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63
263화
“좋습니다. 리데가 그런 종족이라고 가정하자고요.”
이온 이올카프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리고서, 라민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범죄적이라거나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리데는 현실의 힘 소속이기도 합니다.”
“그것 자체도 문제는 아닐텐데요.”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현실의 힘은 대중에겐 단순히 세속주의자 단체 중 과격한 일부로 알려져 있지만, 그 내부는 보다 조직적이고 비밀스럽죠. 그리고 그 내부자들 중에 범죄 혐의를 가진 이들이 있고, 실제 사례도 있어요.”
“그럼 이미 알려져있어야 하지 않나요?”
라민이 답했다.
“우선, 과격파가 아닌 온건파 세속주의자들은 그런 경향이 세속주의를 대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속주의 자체는, 사르쵸 의장의 말처럼 그저 자신의 마음 안에 신전을 세우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이들도 많으니까요.”
“제국은요?”
“제국도 마찬가지죠. 왜곡된 언론 기사들 때문에 정확히 알고 계시진 않겠지만, 만신전은 세속주의자들의 숫자가 늘어난다고해서 그것이 문제라거나 불만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어요. 세속주의자는 그 자체는 만신전의 적도, 제국의 적도 아닙니다. 그러니 실제 범죄에 연루되더라도 그것을 현실의 힘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대외적으로 공표해 공공의 적을 만들기 보다, 그냥 조용히 처리하고 있는 거죠. 제국 전체에 세속주의자들을 적대시하는 바람을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 과정에서 무관한 많은 사람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내부에서는 지금처럼 철저히 조사를 하고 있고요.”
긴장한 이온이 스텐레스 컵에 담긴 물잔을 들이켰다.
“그러니 리데는 과격한 문제를 일으키는 현실의 힘 소속이라는 건가요?”
“제가 현실의 힘 소속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냥 천라망에서 자기는 현실의 힘을 지지하고 그 뜻을 따른다는 어중이떠중이들 말고요.”
“증거는요?”
라민이 말했다.
“리데는 비밀 모임에 나가고 있었어요.”
“리데는 연구원이에요. 그럴 시간은 없는데요.”
라민이 말했다.
“딱히 시간을 따로 낼 필요는 없었겠죠. 제국항공우주국 안에 현실의 힘이 있으니까.”
이온이 반문했다.
“리데만이 아니라고요?”
“네.”
라민이 간략한 서류를 꺼내 내보였다.
“리데만이 아니라 리데가 이온 씨에게 소개했던 고천문학자나, 제국항공우주국 안에서 크고 작은 업무를 맡는 사람들이 현실의 힘에 소속되어 있더군요.”
“뭘 근거로요?”
“통계 자료를 보면 누구나 의심스러워할 거에요. 왜 이걸 아직까지 발견해내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는데, 제국항공우주국에 있는 사람들 중에 보육원 출신자가 비율이 꽤 높았어요.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되죠.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이온이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었다.
“이상하지 않나요?”
“네?”
“현실의 힘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세속주의잖아요. 하지만 세속주의자들이 과학을 통해 어떻게 급진적 세속주의를 전파하겠어요? 차라리 종교로 인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활동가가 되거나, 봉사활동을 하거나, 정치인이 되는 게 낫죠.”
“그럼 이온 씨 생각엔 왜 그런 통계가 잡히고, 실질적으로 현실의 힘에 소속되어 활동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이온이 말했다.
“학문을 배우게 되면 세속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거죠.”
라민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첩보국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그 사람들이 ‘정확히’ 뭘 했는데요?”
“그걸 이제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이온 씨를 여기 데려온 거죠. 불편한 자리가 되긴 하겠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겁니다.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해봅시다. 자, …리데 오보렌과의 첫만남을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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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은 나흘 동안 하루 열 네 시간 가량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조사관들이 라민을 제외하고도 트롤, 엄청난 체격의 오우거 등이 모습을 보였지만, 이온은 자신이 제법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음을 이해했다.
어찌되었든 이온은 이 사건 자체가 실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자신이 범죄를 직접 저지른 당사자도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라 생각했다.
첩보국의 조사 내용이 적나라하게 나올 때마다 이온은 꽤나 격하게 반응했지만, 그러면서도 심문 자체에는 협조적으로 응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조사관들이 자신을 괜찮게 보았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첩보국 내부,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된다고 이온 혼자 지레짐작한 장소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이온이 라민에게 말했다.
“그냥 내보내주는군요?”
“첩보국이 좋은 곳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끔찍한 곳도 아니죠. 건물 들어가보셨잖아요? 다들 보통은 오늘 점심 뭐나오려나 하는 그냥 공무원들입니다. 그냥 정해진 절차대로 하는 거죠. 이온 씨는 참고인이니까요. 물론 이후로도 계속 연락이 갈 예정입니다만.”
