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분노하는 자의 다섯 번째 사도 알마 알로이는 비행선에서 라스다실 해안을 내려다보았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마신 야천의 회오리가 알마가 탄 비행선의 꽁무늬를 바로 뒤까지 쫓았으나, 곧 멀어졌다. 아마 분노하는 자의 힘으로 알마의 존재를 가리지 않았더라면 회오리가 알마를 덮쳤을 것이다.
사도이므로 그 회오리를 살아서 빠져나올 수는 있겠지만 꽤나 형편없는 꼴이 되었을 거라고 알마 스스로 생각했다.
‘분노하는 자의 뜻대로 되었군.’
제국의 해안 요새는 완전히 무너졌다.
라스다실 폐허로 가는 길이 훤히 열린 것이다.
해안을 향해 함대의 포격이 날아갔다.
해변의 남쪽, 콘크리트를 쏟아부어 만들어 여러 단으로 쌓아올린 포진지는 이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다. 그 위에 얹힌 것은 천공성이다.
이제는 지반이 무너져내려 거대한 언덕이 되었고, 그 위는 연합왕국의 역사와 문명을 상징했던 건물들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그 위로 야천의 회오리들이 분풀이를 하듯 휘젓고 있었다.
‘하지만 마신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야.’
야천은 천공성 내부에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내부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본래는 곧장 대규모 공습이 시작되어야 하지만, 야천이 일으킨 회오리 때문에 천공성 아래에 있는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부에 있는 안카르데는 천공성의 추락으로부터 부대 대부분이 버텨냈다고 말했지. 여기까지는 우리가 기대한 그대로긴 해.’
다만 회오리는 계속해서 지면을 파내고 있었는데,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천공성에 매복한 군단은 좁은 통로를 통해서 빠져나와야 했기 때문에 만약 위치가 들통난다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안카르데는 참을성이 없어. 당장이라도 솟구쳐 올라도 이상하지 않지. 잠깐이라도 야천의 시선을 빼앗을 수 있다면…’
알마는 연합왕국의 함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국 함대와 지근거리 포격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해안 요새의 지원 포격이 없는만큼 싸움 자체는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비등해 보인다.
다른점이 있다면 거리가 가까워졌고 서로가 속도를 늦추고 있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사격을 해내 서로의 피해가 막심해지고 있을뿐.
‘숫자는 적지만, 전세는 간신히 더 좋은가? 연합왕국이 제국 측 전함들을 밀어내고 있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제국 전함이 노려야할 목표는 연합왕국의 전함뿐만이 아니다.
제국의 첫 번째 목표는 연합왕국의 수송선들이므로 멀리있는 수송선을 노려서 포를 쏘아대다가, 보다 가까운 연합왕국 전함의 주포를 맞고 침몰 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대로 수송함대가 해안에 정박하는데 성공하면…’
해안 가까이부터는 야천의 힘이 닿기 시작하기 때문에 큰 피해를 볼 것이 뻔하지만, 제 아무리 신이라고 하더라도 수 킬로미터나 되는 해안 전체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분노하는 자가 감안한 해안에서의 피해는 대략 2에서 3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적들보다 대략 두 배의 숫자를 유지하고서 라스다실 폐허에 도달할 수 있지.’
라스다실 폐허로 가는 길엔 급조 진지들이 갖춰져 있고 상당한 숫자의 제국 군대가 진을 치고 있긴 하지만, 숫자가 더 많고 많은 장비를 가지고 있다면 해볼만한 싸움이 된다.
게다가 폐허 안쪽으로 밀고 들어갈수록 연합왕국을 괴롭히던 함포 사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기도 했다.
‘그 다음은…’
그 다음은 알마로서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었다.
연합왕국과 제국 양측에 이미 지휘관으로 참여한 사도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들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다.
알마는 가로젓고는 돌아서며 참모진들에게 말했다.
“수송함대를 보다 북쪽으로 이동한다.”
참모 하나가 질문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북쪽에 진영을 갖춘 적 전함 포격에 더 취약해집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남쪽에는 마신의 회오리가 있다. 우리 육군이 회오리에 휘말리는 것보다는 적의 전함을 상대하는 게 나아.”
참모는 즉각 이해하고 연락관을 통해 연락했다.
넓은 해안선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제국 함대를 북쪽으로 더 밀어낼 필요가 있었지만 그정도 희생은 각오할 수 있었다.
“급보입니다!”
연락관이 참모들이 있는 함교까지 올라오자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연락관이 말했다.
“후방 수송선이 격침 되었습니다.”
함교 입구 쪽에 참모가 연락관에게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건가?”
다른 참모가 말했다.
