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60
260화
어둠 속에서.
「…들통났나?」
「아직 아니야. 놈들은 아직 상상도 못하고 있을 걸.」
「■와 ■■■를 잃고, ■■는 큰 위험에 빠졌어.」
「하지만 끝난 건 아니야. 희망은 있어.」
「괴물 같은 작자다. 놈들은 어떻게 저런 걸 데려온 건지.」
「너무 두려워 마.」
「내가 걱정하는 건 너야.」
잠깐의 침묵.
「…신호를 보내줄 때까지 기다려.」
「그래. 그때까지 무사하길.」
─┼
이온 이올카프가 생각했다.
‘망했다.’
이온이 있는 곳은 제국의 수도, 자성도시 오라즌의 드넓은 내궁에 위치한 첩보국 본부였다.
연합왕국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첩보국은 과거 기밀 자료들을 풀면서 악명을 줄인 편이지만 여전히 좋은 소문은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나 최근 20여년 동안, 전세계가 사실상 하나의 국가로 통일 되어버렸다곤 해도, 사회 구조와 계층은 다면적으로 변화했고 그에 따른 복잡성에 힘입어 첩보국도 힘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보여지지 않도록 더 내밀해졌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첩보국은 황제의 명도 듣지 않고 만신전의 직접적인 지시를 따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 그 실권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말할 것도 없다.
옆에는 이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민이 조잘거렸다.
“잠시 시간이 날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지? 우선 지하로 갈까요?”
“헉, 소문의 첩보국 본부 지하 고문실…”
“어… 저희 첩보국 지하는 식당인데요. 식사 안 하셨잖아요?”
“입으로 먹을 수 있나요?”
“대체로요? …코볼트는 입 말고 다른 구멍으로도 식사가 가능했던가?”
첩보국 지하는 식판에다가 식사 시간마다 조리된 음식들을 원하는대로 받아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새벽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그렇지만 예상과는 달리 밝고 넓고 깨끗한 곳인데다 음식 솜씨도 훌륭해서, 다른 곳이었다면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을 듯 싶었다.
하지만 이온은 그야말로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크흑, 이게 내 마지막 만찬인가.’
라민도 다른 사람들이 첩보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강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신경을 쓴다고 쓴 것인데도, 식사를 하고 첩보국 본부에 딸린 유명 차 가맹점에서 차도 한 잔씩 사들고 올라왔지만, 전망이 좋은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이온은 이미 몇 날 며칠 심문을 받은 사람처럼 퀭해 보였다.
“또 사람 괴롭힌 겁니까?”
“아뇨. 전혀요!”
“정말요?”
“그럼요.”
“정말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첩보국의 오해를 빌미로 공포심을 괜히 자극하고 겁을 준 게 아니라고요?”
“제가 나이가 몇인데.”
“몇 달 전까지도 그래놓고는.”
“사람은 바뀝니다.”
“안 그랬다면 더는 바뀌지 말아주십시오.”
라민 앞에 서 있는 것은 오랜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고르고타 팔루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장에 있었던 그지만 이제는 젊다고 할 수는 없는 나이인지라 내무를 보고 있었다.
리자드맨만큼은 아니지만 프로그맨도 겉보기로 노화를 곧장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커다래진 체구나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목덜미가, 아는 사람이라면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끔 했다.
“겁 준 것도 아닌데 사람 얼굴이 왜 이렇습니까?”
“새벽이라서 그런가 봐요.”
고르고타는 손을 내저었다.
고르고타가 이온에게 자리를 내줬다.
“편하게 앉으시죠, 이온 이올카프 씨.”
“서 있겠습니다!”
“앉으시죠.”
“네, 죄송합니다!”
이온이 경직된 자세로 미리 준비되어 있던 소종족 의자에 올라가 앉았다.
고르고타가 말했다.
“이온 씨는 왜 첩보국에 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 저… 그게…”
고민을 하던 이온은 굳이 따지고보면 첩보국에 잡혀올만큼 나쁜짓을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한량처럼 젊음을 불태우긴 했지만 범죄를 저지른 적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노상방뇨를 하거나 고성방가를 하거나 주먹다짐을 하는 등의 경범죄 수준이었고 대개 훈방 조치가 전부였다.
당연히 문제가 있다면 아까전 만났던 암습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전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건 저희도 압니다.”
“네?”
고르고타가 어깨를 으쓱하곤 말했다.
“외부에도 잘 알려져 있던데요. 저희 첩보국은 천라망에 있는 대부분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걸 불법 사찰이나 불법 감청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온은 음모론 게시판에서만 보았던 내용을 귀로 직접 들으니 참 생경하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라민이 끼어들어 말했다.
“불법 사찰 맞지. 제국법에는 그러지 말라고 나와 있어요.”
“제국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예외라고도 하지요.”
“너무 광의의 해석인데.”
“요원, 또 그 이야기로 하루종일 떠들 건 아니겠죠? 뭐가 옳은지는 법학자와 정치인들이 선택하도록 넘겨줍시다. …아무튼, 이온 씨가 이 내용에 대해 발설하든 말든 중요하진 않습니다.”
“아, 넵.”
“저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커뮤니티들을 들여다보고 있고 어떤 관계망이 그려지는지도 쫓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보렌’이라는 닉네임으로 리데 오보렌이란 학자를 사칭하는 그 사람은 저희가 요주의하던 인물이었지요. 그 사람은 과격 세속주의자 비밀 단체 중 하나인 ‘현실의 힘’에 소속된 인물인데, 느닷없이 이온 씨와 접촉하기에 놀랐습니다. 저희가 봤을 때 이온 씨는 그런 단체와는 일절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맞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고르고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온 씨가 세속주의자거나, 그에 가까운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세속주의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죠. 아실지 모르겠지만 만신전과 신들께서는 세속주의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그래서 나쁘게 보시지 않고, 신학자와 사제들도 긍정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런 사실과 별개로 세속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세를 불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특히나 비밀 단체들이 그렇죠.”
