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아마추어 천문학자이자 코볼트 이온은 닉네임 ‘착하게살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게시판 여기저기서 보이는 이른바 죽돌이로 유명인이었는데, 자신에 대한 특별한 설정을 대입해서 즐기는 걸로 잘 알려져 있었다.
자신의 설정에 따르면 150년 넘게 산 뱀파이어라는데, 말이 되지 않았다.
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뱀파이어는 주류 종족으로 취급되지 않았고, 그건 흑린이 있는 중앙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심지어 이 뱀파이어는 자기가 과거 연합왕국이 있었던 서대륙에 있었다고 했는데, 그럼 뱀파이어에 대한 종족 학살과 통일전쟁까지 겪었는데도 살아남았다는 뜻이었다.
최근 밝혀진 연구에서 뱀파이어가 이론적으로는 아주 오래 살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150살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단순하게 봤을 때, 사람의 삶은 매일 주사위를 던져서 결정한다. 높은 수가 뜨면 살아남고, 1이 뜨면 죽는다. 주사위 눈 1이 뜨는 경우는 정말 많다. 뱀파이어의 경우에는 종족 학살이 있고, 그 나이라면 전쟁을 겪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노화가 거의 없는 뱀파이어라 치더라도 질병에 걸릴 수도 있다. 바로 죽을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작은 질병이 더해지다보면 노쇠해지고, 약해진다.
‘계산을 해봐야 알겠지만 뱀파이어라고해도 그 나이까지 살아남으려면 벼락 맞을 확률 보다도 훨씬 적을걸.’
뱀파이어이긴 할까?
이온은 그럴 가능성도 그다지 높지는 않다고 보았다.
뱀파이어가 주류 종족으로 전환된 뒤, 뱀파이어에 대한 학살은 더이상 없지만 그럼에도 뱀파이어는 다른 종족의 피를 탐해서 살아가는 것으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꾸준한 종족 권리 운동에 힘입어 대놓고 하는 차별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음지에서는 뱀파이어가 차별받고 있다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그런 차별 경향 안에 ‘재생산권’이라는 개념도 있었다.
뱀파이어는 자식을 낳을 수 없으므로 속칭 ‘포옹’이라고 불리는 이빨을 상대방의 목덜미에 박아넣고 혈관 안에 독소를 집어넣는 것으로 상대를 뱀파이어로 만들 수 있는데, 이러한 뱀파이어 재생산은 당국의 허락없이는 무조건 불법이었다.
뱀파이어가 재생산권을 가지기 위해서는 꽤 많은 공적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재생산권을 가진 뱀파이어의 숫자는 무척 적다고 알려졌기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천라망에 접속하는 사람 중 진짜 뱀파이어가 있을 확률 역시 대단히 적었다.
‘사실 저 인간이 뱀파이어냐 아니냐는 중요하는 문제는 아니기도 하고.’
뱀파이어와 관련한 모든 요소에 동의하더라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이 뱀파이어는 자기가 ‘검의 대가’도 아니고 ‘검의 대가’들을 가르치는 비밀 검술 스승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제국령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꽤 많은 지역에서는 총기 소지가 불법이다. 하지만 제국 곳곳에는 환경 유지를 이유로 태고의 괴물들이 살아가는 곳이 많고, 호신 등의 이유로 검을 소지하는 것은 적법했다. 날없는 검을 통한 스포츠 검술은 이미 국제 경기가 존재했다.
그런 국제 검술 경기 지회와, 각 대륙 검술 실전 유파들이 모인 검술연맹에선 최고 지도자급 검술가들을 ‘검의 대가’라는 최고위 호칭을 부여했다. 검의 대가는 전 세계 스무 명도 되지 않는다. 총알을 검으로 벨 수 있다고 알려진 검의 대가들에게 스승이 필요할 리가 없다.
‘뻥도 적당히 쳐야지.’
그게 아니더라도 ‘착하게살자’는 자기가 만신전에 가서 죽은 사람 누구를 만났다거나, 만신전의 사도를 만났다거나, 급기야 신들과 대화를 나누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심심하면 올려서, 열성 신자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비난 당하고 반대로 세속주의자들에게는 종교쟁이라라고 두드려 맞는 일이 흔했다.
그래도 말이 험하거나 큰 분란을 일으키는 건 아니라서, 관리자는 보통 해당 게시판 며칠 정지 정도의 사유로 내쫓았고, 그럼 ‘착하게살자’는 엉뚱한 게시판에서 나타났다.
‘하필이면 음모론 게시판에….’
창을 하나 더 띄워서 ‘착하게살자’가 주로 활동하는 검술 게시판에 들어가니 이런 게시물들이 보였다.
『제발 우리 게시판에 있는 150년 묵은 뱀파이어 검의 대가 좀 데려가라』
『응 우리 반품 안 받아』
『걔 15일 정지임』
『왜?』
『검의 대가한테 직접 사사받은 사람한테 훈수 두다가 사기 명목으로 신고 당함』
이온은 웃고 나서는 다시 음모론 게시판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착하게살자’가 열심히 자신에 대한 변론을 늘어놓는 게시물이 가장 조회수와 댓글이 오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착하게살자’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음모론이랑 닮았으니 게시판에 어울리는 글 같기도 했다.
