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라민 솔로스트 무엘은 머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포성을 들었다.
미세하지만 땅이 흔들린 것 같은 충격이었다.
“뭐가 떨어진 거야?”
옆에 있던 고르고타 팔루가 권총을 연달아 쏜 뒤 엄폐물 뒤로 숨으며 말했다.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요.”
라민과 고르고타, 그리고 오웬은 라스다실 폐허 기지 군인들과 함께 후방에서 닥쳐온 송곳니 부대를 막아내고 있었다.
과거 문명의 잔재인 백색의 석재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진 이곳에는 총탄으로부터 엄폐하기 좋은 자리가 너무 많았다.
덕분에 시간을 지연시키는데는 유리하지만, 반대로 적들이 우회하며 진입하는걸 막기도 어려웠다.
송곳니 부대는 기지를 방어하는 군인의 숫자가 적다는 걸 이용해, 날렵한 신체능력을 살려 최대한 교전 없이 엄폐를 이어가며 접근 중이었다.
기지를 방어하고 있는 군인 대다수가 백병전에 그리 능숙하지 않을 것임을 생각하면 접근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라민이 투덜거렸다.
“도대체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바로 옆에서 오웬이 전쟁통에도 느긋하게 곰방대를 빨았다.
선택받은 자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뭔가 얄미워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라민이 제 스승에게 말했다.
“너무 느긋하신 거 아니에요?”
“아서라, 바쁘면 적들이 죽어준다냐?”
틀린 말이 아니긴 했다.
오웬이 말했다.
“그나저나 라민 너는 약초를 안 태우는 것 같던데.”
“한 번에 힘을 많이 쓰면 어지러워서 약초를 조금만 태워서 그렇지, 태우긴 해요.”
그러면서 라민은 얇은 종이에 말아둔 약초잎을 꺼낸다음 입에 물었다.
손끝의 전깃불이 타오르자 라민이 숨을 들이켰다
말아둔 약초잎이 끝부터 타들어갔다.
“오, 좋은 방법이군.”
“스승님 방법이 너무 구식이죠.”
탄창을 비운 고르고타가 재장잔하면서 다시 엄폐했다.
고르고타가 두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두 분은 한가하십니까?”
“아니, 스승님이…”
“별로 좋지 않은 징조를 봤습니다.”
“징조요?”
고르고타가 말했다.
“송곳니 놈들 사이로 흰 털을 가진 늑대인간이 있었습니다.”
“설마 아르에가 롭?”
“예. 운이 나쁘게 또 보게 되는군요.”
“아니.”
오웬이 모퉁이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시야를 확보하며 말했다.
“운이 나쁜 건 저놈이지.”
오웬이 검을 꺼내들며 말했다.
“부대 지휘관에게 말해두는 게 좋겠군. 가까이 접근하면 내가 저놈과 대적하지.”
“스승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르신?”
적은 사도다.
검으로 총칼을 튕겨낼 정도의 기이한 수준의 검술을 가진 라민도 사도를 대적하진 못했다.
오웬이 말했다.
“내 아직 야천의 뜻 안에 있음을 증명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 이건 하나의 기회인 셈이지.”
고르고타는 복잡한 표정으로 오웬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저와 라민 씨는 다른 부대에 지원을 해야겠습니다.”
“저희가 안 돕고요?”
“지원군이 오지 않는 이상 여기 부대만으로는 현지 부대를 막기 어려울 겁니다. 게다가 저나 다친 라민 씨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오웬이 담뱃재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도록 하지.”
라민과 고르고타가 떠난 뒤 오웬은 활을 집어들었다.
모퉁이 너머를 바라보자 제국군의 화망을 피해 재빨리 엄폐물에 숨는 송곳니 요원들을 볼 수 있었다.
‘저 돌더미 뒤에 숨어 있던가.’
오웬의 생각에 총은 대단히 훌륭한 무기였다.
갓난아이에게 쥐어줘도 백전노장의 전사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백전노장의 전사가 쥐더라도 탄환에 정해진 화약량 이상의 에너지를 만들어내진 못한다.
총기에 능숙해진다는 더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지, 총기 그 자체로 대단한 기교를 부리긴 힘들다.