“…수사 내용에 대해서 여쭤봐도 되나요?”
라민이 턱에 손을 대고 말했다.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군요. 어수선하긴 하겠지만 일하시던 곳으로 그대로 가셔도 됩니다. 다 이야기가 되어 있어요.”
“이야기라면?”
“이온 씨는 휴가를 썼어요. 어, 하지만, 새로운 휴가가 날 겁니다. 그냥 주변에 다 말하고 다니셔도 상관은 없는데, 이건 저희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온 씨를 위해서 적당히 넘어가는 쪽이 좋다고 생각되네요.”
“…알겠습니다.”
이온은 제국항공우주국 내부에 현실의 힘에 관여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궁금했는데, 돌아가자 이해가 되었다.
익숙했던 얼굴들이 그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겐 각자 얼굴을 비추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무슨 연구를 위해 출장을 갔다던가 발령으로 자리를 긴급히 비웠다던가 이온처럼 휴가를 썼다던가 하는 경우였다. 그 재주가 너무 정교해서, 정말로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액면 그대로의 내용을 믿을 정도였고, 꽤 많은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알고 있었다.
‘…정말로 현실이 바뀐 거 같잖아?’
이온 자신을 위해서 적당히 넘어가라는 라민의 말이 맞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온이 첩보국에서 수사를 받고 왔다고해봤자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은 없을 터였다. 오히려 이온은 이리저리 설명을 해야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위화감과 불안감을 조성할 터였다. 물론 진실을 아는 일부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우주국 내부에서 묘한 눈길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 의미있는 대화로 진전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사라져서 어느 정도 적막감이 돌법한 제국항공우주국은 그 사이 새로운 사람들이 얼굴을 비추고 제국 지표에 따라 건강검진을 한다던가 하는 새로운 소식으로 금새 어수선해졌다. 하지만 이온은 명백한 공백을 느꼈다. 한달이 지나도 리데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나몰라 퇴근 길에 리데의 집을 들리는 것이 이온의 일과가 되어 있었다.
이온은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나라에서 불순분자로 점 찍어둔 사람과는 거리를 둬야하는 거 아냐?’
하지만 이온은 그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곧장 이유를 찾아냈다.
‘리데가 날 속였다고? 말을 하지 않은 게 속인 건 아니지. 첩보국은 리데가 마치 나에게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접근했을 거라고 말했지만 결국 아무런 정보도 찾아내지 못했어. 만약,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온은 리데의 현관문에 붙어있는 각종 광고 홍보지나 고지서 등을 수거하며 생각했다.
‘…리데가 요정이라고 해도 뭐 어떻단 말이야?’
이온의 생각에 바뀌는 건 없었다.
이온이 예티라는 것을 좋아했지만 예티가 아닌 부분도 여전히 좋았다. 종족은 그리 중요지가 않았다.
“저, 저기, 작은 동무. 길 좀 알려주시겠소?”
이온은 미행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멀리 돌아갔는데, 전철역 앞에서 보따리를 지고 있는 르나르 노인 하나를 보았다.
키가 작은 종족들끼리 도움을 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키가 큰 종족이 특별히 무정하다기 보다는, 아무래도 자신의 시선에 닿지 않는 일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었다.
이온이 다가가자 노인이 버스 정류장 위치를 물었고, 이온은 짐을 받아들고 같이 걸어갔다.
정류장에 도착해 그대로 가려는 이온에게 노인이 고맙다고 말하면서 손을 잡는데, 손에 자그마한 쪽지가 잡혔다.
‘…어?’
이온은 이때 여러가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명백히 당황하면서 쪽지를 손에서 떨굴 수도 있었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딘가에서 자신을 미행하고 있을지도 모를 첩보국 요원들의 눈치를 볼 수도 있었으며, 아니면 쪽지의 의미를 확인하기도 전에 남들이 보지 못하게 정중하게 노인의 손에 쪽지를 다시 쥐어줄 수도 있었다.
어떠한 일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말이다.
하지만 이온은 그 쪽지를 잡았고, 노인과 인사한 뒤, 쪽지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곤 평소와 같은 코스로 집으로 돌아가서, 편안히 잠을 자기 위해 도청 장치로 의심되는 물건을 모두 빼버린 빈방으로 들어가 쪽지를 달빛으로만 읽었다.
