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4
024화
파지직이 말했다.
‘그래서… 다른 조건은 뭐지?’
라크락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물었다.
‘네가 왜 위험한지 설명해라.’
‘…뭐라고?’
‘네가 정말로 거래할 만한 가치를 가진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실을 숨길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거래할 가치도 없는 것이고.’
그 말에 파지직은 허공을 맴돌았다.
‘그래. 내 힘은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어떤 위험이지?’
파지직은 펄럭이며 어두운 돌다리를 따라 걷는 라크락 일행의 머리 위를 천천히 비행했다.
‘나는 고대의 악에서 비롯되었다.’
‘고대의 악?’
‘아주 먼 과거에 이 세계를 지배했던 존재들… 하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그 존재마저 잊혀져 신들마저도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들… 나도 그 기원을 떠올리지 못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여기 갇혀 있었을 뿐.’
‘딱하군. 하지만 나도 고아로 자랐다. 누구에게서 낳아졌는지를 꼭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 그보단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지.’
‘그, 그런가?’
파지직은 라크락의 말에 느닷없는 위로를 받아 당황하면서도 말을 이어 갔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은 사람을 도취시킨다. 근원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롯이 제 것이라고 착각하기 마련이지. 그저 그 힘을 우연히 얻었을 뿐이면서 말이야. 그런 힘을 휘두르다 보면 자기에게 그런 힘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힘을 가지지 않은 이들을 얕보게 된다.’
라크락은 조금 어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뷰에나 슈넨의 사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성이라는 것도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모양이지?’
‘그래. 내 힘은 무차별로 퍼진다.’
라크락은 이 힘을 받아들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해 보았다.
‘이 전기의 마성이란 힘은 신께서 내려 주는 것과는 다르겠군. 신의 힘은 결국 신께서 선택하고 판단하신다. 반면에 겨우 파지직 하는 힘이라도 자격 없이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의 질시와 부러움을 사겠지. 그리고 그 힘이 점차 커지기까지 한다면… 신을 모멸하려는 이들도 생기겠군.’
라크락은 파지직이 위험한 이유를 이해했다.
‘그래서 파지직, 그럼 그런 위험을 안고서 너의 힘을 손에 넣어야할 이유가 뭐지?’
‘내 힘은 강하다.’
‘흠.’
‘파괴적이지.’
파지직은 번쩍거렸다.
라크락은 이 빛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천둥 벼락이었다.
규모에 따라 작으면 ‘파지직’에 불과하지만, 힘이 성장하고 커지게 되면 천둥 벼락이 되는 것이라고 라크락은 짐작했다.
라크락은 괴물쥐들처럼 몸에서 전기라는 것을 낼 수 있게 되면 전투에 유용하리란 것도 이해했다.
‘매력적이군.’
‘그럼 봉인을 풀어 주겠나?’
‘조건이 있다.’
‘조건? 아, 알겠다.’
파지직은 예상했다는 듯 라크락 가까이 날아들었다.
‘힘을 독점하고 싶은 것이로군? 이해한다. 다소 어렵겠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할 거다. 이 힘을 한 명이 독점하기 위해서는 마법과 같은 수준의 의식 준비가…’
라크락은 가로저었다.
‘아니, 나는 힘을 독점할 생각이 없다.’
‘그럼?’
‘너는 처음에 전기의 마성이란 힘은 무차별로 퍼진다고 말했지. 하지만 필요하다면 의식을 통해 힘을 한 명이 독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둘 모두가 사실이라면, 힘을 무차별로 주는 게 아니라 소수의 선택받은 자에게 줄 수도 있겠군?’
파지직은 또 당황한 것 같았다.
‘그렇다. 해보진 않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작은 규모의 의식을 치루는 것으로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지? 네가 모든 힘을 가지지 않는 이상, 그냥 무차별로 힘이 퍼지도록 두어도 결과는 비슷할 텐데.’
‘아니, 다르다.’
라크락이 설명했다.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힘이 주어지면, 마치 신의 선택을 받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지.’
‘뭐?’
‘고대의 악 같은 근원이 없는 힘이 아니라, 근원이 있는 힘이 된다는 말이다.’