오웬은 화살 하나를 뽑아 시위에 먹였다.
‘게다가 너무 직선적이야.’
오웬이 화살을 가볍게 비틀면서 시위를 놓자, 곧게 뻗어나가는 것 같았던 화살은 어느 순간부터 휘어지더니 보이지 않던 모퉁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총성 사이로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따위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모퉁이 너머에서 송곳니 요원 하나가 쓰러지며 팔을 내뻗었다.
오웬은 그걸 확인하고 다음 화살을 먹였다.
‘우선은 하나.‘
─┼
“헤게모니아는?”
위즈덤의 질문에 룬다가 답했다.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강신을 하지 않고 있어.”
그에 더해 크람푸스가 말했다.
“어, 성역에서 예측한 결과와 같아. 성역은 이렇게 타격을 줬을 경우엔 헤게모니아가 다시 강신을 시도하지 못할 거라고 했어.”
“헤게모니아의 피해는 어느 정도지?”
엘다르가 답했다.
“우선 레벨 다운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성역의 예측 결과로는 31레벨에서 최대 28레벨까지 떨어졌을지도 모르고, 비축해둔 신앙도 본래 신앙 대비 30% 잃었을 것으로 보고 있사옵니다.”
성운은 장담했지만 위즈덤으로서는 혹시나 했던 헤게모니아의 대영역에 대한 도전이 완전히 깨졌다.
단시간 내에 헤게모니아가 대영역에 도전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물론 헤게모니아의 힘이 급락했다고 보긴 힘들다.
사도의 죽음은 헤게모니아에게 타격을 줄 수 있지만, 헤게모니아에 대한 타격은 사도들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사도는 언제나 별개의 신앙 자원을 얻고 별개의 신성 레벨을 얻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많이 유리해진 셈이군.”
그렇게 말한 것은 임춘식이었다.
“하지만 형님, 큰형님 말로는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건 나도 안다 이놈아.”
임춘식은 솔롱고스의 말에 투덜거렸다.
“하지만 어, 저 전쟁광이 이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게다가 심적으로 많이 조급해졌겠지. 왜냐하면 괜히 강신을 하면서 기교를 부리지 않고 그냥 같은 신앙의 양으로 창조물을 쏟아붓기만 했어도 지금 보단 나았을테니까.”
물론 그랬다하더라도 제국측은 대책을 세워뒀으니 어찌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헤게모니아에게 있어 문제는 전략에 소비될 수 있었던 신앙 30%를 잃어버린 것에 있었다.
그럼에도 총량 자체는 헤게모니아에게 유리하지만, 애초에 전체 전력상 제국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고 전술적 승리를 많이 가져왔기 때문에 전체적인 판도는 우세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 많이 유리해졌군.”
그래도 위즈덤은 서둘러 승리를 자신하진 않았다.
처음에는 헤게모니아가 애써 모아둔 둑을 터트렸고, 물살이 쏟아졌지만 잘 갈무리를 해냈다.
‘그래도 헤게모니아는 위험하다.’
애초에 로스트 월드라는 게임도, 아니, 위즈덤이 보았던 세계의 역사도 모든 것이 우세했다가도 자그마한 실수와 작은 실패로 판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 때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네뷸라가 잠시나마 자리를 비웠다. 네뷸라가 해낼 수 있는 판단을 해야한다.’
위즈덤이 질문했다.
“아직 네뷸라가 요구한 9%까진 신앙치가 남았는데, 성역에서 우리가 보낸 질문을 답해왔나?”
마치 위즈덤의 말에 답변을 보내듯, 알림창이 떠올랐다.
카일이 보내온 것이었다.
전장의 곳곳을 내려다보던 만신전의 플레이어들도 알림에 시선을 보냈다.
「카일 라크 오라즌: 만신전 회의의 질문 ‘분노하는 자의 다음 행보’에 대한 성역의 답 →」
「카일 라크 오라즌: 현신.」
마지막 한 단어를 확인하는 순간 위즈덤이 띄워놓은 중앙 화면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전장 한가운데를 비춘 자리였으므로, 저만한 불길이 치솟는 것은,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플레이어 중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로스트 월드’의 게임 후반부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신성 레벨이 20후반에 이르는 플레이어가 현신 스킬을 사용할 경우, 그 등장만으로 천재지변이 일어난다.
