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내게는 변변찮은 무기가 없지.’
사도 라크락과 레딘, 그리고 케이주는 신화적인 수준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외의 사도들은 뛰어난 지략이나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빈 자신은 어느 쪽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빈은 사도가 된 순서는 빠르지만, 시대만 따진다면 가장 늦은 축에 속했다. 이를테면 툴보는 사후에,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를 지난 뒤에야 사도가 되었으니까.
오빈은 자신이 과학 기술이 발전한 수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과거 선조들이 창을 들고 대적해야 했던 두려운 괴물들은 이제 사람에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총도 있고 폭탄도 있다.
괴물 뿐만이 아니다.
비가 오면 차오르는 강가를 정비하고 지하의 단단한 암석도 부순다.
문명의 힘이 있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결국 그 굉장한 무기들을 사람들이 서로 겨누게 되긴 했지만, 그 적들 중에는 감히 사람으로선 대적하기 힘든 수호자나 사도들도 있었다.
오빈 마브루는 손에 쥔 폭약을 내려다보았다.
‘모두 이것 덕분이지.’
군인이었으므로 전장의 화약냄새는 익숙한 것이었고, 전쟁의 한창 때에 후퇴 작전을 벌이는 동안 오빈은 혼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할 때가 많았다.
결국 혼자서 최대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의 폭발적인 힘이 필요했다.
오빈이 폭탄을 다루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아, 물론 불꽃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오빈이 갑판에서 제 할일을 이어가는 사이, 막 오빈을 발견한 선두의 수송선 함교에선 거친 언성이 오가고 있었다.
“저 놈을 수송선 가까이 오게 해선 안된다!”
수송선 함장이 외쳤다.
하지만 수송선을 보호해야할 함대는 제각기 깡총 3호에게 공격 당해 추락하거나,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서 거리를 벌리는 중이었다.
수송선들은 최대한 많은 숫자의 병사를 실어나르기 위해 무장을 모두 떼어놓은 상태이므로 추락시키긴 어렵다.
게다가 저 함선에 얼마나 많은 폭탄이 실릴지는 모를 일이지만, 수송선단의 중심으로 들어와 폭발한다면 적지 않은 타격을 줄지도 몰랐다.
수송선들은 저마다 우왕좌왕하고 나름 명령을 주고받으려고 하지만 신호가 꼬였다.
지휘선이 추락한 이상 별다른 방법은 없어 보였다.
함장에게 부관이 질문했다.
“여기선 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 뒤에 있는 함선이 저놈과 부닥칠지도 모른다. 지휘 체계가 꼬인 바람에 이동이 굼뜬데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함선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함장은 잠시 굳은 얼굴로 오빈이 탄 군선을 바라보았다.
“…우리 측 수송선 하나를 희생해서 시간을 번다. 우리에겐 라이틀라 님이 계신다.”
“함장님?”
“…선두에 선 수송선은 우리다. 연락관은 후위에 위치한 수송선들에게 깃발 신호를 보내라.”
함장의 말에 부관과 연락관은 잠시 침묵했다.
타당하지 않은 명령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송선에는 단순히 공군만이 아니라 대양을 넘어 대륙으로 진격해갈 병사들이 타고 있었다.
목숨을 살리기 위해선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는 목숨을 버려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연락관이 경례를 붙였다.
이내 함교 안의 인원들이 마지막 임무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한편, 연합왕국의 수송선 중 하나가 영웅적인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나서는 것을 오빈도 알고 있었다.
‘알고보면 저놈들도 우리랑 닮았단 말이지.’
그래서 전쟁이 이토록 오래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오빈은 만결의 말을 믿고 따랐으나 주신인 야천의 가르침도 받았다.
야천의 말대로 모두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데도,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오해가 이런 끔찍한 전쟁을 지속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세상의 모습이다. 불가항력이지.’
오빈은 자신의 만능 군장에서 가조립 된 상태의 물건을 꺼냈다.
대발명가인 미치광이 툴보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공병을 흉내내는 정도라면 오빈도 할 수 있었다.
나사를 조이고 못을 박아넣자, 1인승 나선날개가 만들어졌다.
‘어차피 일어날 참극이라면 최대한 빨리 끝낼 수 밖에.’
오빈은 갑판 위에 조작해둔 장치에 버튼을 눌렀다.
1인승 나선날개는 자체적으로 양력을 생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빈은 다가오는 수송선을 확인하고 갑판 위를 달렸다.
