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초속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 얼음 암석들이 대기의 여러 권역을 무시하고 비처럼 쏟아진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덩어리니까, 기상학적으론 우박이라고 부를 수도 있나?’
성운은 잠시 시야를 멀리 던졌다.
라스다실 폐허 중앙부까지는 거리가 다소 있는데다, 유성우 주문을 막아서는 몇 겹의 결계 마법진 덕분에 외부에는 별다른 충격이 없다.
‘다행히 라스다실 폐허 중앙부까지 피해가 미친 것 같지는 않지만…’
성운은 유성우가 만들어낸 지형의 변화를 확인했다.
불과 수 초 정도에 이르는 시간이지만, 얼음 암석들이 후려친 대기 아래는 흙먼지와 증기로 자욱했다.
유성우 주문을 막아내는 몇 겹의 마법진이 이제서야 풀려나고 있지만 당분간 이 풍경이 유지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성운의 시각을 막지는 못했다.
현신체의 시야는 인간의 가시광을 넘어서 적외선과 자외선까지 관측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보정되어 성운에게 보였다. 투시되는 시각에서 보여지는 풍경은, 헤게모니아가 있던 지반 전체가 약 1백미터 정도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 공격이면 현신체에 타격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성운은 가볍게 혀를 찼다.
성운의 시야에는 헤게모니아가 미동도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선은 성운이 마법의 신이라고 해도 마법 자체에는 신성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헤게모니아의 방어 스킬 덕분인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정도면 어느 정도 좁혀지는군.’
때문에 성운은, 한줄기 극광과 함께 저 구덩이에서 뛰쳐 올라온 헤게모니아가 나타났을 때, 전혀 놀라지 않았다.
‘공간참으로 결계를 베고, 스킵으로 거리를 좁히고…’
성운의 손에서 거대한 백색 석주가 쏘아진다.
단순히 질량을 쏘아내는 것 같지만 이 소환된 석주의 외면에는 일반적인 마법사들이라면 주의를 기울여 의식을 올리며 세심하게 깎아내야만 하는 연산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헤게모니아와 접촉하는 순간 석주는 그대로 ‘분열’ 되면서 그 분열을 통해 만들어지는 빛을 사방에 투사했다.
일반적인 분열 마법은 대상을 글자 그대로 먼지로 만들어버리지만, 그런 마법은 성운이 보기에 비효율적이었다. 게다가 신성력으로 육체를 유지하는 현신체에게는, 그런 순수한 마법 술식을 적용하는 주문 따위가 통할리 없다.
그대신 성운은 핵분열에 대해 알고 있었다.
분열 마법으로 파괴해야할 대상을 분열하려고 들면 지나치게 많은 인과율이 소모된다. 신성과 마찬가지로 마법 또한 언제나 인과율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발전했다.
성운은 분열 마법을 상대가 아닌 무생물인 백색 석주에 걸어, 인과율을 위해서 존재하는 갖가지 제약들을 모두 해제하여 핵분열이 만들어내는 강대한 폭발을 그대로 유지했다.
실제 백색 석주 내부에 인과가 허락하는 한도 때문에 분열을 일으킬 우라늄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도 지엽적인 핵공격이 가능했다.
최초의 원자핵이 마법에 의해 붕괴되고, 융합에 의해 만들어졌던 에너지가 빛과 전자기장, 열을 폭발시켰다.
‘역시.’
하지만 그 빛은 헤게모니아에게 닿지 않았다.
빛들은 헤게모니아가 두르고 있는 무형의 장벽에 틀어막히고 타들어가듯 빨려들어갔다.
빛은 그대로 소멸했다.
‘…엔트로피인가.’
성운이 호명한 것은 로스트 월드의 현신체 스킬 중 하나인 ‘엔트로피’였다.
이 스킬은 온갖 투사체와 공격을 막아내는 뛰어난 방어 스킬이지만 그 자체로는 약점이 있다.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신앙을 소비한다는 점이다.
이는 실상, 현신체로서 방어 스킬의 의의가 없다는 의미다.
현신체는 신앙만 있으면 복구가 되므로, 비록 비율상 더 적은 신앙을 소비한다고 해도, 체력과 방어에 똑같은 자원을 소모한다면 자원 관리에서 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엔트로피’는 종종 쓰이는 스킬이었다.
-눈치 챘나?
헤게모니아가 그렇게 말하곤 검을 휘둘렀고, 성운은 막아냈다.
이어 생략된 다섯 번의 검격이 거의 동시에 날아왔다.
물리적으로 피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성운은 그대로 공격을 맞았다.
성운의 더미가 갈가리 찢겨나가고, 성운은 헤게모니아와 거리를 두고 다시 나타났다.
성운이 생각했다.
‘시간을 끌었던 이유가 있었군.’
