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제국의 기함, ‘누리바라기’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비행선이었다.
엄청난 질량 때문에 비행속도가 떨어지기에 기존 비행선들과 같은 속도로 비행하지 못해 비행 함대의 기함으로서는 별 가치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비행하는 기함은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서 전장 전역을 관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었다.
누리바라기에 올라탄 사도 7석 도르돌이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연합왕국 함대는 수평선 너머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찰 역할을 맡은 비행선들이 시시각각 소식을 전해왔으며 그렇게 전달된 통신관들의 정보를 참모들이 취합했다.
몇 분 뒤면 제국의 함포 사격권 내로 적들이 들어오겠지만, 적들의 항공 전력에 정찰선들이 노출될 지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도르돌이 말했다.
“지난 전투로 적의 기동 함대인 4함대가 무너졌다. 적의 기동 능력에 제한이 있으므로 적 항공 전력에 위협되지 않는 선에서 정찰선을 운용한다.”
도르돌의 말에 참모들이 동의하고 연합왕국의 항공 전력에서 구체적인 위협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상공 200미터 가량 높이의 누리바라기 아래로는 제국 함대 중 주축이 되는 1함대가 있었다. 라스다실 앞바다로 이어지는 이 해로에는 제국 함대의 변천사를 그린듯한 수 많은 종류의 함선들이 도열해 있었다.
가장 뒤에 있는 함선은 목조 함선이다. 이러한 목조 함선은 전투에 들어가면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지만, 보급과 연락선으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시대에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목조 함선은 연합왕국에선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제국은 연합왕국의 함대를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지만 꽤 많은 목선이 수송선으로 사용되고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동체를 철로 만든 함선들과 달리 무게가 가벼운데 여기에 증기선의 기관을 내장했기 때문이다. 만약 바람을 제대로 받기만 한다면 피격 당했을 때 대파 될 것을 염두하더라도 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기에 수송선으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물론, 제국과 연합함대 모두 함대의 주력함이라고 할만한 것은 역시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철갑선들이었다.
철갑선들은 증기기관의 발달과 함께 등장했는데, 초기 기관이 그리 발달하지 않아 목조 함선 보다 빠르지 않았을 때에도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안정된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컸다.
증기동력에 마법 또는 고무동력을 더한 후기형 철갑선들은 느린 속도를 보완함과 동시에, 기존 목선만큼의 크기로 커지면서 적재량을 갖춰 과도기를 지나 기존 목선을 완전히 대체하는데 성공했다.
제국 1함대의 함선들도 이러한 후기형 철갑선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몇몇 유명함들은 비행선인 누리바라기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고, 세 가지 동력을 복합 사용했으며, 크고 커다란 포들을 달고 있었다.
수 십년 동안 이어진 제국과 연합왕국, 그리고 로난테-오로반 해군의 전쟁 양상은 과거 기사와 갑옷 사이의 상관관계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최초에, 사람의 무기는 돌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충분했지만 가죽을 두르면서 금속으로 만든 날붙이가 필요해졌고, 그 날붙이를 막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갑옷을 입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갑옷을 뚫기 위해 냉병기는 더 커졌고, 그 냉병기를 막기 위해 갑옷은 더 두터워졌다.
덕분에 총기의 발명 이전에는 양손으로 잡아야하는 거대한 무기에 강철로 만든 두터운 갑옷이 일반화 되어 있었다.
전함의 발전도 그와 비슷했다.
다만 전함의 갑옷이 배를 두르는 강철판이라면, 무기는 포였다. 연금술사의 탑이 무너지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전한 화약무기는 함선 대 함선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포의 크기와 사정거리를 비약적으로 늘려갔다.
함선의 등급은 비교적 오래전 만들어진 흉물급, 그보다 강한 포탄을 견뎌내고 더 거대한 포를 싣기 위한 큰 덩치의 흉신급, 그리고 배가 건조된지 10년 이내인 거대 함선인 신수급으로 나뉘었다.
그중 신수급 함선의 경우 동급 전함을 단번에 격침할 수도 있는 주포가 셋이나 있었으며, 갑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포를 배열해 명중률을 보완하고, 비행선이나 용기사 같은 항공 전력을 요격하기 위한 방공포까지, 움직이는 요새 그 자체로 볼 수 있었다.
“사령관 각하, 1분 뒤 적들이 저희 신수급 함선의 주포 유효 사거리에 듭니다.”
참모의 말에 도르돌이 잠시 함대 모형들이 올라간 지도를 내려다.
오우거의 거대한 그림자가 지도를 덮었다.
“항공 상황은?”
“아직 관측되지 않습니다.”
도르돌이 잠시 생각했다.
1분이라면 충분히 여유로운데다, 도르돌은 현재 제국 황제는 물론이고 만신전, 정확히는 야천의 대리자로 이 자리에 있는 셈이었다. 그 무엇도 소홀히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다.
