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두 신의 싸움이 끝나기 전,
라스다실 폐허의 구석에선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두 신의 싸움으로 일어난 폭풍이 멀리서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튕겨냈다.
돌덩이는 핑그르르 돌면서 델의 어깨를 후려쳤고, 핀 뽑힌 수류탄은 허공에 떠올랐다.
라민 솔로스트 무엘은 신기에 이른 기술로 수류탄을 향해 단도를 던졌다.
평행하게 단도가 박힌 수류탄이 두 사람 옆으로 떨어졌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칼날이 수류탄의 뇌관을 끊은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당황한 송곳니 요원 델이 그대로 라민을 찌르려고 했지만 먼저 움직인 것은 라민이었다.
라민은 델의 팔뚝을 휘어잡고는 칼날 끝을 델의 가슴쪽으로 꺾었다.
“야천께서 이기실 거야. 포기하지 그래?”
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언제나 그런 확신이 싫었다.”
“…언제나?”
“나는 제국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만신전과 야천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도 잘 안다.”
델의 힘이 강했기에 칼을 밀어내고 있었다.
라민은 이 사실을 이미 예측했기에, 델이 칼을 밀어내는데 집중할 때 재빨리 델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델의 등이 바닥에 닿는 순간, 한껏 밀려났던 칼끝이 델의 가슴에 살짝 박혔다가 밀려났다.
하지만 그 이상 밀려나지는 않는다.
라민은 자신의 체중을 더해 서서히 칼날을 꽂아넣었다.
라민이 집중력을 흐트릴 목적으로 델을 자극했다.
“비늘의 색만 보고도 배교자라는 건 알고 있었어.”
“배교자라고?”
델이 으르렁거렸다.
“내 부모는 두 분 다 신실한 야천의 사제였다. 남쪽 대륙 작은 섬의 개척 사원에 계셨지. 그곳엔 아직도 거친 원주 종족들이 있었고 당신들께선 그들을 만신전에 들일 목적으로 그곳에 자원하셨지. 하지만… 흡!”
다시금 칼끝이 가슴 가까이에 오자 델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마지막 힘으로 라민을 밀어냈다.
“하지만 사원은 공격당했고 불태워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만신전의 신들을 부르짖었지만 도와준 이는 아무도 없었어. 야천의 도움은 이야기 속에나 존재한다. 이후로 내가 그 종족들에게 붙잡혀 노예가 되었을 때도, 연합왕국의 무장 상선이 그 섬에 오기 전까지 고통 받는 동안, 야천은 단 한 번도 나를 돕지 않았어.”
라민은 그것을 부정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야천과 만신전의 무수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굽어 살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만일지 몰랐다.
아무리 위대한 신이라고 하더라도 모두를 보살필 수는 없다.
신들은 경이로운 존재이나, 그럼에도 세상의 부조리함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렇게 신들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오는 이들이 있다는 건 놀랄 일도 기이한 일도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델이 말했다.
“내 배교는… 정당하다.”
라민이 쉰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
그럼에도 라민은 체중을 실어 단도를 밀어박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델의 말과 행동은 모두 타당했으나, 라민은 그를 막아야만 했다.
그것이 라민의 일이었다.
“유감이야.”
라민의 단도가 델의 가슴에 꽂혔다.
델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칼날이 심장에 가닿은 순간 칼날의 날카로운 단편으로부터 펌프질 해대던 피가 솟구쳤고 두 번째 펌프질로 이어지기도 전에 델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엄지 손가락 한 마디를 박아넣기 위해 그렇게 긴 힘겨루기가 이어졌지만, 단도의 나머지 칼날이 델의 가슴 속으로 사라지는데는 한 호흡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어 파사의 빛이 전장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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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라스다실 공방이라고 간략히 불리는 전투는 역사상 가장 좁은 지역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진 전투로 기록 되었다.
제국과 연합왕국의 사도들 모두가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참여했으며, 전쟁에 참여한 사제들 기록에 따르면 만신전의 모든 신들이 이 전장에 거의 동시에 간섭한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전장은 신들이 부분적으로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이 싸움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신들이 중요하게 여겼음을 필멸자들도 알 수 있었다.
물론 보여진 싸움만으로도 경이적이었다.
각 대륙에서 알려진 가장 거대한 싸움들은 제국과 연합왕국의 대륙 통일 전쟁 때 있었지만, 두 현신체, 그리고 그것을 넘어 화신체라고 불리는 본질적인 일면을 드러낸 싸움은 라스다실 공방이 처음이었다.