“적들의 함포 사격에는 만신전의 유도가 있다. 다소 기이할지 몰라도 예상을 넘어서는 정밀한 공격이 있을 수 있다.”
연락관이 가로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격침당한 수송선은 함대 최후미, 아직 적들의 포격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격침이 일어나고 있다고? 정확한 숫자는?”
“저…”
연락관이 주저하며 말했다.
“거리가 너무 먼데다 처음에는 연락관들 사이에 혼선이 있어 정확히는 모릅니다. 현재 비행선 함대들이 모두 적 비행선 함대에 묶여 있는지라 연락 깃발을 제대로 전송해줄 이가 없었습니다.”
알마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법을 이용하는 제국에 비하면 깃발 신호는 원시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연합왕국의 역량으로 어떻게든 차이를 메우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역시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알마가 나서며 말했다.
“기함을 돌려라. 직접 확인하겠다. 위치가 어떻게 되나, 연락관?”
알마 또한 참모의 말처럼 연락관의 실수거나 우연적인 사건이 거듭된 결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제국은 함대끼리의 섬멸전을 벌이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수송선을 막아내려는 전략이었으니, 함대를 나누어 뒤를 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일이었다.
‘만약 그럴 병력이 있었다면 우리가 미리 알아차렸겠지.’
하지만 알마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쿵!
별다른 전조도 없이 흉신급 전함의 용골이 꺾이더니,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다.
비명소리를 들을 수는 없지만 당황한 해병들이 분주히 구명정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배가 한 두 척이 아니었다.
당장 침몰하는 배들은 혹시나 모를 적에 대비한 예비 전함이었는데 그 다음은 수송선들이었다.
특히나 후위에 위치한 수송선 중에는 신수급 거대 전함에 맞먹는 이전 시대의 거대 목조선들까지 있어서 위험했다. 본래라면 해안을 안전하게 지킨 이후에나 라스다실에 돌입할 배들인데, 당장은 그 배들을 지킬 전함들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경계병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적의 전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알마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 저 수평선 너머에서 쏜 건가? 하지만 포탄은 보이지 않았는데…?’
알마는 즉시 분노하는 자를 호출했다.
분노하는 자는 즉시 신들의 언어로 외쳤다.
-*이런 씨발!*
알마는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미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들어보았기에 일종의 ‘분노 표현’이란 걸 알고 있었다.
분노하는 자, 헤게모니아가 말했다.
-저건 잠수함이다.
-잠수함… 말입니까?
헤게모니아는 자신의 신앙치가 다소 깎이는 걸 각오하고 말했다.
-수면 아래로 잠긴 상태로 항행이 가능한 배다. 침수가 되지 않도록 기밀이 철저하다. 수중에서 발사 가능한 폭탄을 쓰고 전함의 선저부를 노려 침몰시킨다.
-…아.
알마는 단번에 두 가지 사실을 이해했다.
분노하는 자는 존재하기 이전의 기술을 미리 알고 있곤 했는데, 이또한 그러한 신들의 지식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두 번째 깨달음은 좀더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현재 기술로는 대응할 방법이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헤게모니아가 말했다.
-…대응할만한 창조물을 만들어내겠다.
-예.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최대한 많은 병력을 해안에 상륙 시켜라. 이상.
그렇게 말한 헤게모니아는 알마와의 귓속말을 끊었다.
적의 기술력이 높아 아군에게 당장 기술적으로 대항할 방법이 없다고해도, 플레이어라면 창조 능력을 통해서 가능하다.
로스트 월드에서 이런 기술 격차를 창조물을 통해서 극복하는 것은 흔하고 일반적이었고, 당연히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템플릿 창조물들도 존재했다.
헤게모니아는 제국 잠수함의 기술수준을 이해해서 가장 적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창조물을 수 분 안에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을 사용해야 한다.
헤게모니아는 전쟁을 통해서 생산될 신앙 자원의 양과 이번 창조를 통해 소모될 신앙의 양을 가늠했다.
‘아슬아슬하게 되겠어.’
그렇게 말하며 헤게모니아는 창조물의 외형을 조립하고 능력을 집어넣었다.
잠수함 같은 비밀 전력은 감당할만한 것이었다.
헤게모니아 자신 또한 천공성 내부에 병력을 모아두지 않았나?
이런 전력 정도는 이런 규모의 힘싸움에서는 자주 나오는 그림이다. 전황을 완전히 뒤집는 요소는 아니었다. 당황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다 고꾸라지는 것은 변변찮은 실력을 가진 이들 뿐이다.
그랬다.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변수가 하나둘 쌓인다면 헤게모니아의 두 번째 계획은 무너질 수 있다.
