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이온 이올카프는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크고 거대한 힘이 몸을 아우르고 밀고 당기는 것을 느꼈다. 신이었다. 그 외에는 다른 설명할 방도가 없었다. 전철 밖으로 튕겨나오며 창문이 깨졌지만 이온의 몸에는 한 조각도 닿지 않았다. 몸이 튕겨져 나오며 어딘가에 부닥칠 수도 있었지만 마치 미끄럼틀에서 밀려나오듯 이온의 몸이 부유했다.
이온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가방 손잡이를 꾹 쥐며 끌어안았다. 손잡이를 놓으면 폭발할 수 있다는 라민의 말을 이온은 무의식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촘촘한 바람들이 마치 손에 엉기듯, 이온의 손등과 손가락 사이로 힘들이 모였다.
바람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손바닥 사이로 스미는 것만으로 이온에게 말하고 있었다.
-놓아도 괜찮다.
이온은 불안했지만 이 힘에 의지를 맡겼다.
이온의 손아귀에서 가방 손잡이가 놓이는 순간, 이온은 추락을 시작했고, 폭탄이 든 가방은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솟구쳤다.
불과 2초 남짓한 시간만에 오라즌의 그 어떤 빌딩 보다도 높이 솟구친 가방이 순간 빛났다.
-펑!
가방의 내부에서 터진 폭발이 오라즌의 하늘에서 번쩍였다.
‘…살았어.’
다만 일이 끝난 뒤의 신은 앞에서와 달리 친절하진 않았다.
이온은 상냥하게 끌어올려질 때와 달리 이번에는 전철 안으로 내팽개쳐졌고, 바닥을 몇 바퀴 굴렀다. 의자에 머리를 찧어서 혹이 솟았다.
“괜찮으세요?”
이온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고 고개를 들자 라민이 서 있었다.
“역시 신께선 세속주의자를 별로 좋아하시진 않는 거 같은데요.”
“정말 그랬으면 터지게 놔두셨겠죠. 그리고 다소 불친절한 부분은 아마도, 조금 바쁘셔서 그런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며 라민이 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온이 들고 있던 가방만이 아니었다.
현실의 힘이 이 날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수 많은 폭탄들이, 첩보국과 만신전의 시선에 의해 발견되어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가 폭발하고 있었다.
─┼
“이쪽은 끝냈는데? 남쪽 방향은?”
“여기도… 끝.”
만신전의 신들이 각자 맡은 구역에서의 폭탄 처리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사르쵸를 암살하여 세속주의자들의 입지를 넓히고 만신전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감행하려는 것에 대해서, 만신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천라망으로 들추어진 네트워크 중 이온과 같은 케이스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꽤 많은 정보가 드러나고 그것을 해석하고 정확히 어떤 정보인지를 알아차리고 거짓 정보를 흘리는데에 꽤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되긴 했지만, 불가능한 도전은 아니었다.
성운도 이온에게서 가방을 빼앗아 다시 전철 속으로 처박아넣으며 자신이 맡은 지역을 끝냈다.
‘역시 사전에 막지 않는 쪽이 더 나았어.’
성운은 보이지 않는 악신, 절요와의 심리전이 있었다고 보았다.
천라망에서 드러난 정보들은 너무 많아서, 그 모든 것을 파악하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꽤 많은 정보는 허위로 보였고, 그런 허위 정보는 꼭 현실의 힘이라고 불리는 세속주의자 단체가 아니더라도 천라망을 이용하는 이용자들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있기도 했다. 마치 절요는 이러한 다중접속 네트워크에 익숙한 것 같았다.
‘뭐, 고대에도 핵이 있었다니 인터넷 비슷한 게 있었다고해도 이상하진 않겠지.’
그래서 성운은 첩보국이 일부러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제대로 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속였다.
동시에 다른 일도 진행중이었다.
성운이 보기에 절요는 제대로 된 목적, 즉 승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그러니 천라망에서 발견되는 온갖 잡스러워 보이는 이야기들을 모조리 무시했다.
그대신 절요가 만신전과 제국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그리고 그 일에 부합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일들 중에 천라망에서 은근하게 발견되는 정보들을 추적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미리 추적했다면 발을 뺐을테고, 그 진의를 찾아내기 더 힘들었겠지.’
