 개인적인 힘이니까. 고대에는 강력한 마법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지. 마법을 가진 개인은 신인 것처럼 떠받들어질 수 있어. 그런 존재가 신을 믿을 이유도 없지.’
이런 마법의 힘은 과학이 발전하면서 근대쯤 자연스럽게 힘의 크기가 역전되어, 몰락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게임마다 근대까지 발전한다고 볼 수는 없지. 나도 마법을 이용해서 승리한 적이 적지는 않으니까.’
때문에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들은 신성을 가지고 플레이하면서도, 과학과 마법을 잘 저울질하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했다.
성운 또한 이런 게임의 규칙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필요하다면 언제나 마법을 이용할 생각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마성을 얻을 생각은 없었는데.’
고대 유적 중 ‘마성 유적’으로 분류되는 던전은 최종적으로 마성을 얻을 수 있게 되는 던전을 말했다.
마성을 얻는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마법을 배울 수 있는 체질을 갖춘다는 것.
‘게다가 단순히 유적을 성취한 개체뿐만 아니라, 그와 가까운 혈족 몇 세대가 모두 영향을 받는다. 지금 같이 씨족 사회라면 사실상 부족 전체가 마성을 가질 확률이 있는 거지.’
그래서 위험한 부분이 있었다.
어차피 마성을 얻는다고 해서 바로 마법사가 되거나 하는 건 아니다.
마법을 사용하려면 주문을 알아야 하고, 이런 주문 또한 고대 유적이나 각종 고대 지식, 마법 연구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마성을 가진 이들은 그 자체로도 힘이 있었다.
작은 불꽃을 피어오르게 만들거나, 물체를 빛나게 하거나, 자그마한 스파크를 튀게 만들거나.
‘아무래도 이 고대 유적은 아마도 전기의 마성을 주는 것 같은데.’
어떤 종류의 마성을 주는지는 힌트가 있었다.
성운이 보는 시스템 창으로는 바닥에 쓰러진 괴물쥐의 이름이 ‘마성에 휩싸인 뉴트리아’로 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기를 선택하자 속성이 ‘전기’로 떴다.
접촉한 상대에게 전기 공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전기는 언제나 유용하지. 마성 중에선 좋은 편이지만…’
문제는 마성을 얻으면 신앙을 얻는데 페널티가 생긴다는 점이었다.
아마 라크락이 이 고대 유적을 돌파하는 개체가 될 테니, 라크락에겐 틀림없이 마성이 깃든다.
게다가 라크락과 관련 있는 부족 350명 정도가 마성을 가질 확률을 얻을 테고, 확률적으로 세 명 정도가 마성을 띄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신비한 힘이라고 생각하겠지. 전기의 마성이니 눈으로 보여지는 화려함도 있고.’
하지만 성운은 그 뒤로 일어날 일을 알고 있었다.
마성 유적을 활용하는 건 로스트 월드의 초보자들이 흔히 겪는 실수였다.
초보자들은 ‘마법’이라는 힘을 얻는다는 것에 집착해서 마성 유적으로 자신의 부족을 유도해서 마성을 얻게 한다.
그리고 마성을 띄는 개체들에게 자신의 자원을 집중해서 경험치를 올린다.
성장한 개체들은 자신의 마성을 후대에 자손으로 남기고,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한 마성을 얻는다.
이윽고 ‘마법사’가 나타난다.
‘게임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 마법사는 최고의 직업 중 하나지.’
마법사는 개체 하나가 감당하지 못할 강력한 힘을 가진다.
힘이 강해질수록 무수한 적들을 상대할 수 있고, 권력을 가지고 귀족 계층이 된다.
무엇보다 이 마법사들의 힘의 근원은 신이 아닌 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신에게 의지하지 않게 된다.
마법의 근원은 로스트 월드에서 이른바 ‘설정 떡밥’으로 존재하는 고대의 악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성과 마성이 대립하게 되는 거지.’