성운은 헤게모니아의 전투에 대해서라면 예측을 충분히 하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행동은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헤게모니아의 목적을 생각하면, 눈 앞에 있는 성운의 현신체를 물리치는 것도 중요한 일은 맞지만, 동시에 라스다실 폐허의 중앙부에 침범하는 쪽이 본래의 목적이라 할만했다. 성운을 쓰러트리더라도 라스다실 폐허를 무너트리지 못한다면 큰 이득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스킬을 쓰고 있었다는 말은…’
엔트로피의 특징은 바로 ‘스택’을 쌓는다는 것이다.
로스트 월드에서 어떤 종류의 스킬은 단순히 ‘신앙을 소비한다’는 조건만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제 아무리 신성 레벨이 높고 현신체가 강하고, 남은 신앙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몇몇 스킬은 쓸 수 없다.
그런 종류의 스킬은 스택이라고 불리는 신성 외의 추가 자원을 요구한다.
그리고 엔트로피는 공격을 맞을 때마다 ‘열량’이라고 불리는 스택을 쌓을 수 있다.
문제점은 이런 엔트로피의 증가를 성운이 원한다고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가만히 있어도 스택이 차오르는 구조니까.’
그리고 성운은 헤게모니아가 마지막으로 사용할 스킬 하나는 얼추 짐작이 간다고 보았다.
‘곤란한데. 알아도 막을 수가 없으니.’
헤게모니아가 두 손으로 검을 번쩍 들어올렸다.
-알아차렸어도, 이미 늦었다.
헤게모니아의 갑옷 틈으로 불꽃이 치솟아올랐다. 이제 갑옷은 붉다못해 백색으로 하얗게 질렸고, 헤게모니아의 뿔투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불길이 타오르고 사라진 사리에서 거대한 손이 나타났다.
건틀릿을 끼고 있는 손 안쪽으로는 용암이 흘러내리고, 불길이 허공을 태워나가면서 팔뚝과 어깨를 드러냈다.
거인은 백여 미터는 넘을 정도로 거대했다.
불길이 모두 타오르자 거인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이제 갑옷은 검은색으로 차게 식었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갑옷의 이음새에서 칼날에 맞아죽은 고통스런 비명이 들려오며, 갑옷끼리 부대끼면 피로 피를 씻겠다는 이들의 전쟁 함성이 터져나왔다.
갑옷에 가려지지 않은 맨살은 가죽이 뜯겨나간 이 처럼 용암이 흘러내렸고, 머리 한 가운데에는 전쟁의 주인인 죽음이, 해골의 형상으로서 남아 있었다.
해골은 용암에 휘감겨 있었지만 무수히 변하는 전장의 상황과 생사의 고리를 판별하지 못하듯 자꾸만 요동쳤다.
‘아바타인가.’
아바타 또는 ‘화신’이라고 불리는 스킬은 일종의 변신 스킬이었다.
변신 스킬이라곤 하지만 이 변신은 이미 필멸자로서 대적이 불가능한 현신체의 다음가는 모습으로서,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물리적 제약을 벗어던진다.
덕분에 그 크기는 플레이어가 다룰 수 있을만큼 커질 수 있는데다, 일말의 타격을 주던 온갖 물리적 무기들에 대해서도 거의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아 같은 현신체가 아니면 공략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화신의 모습은 플레이어가 선택한 영역 중 하나를 반영해낸다는 것에 있었다.
플레이어는 각 화신체의 몇 가지 속성을 선택할 수 있지만, 이미 존재하는 템플릿을 따라가야만 했다. 그 때문에 성운은 헤게모니아의 화신체를 보자마자 무엇의 화신인지 알아차렸다.
‘그것도 전쟁의 화신.’
전쟁, 그 자체가 검을 들어올렸다.
거검이다.
대략 300미터, 화신체 헤게모니아의 크기를 감안해도 어처구니 없는 크기다.
-이제 모든 것은…
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생략된다.
-끝난다…!
화신체 헤게모니아의 머리 위에 올라간 왕관이 십자광으로 폭발한다.
휘말린다면 사도라도 무시하지 못할테지만 그것은 하나의 스킬을 사용했다는 신호에 불과했다.
-…와아아아아아!
화신체 헤게모니아가 베어낸 공간으로부터 무수한 병사들이 쏟아져내렸다.
화신체 헤게모니아가 공간을 갈라 분노하는 자의 사후세계인 붉은 땅을 연결한 것이다.
수 천, 어쩌면 수 만에 이를 수 많은 종족들이 저마다 탈것을 타거나 달음박질하며 라스다실 폐허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전쟁의 화신이 소환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것까지 고려한 공간참.’
성운이 인식하기도 전에, 화신체 헤게모니아의 칼날이 덮쳐온다.
성운의 허물이 부숴지고, 성운이 다시 나타난다.
하지만 헤게모니아의 손이 성운을 붙잡아 터트린다.