‘기동 함대가 전멸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졌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군.’
참모들의 이야기와 함게 도르돌의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어떤 가능성은 손쉽게 대처할 수 있지만, 어떤 가능성은 아니었다.
연합왕국이라고 해도 모든 작전에서 완벽하진 못하다. 오히려 너무 큰 덩치 때문에 둔하고 굼뜰 수 있다.
하지만 제국이 파악하지 못했던 전력이 추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왜냐하면 제국 또한 연합왕국이 파악하지 못했을 전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악의 변수라고 해도…’
도르돌이 생각했다.
‘제국의 준비에 흠은 없다.’
결정을 내린 도르돌이 말했다.
“함포 적중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찰선만 운용한다.”
“예.”
정찰선 숫자가 많다면 적 항공 전력이 모습을 드러내도 그에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지만, 최소한의 병력만 남긴다는 건 제때 피하지 못할 경우 정찰선이 손을 쓸 수 없게 된다는 말이었다.
지휘는 선택의 연속이고, 이런 선택 속에선 희생이 불가피하다.
‘별빛이 인도하길.’
만신전의 신앙을 생각할 때, 남게 되는 정찰선은 기꺼이 역할을 받아들일테지만, 도르돌은 언제나 가슴이 아팠다. 오우거에 대한 편견과 도르돌의 거대한 덩치, 그리고 모든 작전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냉담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의 속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생명을 쉽게 경시하는 오우거이기 때문에 만신전에게서 축복받은 재능과 결합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도르돌 또한 만신전의 뜻을 따랐다.
희생의 가치를 모르는 이는 희생을 다룰 줄도 모른다.
“적 정찰선이 늦는만큼 흉신급 함선의 주포 사거리까지 지연한다.”
“예.”
참모들이 빠르게 연락관들에게 전달했다.
제국의 상급 연락관은 모두 마법사로, 실지렁이를 통해 보고를 올리고 명령이 하달 되었다.
통신의 신속성은 연합왕국과 엇비슷하지만, 구체성과 정보량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수 분 뒤, 일원화 된 명령체계 안에서 제국 1함대, 3함대, 4함대의 신수급, 흉신급 전함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수 킬로미터를 날아간 포탄들 대부분이 연합왕국 함선 사이로 떨어졌다.
연합왕국 함선들 중 신수급, 흉신급 함선들이 포구를 천천히 틀었다.
“초탄 전원 불발!”
초탄 명중을 바라는 것은 포수라면 모를까 지휘관이 바라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정찰선의 관측값이 각 함선으로 전달되었고, 각도가 즉시 수정 된 뒤 불을 뿜지 않았던 각 함의 두 번째 주포에서 포가 발사 되었다.
“흉물급 1기 대파! 흉신급 2기 중파! …신수급 1기 중파!”
하지만 참모들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전쟁은 이제 시작 되었고, 첫 사격이 끝났으므로 이제는 적이 사격할 시간이었다.
예상한 것과 같이 적 전함에서 시작된 포탄이 우수수 쏟아졌다.
1함대 가까이 떨어진 포탄들이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며 전함의 함교 보다도 높게 솟아올랐다.
“이동하라.”
함포 사격이 이어지면서, 함대가 천천히 후방으로 이동했다.
연합함대의 전체 함선이 더 많았지만, 후방에 있는 수송선이 대부분이었다.
전함의 숫자는 미세하게 제국이 더 많은데다, 적의 정찰선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주포 거리를 유지하는 쪽이 제국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계속 후퇴할 수는 없지.’
제국의 목표는 라스다실 해안에 적 함대가 도달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었으므로, 계속해서 후퇴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연합왕국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빠르게 접근했다.
게다가 제국 함대가 멈춰설 경우 함교에서 수평선 위의 함대 관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다. 이때부터는 사실상 제국과 같은 수준의 교전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도르돌이 정신을 집중했다.
사도들은 만신전을 연결하는 일종의 정신망, 신들은 *귓속말*이라고 부르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아루나 님, 확인 하셨습니까?
저 머나먼 창공에서 사도 9석 아루나가 답했다.
-보채지 마라! 거의 다 왔으니까.
아루나는 빠른 기동성을 살려 연합왕국의 함대를 우회했다.
사도를 정찰 자원으로 사용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법도 하고, 실제로 초기의 아루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능력을 가진 건 제국에 아루나 밖에 없었다.
아루나 또한 지위 보다 기능성을 높게 보는 만신전의 섭리를 이제는 이해하고 있었다.
구름을 꿰뚫으며 날아가던 아루나는 구름 사이로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정지했다.
-…보이는군.
도르돌이 말했다.
-역시 저희가 걱정했던 ‘그것’입니까?
-그래.
아루나가 답했다.
-천공성이다.