선제적인 대응을 했을 경우 그만큼 상대의 행동을 더 움츠리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상대의 목적을 모르게 되는 만큼 그게 만신전에 실익을 가져다줄지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얕게 당해주는 척 하면서,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국면들이 존재했지만, 사실 플레이어들은 천라망은 물론이고 각종 사제들과 직업 네트워크에 자신들이 관측할 수 있는 관계망을 이미 뿌리깊게 가지고 있었다. 첩보국의 존재는 이러한 플레이어들이 직접 관리하고 간섭하는 관계망의 드러난 전모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아직 썩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성운은 전철 안에서 혹이 난 이마를 부비며 일어나는 이온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평범한 코볼트 청년이다. 능력치는 그저 그렇다. 혈기왕성하고 금방 좌절한다. 하지만 또 일어선다. 명백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
‘잘 되겠지.’
성운이 크람푸스에게 말했다.
“중앙 광장 쪽은?”
“우리 특공대가 때 맞춰 도착했지.”
성운이 화면을 돌렸다.
오라즌의 중앙 광장이 드러난다.
일단 중앙 광장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넓은 도보를 가진 공원에 가까운 장소다.
뒤쪽으로는 개축된 황궁이 멀리 보이고, 조경된 숲은 수도가 자랑하는 아름다운 장소다. 이 광장은 실제로 중앙 공원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서 특별히 구분지어 부르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중앙 광장 가운데에서는 무슨 폭발이라도 있었는지, 흙먼지가 자욱하다.
여우를 닮은 종족 르나르, 그 르나르들 중 최고의 영웅이라고 칭송 받는 오빈 마브루가 자신의 판초우의를 걷으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오빈 보다도 덩치가 큰 서대륙 의장 버그베어 사르쵸가 연신 기침을 해대며 오빈의 판초우의에서 기어나왔다.
오빈이 사르쵸에게 무어라 말하자, 사르쵸가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총성이 쏟아지고, 몇 발의 총알이 두 사람이 있는 단상으로 빗발친다.
오빈이 사르쵸를 가볍게 타넘어 권총으로 흙먼지 어딘가로 총을 두 발 쏜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인지, 다음 총성이 멎는다.
오빈은 사르쵸에게 연신 아래로 손짓하며 자신의 뒤에 붙이고 단상 아래로 내려간다. 일반 대중들은 도망치기 급급하지만 용기 있는 기자 몇몇이 셔터에 그 광경을 담았다.
‘더 좋은 그림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과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이들이 만신전에 머리를 조아리거나 깊은 신앙을 가지고 따르도록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성운은 그런 일이 불필요한 경직성을 만들 거라고 보았다.
‘그 코볼트만 해도 그렇고.’
성운은 지체 없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구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불만족스러운 경우는 없었다.
─┼
며칠 뒤, 이온은 쪽지를 받았다.
『착하게살자: 무탈하신지. 당일 날은 저도 정신이 없었네요. 신문이나 뉴스를 보셨겠지만 일들이 잘 해결된 듯 합니다.
부상자가 있긴 했지만 경미한 수준이었고, 현실의 힘 쪽에서는 만신전의 광신도들이 사르쵸 의장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루머를 퍼트렸지만, 만신전과 사르쵸 의장의 협력 덕분에 그런 루머는 제대로 퍼지기도 전에 잘 마무리가 되었고요.
이온 씨는 결국 아무 말을 하지 않았어도 야천께서 보고 계셨을테니 괜찮지 않았을까 하셨지만, 저는 이온 씨가 저를 믿고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큰 일이 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아닐수도 있긴 하지만요. 그분은 멀리 보시니까요.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요? 뭐든 이미 정해져있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자신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게 더 낫죠. …신도 답지 않은 말인가요?
믿기 힘드실진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세속주의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신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이 다 결정되어 있다고 믿지 않아요. 그분들도 모르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죠. 저는 아주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이제 잘 압니다. 단지 신과 대적하는 일만이 세속주의는 아니라고 하고 싶었어요.
어쩌면 신들이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보세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다루는데 완전히 능숙하진 못한거죠. 역사 속에서 신들이 벌인 비참한 일들은 그 결과고요. 그들에게 그럴 권리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이 꼭 우리를, 의도하고서 나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스스로의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추신: 여쭤보셨던, 꼭 알고 싶다고 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그 요정은 이번 일과 직접적인 공모 관계가 없어요.』
이온은 마지막 문장에서 안도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딘가 아리송한 쪽지라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길이라고?’