또 다시 성운이 나타나고, 이번에는 헤게모니아가 밟아 짓뭉갠다.
생략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전쟁은 무수한 팔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성운은 기회가 될 때마다 반격하지만, 전쟁 그 자체는 이미 관념적으로 모든 싸움과 전장에 통달한 것처럼 보인다.
성운이 제대로 된 타격을 넣지 못한 상황에서, 신앙을 확인했다.
‘3% 남았나?’
성운의 머릿속으로 찰나의 시간 동안 간단한 셈법이 이어진다.
헤게모니아가 상대적으로 조막만한 성운을 검끝으로 가리켰다.
-동시에, 베겠다.
그리고 모든 사전 동작들이 사라진다.
성운은 ‘동시에’라는 말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뒤에 있는 라스다실 폐허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라는 걸 안다.
-그건 곤란하지.
오로지 ‘베어짐’만이 존재하는 헤게모니아의 칼날이 도착하기도 전에, 성운은 단도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다.
헤게모니아가 베는 것은 성운의 빈 껍데기.
그리고 성운은 자신의 허물을 남기고 2킬로미터 뒤의 라스다실 폐허 앞으로 이동해있었다.
뒤늦게 도착하는 헤게모니아의 공간참을, 성운은 자신의 칼로 빗겨쳤다.
아슬아슬한 각도로 공간참이 왜곡되며, 폐허 중심부를 빗겨맞았다.
저 라스다실 폐허 앞으로 무수한 군대가 쏟아져 달려온다.
하지만 그 붉은 땅의 군대들이 달려온 길을 전쟁은 고작 몇 걸음만에 좁혀와, 결국엔 앞선다.
-더는 막지 못한다!
달려온 헤게모니아의 검이, 위로 치솟는다.
성운 또한, 네 번째 스킬을 사용한다.
성운이 두르고 있는 망토가 가볍게 펄럭인다.
헤게모니아는 그 펄럭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헤게모니아는 단지, 검을 휘두르는 일련의 과정을 ‘생략’하지 못하는 것에 당황했다.
‘…뭐지? 이건 마치…’
붙잡힌 것 같다.
실제로 다른 플레이어에게 붙잡혀 있는 경우, 스킵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화신체 헤게모니아는 공간참을 발동시켜 베어버리려고 하지만, 칼날이 거의 움직이지 못한다.
헤게모니아는 뒤늦게 알아차린다.
하늘이 녹아내리고 있다.
-…이건?
하늘은 천천히 녹아내리면서, 가볍게 회전을 하다가, 흘러간다.
번져가는 빛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없다.
녹아내린 하늘을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얇고 고운 하나의 장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가운데 온 몸을 장막에 두르고서 후드를 눌러 쓴 존재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네뷸라! 이건…!
-화신체지.
-하지만 넌 스택을…
-쌓았지.
하늘에 드리운 자가 말했다.
-내 죽음과 내 피가 제물이 되었다.
스스로 제물 된 이가 덧붙여 말했다.
-화신이 되기 위해 무엇을 스택으로 할지는 플레이어의 마음대로니까.
헤게모니아는 소리치려고 했다.
허물벗기와 같은 스킬이 있는 이상 그건 너무 쉬운 조건이다.
신앙 조차 소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말을 하기도 전에, 그리고 뒤늦게 성운에게 미래시가 있다는 걸 깨달으며, 앞서 보는 이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내 화신체는 이렇게, 널 붙들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힘이 없어.
전쟁이 그럼 무슨 쓸모가 있냐고 되묻기도 전에 뜻 없는 자가 덧붙인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지.
전쟁은, 헤게모니아는 세 가지 진실을 깨닫는다.
땅 위의 모든 공간이 하늘이라면, 헤게모니아 자신은 이미 성운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그리고 헤게모니아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그러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허나 뜻 이루는 자가 말한다.
-얼마남지 않은 신앙 자원으로, 너만 쓰러트리는 건 곤란해. 분노하는 자의 모든 사도와 군대를 모조리 휩쓸어 내야만 하지.
헤게모니아는 머릿속이 명쾌하게 선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성운은 단순히 헤게모니아 자신을 이기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완벽한 승리를 원하고 있었다.
뒤이어 세 번째 진실이 떠오른다.
성운은 접촉한 이에게 파사의 빛을 사용할 수 있다.
-아.
별들이 반짝인다.
밤하늘의 일렁임에 별자리들이 가볍게 움직이고 있으나 과거의 영웅들과 위인들이, 평범했으나 기억될 만한 과업을 이룬 이들이, 더 없는 비극으로 다른 이들에게 교훈 된 이들이, 슬픈 이야기며 행복한 이야기며 저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모든 빛들이, 반짝였다.
밤하늘이 말했다.
-또 봐.
전쟁이 빛으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