이때부터는 플레이어가 사실상 마성을 가진 개체들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신성을 기반으로 하게 되는 플레이어들은 ‘마녀 사냥’, ‘금기’ 같은 이벤트로 마성의 영향력을 줄이고자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어떻게든 컨트롤하는 건 가능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시간과 자원이 소비된다는 점이지. 초반에 마성과 마법사로 이득을 보더라도 게임 중반에 허튼 곳에 자원을 소비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성운 정도 되는 플레이어라면 균형을 잘 잡아 빌드에 문제없이 적용할 수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피곤한 것이 사실이었다.
게임에서 불필요한 변수를 늘리느냐 마느냐도 중요한 과제였다.
통계를 보자면 초보자들이 마법사에 혹해서 승률을 떨군다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순수 신성’으로 가는 빌드가 ‘신마 혼합’ 빌드에 비하면 승률이 더 높기도 했다.
‘물론 나는 변수가 늘어나는 플레이를 지향하긴 하지만… 라크락에게 경고를 해 줘야 할까? 이제 슬슬 마성 유적이 본색을 드러내서 유혹할 거야. 경고하지 않는다면 라크락의 성미상 마성 유적 끝까지 가겠지.’
잠시 고민하던 성운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라크락의 능력치를 다시 확인해 보던 찰나, 최근까지 없었던 고유 능력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능력치는 분명 슈넨과 아울로이의 프로그맨들을 물리치면서 얻게 된 능력치로 보였다.
‘이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면 라크락에게 기대를 걸 만하겠는데. 신성과 마성을 둘 다 가지면서 양쪽 모두 페널티를 받지 않는 방법이 없지는 않으니까.’
성운은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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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릿한 통증을 느끼던 라크락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냐? 그 힘을 가지고 싶으냐?’
라크락은 두리번거렸다.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다.
자올이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라크락은 창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던 괴물쥐의 멱을 따면서 말했다.
“괜찮다. 이 괴물쥐들은 확실히 숨통을 끊어야겠군. 그리고 활을 쏠 줄 아는 전사는 활을 들어라. 다친 이는 후위를 지켜라.”
라크락은 손질된 괴물쥐들을 내버려 두고서, 무리를 이끌었다.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한 힘이지 않느냐?’
라크락은 이번엔 눈만 움직였다.
‘위쪽이다.’
라크락이 눈을 치켜뜨자 허공에 투명하고 푸르게 스파크를 내며 빛나는 넓적한 생명체가 유영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이 생명체의 외형은 가오리였는데, 라크락은 바다에 사는 가오리를 본 적이 없었으므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전기가오리가 말했다.
‘내게 말하겠다 생각하면, 나는 들을 수 있다.’
‘신기하군. 넌 뭐지?’
‘나는 이 유적을 지키는 정령이다.’
‘정령? 정령이 뭐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가?’
‘그래. 나는 강한 힘을 가진 이에게만 보인다.’
라크락은 그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정령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얕은 생각은 전달되고, 깊은 생각은 전달되지 않는군. 정령이라고 자칭하는 네가 정말로 강한 힘을 가진 이를 구분할 수 있다면 이 생각도 읽어 봐라.’
전기가오리는 라크락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
라크락이 얕은 생각으로 말했다.
‘그래. 난 이중 가장 강하다. 네가 말하는 힘은 무엇이냐?’
‘전기를 말한다.’
‘전기?’
‘생물을 태우고, 빛을 번쩍이는 힘. 불과 같은 열기와 태양과 같은 빛. 나는 너에게 그 힘을 줄 수 있다.’
라크락은 다른 일행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면 고맙게 받겠다.’
전기가오리가 주춤했다.
‘…조건이 있다.’
‘그냥 주는 게 아닌 것인가?’
‘그렇다.’
‘그럼 거래로군.’
라크락은 인상을 썼다.
‘거래를 할 때는 조건부터 제시해라. 네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내게서 무엇을 가져가고 싶은지 정확하게 해야지.’