‘아니다. 신의 선택을 받는 게 아니야. 이 힘은 신의 힘이 아니다.’
라크락은 아주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이 신께서 내려 주신 힘이라고 하면 그건 그때부터 신의 힘이 된다. 그게 정말 신의 힘인 것과 뭐가 다르지? 선택받은 자들은 자신의 힘이 신께서 주셨다고 생각할 테고, 그 신실한 믿음은 신에게 가 닿을 것이다.’
‘아니 그런…’
파지직은 반박을 하고자 했지만, 반박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라크락이 하는 말은 로스트 월드의 시스템으로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마성을 가진 이들이 힘을 휘두를 때, 그저 우연히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신앙 자원을 얻는데 페널티가 생긴다.
반대로 마성을 휘둘러도 그게 신에게 받은 힘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오히려 신앙 자원을 생성한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
‘아니, 또 다른 조건도 있나? …그리고 내 이름을 멋대로 부르는 것을 더하면 세 번째 조건이다.’
‘…그리고 세 번째 조건.’
‘…그냥 말해라.’
라크락이 파지직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도 신을 믿어라.’
‘…신을 믿으라고?’
‘다른 신이 아닌 우리 푸른 벌레신을 믿고 의지해라.’
파지직은 거절의 뜻으로 번쩍거렸다.
‘다른 조건들은 몰라도, 그건 어렵겠다. 나는 마성의 정령이다. 신들보다 더 오래된 존재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다.’
라크락은 가볍게 꼬리로 바닥을 때렸다.
라크락의 일행은 라크락이 느닷없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안색을 살폈다.
자올이 무슨 일이냐, 손에 통증이 괜찮으냐 묻자 라크락은 괜찮다고 답했다.
라크락은 파지직에게 집중했다.
‘누가 어떻게 왜 널 낳고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가 중요하지. 너는 왜 봉인으로부터 풀려나고 싶지?’
‘내가…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성의 정령들은 자신의 마성을 널리 퍼트리고 싶어 한다. 그게 내 삶의 목적이다.’
‘내가 보기에, 너는 충분히 유용해 보인다. 그리고 우리 푸른 벌레신께선 유용한 존재에 관대하다. 너의 염원을 들어주실 지도 모른다. 네가 만들어진 목적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삶의 목적은 자신을 만들어 낸 존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파지직의 비행이 천천히 느려졌다.
‘신들은 마성의 정령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의 신을 너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라.’
‘너희의 신께서 나를 정말 받아들여 줄까?’
‘내가 제시한 조건을 모두 받아들인다면야. 내가 그분의 뜻을 모두 알 리는 없지만, 그분을 아는 이들 중에선 내가 제일 그분의 뜻을 잘 알지.’
그 말에 파지직이 결정을 내렸다.
‘검은 비늘을 가진 리자드맨… 나는 사실 너에게 몇 가지 거짓말을 했다.’
‘뭐지?’
‘나는 사실 이 고대 유적에 단순히 갇힌 것이 아니다. 유적의 도전자가 유적지기를 쓰러트려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유적지기도 내 수하에 불과하지. 나는 이 유적을 지배하고 있다. 너희에게 마성에 휩싸인 뉴트리아를 보낸 것도 나다.’
‘과연.’
라크락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파지직이 계속 말했다.
‘그럼에도 유적지기를 물리쳐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알 것 같다. 너무 약한 이들이 힘을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 아닌가? 너의 힘을 충분히 퍼트릴 수 없을 테니.’
‘그렇다. 최근에는 프로그맨 무리가 몇 번 도전해 왔었지. 하지만 놈들에겐 자격이 없었다.’
라크락은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파지직이 말했다.
‘나는 너를 속였다. 화나지 않는가?’
그 말에 라크락은 가로저었다. 익히 예상했을 뿐더러, 당장 크게 잃은 것이 없는데 속았다는 이유만으로 분개하는 것은 라크락의 성미가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담대하게 용서할 수 있다. 용서는 전사의 미덕이 아니지만, 나는 부족장이기도 하다. 부족장에게 용서와 화해는 미덕이다.’
‘…아.’
‘그리고, 나는 전사도, 부족장도, 제사장도 아닌 한 리자드맨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너를 이해한다.’
‘이해?’