‘다른 읽을 거리는…’
이온이 관심있어 하는 이야기는 기생충 괴담이었지만 그것말고도 음모론 게시판은 재미있는 글이 많았다.
특히나 이온이 좋아하는 것은 세속주의자들이 올리는 글이었다.
세속주의는 현재 과거 연합왕국이 있었던 서대륙을 기점으로 최근 몇 십년 동안 가장 활발하게 발전한 학문으로, 종교, 정치, 철학, 도덕을 아우르는 종합 학문이었다. 물론 대다수는 학자라기 보다 그저 각자의 이유로 그것을 지지했지만, 적어도 서대륙에선 세속주의자가 만신전을 믿는 이들만큼이나 많이 있었다.
연합왕국과 그들의 신이었던 분노하는 자가 라스다실 폐허를 공격했다가 패배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신의 갑작스런 공백은 사람들을 대략 세 방향으로 이끌었는데, 하나는 분노하는 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그 시점에서도 중앙 대륙의 어떤 신들은 돌아오기도 했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특히나 야천이 주도하는 만신전은 과거 분노하는 자에 의해서 사라졌던 신들을 다시 되돌려놓았기에 이러한 기대감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분노하는 자가 다시 돌아와 영광을 재현해주리라 믿는 이들이 있었고, 대략 서대륙의 1/5 정도를 차지했다.
하지만 위의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해서 줄어서 다른 두 집단으로 흘러갔다.
하나는 만신전 교도이다.
어차피 분노하는 자가 만신전의 안에서 되돌아온다면, 만신전에 대한 믿음이 분노하는 자에 대한 믿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신전이 주도하는 혁명을 맛보았던 무미 종족들은 만신전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일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만신전의 혁명파 우두머리였던 휘 주란 무엘로 대표되는 이들은 새로운 종교를 무리 없이 잘 받아들였다. 이들이 서대륙의 2/5를 차지했다.
나머지 2/5를 차지하는 것이 세속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신들의 싸움에 환멸을 느꼈고, 결정적인 계기는 라스다실 폐허 공방이었다.
라스다실 폐허가 가진 전략적 목표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은 필멸자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그저 신들의 *승리*를 위한 목표일 뿐이다.
또한 제국이 너그럽고 매끄러운 전후 처리를 이루었지만, 이 모든 싸움에 대해서 지긋지긋함을 느끼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이제는 신들이 없어도, 사람의 힘만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시기였다.
그리고 이 세속주의자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자, 현재 서대륙 최고 의회 의장인, ‘혁명가 사르쵸’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의 모든 문명이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들이 말하는 *승리*를 위해서 강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의문을 보였다.
수 많은 사제와 학자들이 이 의문에 의견을 표했고 아직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으나, 그 의문만으로도 숨어있던 세속주의자들을 발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특히나 서대륙에서 몇 가지 사건들이 연속해서 일어나면서 제국은 세속주의 혁명파들을 잠재우는데 실패했고, 사실상 세속주의를 허용하게 되었다.
이는 만신전에 대한 세속주의의 승리로 치부되면서 서대륙 외의 세속주의자들을 결집시키는 역활을 했다. 세속주의의 존재 조차 만신전의 의도라고 하는 이들도 소수 있긴 했지만, 공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누가 자신의 적을 키워내겠는가?
이온 또한 자신이 세속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저 하늘의 별들을 보라고. 야천과 그를 따르는 리자드맨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지. 하지만 우주는 그보다 훨씬 넓고 광대하다는 게 밝혀졌어. 만신전이 설령 위대하더라도 그저 좁은 세계에 불과해.’
물론, 만신전을 마냥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온은 만신전의 영웅과 사도들의 이야기, 기괴하고 거대한 야천의 창조물 삽화를 보면사 자랐다. 과학자를 꿈꾸는 것도 그런 영향이 없지 않았다.
이온의 고향인 카마이루 본가에는 아직도 책상 위에 스라티스를 비롯한 야천의 수호자 주석 동상들이 놓여 있다. 요즘엔 플라스틱이니 뭐니하며 모형 장난감들이 나오지만 이온이 어렸을 때만 해도 주석으로 만들어진 동상들이 최고였다. 이온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가지고 있던 제품 중 하나는 고가의 한정판이기도 했다. 금으로 도금된 번쩍이는 라크락 동상인데, 은근한 자랑이었다. 절대 팔지 않고 자기가 죽으면 무덤에 같이 묻어달라고 할 속셈이었다.
이온은 오라즌에 미친 칼잡이가 어둠 속에서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연속 게시물과, 천라망은 첩보국이 들여다보고 있으므로 비밀 이야기를 쓰는 건 위험하다는 등의 이야기, 세속주의자가 쓴 ‘세상은 사실 하나의 게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라는 게시물을 읽고 토론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자신이 글을 쓴 천문학 게시판으로 돌아갔다.
“어?”
모니터를 바라보던 코볼트 이온은 입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달이 두 개라는 증거.’