─┼
같은 시각, 성운도 아루나의 눈을 빌려 라스다실 앞바다에 떠 있는 천공성을 확인했다.
성운 뒤에서 플레이어들이 통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춘식이 말했다.
“저새끼 미친 거 아냐?”
성운은 감정적으로는 임춘식의 과격한 발언을 공감했다.
천공성은 플레이어들이 대표적으로 꼽는 10대 고대 유적 중 세 개의 성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성 중 가장 전략적 가치가 크다고 알려졌고, 성운도 그에 동의했다.
천공성은 글자 그대로 떠있는 성이었다.
성 아래에는 부유하는 거대한 지반이 있고, 이 지반은 직경 2km 정도였다.
문명 단계가 낮을 때는 이 천공성은 그저 하늘에 떠 있을 뿐이지만, 어느 정도 문명을 확장하게 되면 날개를 달거나 여러 동력을 부착해서 느린 속도로나마 이동시킬 수 있었다.
엄밀히 따져, 플레이어들은 천공성을 이동성의 상위호환으로 취급했다.
이동성 보다도 거대한 땅이니만큼, 여러가지 기반 구조물을 만들거나 연합왕국의 주요 기관들을 모아둘 수도 있으며, 필요한 때에 천공성을 이동시켜 필요한 일을 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상공 300미터 높이의 하늘에 위치해있으므로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이점도 있었다.
그리고 연합왕국은 이러한 천공성을 수도로 삼고 있었다.
“어떤 놈이 전쟁하는데 수도를 끌고와?”
성운이 답했다.
“그만큼 필사적이라는 거지. 오히려 좋게 생각할 수도 있어. 이번 라스다실 싸움이 끝나고도 전쟁이 꽤 길어질 수 있는데, 저 수도를 함락시키면 우리가 헤게모니아에게서 곧장 승리하는 거니까.”
성운은 태연했고, 임춘식은 물론 다른 플레이어들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헤게모니아가 천공성까지 끌고 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추정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다만 과반수의 플레이어들은 중간 보급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수준에서 그칠 거라고 보았지, 정말로 전장에 나설 거라고 보지는 않았을 뿐이었다.
성운이 말했다.
“여기까진 생각한대로잖아? 그렇지?”
그 말에 AR1026이 화면을 보며 답했다.
“네, 그렇지요. 마침 저희 지원군도 모습을 드러냈으니까요.”
성운이 돌아보았다.
“생각보다 빨리왔는데.”
“지시는?”
“우리도 놀라게 해주자고. 발사.”
─┼
좁은 지휘실에 팽골리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방금 마법사 연락관에게 연락이 왔슴니다!”
“도르돌 사령관님이 뭐라고 하지?”
“포각도를 많이 올리라고 함니다.”
연락관이 종이를 내밀자 기지 지휘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구만. 함포 포병들에게 알려줘라.”
연락관이 뛰쳐나가자 참모가
“각도가 너무 높지 않슴니까?”
“걱정마라. 이미 언질이 있었따.”
“아, 혹시…”
“그래. 둥둥 떠다니는 천공섬인 모양이다. 오히려 잘됐지…”
지휘실 밖으로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 기지의 주포가 준비중인 것이다.
지휘관이 중얼거렸다.
“우리 주포는 엄청 크고 무겁지만, 제대로 맞출 수가 없으니… 그렇지만 천공섬이라면 눈감고 맞추래도 맞출 수 있지.”
팽골리안 지휘관이 창밖을 내다보았다.
삼십 여 미터는 되는 거대한 길이의 강철 포구가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올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크기의 포는 일반적인 전함에서는 결코 운용이 불가능하다.
어떻게 포를 실어올리는데 성공하더라도, 포탄이 쏘아지는 동시에 그 반동으로 함선이 침몰할테니 말이다.
다행히 이 팽골리안 지휘관이 담당하는 곳은 배 위가 아니었다.
주포에서 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동성 주포 ‘우리에게 적은 없나니’ 발사로부터 5초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자 이동성 전역에 긴장감이 흘렀다.
“발사!”
다소 흥분한 팽골리안 몇몇이 발사와 함께 환호를 질렀다.
포구가 불을 뿜으며, 엄청난 크기의 탄환이 포구에서 솟아올랐다.
검은 연기가 매케하게 치솟고 포의 반동을 받아내느라 이동성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바다 위에 딛고 선 이동성은 다리를 받아 버텼고, 수면을 이용해 충격을 가볍게 흡수했다.
거함거포의 시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포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어떤 전함도 아닌 제국의 이동성이었다.
이 공격을 위해 이동성은 제4 대륙에서 벗어나 낮은 해수면을 찾아 밟으며 제3 대륙에 도달했다.
이동성에 의한 파도가 저 멀리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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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킬로미터 너머, 천공성.
인식하지도 못했던 후방에서, 그야말로 집채만한 포탄이 천공성의 지반을 후려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