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카일 라크 오라즌은 죽은 뒤 사도가 되었다.
장례식의 마지막 날 사도가 된 카일이 나타나자 제국의 백성들은 그제야 슬픔을 추스르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카일은 라크락과 만신전 입구에서 대면했다.
사도 카일은 죽었을 때의 나이보다도 젊어보여서, 중년에 이른 라크락보다도 어려보였다. 부지런히 연신 몸을 움직여서 가냘픈 몸은 아니지만 체구 차이도 있어서 멀리서 보면 어른과 아이처럼 보였다.
카일이 머리를 숙였다 들었다.
“뇌룡대제 라크락 님을 뵙습니다.”
“그러지 말자고. 나 있을 때는 그런 예법 없었어.”
“…음, 알겠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구면이지 않나?”
“예.”
연합왕국과의 전쟁 도중 라크락은 모습을 드러낼 일이 잦았고, 전장에서 직접 지휘를 했던 카일과 마주한적이 있었다.
라크락이 야천의 부름을 받은 카일을 이끌며 말했다.
“게다가 야천께서는 잡다한 예법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시지.”
“그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
라크락은 잠시 고민한 뒤 말했다.
“그 부분은 기대 이상일 거야. 야천께서 뭐라고 하시더라도 놀라진 말고. 뭐 그래도, 좋은 분이시니 즐거운 대화가 되겠지.”
“야천께서 뭐라고 하신단 말입니까?”
라크락은 그 질문을 듣고는 잠시 팔짱을 끼고 고개를 기울였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지시지. 예를 들면 일전에 내가 분노하는 자의 수호자 다섯을 쓰러트린 일이 있는데, 기억하나?”
“물론입니다.”
카일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때 라크락 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연합왕국과 비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라크락 님의 활약 덕입니다.”
“공치사는 되었고. 아무튼 그때 야천께서 질문하신 게 이랬지. ‘저것들과 싸워 이길 수 있겠나?'”
“그럴 수 있다 답하셨군요?”
“아니, 못하겠다고 했는데.”
라크락이 덧붙여 말했다.
“그냥 하라고 하시더군. 할 수 있다면서.”
“…저런.”
“그리고 실제로 했지.”
라크락은 카일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이 말의 교훈은 간단해.”
“알겠습니다. 야천께서는 저희 스스로보다 저희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시다는 거군요?”
라크락이 의외의 말이었다는듯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아니, 까라면 까야 된다는 말인데.”
“아.”
라크락은 껄껄 웃곤 문을 열면서 조금 벙찐 카일의 등을 떠밀었다.
“좋은 대화가 되길 바라지. 후회하진 않을 거야.”
그 방은 후에 ‘성역’이라고 불리게 되는 공간으로, 그 가운데 야천, 성운이 있었다.
삶의 대부분을 왕으로, 황제로 살아온 카일이었으나 야천의 존재감은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다.
카일은 그것이 야천에게서 비롯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창조물이며 사도며, 신적인 존재들에게는 ‘신성’이라고 할만한 어떤 힘이 존재했고, 그것이 신성 없는 자들에게 어떤 위력을 행사하는 거라는 이론이 카일에게 있었다.
하지만 카일은 성운을 보자 꼭 그렇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삼가 야천 님을 아룁니다.”
이례적으로 긴장한 카일은 성운의 말을 기다렸다.
성운이 말했다.
“그런 예법은 필요 없다. 다음부터는 간략히 인사만 하도록.”
“예, 알겠나이다.”
“그런 말투도.”
“예.”
성운은 턱을 짚었다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가 묘사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겠나?”
“…예?”
성운이 묘사한 것은 컴퓨터였다.
물론 컴퓨터에 대해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계가 필요했다.
카일이 죽을 때는 전기에 대해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으니, 우선은 원시적인 계산기부터 시작해야했다.