화신체 이전의 싸움만 하더라도 산이 솟아오르고 그 봉우리가 무너져 내리며 별들을 움직이는 거대한 싸움으로, 사도들 조차도 감히 근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싸움의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으로서 그 면모를 드러냈던 분노하는 자는, 저승의 군대를 이끌어냈고 도저히 라스다실 폐허라는 좁은 지역이 아닌, 대륙도 정벌할 수 있는 경이를 드러내었다.
하지만 그런 경이조차도 하늘의 신격을 내보인 야천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야천이 내보인 빛은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분노하는 자의 사도들을 모두 휩쓸었다.
중요한 것은 라스다실 공방 그 자체가 아니라, 라스다실 공방 이후의 세계이다.
제국과 연합왕국, 둘로 나뉘었던 세계는 하나가 되었다.
연합왕국은 나뉘어져 과거의 왕국 이름들을 되찾고, 제국령에 복속되었다. 연합왕국을 상대로 반군을 운용하던 분리주의자들은 복잡한 심경이 되긴 했지만, 소수의 분리주의자들 말고는 모두 제국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제국은 연합왕국 보다 제국령들에게 자주적인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밖에도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연합왕국의 마지막 제왕은 폐위 되었고, 세속주의자와 불신론자들이 대두했다. 제국과 만신전은 거대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유일한 권위로 존재하며 수없이 많은 도전을 받았다.
많은 도전 중 특기할만한 것은 동부 대륙에 있던 작은 두 소국이다.
제국이 동부 대륙의 작은 소국들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작은 나라 소단 왕국은 세상의 변화에도 굴하지 않는 쇄국 정책을 펼쳤다. 제국이라는 거대한 흐름에도 동참하지 않던 그들은 최후까지 항전했다.
소단 왕국의 후예들이 이르는 말에 의하면, 소단 왕국의 신 ‘침묵자’는 만신전의 신들이 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신전이 선하거나 악하거나와 관계없이, 자신은 그저 단독자로서 존재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소단 왕국이 아닌 뷰레인 공화국이다.
뷰레인 공화국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공화국이었고, 마치 제국처럼 여러 대륙 각 영토에 자신들과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지침을 공산주의라고 불렀다.
‘끝없이 움직이는 기계신’이라고 불린 그들의 신은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모든 국가, 종족이 공평하고 평등한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계신의 주장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고, 실제로 국가와 종족,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이 주장에 동참했다.
특히나 끝없이 움직이는 기계신은 만신전을 비난했는데, 기계신의 사제들이 이르는 바에 의하면 만신전은 ‘더러운 자본주의의 족속’이며 ‘자유라는 이름으로 소외된 이들을 핍박하는 불한당’이었다.
이에 대해 만신전은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뷰레인 왕국은 소단 왕국과 같은 최후를 맞이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제국에 복속되지 않은 국가가 있다.
그것은 검은 교단이다. 대부분의 종족 구성원이 딥원으로 이루어진 이 국가는 흑린 제국이 제국이 아닌 왕국이던 시절부터 꾸준히 중앙 대륙을 위협해온 국가로…』
아마추어 천문학자, 코볼트 이온은 ‘라스다실 공방과 그 이후의 세계 정세’라는 제목의 글 아래의 댓글을 읽었다.
『아바일: 이분 만신전 사제임?』
『별밤: 잘 읽었습니다.』
『책추천: 라스다실 공방 더 궁금한데 책 추천하실 분 없나요?』
『마계의문: 라스다실 공방 당시 총사령관이자 만신전의 사도 도르돌이 썼던 “라스다실 폐허 방어전” 추천 드립니다.』
『첫페이지: 그건 너무 딱딱해서 입문자가 읽긴 좀 별로. 연합왕국 수송 장교 루페니가 썼던 “작전명: 붉은 땅으로” 추천 드립니다. 드라마틱해서 재밌음.』
『뾰족귀: 이 게시물 좀 편향된 서술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실 위주의 서술 아닌가요?』
『푸른고원: 제 생각에도 조금만 더 수정하면 백과사전에 올라가도 문제 없을 거 같은데.』
『제국의창: 젤 위에 놈은 연합왕국 살고 있나 왜 시비지』
『아바일: 나 말한거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라고. 그렇게 신이 대단하면 나 취직 부터 시켜주던가.』
『제국의창: 야천께서 너 같은 한량놈 취직자리 봐주실 시간이 있겠냐.』
『관리자: 아바일 님, 제국의창 님 경고 드립니다. 님은 경고 두 번째고, 세 번째는 강퇴입니다.』
『제국의창: 저는 왜요?』
『관리자: 지역 비하 경고입니다.』
이온은 혀를 찼다.
