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현신체 성운이 쥐고 있는 단검 손잡이에는, 필멸자들의 물건이라면 존재하지 않을 가시들이 박혀있다. 손가락과 손바닥의 뼈에 간신히 닿지 않을 정도로 예리한 가시들은 이 단검을 하나의 부조리를 상징하는 예술 작품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성운은 이 단검을 한껏 강하게 쥐고 있다.
성운이 이름조차 붙이지 않은 단검임에도 이 단검은 신앙을 소비해 만들어진 무구이므로, 동급의 신성을 가진 성운의 현신체를 어렵지 않게 꿰뚫고 피를 낸다.
성운의 흩어지는 별무리와 같은 체액은 가시 가운데 뚫린 관으로 새어들어간다. 이 관은 손잡이 내부의 보다 넓은 관을 통과했다가, 다시 복잡한 가지 모양으로 이어진 모세관으로 침습한다.
그리고 그 모세관 끝에 닿는 곳은 단검의 칼날 표면이다.
칼날의 표면은 미세한 구멍들이 나있기에 성운이 검을 쥔 순간부터 성운의 피를 한껏 머금고 있으며, 칼날에서 성운의 피가 방울져 떨어지기 전, 정확히는 그 피가 흩어져 밤하늘의 모양으로 되돌아가기 전까지는, 성운의 ‘신체’로 취급된다.
때문에 단검의 칼날이 헤게모니아의 몸에 박혔을 때, 성운은 헤게모니아의 단단한 외갑이 아니라 체내에서 접촉한 것이며,
그렇기에 존재를 깨트리는 소멸의 빛은 헤게모니아의 내부에서 터져나왔다.
-우우우… 웅…!
방향을 모르고 쏟아지던 가느다란 광선들이 출구를 찾는듯 헤게모니아의 몸을 관통하다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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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건가?”
룬다의 말에 위즈덤이 답했다.
“아니. 파사의 빛 자체가 강력한 공격이긴 하지만, 헤게모니아는 신앙이 많이 남았을 거다.”
신성 레벨이 20 언저리를 맴돌 때와는 차원이 양과 질 모두 차이가 컸다.
“그럼 얼마나…?”
“같은 공격을 세 번은 더 꽂아넣어야 할 거 같군. 하지만 항상 이번처럼 완벽하게 공격할 수는 없을테니, 어느 정도 빗겨날 때마다 그 횟수가 늘어나겠지.”
엘다르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완전 압도적이네요. 세 번이 아니라 서른 번이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잘은 모르겠지만 스킬도 상성상 유리한 것 같고.”
위즈덤은 룬다의 관찰에 동의했다.
미래시가 성운 정도로 순발력과 판단력이 좋지 않은 이상 큰 의미가 없는 스킬이라고 해도, 스킵에 대응할 수 있는 괜찮은 카운터 스킬이라고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걱정스러워지는군.”
“…이제와서?”
룬다가 되물었다.
모두가 걱정하고 있을 때는 담담했던 위즈덤이지만,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이 확인되자 태도가 바뀐 것이다.
위즈덤이 말했다.
“헤게모니아는 아직 스킬을 모두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그건 네뷸라도 마찬가지잖아.”
“하지만 이 싸움에서의 위험부담은 네뷸라도 적지 않지. 헤게모니아가 여기까지 밀고올 줄은 몰랐으니까. 여기서 네뷸라의 현신체가 죽고 라스다실 폐허가 무너지게 되면, 수도를 잃은 연합왕국과 같은 위치에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합왕국은 수도를 잃었다지만 대부분의 기관을 이전한 상태였다. 수도가 가지는 상징적인 가치를 감안하더라도 나름의 정리를 해둔 것이다.
반면 성운의 현신체가 죽을 경우 그대로 패배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레벨이 많이 떨어진 헤게모니아 보다도 만신전의 레벨이 떨어질 것을 감안해야 했다. 점점 더 어려운 싸움이 되는 것이다.
크람푸스가 급하게 일어나며 화면을 가리켰다.
“저건…!”
파사의 빛이 폭발한 다음 순간, 만신전의 플레이어들은 헤게모니아가 떨어질 자리를 그려냈다. 파사의 빛이 커다란 반발력을 만들어냈으니, 헤게모니아가 바닥으로 내뱅개쳐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폭발 다음에 헤게모니아의 마그마로 이루어진 피가 폐허 위로 쏟아져 내렸고, 고대의 건축물들을 뒤덮었으며, 시커먼 연기가 솟아 하늘을 흐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헤게모니아는 없었다.
헤게모니아가 나타난 곳은 성운의 측면이었다.
“…어떻게?”
룬다가 의아해하자 임춘식이 말했다.
“후딜을 스킵했군.”
“후딜?”
위즈덤이 말했다.