양 옆 보조 날개가 바람을 받아내며 오빈은 몸무게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오빈은 구름 안쪽으로 숨으며 수송선 함대를 선회했다.
오빈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지금인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자 오빈은 자신이 떠나온 군선과 시계를 번갈아보았다.
‘연결이 잘못 되었나? 아직 군선과 수송선 사이 거리가 있으니 빠르게 움직이면 다시…’
오빈이 생각하고 있을 때 굉음이 터져나왔다.
-…!
이명이 찾아오고, 그 후로 찾아오는 붉은 광구 덕분에 오빈은 눈을 질끈 감아야했다.
본래 군선에 실려있던 화약과 포탄들은 물론이고 오빈이 부서진 갑판 안으로 빽빽하게 채워넣은 폭약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폭약을 실었던 군선은 불덩이 아래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숯덩이 잔해로 흩어져 내렸고, 거대한 불꽃은 희생을 각오했던 수송선의 전면부까지 불태웠다.
‘역시 수송선 전부에게 영향을 끼칠만큼의 위력은 한참 부족했던 모양이군.’
오빈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빈은 애초에 적들이 흩어진다면 일이 쉽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툴보가 화려하게 날뛰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그래서 오빈은 화려한 폭발을 통해서 눈속임을 의도했다.
‘누군가가 명예롭게 희생했고, 그 때문에 위기를 넘겼다고 믿는 순간을 노리는 거지.’
사람이란 자고로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한 순간 제일 취약했다.
오빈은 함대의 우측 끝 수송선에 접근했다.
그리곤 기낭 위의 경계병이 인식하기 전에 나선날개 위에서 저격해서 쓰러트리고, 미끄러져 내려가 갑판 위로 잠입했다.
‘내 별명도 쓸모가 있단 말이지.’
참호 귀신과 폭탄마와 같은 화려한 별명들을 가지고, 제국 내부에서도 멋진 전쟁 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정작 사도들 사이에서 오빈이 가장 잘 한다고 알려진 일은 잠입과 암살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아직 오빈의 적들에게 별명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오빈이 제 일을 너무 잘해낸 덕분에, 연합왕국에선 많은 암살사건의 배후에 오빈이 있다는 걸 아직도 몰랐다.
‘혼자서 참호를 점령해 귀신 소릴 듣는 것도, 폭탄을 숨기고 터트리는 것도 결국엔 기도비닉을 유지할 때나 가능한 거니까.’
오빈은 단도 하나를 들고 함교로 걸어들어갔다.
함교를 소리 없이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수 분.
오빈은 전성관을 통해서 연락병에게 명령했다.
“각 수송선 함장들에게 긴급 연락을 하고자 한다. 또 다른 위험요소가 없는지, 또는 원조가 필요하진 않는지, 그리고 차후 작전에 차질이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 바라니 각 함선에게 연락 바람.”
연락병의 복명복창을 확인한 오빈이 말했다.
“각 반은 들으라. 함교에서 중요 회의가 있을 예정이니 1800시까지 함교 출입을 불허한다. 이상.”
기술반과 보급반 등에서 답신이 들려오자 오빈은 함교에서부터 다시 폭약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번에야 말로 한 방에 날려주지.’
하지만 모든 일이 쉽게 풀리는 건 아니었다.
수송 함대가 한창 모이고 있을 무렵, 오빈은 창 밖으로 거대한 연녹색의 동체를 보았다.
오빈은 폭약 설치를 멈추고 벽면에 바짝 기댔다.
-수상하군. 분명 이곳에 숨어드는 벌레새끼를 봤는데.
라이틀라였다.
라이틀라는 함선을 한 바퀴 굽이 돌면서 갑판 위와 비행선을 바라보았다.
-본 함선 함장은 갑판 위로 나와서 응답하라.
오빈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잠시 생각했다.
‘아루나 님은 어떻게 된 거지??’
오빈은 휴대용 잠망경을 꺼내 창 밖을 내다보았다.
멀리 바라보니 아루나는 20면체의 반투명 도형 안에 갇혀 있었다. 마법이었다.
아루나 정도의 신수라면 물리력만으로 마법을 해제할 수 있기에 아루나가 부리를 들이박을 때마다 마법에는 실금이 생기고 있었지만 당장 벗어나긴 힘들어 보였다.
‘내가 일으킨 폭발이 주의를 끌었군.’
라이틀라가 말했다.