‘이렇게 축축하고 어두운 곳에서 괴물쥐나 바라보고 살고 있으면 성격이 좀 괴팍해질 수밖에 없겠지. 너는 밖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말에 파지직이 번쩍번쩍거렸다.
라크락이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파지직이 말했다.
‘아직 그대의 이름을 모른다. 그대의 이름은?’
‘라크락.’
‘라크락, 시험은 끝났다. 나는 그대가 말한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이에 동의하는가?’
‘물론이지.’
「마성의 정령 중 하나가 당신에게 복속되길 희망합니다. 이를 받아들이면 ‘마성영역:전기’를 얻게 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네/아니오」
성운은 ‘네’를 눌렀다.
‘됐다.’
이것이 마성의 페널티를 극복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성을 바로 신성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만약 신성 영역으로 편입되지 않으면, 마성은 각 개체가 ‘마성에 휩싸인’으로 표기 되며 통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역에 들어온 마성은 통제가 가능했다.
라크락이 파지직에게 조건을 내건 것처럼 특정한 개체에게 마성을 내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물론 신성으로 편입시켰다고 해서 진짜 신성이 되는 건 아니야. 신성에 속하는 영역처럼 원한다고 레벨을 올릴 수 없지. 이것저것 제약이 붙기도 하고. 하지만 페널티를 받지 않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아니겠어?’
단순히 마성 유적을 돌파해서 마성을 얻는 것이라면, 쉽다.
라크락의 일행은 그 괴물쥐가 수백 마리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성운이 언제라도 신앙을 소모해 지원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마성의 정령을 복속시키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어렵다기보다, 가능한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캐릭터의 능력치를 통해서 가능성을 열어 둘 수 있을 뿐이며, 성운은 이번에 운 좋게 성공한 셈이었다.
「’마성영역:전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성운은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널 만난 게 서로에게 행운일지도 모르겠다. 라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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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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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푸른 벌레신께서 라크락 님에게 천둥 벼락의 힘을 내리셨지.”
“오호라.”
“여기까지가 검은 비늘 부족 리자드맨들 중 ‘선택받은 자’가 생겨난 이야기라네.”
언덕 위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물소 뼈와 비석으로 만들어진 탑 앞에 있었다.
비석 위에 회칠을 해서 뼈를 쌓아 올린 이 탑은 황야 저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높았다.
이 뼈탑은 오래전 라크락이 처음으로 만들었던 뼈탑 위에 세워진 것으로, 푸른 벌레신에 대한 신앙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길을 잡는 이정표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긴 이야기를 끝마친 검은 비늘을 가진 리자드맨은 석비에 쌓인 흙먼지를 가볍게 훑어 냈다.
이 리자드맨은 ‘비단’이라고 불리는 값비싼 직물을 여러 겹 겹쳐 입어 고아한 신분임을 암시했다.
“흥미로운 이야기군. 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는데.”
반면 의문을 꺼낸 인간 남자는 누추한 모습이었다.
무두질도 제대로 되었는지 의문인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턱수염은 덥수룩했다.
“당신이 믿는다는 신은 벌레의 신인데, 천둥 번개와 무슨 상관이 있지?”
리자드맨은 고개를 기울였다.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의문을 왜 가지느냐는 태도였다.
“번개가 무슨 색이지?”
“푸른색?”
“우리가 신을 뭐라고 부른다고?
“…푸른 벌레신?”
“바로 그거라네.”
그러면서 리자드맨은 인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당연히 인간은 무엇이 ‘그거’라는지 알 수 없었다.
‘리자드맨들은 이상한 부분에서 잘 납득하고 넘어간단 말이지. 괴짜들 같으니.’
남자는 그게 썩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런 부분을 잘 이용할 수도 있겠지.’
남자는 속내를 숨기며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이 긴 이야기를 듣는 동안 통성명 한 번을 안 했군. 이름이 뭐지?”
“나 말인가? 오웬이라고 하네.”
남자는 깜짝 놀랐다.
“이런, 거물을 몰라봤군.”
“거물? 농담이겠지. 그쪽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
“나는… 잠깐, 저기 불청객이 오는 것 같은데.”
남자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 무장한 한 무리의 놀들이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