‘아직까진 간신히 오차범위 이내야.’
하지만 여기서 범주를 벗어난 예외가 등장하고, 사도들끼리의 싸움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두 번째 계획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헤게모니아는 면밀히 관찰한 뒤 창조물을 완성했다.
하지만 헤게모니아 또한 직감하고 있었다.
네뷸라의 변수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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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왕국 수송선 위.
출렁이는 바다 위로, 저 멀리 라스다실 해안이 보였다.
이 목조 수송선은 수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백문이 넘는 대포를 갖추고 있던 전열함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며 무거운 무장은 모두 덜어내고, 증기기관과 타륜까지 달아 수송선으로 개조되었다.
과거 무거운 전쟁 병기를 나를 정도의 큰 배였기에 수송선의 역할을 해내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좌현에서 물 아래 그림자가 보입니다!”
수송선은 급하게 회전하며 크게 기우뚱 기울었다.
배 위에 올라탄 해병들은 물론, 그 광경을 보지 못하는 수송선 내부의 육군 병사들 조차도 크게 술렁였다.
물 속에서 나타나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폭탄으로 배 아래를 터트리고 지나가는 잠수함의 존재는 일종의 초자연 현상처럼 느껴졌다.
“어뢰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모두 충격에 대비하라!”
함장의 말에 겁에 질린 얼굴을 한 순간, 거대한 촉수가 나타나 어뢰를 집어 들었다.
촉수는 어뢰를 그대로 집어던졌고,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어뢰는 해수면에 재진입하는 순간 충격으로 폭발했다.
수면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분노하는 자의 수호자 비크니라. 내가 이 물 밑의 사특한 기술에 대항하겠으니, 수송함들은 전진하라.
그 말과 함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비크는 나선형 모양의 껍데기를 지니고, 그 껍데기 밖으로 수 많은 촉수를 지닌 일종의 암모나이트처럼 보였다.
물 속에서 충분히 속도를 낼 수 있으면서도 어뢰를 낚아채는 촉수, 그리고 어뢰의 공격과 충각 돌격을 할 수 있는 단단한 껍데기의 조합으로 로스트 월드의 유저들이 대 잠수함 전력으로 선호하는 창조물 템플릿이었다.
수호자 비크는 그대로 날아가 제국의 가장 앞선 잠수함에 들이박았다.
높은 기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잠수함의 격벽이 그대로 찌그러지며 바닷물이 새들어가기 시작했다.
현재의 삐걱거리는 기술에 비하면 유연하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비크는 잠수함 사냥꾼이라 부를만했다.
“역시, 야천 님의 말씀대로인가?”
작은 목소리였으나 레이더를 감지할 정도로 민감한 비크의 파동 감지 기관이 그 말을 잡아냈다.
엉뚱하게도 목소리는 잠수함을 사냥하기 위해 바다 깊숙히 들어선 비크의 아래에서 들렸다.
-…누구냐?
“아, 목소리가 들린건가. 아무튼 야천님이 말씀하신 그대로군. 단단한 껍데기에 수 많은 촉수. 역시.”
비크가 재차 물어보기도 전에, 밝은 빛이 비크를 쬐었다.
어둠 속의 빛도 잘 보기 위해 민감한 시야를 가진 비크는 잠시 시각을 잃었다.
“…간다!”
수면 아래에서 무언가 솟구쳤다.
흔히 ‘보행 기갑’이라고 부르는 형태였다.
보행 기갑은 두두바 고무와 마법 기관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두 발로 걷는 병기였다.
고대 유적에서도 종종 발견되며, 이후 제국을 비롯한 각 나라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생산해내 세계의 일반적인 전력 중 하나로 자리잡은 이 병기는 전차와 같은 전력에는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거대한 창조물이나 흉물, 흉신이라면 강한 출력과 거대한 냉병기를 통해 대상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 속에서…?
비크는 헤게모니아에게 ‘일반 지식 2.0’이라고 불리는 지식 모듈을 삽입 받았지만, 물 속에 존재하는 보행 기갑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크기도 일반적인 기갑의 크기인 4미터에 비하면, 9미터에 가까운 대형 병기였다.
뒤늦게 시야를 찾은 비크는 빛 너머에서 흐릿하게만 보이는 보행 기갑을 향해 몸을 돌리려했다.
보행 기갑의 한 가운데는 유리로 만들어진 창이 있었고 조종석이 바로 보였다.
그 조종석에는 오구리, 미치광이 툴보가 타고 있었다.
“받아라! 나의 주먹을!”
보행 기갑의 왼팔 드릴이 회전하며 비크의 껍데기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