0과 1로 부를 수 있을만한 두 가지 상태 변화가 기억되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논리 회로들을 모은다는 것. 그러한 논리 회로들이 일정한 양을 벗어나면 더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 사실은 이 세상 또한 일종의 정보의 편린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것. 어쩌면 그 기계로 세상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 거라는 것.
이야기를 마치자 카일은 한껏 진지해져 있었다.
“아주, 복잡한 기계군요.”
“할 수 있겠나?”
“솔직히 말해 모를 일입니다.”
성운이 가로저었다.
“틀렸다, 카일. 너는 할 수 있다.”
카일은 뒤늦게 라크락의 말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까라면 까야 되는 것이다.
이후의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았다.
카일은 우선 학자들을 모으고, 다른 신들을 만나면서 신들의 기계라는 예의 *컴퓨터*라는 물건에 대해 알아갔다.
가장 크고 가치 있는 도움을 준 것은 단연 속선, 위즈덤이었다.
과거 위즈덤을 상대로 싸웠던 역사가 있기에 카일은 위즈덤이 불편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신들에겐 그런 마음이 일절 없었다.
위즈덤은 카일과 학자 집단을 전적으로 보조하였는데 십 여년이 지나기 전에 원시적인 진공관 컴퓨터를 만들어냈다. 이 컴퓨터는 간단한 방정식에 대한 답을 출력할 수 있었다.
만신전 내부에서 전자기학에 발전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발전에는 어느 정도 지체가 있어, 다시 십 여년이 지난 뒤에야 전자 컴퓨터가 나타났다. 플레이어들이 컴퓨터의 실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그것에 도달해내가는 과정에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속도가 붙었다.
최초의 전자 컴퓨터가 1초에 더하기와 뺄셈을 세 번 할 수 있었는데, 그 다음해에는 1초에 60회에 이르는 계산이 가능했다. 여러 개의 팀이 나뉘어 다양한 버전의 컴퓨터를 제작했고 목표와 방향이 분명해지고 보다 정밀한 기술 발전이 이어졌다.
컴퓨터의 크기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이것을 제작하는데 꽤 많은 신앙이 소모되었다.
한 번은 장완을 비롯한 플레이어들이 이 모든 것이 쓸모가 없지 않느냐는 반박을 해왔고 성운도 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었다. 연합왕국과 큰 전투가 한 번 있었는데, 신앙의 총량이 부족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는데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 적극적으로 반론을 펼친 것이, 처음에는 이 계획에 반대했던 위즈덤이었다.
현대만큼은 아니지만 만족할만한 연산량을 보였던 컴퓨터는 신앙 소모의 양을 줄이기 위해 축소되는 방향으로 발전되기 시작했는데 이쯤해서 발전의 속도가 다시 늦어졌다.
지구의 현대 컴퓨터는 다양한 과학의 부산물이었다. 전자기학은 물론이고 다양한 반도체 기술과 양자역학까지 영향을 받는데, 만신전의 학자들이라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과학의 발전은 엘리트 집단만으로 성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만족할 정도는 아니라한들, 긴 시간이 지나 카일은 성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아직 모를 일입니다만, 야천께서 요구하셨던 그것의 발치에는 닿은듯 합니다.”
카일이 만들어낸 그것은 제법 현대의 컴퓨터에 가까웠다.
위즈덤은 학자들과 함께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창안했지만, 자신이 사용했던 것을 닮아 있기도 했다. 학자들은 위즈덤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신성한 언어로 불렀다.
이것은 그 어떤 컴퓨터보다도 빠르다 할만했다.
그도 그럴것이, 자그마한 상자 안에 담긴 연산 장치는 거대한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열 방출을 위해 나뉘어져 있을뿐 이것은 거대한 하나의 컴퓨터로, 공간의 이름과 같은 ‘성역’이라고 불렸다.
성역에는 당장은 하나의 소프트웨어만 탑재되어 있었다.
