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등 뒤의 벼락 소리에도 라민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스승인 오웬이 일을 잘 해내고 있겠거니 믿을 뿐이다.
갈림길이 나오자 라민은 고르고타에게 말했다.
“저는 이쪽으로 갈게요.”
대답도 없이 고르고타는 라민이 택하지 않은 길로 달려갔다.
잠깐 사이 후방의 상황은 급변했다.
송곳니들이 꽤 많이 근접해왔을 때, 그야말로 격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송곳니들의 생각은 그 반대였다.
큰 피해 없이 라스다실 폐허 가까이 접근하는데 성공했으므로,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전력 질주로 라스다실 폐허로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갑작스런 돌진에도 제국의 방어 부대가 대응 사격을 통해 송곳니의 머릿수를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강화된 신체능력을 가진 이들은 방어선을 돌파하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탁월한 선택이야.’
그대로 방어선과 접전을 벌였다면 오히려 제국의 방어 부대와 싸워 이길 수도 있지만, 후에 도착할지도 모르는 지원군과도 싸우게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바엔 목적을 위해 단순하게 내달리자는 결론을 낸 것이다.
게다가 이 라스다실 폐허에는 무수한 엄폐물이 있고, 유적과 유적 사이로 뛰어넘어야할 장애물도 많았다.
일반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군인들이라도 송곳니를 총탄으로 거꾸러트릴 수는 있지만, 뒤쫓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걸로 열 둘.’
라민은 등을 보인 송곳니 하나를 추적해서 그대로 칼로 베어 죽였다.
바로 앞에 내달리던 요원이 깜짝 놀라며 몸을 틀었지만, 라민은 그대로 검을 내던졌다.
‘열 셋.’
라민은 칼날이 미간에 박히며 쓰러지던 송곳니 요원의 머리에서 다시 검을 회수하면서 멈추지 않고 달렸다.
‘더 따라잡을 수 있어. 한둘이 가진 폭약으로는 라스다실 폐허를 부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남은 적이 한둘은 아니었다.
많은 수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어두워지는 저녁놀 아래로 내달리는 송곳니 요원들이 꽤 많이 보였다.
달리면서 총을 겨눠보지만 잠깐 보였던 그림자들은 재빠르게 다음 엄폐물에 가려졌다.
허공에 총을 쏴봤자 괜한 경계심을 줄 수 있으므로 라민은 다시 달려갔다.
‘그래도 다행이야.’
라민은 천공성 지도를 외울 여력은 없었지만, 라스다실 폐허의 지도는 외워두었다.
첩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도로는 찾아낼 수 없는 지름길이 존재했다.
‘이 통로를 지나면 우회할 수 있어.’
라민은 반쯤 무너진 지하도로 뛰어들어갔고, 뱀파이어의 밝은 밤눈으로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라민의 목표는 저 송곳니들을 앞질러 선두에서부터 하나씩 암살해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순간, 라민은 지하도 앞을 지나치려는 송곳니 요원 하나를 발견했다.
라민은 기도비닉을 포기하고 속도를 높였고, 때문에 송곳니는 라민을 발견했다.
꿰맨 상처에서 피를 쏟으며 라민이 검을 찔러들었다.
검을 피하던 송곳니 요원의 비슴하게 쓴 가면이 떨어졌다.
가면 아래의 검은 비늘의 리자드맨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이런 악연이 있나?”
“그건 내가 할말인데.”
라민은 낯익은 이빨 요원이었던 델을 마주했다.
검을 휘두르기도, 소총을 겨누기도 비좁은 통로, 단도를 뽑아든
델이 라민을 향해 휘두르고, 라민 또한 단도를 역수로 뽑으며 델의 단도를 막아냈다.
하지만 라민은 델의 의도를 뒤늦게 읽었다.
“널 데려간다면, 내 목숨이 아깝지 않지.”
라민은 델의 다른 손에 핀이 뽑힌 수류탄이 쥐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그때였다.
밤하늘이 내려오고 있었다.