-연합왕국 사도 3위 라이틀라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지금부터 본 함선의 최고 명령권자는 본인에게 이양된다. 임무를 맡지 않은 모든 인원은 함교를 확인해라.
오빈은 만능 군장에서 기관총 총구를 집어들려다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막아내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오빈은 함교에 가득 채워넣은 폭약을 돌아보았다.
‘폭약을 더 채워넣고 다른 수송선이 더 가까이오길 기다려야 해.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은 없지. 반면 지금 터트리면 라이틀라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라이틀라를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타격을 준다면, 라이틀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아루나와 툴보가 남은 비행선들을 격추 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놈들이 들이닥칠테니 타이머를 걸어둘 틈은 없어. 바로 터트려야 한다.’
사도의 몸이라고 해도 드래곤이나 신수 정도의 신체를 가지지 않은 이상 이런 폭발을 정면에서 받아내긴 힘들다. 아니면 이런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은 일화가 있거나.
하지만 오빈에겐 그런 능력이 없었다.
‘그럼 다시 한 번 거대한 불꽃을…’
오빈이 가슴팍에 있던 라이터를 집어들었을 때, 대기를 날카롭게 찢는 맹렬한 엔진음이 들려왔다.
“…이야아아압!”
깡총 3호와 툴보였다.
깡총 3호는 라이틀라의 머리통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리상 불가능에 가까운 거리였지만 오빈은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나 혼자 영웅 놀이에 너무 심취했군.’
오빈은 기관총을 뽑아들면서 함교의 문을 박차고 나갔다.
함교를 향해 달려오던 병사들이 오빈의 총탄을 맞고 굴러떨어졌다.
한편 라이틀라는 제 등에 올라탄 깡총 3호에 난색을 표했다.
-이 망할 잡종이…!
단단한 드래곤의 외피라지만 회전하는 드릴이 닿자 비늘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튀었다.
라이틀라는 등을 털어내기도 하고 자신의 아가리로 물어버리기도 했지만, 깡총 3호는 다리의 발톱으로 몸체를 단단히 붙잡으면서 라이틀라의 등을 기어올랐다.
혈관이 찢겨나가면서 울컥하고 피가 쏟아졌다.
-이놈!
라이틀라의 수정이 빛나며 날카로운 창살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붉게 달아오른 창살들은 툴보를 노렸다.
하지만 수송선에서 거치된 기관포가 라이틀라를 사격하자 수정의 술식이 어그러지며 마법 창살들이 부서지고 깨졌다.
라이틀라가 돌아보자 갑판 위를 장악한 오빈이 서 있었다.
라이틀라에게 큰 타격은 주지 못했지만 마법을 위한 집중을 깨트리기 위한 정도는 충분했다.
-이 잡것들이…!
라이틀라가 이번엔 수송선의 갑판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이틀라의 의지는 또 다시 좌절되었다.
-잡것은 너다!
거대한 푸른 불꽃이 라이틀라의 목덜미를 쥐고 수송선에 들이박았다.
드래곤의 머리통이 수송선 선측을 뚫고 처박혔다.
라이틀라는 깡총 3호와 아루나를 향해 각축을 벌였지만 머리를 맞은 탓인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금이다!’
정신이 번쩍 든 오빈은 다시 함교로 내달렸다.
라이틀라의 머리가 처박힌 지금이라면 어쩌면 라이틀라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오빈이 품 속의 라이터를 뽑아 불을 붙여 함교의 문을 열려는 순간, 오빈에게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수고했다, 오빈.
아까전에도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였다.
-…야천 님?
-좋은 생각이지만, 다시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오빈은 곧장 그 말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넌 이미 영웅이니.
느닷없이 거대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오빈, 그리고 라이틀라와 싸우고 있던 툴보와 아루나를 휘감아 고고도의 하늘 위로 끌어당겼다.
화약 냄새와 피 냄새, 시체와 소총, 부서진 수송선과 백색의 기낭, 연합왕국의 징표와 몸이 긴 연녹색 드래곤, 그 모든 것이 그저 점으로 보일만큼 드높게.
순식간이었다.
본래라면 살가죽이 찢겨 나가고 압력 때문에 의식을 잃어야겠지만, 세 사도에겐 그저 여름날의 훈풍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이어, 갑작스럽게 사라진 적들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라이틀라, 그리고 주인을 잃은 오일 라이터가, 거센 바람에 휘말려 빙글빙글 돌더니, 폭약 사이로 제 몸을 내던졌다.
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