“자신이 맞고 바닥에 쳐박혔다가 다시 일어나서 성운에게 달려드는 과정을 스킵으로 지웠다는 말이다.”
아주 짧은 틈이었다.
성운 또한 헤게모니아가 밀려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인지 별다른 방어 동작을 해내지 못한 상태였다.
헤게모니아가 바로 그 틈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지난 두 번의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먹을 날렸고, 이번에는 성공했다.
주먹에 맞은 성운은 무언가에 맞았다기 보다는 쏘아지듯 튕겨져나갔고, 곧장 라스다실 폐허의 가장자리에 처박혔다.
헤게모니아는 성운과의 거리를 ‘스킵’하며 성운이 떨어진 그 자리로 칼날을 내리꽂았다.
-…삐이이이익!
얇고 가느다란 고성으로 시작된 파열음이 점점 커져갔다.
헤게모니아의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서 공간이 비틀리며 대기가 비명을 질러댔다.
이윽고 대지 일부가 무너져내리며 굉음이 모든 것을 덮었다.
성운을 이루고 있던 피가, 밤하늘의 모양이 땅 속에서 비집고 솟아, 헤게모니아의 공격이 명중했음이 드러났다.
만신전에서 몇몇 짧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헤게모니아는 고개를 들었다.
-역시.
거미줄처럼 짜갈라진 대지에, 그 틈새로 휘발되는 성운의 피가 솟아오르며 별무리를 자아내고 있었다.
서 있던 헤게모니아는 하늘의 가운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성운이 고고히 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만신전에서 이번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위즈덤이 말했다.
“‘허물벗기’군.”
일반적으로 현신체에서 세 개의 스킬 셋을 구성한다면 공격을 위한 스킬이 하나, 방어를 위한 스킬이 하나 그리고 나머자 하나는 이동을 위한 스킬로 구성한다.
허물벗기는 이동 스킬이긴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방어, 회피 스킬에 더 가까운 편이었다.
비슷한 스킬로는 바꿔치기와 블링크가 존재했고 위상 좌표를 이동한다는 점에서 모두 유사한 스킬이었다. 기초적인 이동기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본래의 자신이었던 허물, 즉 자신의 복제품을 자리에 남기고 이동한다는 점이었다.
임춘식이 의아하게 여겼다.
“왜 블링크가 아니고 허물벗기지?”
“정확히는 모르겠군. 하지만 블링크보다 허물벗기의 코스트가 더 낮은데다가, 조건을 걸어서 코스트를 최소한도로 만든 거 같은데.”
“조건이라니?”
위즈덤은 성운의 현신체를 가리켰다.
성운의 현신체 위로는 아직도 타오르는듯한 주먹 자국이 남아있었다.
앞서 날렸던 헤게모니아의 공격 흔적이었다.
“첫 번째 공격을 받았던 흔적이 있군. 그러니 스킬은 두 번째 공간참을 받아낼 때 사용 되었지. 즉… 네뷸라는 자신이 ‘사망할 때’ 스킬이 사용되도록 한 거다.”
임춘식이 고개를 주억였다.
“위기탈출용이란 거군.”
공간참을 한 번 더 받는다고 성운의 현신체가 그대로 소멸하진 않는다.
하지만 치명적인 공격을 받으면 복구를 해야하고, 그 신체를 복구하는데는 신앙 자원이 소모된다.
그러니 얼마 남지 않은 신앙 자원이 모두 신체 복구에 소모되지 않도록, 치명적인 공격을 받을 경우에 허물을 벗도록 한 것이다.
헤게모니아는 이미 모두 알고 있는듯했다.
그리곤 자신의 바위, 흙, 늪과 같이 대지와 관련한 소영역을 일으켜, 성운에게 이르는 길을 뻗어냈다.
무너졌던 대지가 분노하는 자의 부름에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길이 중간쯤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그 오르막을 성운을 향해 달려든 헤게모니아가 모든 과정을 날려버리고, 성운의 앞에서 검을 내려쳤다.
성운은 그 검을 가볍게 빗겨냈다.
하지만 헤게모니아는 이전과 같이 멀리까지 도망가지 않았다.
자신이 착지하는 허공에, 자신의 소영역을 통해 만들어낸 대지를 융기시켜 내딛은 다음, 강하게 도움닫기 하면서 성운에게 달려들었다.
성운은 빈번하게 막아냈으나 헤게모니아에게 제대로 된 반격을 넣지는 못했다.
헤게모니아의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마치 새로운 바위 산들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드디어 보여. 뭘 보고 있었는지 알겠어.
성운은 답하지 않았다.
헤게모니아의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헤게모니아는 자신의 패턴이 읽힌다는 걸 이해했고, 때문에 새로운 변칙적인 공격을 더한 것이다.
‘도중에 성장한 건가? 어딘가의 주인공이기라도 한 거냐.’