AR1026이 말했다.
“보여요. 헤게모니아의 현신입니다.“
─┼
전장의 군인들은 물론이고, 서로에게 싸움을 이어가던 사도들도 찰나이나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을 거대한 폭음이 있었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솟아올라 비행선들이 있는 저 창공까지 불태우는 거대한 불기둥은, 라스다실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다.
-두려워하라.
탁한 음성이 전장 모두에게 들려왔다.
불길에 휩싸였던 이들은 제국과 연합왕국의 군인을 가리지 않고 그저 한줌의 잿더미가 되어 팽창하는 대기압에 휘말려 하늘로 끌려올라갔다.
-죄 있는 자는 모두 고개를 숙여라.
불길 속에서 먼저 나타난 것은 검은 후드를 눌러 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손에는 분노하는 자의 꺼지지 않는 증오를 상징하는 화로를, 한 손에는 잊지 않는 응징을 뜻하는 저마다의 무기를 쥐었다.
죽은 뒤에도 분노하는 자를 따르는 붉은 땅의 용사들이었다.
사도에 이르진 못했지만, 저마다의 전투에서 업적을 남긴 이들은 죽은 뒤에도 분노하는 자의 곁에서 영원한 싸움을 약속했다.
용사 중 하나가 행진에서 빠져나와 외쳤다.
-용기라 불렸던 그 하찮은 허상의 두께를 깨달으라.
그 말과 함께 “투웅”하고 종소리가 들려왔다.
줄을 이으며 계속해서 걸어나오는 용사들 가운데 황금 수레가 끌려나왔다.
분노하는 자의 시중들이 그 수레를 직접 끌면서 분노하는 자가 이룬 업적들을 형상화한 황금 동상들을 하나씩 드러냈다. 세계의 역사가 담긴 이 위대한 행진 수레 위에는 소리꾼들이 올라타 분노하는 자의 업적을 칭송했다.
-그분이 도달하는 발길마다 대지가 무너지고…
하늘로는 연합왕국이 자랑하는 용기사들이 열 여섯이 한 조가 되어 박제된 드래곤들을 사슬로 묶어 끌어올렸다.
모두 분노하는 자에게 죽은 드래곤들로 그 위대한 불멸자들도 신의 힘 앞에서 가당찮은 것에 불과함을 증명했다.
-그분이 남긴 발자국마다 잉걸불이 타오르니…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말발굽이었다.
어깨 높이만 하더라도 1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흑마였다.
풍성한 목갈기와 발굽을 덮은 털 때문에 이 흑마의 실루엣은 불분명해보였고 눈의 위치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연합왕국은 물론이고 제국에서도 잘 없었다.
이 흑마는 존재만으로 불운을 가져다주는 신수 가이트래시였고 , 동시에 분노하는 자의 네 번째 사도로 ‘카자하’라 불렸다.
카자하가 말발굽을 옮기는 순간 둔중한 진동이 땅을 울렸다.
-너희의 죽음이 도래했노라.
불길이 찬찬히 사그라들며 카자하 위에 올라탄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카자하의 덩치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거인이었다.
용광로 안에서 막 꺼내 입은 것 같이 붉게 달아오른 판금 갑옷을 온 몸에 두른 기사로, 머리에는 하늘로 치솟은 뿔투구를 썼고 투구 안쪽으로는 그야말로 겁화가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하는 자였다.
분노하는 자는 자신의 ‘말’을 사도로 삼고 있었다.
카자하가 땅을 울리며 걸어가고, 분노하는 자는 높은 자리에서 전장의 상황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카자하의 고삐를 힘껏 잡아당겼다.
카자하가 두 앞발을 높게 들어올리곤 허공을 연달아 걷어찼다.
분노하는 자가 검을 뽑아 힘껏 내질렀다.
-박살내라!
분노하는 자의 목소리에 광란에 휩쌓인 연합왕국 군대가 일시에 제국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