『반갑소, 이온 동무. 이 쪽지가 어떤 방법으로 동무 손으로 들어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대가 읽고 있다면 기쁘겠소.』
이온은 숨을 죽이고 다음 문장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세속주의자들의 최후의 보루라고 알려진 ‘현실의 힘’이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준야라고 하오. 왜 갑자기 이런 쪽지를 그대의 손에 쥐어주었나 의심스럽겠지만, 우리는 그대가 첩보국으로 끌려가 부당한 사정청취를 당했음을 알고 있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통해 대강은 알 수 있소. 그대는 첩보국에서 제공하는 정보들을 믿고, 제국민의 의무로서 첩보국 요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겠지. 설사 우리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악의적인 비난을 했더래도 우리는 그대를 비난하지 않소. 단지 우리는 그대가 궁금해할만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말해주고자 하오.』
이온은 다음 문장을 보고 몸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요정’들이 위험하오. 상황이 별로 좋지는 않소. 제국은, 정확히하자면 만신전은 악신과 그 종족을 좋아하지 않지. 게다가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 딥원과 같은 종족들이 지금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는지 보시오. 제국과 첩보국은 우리보다 명백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우리를 보호할 명목으로 간신히 만들어두었던 안전거리도 다 따라잡혔소. 제국은 비밀리에 요정을 색출해낼 검사 기관들을 만들어두었고 의심가는 이들을 모조리 검사하고 있지. 건강검진이라는 명목이라던가.』
이온은 침을 삼켰다.
『하지만 우리 현실의 힘은 최후의 방법으로 요정들만이라도 탈출시키고자 하오. 물론 쉽지는 않지. 이 세상에 제국이 지배하지 않는 땅은 없으니까. 하지만 동대륙의 광야나 서대륙에는 사르쵸 의장이 관여하고 있는 세속주의자들의 기지가 남아있소.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제국이 간섭하긴 힘든 곳이지. 비록 우리의 대업은 실패했지만 탈출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적어도 우리의 요정들을 살릴 수 있소.』
이온은 이쯤하여 이 쪽지가 무슨 의도로 자신의 손에 쥐어졌는지 알았다.
『도움이 필요하오. 우리 측 인물들은 모두 첩보국의 시선이 닿고 있지. 알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첩보국이 광대하게 현실의 힘에 대해 간섭하면서, 그대 같은 부외자는 경계가 얕아졌다오. 우리는 당신의 신념에 기대를 걸고 말하는 게 아니오. 단지 그대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람을 도울,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여기 있다는 거요. 우리를 돕고 싶다면 다음 시간, 다음 장소로 나오시오. 기다리겠소.』
쪽지는 간략한 시간과 장소를 언급하면서 끝났다.
이온은 우선 그 시간과 장소가 언제 어디인지를 확인했다.
‘혼잡한 날이군.’
일자는 사르쵸 의장이 오라즌에 도착하는 당일이었다.
다만 장소는 오와델역이라고 하는 오라즌의 구석진 전철역 내부로, 사르쵸의 가두 연설이 있을 중앙 광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르쵸는 자신의 젊은 시절처럼 광장에서의 연설을 사랑했고, 어느 도시를 가든 연설하고자 했다. 사르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이온이 기억하고 있기에, 이번 방문 때 오라즌 중앙 광장에서 사르쵸가 연설할 기회를 내주지 않기 위해 서대륙 의원들과 황실이 대단히 눈치 싸움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문제는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인가.’
그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으니 스스로 생각해야만 했다.
이온으로서는 그리 많이 해본적 없는 일이었다.
이온은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누구에게도 주의를 끌지 않다가, 당일날 새벽까지 고민을 하고, 준비를 한 다음 나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이온은 자신이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느꼈다.
많은 일을 겪고 변화에 휩쓸리면서, 주체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를 주도한 것은 리데였다.
‘이것도 나름 세속주의적인 깨달음인가?’
그럴지도 몰랐다.
오와델역은 번잡했다.
환승역인데다가 오늘따라 유난히 사람이 많아서, 미행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쫓아오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코볼트는 키가 많이 작은 종족이다.
이온은 오와델역 내부에서 기다리다가 자신과 어깨를 부딪히는 사람이 자신의 발치에 서류가방을 놓고 가는 것을 보았다.
“바로 오는 전철에 올라타시오.”
종족도 확인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버리자, 이온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어안이 방방했지만, 그 말을 따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온은 우선은 그 목소리가 이른대로 가방을 들고 전철에 올라탔다.
오와델에서 이어지는 3호선은 오라즌의 빌딩 옆을 지나칠 수 있는 높은 위치로 운행했기에, 전철이 역사를 빠져나가자마자 오라즌의 빌딩 숲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받을 수 있었다.
‘좋아,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지? 가방을 확인해볼까?’
이온은 가방을 슬쩍 확인하려다, 다음 목소리를 듣고 심장이 멎는 느낌을 받았다.
“어?”
이온은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어쩐 일이세요, 이온 씨?”
라민이 알은체 하며 정면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