─┼
하늘이 가깝다는 표현이 있다.
머리 위는 모두 하늘이니 이것은 이상한 말이다.
하지만 라스다실 폐허의 모든 존재들은 밤하늘이 손에 닿을 것처럼 낮아졌다고 느꼈다.
별자리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별의 반짝임들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순차적으로 반짝였고, 별자리를 읽을 줄 아는 이들은 그 반짝임이 가진 함의를 읽어내고 전율을 느꼈다.
-그분이 오신다.
하늘이 말 하고 있었다.
-저 무한한 하늘의 주인이…
밤하늘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밤하늘의 모양을 한 하나의 장막에 불과했다.
장막이 젖혀지자 느닷없이 푸른 날개를 가진 나비 떼가 하늘을 덮었다.
-뼈와 살이 뒤집힌 존재들의 지배자가…
나비 떼가 사라지자 이어 만신전의 편린이 비추어진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탑의 존재는 압도적이다.
탑에는 무수한 탑의 수행자들이 있고 한순간 땅 아래를 내려다본다.
-만신의 우두머리가…
하지만 그것도 한꺼풀 허상에 불과하다.
또다시 젖혀지는 장막 너머로 어둡고 깊은 어둠이 보여진다.
이 세상의 빛으로는 그 일면 밖에 밝힐 수 없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심연의 생물이 희끄무레한 눈으로 이 세상을 들여다본다.
-이제는 잊힌 힘을 다루는 도래자께서…
그 또한 하나의 환상이다.
다시 보여지는 것은 본래의 밤하늘이다.
하지만 저 세상의 편린들을 본 이상 이것은 이제와 같은 밤하늘이 아니다.
저 빛나는 별들 사이의 어둠은 무한한 가능성의 장막이다.
-야천이 온다.
라스다실 폐허 위로, 야천이 떠있었다.
물소의 머리뼈를 뒤집어 쓴 이 존재는 밤하늘 보다도 어두운 장막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성운은 현신체로 눈을 떴다.
‘이런 느낌인가.’
성운으로서도 이 모든 일이 시작된 이후, 현신 스킬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냥 신으로 있을 때와는 감각이 확연히 달랐다.
‘공격을 받을 수 있는데다가, 능력치가 있기 때문인가? 강신 스킬이랑 비슷한 느낌을 받긴 하지만 어색함은 없어.’
하지만 이 생경한 느낌을 즐기고 있을 틈은 없었다.
헤게모니아는 성운이 등장한 순간부터, 자신의 사도이자 말인 카자하를 타고서 전력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성운이 허공에 떠 있긴 하지만 성운과 헤게모니아의 현신체 신장은 대략 10미터로, 어느 정도 비슷하다.
‘크기는 어느 정도 정해진 규칙이나 다름없지.’
로스트 월드는 게임이었고,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최적화된 빌드를 찾아낸다.
발전 방향에도 빌드가 있지만 현신체, 즉 땅 위에서 자신이 직접 조종할 캐릭터를 조성할 때도 마찬가지다.
초보들은 현신체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좋지 않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제 아무리 신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물리적인 법칙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신장이 100미터 정도 되는 현신체는 거의 대부분의 무기로 당해낼 수 없지만, 유지하는데에 불필요하게 많은 신앙을 소모한다.
그렇다고 너무 작은 크기를 지향할 것도 없다.
현신체가 가진 신성을 두른 뛰어난 신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낭비이기 때문이다.
흔히 다양한 스킬을 써서 ‘메이지’라고 불리는 경향의 현신체를 만들 게 아니라면 게임 내의 물리법칙과 괜찮은 효율을 낼 수 있는 크기인 10미터 내외로 정해진다.
‘신체만 그런 것도 아니지.’
성운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제는 허공을 달려오는 헤게모니아의 돌진을 보았다.
수 백미터의 거리라 멀어보이지만, 카자하가 달릴 때마다 글자 그대로 땅이 접히는 것처럼 수 십 미터를 좁힌다. 눈으로는 쫓을 수가 없다.