게다가 하나하나의 공격을 가볍게 가져가면서 아까처럼 마구잡이로 공간참을 휘두르지 않은 결과, 보다 장기전을 감안하고 있었다.
성운 또한 그 변수에 변수를 더했다.
단순히 검으로 맞서는 것을 넘어 소영역을 끌어와 싸움에 더했다.
거리를 벌린 순간, 성운의 몸 앞뒤에서 둥근 동심원과 그 원의 둘레를 가득 채우는 복잡한 글자와 문양이 빛났다.
-…마법!
현신체의 압도적인 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잠깐의 방해 정도는 가능하다.
백색의 원통형 기둥들이 헤게모니아를 향해 내리꽂히고, 헤게모니아는 그 기둥들을 몸으로 돌파했다.
성운이 그 모습을 확인했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고밀도의 원통형 기둥들은 헤게모니아에 닿기도 전에 지글거리며 타오르더니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방어 스킬이군. 저 모습만으론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특정하기가 힘든데.’
하지만 성운의 마법들이 헤게모니아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 찰나나 다름 없는 지연 덕분에, 헤게모니아의 검격을 받고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우웅!
다시금 땅이 치솟고 마법이 쏟아졌다.
용암이 흘러내리고 별빛이 밤하늘을 덧칠했다.
빈 껍데기만 남은 성운의 허물들이 나뒹굴고, 헤게모니아가 그 물소 머리뼈를 발로 깨부수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던 위즈덤이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이상하다니?”
“네뷸라가 이미 가진 것으로 확인된 두 스킬은 별로 위기탈출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위기탈출은 일반적으로 메이지용이지.”
로스트 월드의 플레이어들은 피해를 받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을 때 그 순간을 피하는 스킬을 사용하게 되도록 설정하는 것을 ‘위기탈출’이라고 부를 정도로 흔한 스킬셋이었다.
현신체의 죽음을 피할 수 있는데다 현신체의 특성상 신앙이 남아있다면 언제든 사용되니 좋은 스킬이지만, 문제는 이런 스킬의 사용이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헤게모니아의 스킵을 이용한 인지조차 할 수 없는 빠르기의 공격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었어. ‘시간 장벽’ 같은 방어 스킬도 괜찮고 ‘몰아의 권’과 같은 공격스킬로 잽을 넣어줄 수도 있어. 스킬 연계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애초에 메이지 계열이 네뷸라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이기고 있잖아. 마법도 쓰고 있으니 사실 하이브리드인 거 아냐?”
“아니다.”
룬다가 멀뚱히 쳐다보자 위즈덤이 덧붙여 말했다.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기고 있다고만 볼 수는 없다.”
위즈덤이 헤게모니아를 바라보았다.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건 네뷸라만이 아니야. 성운의 스킬이 셋이나 확인 되었으니 헤게모니아도 움직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속단할 수 없지.”
만신전의 플레이어들은 성운이 해낸 플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운이 소환해낸 고밀도의 백색 석주들, 그리고 그 석주들은 하나의 원형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그 석주들에는 고대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마법사들만이 눈치챌 수 있을 그 언어들은 모두 마법을 위한 하나의 의식이자,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헤게모니아는 그 마법진 가운데 섰을 때야 마법의 정체를 깨달았다.
-‘유성우’… 라고?
헤게모니아는 고개를 들었다.
이미 하늘에는 몇 개의 동심원을 그리는 거대한 마법진들이 형성 되어있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마법진은 보호막이다.
일명 ‘메테오’라고 불리는 이 마법의 피해량을 ‘줄이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이 보호막을 해제하고 이 마법을 쓸 수는 없는데, 이것은 원리적으로 인과적 제약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메테오의 피해는 이 첫 번째 마법진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다.
두 번째 마법진의 역할은 감속진으로, 이 또한 첫 번째와 같이 피해량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인과율은 이 마법으로 인해 일어나는 필요 이상의 피해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마법진 또한 이 마법으로 인한 피해가 하늘로 솟구치지 않도록 막아내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세 개의 마법진은 마법으로 인한 피해를 강화하는 게 아니고, 약화시킨다.
네 번째 마법진은 바로 위의 다섯 번째 마법진을 보조하는 역할로, 온갖 복잡한 우주 좌표를 연산하고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다섯 번째, 마지막 마법진은 차원문이다.
이 마법진이 연결 된 장소는 우주의 개념으로는 그리 멀지 않다.
이 문은 로스트 월드의 같은 항성계 내부에 있는 고리형 행성의 공전 궤도로 이어져있다.
본래 대마법사 정도 되는 인물이 수 십일에 거쳐 이루어야 하는 대기적.
하지만 성운은 마법의 신이었다.
행성의 고리를 이루고 있던 얼음 암석들이, 차원문을 지나 행성의 대기를 찢으며 수직 낙하했다.
-…!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우주의 폭우가 국지적으로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