이온도 과격파 세속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긴했다.
대부분의 세속주의자들은 중도에 속하거나 비교적 유화적인 부분이 있지만, 어떤 세속주의자들은 지금 당장 만신전을 무너트려야만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앙대륙이나 동대륙, 남대륙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지만 연합왕국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서대륙의 경우엔 사제들이 죽거나 거대 세속주의자 과격 단체가 일망타진 되는 일이 요즘에도 잦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현실의 힘이 이온 씨를 포섭하려 나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죠. 마침 시간이 비어있던 요원이 저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온 씨가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이온 씨가 습격 당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었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이온은 이제서야 뒤늦게 목숨이 구해졌다는 걸 인식하고 라민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라민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르고타가 말했다.
“결국 문제는 이거죠. …저희는 이온 씨가 왜 습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아.”
“정말로 현실의 힘이나 다른 세속주의자 단체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까?”
“네.”
“조금만 더 고민하고 답해주시죠.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그런 단체의 일원이었거나 그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습니까? 당장 연락하지 않더라도요. 이온 씨는 대학교를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걸로 압니다. 천라망을 들여다보고 대학교 학부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조금의 탐문으로 이온 씨의 주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지만 저희가 정말로 이온 씨를 완벽히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네에….”
“이온 씨가 세속주의자라고 한들, 그 뜻을 행하는데 있어서 사람을 해하려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다고 믿고요.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이온이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이온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나 의심했던 사람이 있는 건 아니었다.
선배의 말 한 마디나 친했던 학교 동기들, 아니면 후배와 교수들이 부정확하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던가 그런 사람이 있다더라 하고 기억이 되살려졌다. 심문이라기 보다는 지나간 학창 시절 이야기에 가까워서, 고르고타가 주의를 주기 전까지 라민이 끼어들어 자신의 학생 시절 이야기를 하고 맞장구 치기도 했다.
“아, 저, 혹시 제가 이렇게 말해서 그분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겠죠…?”
“들어봐서는 그럴 거 같지는 않군요. 평범하게 좋은 사람들입니다. 관례적으로 자료를 훑어보긴 하겠지만 큰 일은 없을 것 같군요.”
“이온 씨가 세 번째로 사귀었던 그 사람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던데요?”
“지금 꼭 연애 이야기를 꺼내야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봤을 때 이온 씨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안 하면 안 될까요?”
고르고타가 말했다.
“조금 다른 방면으로 접근해보죠. 세속주의자들에게 눈길을 끌만한 다른 사건이나 행동을 하신 적은 없습니까?”
“글쎄요….”
“조금이라도 의심가는 거라도 좋습니다.”
고민하던 이온이 주저하며 말했다.
“사실은 아까 전부터 생각하던 게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제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오, 좋습니다.”
“그 사람이 리데 오보렌이 아니었다는 건 유감이지만, 리데 오보렌으로 자기 자신을 숨겼다는 건 저 같은, 그러니까 재야의 천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위장 신분은 아니었을까요?”
“…어.”
“그러니까, 그 현실의 힘이라고 불리는 세속주의자 단체가 사실은 제 연구를 굉장히 관심있게 여기고 있었다거나…”
“흠.”
“…전혀 그렇게 보지 않으시는군요.”
고르고타가 담담히 말했다.
“솔직히 저희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식 기관에 등록되지 않고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 네….”
“관련 학과를 졸업하긴 하셨지만 대학원에 진학하신 것도 아니고 딱히 다른 연구 기관에 취직을 하신 것도 아니시고요.”
“그렇죠.”
“그 게시물도 읽어봤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논문이 가져야하는 정합성이 부족했고 인용이 허술한데다 필자의 주관이 너무 강해서 객관적인 연구 논문이라고 보긴 힘들었습니다.”
“…네.”
“그러니 아무래도…”
그때 라민이 끼어들어 말했다.
“그래도 그거 밖에 없지 않나?”
라민이 계속 말했다.
“스승님께서도 상황을 되도록이면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그에 대한 내용을 정확히 모르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결론을 내야만 하는 거죠. 이온 씨의 글이 허술할지는 몰라도 거기에 반응했다고 볼 수도 있는 거고.”
“달 질량이 우리 생각과 다르다는 게 그치들에게 의미가 있다는 겁니까?”
“그건 모르는 거죠.”
라민이 이온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게다가 난 재밌게 읽었어요. 일단 글을 잘 쓰던데요. 수사적이긴 하지만 힘이 있는 문장이에요.”
난데없는 칭찬에 이온이 헛기침을 했다.
고르고타는 팔짱을 끼고 의자를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무언가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곧 되돌아 앉았다.
“심문도 하고 기타 조사도 할 거지만, 그쪽으로 접근하는 게 나빠보이진 않습니다. 첩보국은 늘 바쁘고 일손이 부족하지만…”
“저 같이 유능한 요원도 있고요.”
“그런 걸로 하죠. 당신이 맡으세요.”
“옙.”
“아이디어는 있습니까?”
“자주 써먹던 방법으로 하죠.”
“이온 씨가 도와주셔야겠군요. 하고 계시던 배달 업무를 관두셨으니 한동안 여유는 있으시겠죠.”
“네? 제가요?”
“아마, 이온 씨도 마뜩잖지는 않으실 겁니다.”
마뜩잖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다음날 이온이 라민과 함께 도착한 곳은 이온이 그토록 그리던 제국항공우주국 본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