‘…미, 미안하다.’
‘미안할 것까진 아니다. 다음부터 주의해라. 그래서 조건이 뭐지?’
전기가오리는 뭔가 아까보단 힘없이 펄럭이며 날아왔다.
‘나는 이 유적에 봉인되어 있다.’
‘봉인?’
‘갇혀 있다는 말이지. 이 공간 안에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저 밖으로 나가지는 못한다. 나는 이 구속이 풀리길 원하고, 내 뜻을 이루는 이에게 전기의 힘을 내려 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널 풀어 줄 수 있지?’
전기가오리가 말했다.
‘간단하다. 저 아래로 내려가서 내 봉인을 지키고 있는 유적지기를 죽이면 나는 풀려나고, 너에게 힘을 줄 수 있다.’
‘그럼 내가 그 괴물쥐들이 했던, 파지직, 하는 걸 할 수 있는 건가? 전기의 힘이라는 걸?’
‘물론!’
전기가오리는 라크락이 힘에 관심을 가지자 흥분해서 설명했다.
‘그것만이 아니지. 너는 그 힘을 계속 사용하는 것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점점 더 강해지지.’
‘그리고?’
‘내 힘은 굉장히 커서 너 혼자에게만 담기지 않는다. 너뿐만 아니라 너의 부족 중 누군가도 그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내 힘은 너의 자손에게도 전해질 수 있다. 네가 키운 힘만큼 고스란히 전해지진 않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너의 피를 이은 자식 중에는 너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진 이들도 나타나겠지.’
‘굉장하군.’
라크락은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의문을 느꼈다.
‘그럼 넌 왜 갇혀 있느냐?’
‘어, 내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지. 사람들도 위험한 것들은 멀리 두지 않느냐? 독이나, 괴물이나. 피할 수 없다면 가둬야 하는 것이지.’
라크락은 표정을 굳혔다.
‘그거 알고 있나?’
‘뭐지?’
‘넌 방금 스스로 위험하다는 걸 밝혔다.’
‘아.’
라크락은 콧김을 내뿜었다.
‘넌 뭔가 숨기고 있다. 아니면 그 힘을 가졌을 때 가져올 이득보다 폐해가 더 크거나.’
‘아니, 그렇지 않다. 분명 힘을 가지면…’
‘더 이상의 거짓말은 하지마라. 경고하는데, 나는 이대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별 볼 일 없게 잠겨 있던 이 동굴의 입구를 봉인할 수도 있다. 더불어 내 전사들에게 이곳에 사람이 들지 못하도록 지키고, 내 부족의 후손들에게 영원히 들지 못하도록 경고할 수도 있다.’
전기가오리는 명백히 당황한 것 같았다.
‘그, 그럴수가,’
성운이 알기에 정령들의 지능이 그리 높지는 않다.
하지만 마성 유적에 들어온 개체들은 힘의 매혹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성운이 생각했다.
‘역시 라크락이 이런 행동을 보여 줄 수 있는 건 이번에 얻은 새로운 능력치 때문이겠지.‘
『라크락(전사 Lv.4/부족장 Lv.3/제사장 Lv.3)
힘 42
지능 35
사회성 38
의지 23
지도력 18
속임수 8
라크락의 무리의 부족장』
라크락의 새로운 고유 능력치는 바로 ‘속임수’.
슈넨의 속임수를 간파하고, 오히려 역으로 기습을 했던 것이 이 능력치를 발현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거라고 성운은 판단했다.
‘…하지만 나는 역시 그 힘을 가지고 싶군. 거래를 다시 시작하지, 파지직.’
‘파지직?’
‘이제부터 그게 네 이름이다.’
‘난 파지직이 아닌데.’
‘내 거래는 네 이름을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넌 날 속이려고 했으니, 조건은 내가 더 유리해야지.’
파지직이 시무룩해졌다.
‘…알겠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성운은 바로 뒤에서 소리를 죽여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