이온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운영체제에서 천라망 창을 내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정리해둔 무수한 자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보니까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과거에 놓쳤거나 오기했던 자료들을 대조할 수 있었고, 새로운 관점에서 따져볼 수도 있었다.
이온은 제대로 출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여러가지 자료들을 다시 확인하고 검토하고 수정했다.
세 번째로 글이 완성 될 쯤엔 논문이라고 불릴만했고, 일주일 뒤에 네 번째 글에서는, 스스로가 보기에 논리가 무결했다.
‘이것 참, 나도 여기까지인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밤을 샌 이온은 눈을 비비며 그 글을 제국항공우주국에 들고 가서 몇 부 복사했고, 언젠가 연구를 보여드려도 괜찮겠느냐 말했던 직원들의 사무실에다 복사한 글을 놓고 그날의 직무를 시작했다.
이온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점심시간으로부터 30분 전이었다.
“행정 2반, 이온 이올데카입니다. 무슨 용무로 전화거셨…”
“나 사이진이야. 자네 어딘가?”
“네?”
이온이 아는 사이진이란 이름은 한 명 밖에 없었는데, 안면을 튼 것 말고는 딱히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사이진 샤트는 여자 드워프로 제국항공우주국 국장이었다.
“어디냐고.”
“저, 사무실로 전화 거신 거 아닙니까?”
“당장 1층 대회의실로 오게.”
이온은 얼떨떨한 부름에, 이런 고위직이 무슨 잔심부름을 시키려나 의아해하며 대회의실로 걸어들어갔다.
대회의실 내부는 조용했다.
상석에는 사이진이 앉아 있고, 그 양 옆으로 이온이 이름만 들어도 알고 있는 학자들이 골똘한 표정으로 추려진 글들을 보고 있었다. 학자 몇 명은 쑥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했다.
사이진이 화를 내듯 말했다.
“그 글 자네가 쓴 거 맞나?”
사이진이 가리킨 것은 탁자 끝에 복사되어 있는, 학자들이 읽고 있는 종이뭉치였다.
이온은 확인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종이뭉치는 아침에 복사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사이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불러왔으니, 검토해보시오. 나는 이대로 황궁으로 들어가서 폐하를 뵈어야겠군. 아니, 이럴 땐 첩보국이 빠른가? 하여간 이놈의 나라는 제대로 된 절차가 없어. 옛날 조상님들은 분명…”
사이진은 궁시렁대면서 회의실을 걸어나갔다.
이온은 사이진이 문을 쾅 열고 나가는 것을 보고 어색하게 학자들을 돌아보았다.
“저, 이게 무슨 일인지…”
이온 보다 다섯 살은 어리면서 항공우주국 천문관측반 반장인 놀 종족의 욜루카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번에 쓰신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달 질량 비교 연구’에 대해 질문이 있는데요.”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네. 아니, 근데 제 글 가지고 이야기하자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있는 건 아닐텐데요? 질문이 긴가요? 저는 행정반에 점심 때까지 끝낼 일이 있는데요.”
욜루카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여기서 못 나가십니다.”
“네?”
“만신전에서 선생님의 논문을 읽었습니다. 제국항공우주국은 물론이고, 제국이, 아니, 전세계의 행방이 여기 걸려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문이 사실이라면…”
욜루카가 다른 학자들을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이온은 그 말을 듣고나서야 뒤늦게 자신의 글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 자각했다.
“…저 달 뒤, 두 번째 달의 악신이 저희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이니까요.”
─┼
저 푸른 창공을 넘어, 만신전의 힘이 닿지 않는 저 어둠 위에, 은빛 달이 네 개의 대륙으로 나뉜 행성 ‘아바르틴’, 잊힌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아바르틴의 달 위엔 폐허 뿐이다.
고대의 존재들은 아바르틴에서 아바르틴의 달, ‘욘다’까지 왔었지만 그뿐이다. 그들의 문명은 끝내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욘다의 그림자 뒤, 두 번째 달이라고 불리는 ‘룸’은 그렇지 않다.
룸 위에서 누군가 탄식했다.
-들통났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