‘개판이군.’
‘세계 사전 역사 게시판’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온라인 네트워크인 천라망에서 뜻있는 이들이 모여 온라인 백과사전을 만들기 위해 모인 공간이었다.
온갖 나라, 온갖 종족의 온갖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인지 게시판의 수준은 대학 강의처럼 높은 것 같다가도 시장 바닥처럼 막말이 오가기도 했다.
‘그래도 저런 댓글이라도 달리면 좋을텐데.’
이온은 역사 게시판에서 빠져나와 아까전 천문학 게시판으로 들어가 자신이 올린 게시물을 확인했다.
읽은 사람은 열 명이지만 댓글은 아무도 달지 않았다.
글의 제목은 단순했다.
‘달이 두 개라는 증거.’
이온은 자신의 글을 다시 한 번 훑어보려는 목적으로 게시물을 클릭했다.
내용은 단순한 편이었다.
지금까지 달의 크기와 그 인력에 대해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하지만 실측을 통한 조석은 달을 구성하고 있다고 알려진 물질의 비율로는 뭔가 어색한 값이 도출된다.
한마디로 말해, 달은 보이는 것보다 더 무겁다.
공전하는 위성의 궤도가 일치하는 경우는 적지 않은데다, 이 값의 차이가 비록 크지는 않지만 달의 뒤쪽에 기존의 달보다 더 작은 두 번째 달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글의 골자였다.
‘역시.’
이온은 자신의 글에 아무런 댓글도 달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다른 게시판에 글을 찾으러 나섰다.
이온이 클릭한 것은 ‘음모론’ 게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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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전, 라스다실 공방으로부터 27년 뒤.
현재 만신전의 플레이어 숫자는 모두 25명이었다.
성운은 시련 점수를 통해 모든 봉신된 플레이어를 되살려냈고, 만신전에 끌어들였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은 이들이 성운과 그 동료들을 적대시 하더라도 만신전에 소속되는 것으로 시스템적인 조작으로 성운에게 대항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점, 그리고 이들을 되살려서 영향력을 발휘하게 두는 것으로 아직까지 봉신된 신들을 기억하는 이들이 만신전에 복속되어 사회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점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냥 대학생이었다고?”
“네.”
“좀더 잘 생각해볼 수 있잖아. 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해?”
“그렇게 말씀하셔도….”
성운 앞에 있던 플레이어 오븐렌지는 말끝을 흐렸다.
오븐렌지는 마지막까지 헤게모니아에게 대항했던 플레이어지만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오븐렌지가 말했다.
“굳이 이유라고 한다면…?”
“한다면?”
“이 게임을 좋아해서 아닐까요?”
고민하던 성운이 손을 내저었다.
“가 봐. 나중에 더 이야기하지.”
“아, 네.”
오븐렌지가 떠나자 오븐렌지를 지나쳐 엘다르가 걸어들어왔다.
“오늘은 성과가…?”
“전혀.”
“곤란하게 됐네요.”
성운은 가로저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성운이 플레이어들을 되살린 이유는 간단했다.
플레이어들의 정보를 취합해, 왜 자신들이 이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플레이어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시련이 필요하고, 시련 자원을 모으기 위해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대 유적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고대 유적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가장 최근에 쓰러진 세 플레이어는 성운이 아직 되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에 이런 미스터리는 덜 중요한 과제였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현재 무너트리지 못한 국가는 검은 교단 단 하나.
본래 게임 로스트 월드라면 검은 교단은 당연히 항복 선언을 할테지만, 검은 교단의 주인이자 악신 샤차는 심해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샤차야 과학 기술이 조금만 더 발달해도 잡아낼 수 있어. 하지만…’
성운이 걱정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었다.
성운의 인벤토리에 있는 봉신상은 악신 두 명과 일반 플레이어 세 명을 더해 5명은 제외하고, 만신전의 플레이어 숫자는 24명이다.
여기에 샤차를 더하면 총 플레이어 숫자 목록은 25명이 되어야 맞다.
그럼에도 성운이 바라보는 시스템 창에는 다른 숫자가 떠 있었다.
「현재 플레이어 수: 26명.」
그리고 그 플레이어 목록 끝에는 처음보는 닉네임이 떠었다.
「…
?뷀듃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