댓글이 셋이나 달려 있다.
이온은 잠깐 오라즌의 네온사인 가득한 밤거리를 내려다봤다가, 캔에 담긴 딸기향이 나는 가당탄산음료를 한모금 마시고 스크롤을 내렸다.
『속선의가는실: 글쓴이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달 크기와 무게는 자올 때 이미 검증이 됐었음. 조수간만의 차로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데 편차치가 너무 크지 않음? 관련한 다른 학자들 글도 좀 읽어보면 좋을듯.』
이 첫 번째 댓글은, 비난 댓글은 아니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진 못하다.
이온은 자신이 아마추어 천문학자라고해서 자기보다 지식이 적을 거라고 단정하고, 이미 학계에 알려진 주류 의견을 담습하는 댓글을 보고 짜증이 치솟았다. 관련한 다른 학자의 글들이라면 인용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다 읽은 상태였다.
‘주류 의견이 아닐뿐이지 사이비는 아니라고.’
대댓글을 달려던 이온은 글이 길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우선은 다음 댓글을 읽었다.
『빨간나비: 재밌긴한데 이거 음모론 게시판에 가야 되는 거 아님?』
이온은 코웃음을 친 뒤, 마지막 댓글을 읽었다.
『오보렌: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 질문이 있는데 쪽지 확인해주실래요?』
그 말에 이온은 잠시 당황했다.
오보렌이 그 오보렌이 맞다면 천문학 학회와 제국항공우주국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자 중 하나였다.
‘진짜… 는 아니겠지?’
하지만 굳이 사칭을 한다기에는 정말 천문학 학술지를 찾아읽지 않는 이상 알기가 어렵고, 굳이 유명하지도 않은 천문학 분야의 학자를 흉내낼 이유도 없었다.
이온은 더듬더듬 쪽지를 확인했다.
『’달이 두 개라는 증거’ 잘 보았습니다. 저는 제국항공우주국에서 일하고 있는 리데 오보렌이라고 합니다. 게시판에 올리신 주제는 현재 저희 제국항공우주국에서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던 차에 선생님의 글을 보니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계산 등이 흥미로웠고 동료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글만 읽고는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고, 천라망 공간은 토론을 하는데에 한게가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국항공우주국으로 오셔서 관련 내용으로 발표를 해주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내, 내가 제국항공우주국 학자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고?’
이온은 깊은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러겠노라 답장을 보내버렸다.
리데 오보렌이 쪽지를 보내왔다.
『흔쾌한 답장 감사합니다. 보아하니 아직 학회원으로 등록하시지 않은듯한데, 다음 ‘야천’ 학술지에 기고를 도와드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자세한 만남 일정은 전화로 하죠. 연락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온은 학교를 졸업한 뒤, 본가에는 취직 자리라고 말했던 계속해서 해왔던 배달음식 임시직을 때려치웠다. 국밥집 사장님은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이온이 원하던 일을 해냈다는 이야기에 순수하게 기뻐해주었다.
“그렇게 노력하더니, 야천님께서 길을 내어주셨나보구만.”
이온은 헛기침을 하긴 했지만 코 앞에서 부정할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이온은 약속날이 되어, 자성도시 오라즌의 낡은 빌딩으로 갔다.
이온이 알고 있는 제국항공우주국 건물은 거대해서 오라즌의 외곽에 위치해 있지만, 듣자하니 이 건물은 야천 학술지를 내는 출판사가 위치해 있다는 모양이었다.
리데는 교통의 편의성을 생각해 이곳으로 약속을 잡았다고 말했다.
리데가 전화로 말했다.
“소속 학자분들이 사적으로 만남을 가질 땐 우주국 건물 보다 여기서 만나거든요.”
무언가 우주국 소속 학자들만 알 수 있는 내밀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이온은 기뻤다.
약속시간이 되자, 이온은 전자식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길거리를 두리번거렸다.
학자들이 퇴근한 후에 시간이 난다면서 늦은 시간에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 인적이 드물었다.
‘아직 아무도 안 왔나?’
그렇게 말하는 리데에게,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코트를 입은 인간 사람 하나가 이온에게 다가왔다.
정확히 자신에게 다가왔기 때문에 이온은 자신을 만나러온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리데는 여자에다 인간도 아니지만, 길 안내를 해줄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낼 수 있지 않은가.
“아, 저…”
대화를 하기에는 조금 먼거리에서 남자가 멈춰섰다.
“당신이 이온 이올카프인가?”
“아, 네.”
그리고 남자는 코트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이온은 총을 보자 얼어붙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올리긴 했지만, 발을 떼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다.
‘강도? 아, 아니야. 내 이름을 알고 있는데…’
눈을 질끔 감은 이온의 귀로 총성이 들렸다.
-탕!
-…깡!
이어 이상한 쇳소리도 들린 것 같았다.
이온은 눈을 떴다.
한 인간 여자가 등을 보이며 검을 들고 있었다.
이온이 자신의 몸이 멀쩡한 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초, 총알은?”
라민 솔로스트 무엘이 답했다.
“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