‘스킬도 마찬가지지.’
분명 헤게모니아가 닥쳐오기까지 백여 미터가 남았건만, 성운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캉!
날과 날이 부닥쳤을 뿐이다.
하지만 두 날이 부닥친 순간 생겨난 빛의 파동이 땅을 꺼트리고 하늘을 밀어냈다.
어느새 다가온다 믿었던 헤게모니아는 이미 성운을 지나치고서 허공에서 카자하를 달래며 돌아서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속도로 공격해올 것도, 그리고 그것을 막은 것도 두 플레이어는 서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생략 스킬은 항상 OP였지.’
여러가지 소영역의 조합으로 플레이어들이 흔히 스킵, 또는 생략이라고 부르는 스킬을 만들 수 있다.
모든 동작에는 이전의 동작과 이후의 동작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칼을 휘두른다’라면 칼이 휘둘러지기 까지의 동작과 칼을 휘두른 이후 칼을 회수하는 동작이 전후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스킵’은 앞의 동작 또는 뒤의 동작, 아니면 두 동작 모두를 생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헤게모니아는 성운을 공격하기 위해 성운에게 도달하는 과정을 스킵했고, 반격 당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벌리는 순간도 스킵했다.
성운은 다음 공격 기회를 노리는 헤게모니아를 보면서 한 순간의 접촉이 만들어낸 땅과 하늘의 상처를 보았다.
‘공격 스킬은 이제 알겠군. 공간참이었어.’
이 또한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들이 즐겨 쓴 스킬로, 신성 레벨을 무시하고 무조건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성운은 헤게모니아가 신성 레벨이 더 높은 자신을 의식해서 선택한 공격 스킬임을 알았다.
다만 꽤 많은 소영역이 투자되어야 하고 신앙 소모까지 높은, 코스트가 높은 스킬이기 때문에 제한을 걸어야만 쓰기가 편했다.
‘헤게모니아의 제한 조건은 칼날로 벨 때인가.’
칼날로 벨 때만 발동시킬 수 있다는 조건은 꽤 어려운 조건이다.
보통은 제한 횟수 따위를 골라서 눈에 띄자마자 원거리에서 공간참을 박아버리는 선수필승을 선호하니까.
물론 이런 경우 제한 횟수 안에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헤게모니아의 실력이라면야.’
헤게모니아가 중얼거렸다.
-공간참을 막아? 뭘 쓴 거야?
-글쎄, 잘못 휘두른 건 아냐?
-웃기지 마. 칼 휘두르는 걸 봤는데.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건가?
헤게모니아는 신경전을 벌이며 성운을 향해 나선형으로 다가왔다.
성운이 생각했다.
‘세 번째는 방어스킬인 것 같았지만, 확신은 못해. 그리고 네 번째가 있을지 없을지도 가늠해야지.’
다섯 이상, 더 많은 스킬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성운은 헤게모니아를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닦아놓은 최적화 빌드를 무시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다섯 이상의 스킬을 사용하게 되면 보다 약한 스킬로만 구성을 해야한다. 셋 또는 네 개의 스킬이 로스트 월드 플레이어들의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천지를 가르는 몇 번의 공방이 이어졌다.
검이 부닥칠 때마다 하늘이 찢겨나가고, 땅이 무너져 내렸다.
신들의 싸움은 감히 지상의 존재들은 범접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길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던 연합왕국군은 우회로를 찾아야만 했다.
그것은 제국군에게 있어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제국의 사도들은 몸을 추스린 뒤 만신전의 신들이 이끄는대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완전히 무너졌다 생각했던 싸움이 다시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런 한편 사령관으로 자리에 앉은 도르돌은 멀리 누리바라기에서 신들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가능성을 그려야만 하는 이 오우거는 야천의 패배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만 했다.
또 다시 분노하는 자가 모습을 숨겼다.
순간 하늘의 빛이 가득 차더니 누리바라기가 크게 흔들렸다.