향후 성역과 같은 컴퓨터가 여럿 생길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단지 이 기능만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바꾸기 위해선 학자들의 노력이 더 필요했다.
성역에 탑재된 소프트웨어 이름은 ‘로스트 월드 2.0’였다.
이 소프트웨어애는 성운이 기대했던 실재하는 세상과 같은 요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보단, 로스트 월드 2.0은 지구의 로스트 월드와 거의 판박이였다.
플레이어들은 로스트 월드의 요소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이 세계에 들어와 달라진 여러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제4 대륙과 마신들, 낯선 종족들, 그리고 이번에서야 발견된 몇 가지 고유영역들이 추가 되었다.
그리고 로스트 월드 2.0은 원작에서 지원되지 않던 기능도 있었다.
하나의 세계와 시점을 세팅하고, 그 세팅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다.
이 기능은 로스트 월드 2.0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능이었고, 가장 공이 많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했다.
로스트 월드 2.0은 그러한 시뮬레이션을 최고 12만 개까지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성운은 카일이 그 시뮬레이션들이 ‘발치에는 닿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현재의 세계를 반영해서 시뮬레이션을 돌릴 경우, 가장 높은 일치율을 보이는 미래가 실제로 일어났다.
1회 시뮬레이션만으로 80%가 넘었고, 시뮬레이션 횟수를 보다 늘릴 경우 99%에 가까워졌다.
만신전은 이제 정말로 예지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지.’
하지만 이 막대한 연산에는 그만한 신앙이 소모되었다.
컴퓨터 연산에 필요한 전기를 대기 위해 1회 시뮬레이션만으로 신앙이 퍼센트 단위로 날아가버렸기 때문에, 위즈덤은 전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 컴퓨터의 구조를 대신할 수 없는지 연구하게 되었다.
물론 더 나은 방법은 자체적인 발전소를 만드는 것이지만 만신전의 연구집단이 성역에 매달려 있었으므로 그에 대해선 성과가 쉽게 나지 않았다. 게다가 어떤 특정 자원들은 더 많은 신앙을 소비하기 때문에 발전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성역의 존재는 만신전이 헤게모니아로부터 승리를 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꽤 많은 선택들이 성역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디에서 혁명이 시작될 것인지, 전기의 발명자가 누구인지, 헤게모니아의 전략이 무엇인지, 헤게모니아가 어떤 전력으로 라스다실에 올 것인지 따위가 발견되거나 재확인 되었다.
겉보기의 만신전은 분노하는 자에 대항하는 것만으로 급급해보였지만 그 내부는 보다 안정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성운의 명령에 의해 대규모 전력을 소모한 성역은 헤게모니아가 어느 몸에 강신할 것인지를 찾아내었다.
불과 수 분 전에.
만신전의 두 번째 사도 카일 라크 오라즌은, 자신의 명성을 이어받은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하늘의 뜻을 이루는 자: 직접 지휘하는 것에 한해, 현재의 신성 레벨과 같은 신성이 깃듭니다.」
그리고 이동성의 포탄은 카일의 지휘 아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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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헤게모니아는 이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없었다.
‘…포탄에 신성이?’
신성으로 인해 가속화된 헤게모니아의 사고 능력이라고 해도, 성운과 만신전이 벌인 일은 너무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했다.
강신의 위치를 미리 알아차리고 그것을 신성이 담긴 포탄으로 공격한다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해보이기만 하는 사실.
그럼에도 헤게모니아는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헤게모니아는 만신전의 성역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모습을 드물게만 드러내는 두 번째 사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언제나 경계했다.
만신전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신앙 보다도 적은 신앙을 쓸 때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믿었다.
만신전의 움직임에는 어떤 공백이 존재했다. 헤게모니아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 공백이… 이거였나?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알아차렸지만, 대응할 수는 없었다.
이동성의 주포에서 쏘아진 탄환은 오크=헤게모니아의 몸을 그대로 분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