오우거인 도르돌 조차도 쓰러질 정도의 격한 움직임이었지만, 도르돌은 곧장 일어났다.
관측병 하나가 외쳤다.
“사령관님!”
“무슨 일이냐?”
“야천께서…!”
공간의 단면이 야천을 스치는듯하더니, 이윽고 푸른 성운이 몸에서 쏟아져나왔다.
누가보아도 그것이 신의 상처임을 알 수 있었다.
─┼
“맞았어!”
그렇게 말하고 크람푸스가 책상을 후려쳤다.
몇 번의 공방 끝에 헤게모니아의 공격이 성운에게 닿았다.
공간참이라고 해도 한 방에 당하진 않겠지만 분명 타격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 네뷸라가 프로게이머였다고? 그게 뭐 어쩌란 거야. 프로게이머라고 해도 무슨 게임을 한건데? 이길 거란 보장이 어딨어?”
하지만 크람푸스의 분개에도 불구하고 위즈덤은 동요가 없었다.
룬다가 옆에서 말했다.
“어, 네뷸라가 프로게이머였다면, 역시 4X게임을 했었겠지?”
탐험, 확장, 개발, 말살.
각 영단어에 X가 들어가는 것에서 따와 4X라고 불리는 게임. 로스트 월드의 장르기도 했다.
그 말에 임춘식이 말했다.
“4X도 프로게이머가 있나?”
“글쎄? 있을수도…?”
“차라리 RTS를 했던 거 아냐?”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
일반적인 시뮬레이션 게임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실시간이라는 점.
순발력과 판단력에 대한 요구는 단순한 로스트 월드가 아닌, 현실이 된 로스트 월드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었다.
AR1026은 위즈덤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위즈덤 씨가 현신체 싸움에서 유리할 거라고 말했으니, MOBA일지도요.”
다중사용자결투장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게임 장르.
능력을 키우고 제한된 스킬로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현신체끼리의 싸움과 닮아 있기도 했다.
하지만 위즈덤은 그런 의문들에 대해서 긍정하지 않았다.
“답이 안 나왔군.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텐데.”
크람푸스가 황당하다는듯 말했다.
“이거 퀴즈였어?”
“답을 말할까?”
“아니, 잠깐. 그렇게 말할거면 잠깐 기다려. …힌트 없어?”
위즈덤이 말했다.
“네뷸라가 본래 로스트 월드에선 거의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잘했고 거의 항상 성공했던 플레이.”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나는 게임 하면서 네뷸라를 본 적도 없다고. 랭크 순위가 다르단 말이야.”
엘다르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영상으로는 유명했잖아요?”
몇몇 유명했던 플레이 영상들이 플레이어들 사이로 오갔다.
실력있는 스트리머들이 네뷸라와 싸웠던 경우가 있었고 특출난 플레이 덕분에 다른 플레이어들도 제법 기억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은 그리 헤매지 않고 답을 찾아냈다.
“그러고보니 채팅 안 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었지.”
“그런데 이번에는 꽤 적극적으로 하셨었죠.”
답이 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크람푸스가 말했다.
“어, 그럼 뭐, 심리전인가?”
“맞아.”
“맞다고 해도 말이야… 심리학 게임 같은 게 있어? 어딘가에 있긴 하겠지만 그런 게임에 프로가 있을리가 있나?”
“있지. 응용심리학에 가까운 게임 장르가.”
“뭔데?”
위즈덤이 말했다.
“대전격투게임.”
─┼
성운의 피가 하늘을 덮었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이걸로 남은 신앙은 7% 정도인가?’
신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이들은 처음엔 성운의 상처에 집중했지만, 이윽고 더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걸 깨달았다.
헤게모니아는 카자하와 함께 땅으로 내려오는가 싶더니, 카자하에서 내렸다.
그제서야 신의 힘으로 목숨을 연명하던 카자하의 목이 땅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헤게모니아가 성운을 올려다보았다.
-…네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