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만신전, 대도서관.
이곳엔 아바르틴의 모든 책, 그 이상이 있다.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엄청난 높이에, 여섯 갈래로 갈라진 길로 책장이 가득 들어차 있다. 높은 책장에 있는 책을 어떻게 뽑아볼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책장의 단 마다 복도와 사다리가 놓여져 있으니까.
덕분에 책을 읽고 운반하는 이들은 마치 사서나 심부름꾼, 학자 보다는 등산가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원하는 책장에서 책을 찾아서 확인하고는 도서관의 위, 아래, 좌, 우를 살피며 자신들이 다음으로 찾아야할 책이 어디있는지 가늠을 하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거나 반대편 복도로 훌쩍 뛰어내린다. 너무 멀다면 잠자리들이 있다.
이러한 도서관은 단순 방사 대칭형이 아니라 각각의 책을 구분하는 대분류에 따라 불규칙하게 뻗어져 있다. 도서관의 가장 높은 자리는 신들만이 간섭할 수 있는데, *지구*라는 대분류 서가로 필멸자들은 들어설 수 없는 공간이었다.
성운은 지구 서가에서 시집 한 권을 뽑았다가 다시 제자리에 넣었다. 플레이어 중 누군가가 기억만으로 복원해낸 시집이었다. 도서관이라고 불리고 있긴 하지만, 모든 도서들은 그 형태가 책으로 존재할 뿐 시스템에 의해서 유지되는 색인이 있었고 각 페이지의 문장까지 검색이 가능했다. 시집을 다시 제자리에 둔 이유는 별로 관심 있는 책이 아니라는 것도 있지만, 기다리던 이가 생각보다 빨리 왔기 때문이었다.
“달이 하나 더 있을 가능성 자체는 이미 알고 있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다가온 것은 플레이어 제롬이었다.
제롬은 플레이어들끼리 모여있는 작은 소모임 중 하나의 모임장이었는데, 그 사실 자체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은 각자 취향이나 성격이 맞는 사람들끼리 잘 모여서 다녔고 적당히 그런 모임을 빌미로 자주 보게 되면 성운에게 이런 모임이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그런 소모임에 서넛 이상 중복 가입 되어 있고, 어떤 사람들은 해당 소모임의 모임장 명목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다.
성운만해도 화초와 동물 키우기 모임, 프로그래밍 공부방, 게임 제작 동호회의 회원이었고, 소모임 중 가장 많은 가입자가 있는 종합 무술 모임과, 오로회라는 고풍스런 이름이 붙은 바둑과 같은 보드 게임 모임의 모임장이기도 했다. 성운은 만신전에서 취미가 아주 적은 편이었다.
제롬은 여러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외형이었다. 이마 부분은 두 권의 넓다란 양장이 책등을 보인 형태며, 코 부분은 콧등이 툭 튀어나오도록 만들었고, 콧수염은 펼친 책배가, 머리칼과 수염은 아래로 늘어뜨린 책배의 흰 종이들이 드러나 있었다. 그래서 제롬은 책으로 만들어진 노옹(老翁)처럼 보였다.
제롬은 옛 컨텐츠 복원팀, 아바르틴 고전문예반, 그리고 아바르틴의 고대역사 연구반의 모임장이었다.
성운은 플레이어 커뮤니티에 이온 이올카프가 증명해낸 두 번째 달에 대해서 정보를 알고 있을만한 사람을 찾았고, 곧장 제롬이 온 것이었다.
“달에도 문명이 있었던 건가?”
“우리가 보기엔 아마도.”
“나는 왜 몰랐지? 어, 우리 사이가 그렇게 친한 건 아니지만, 엘다르도 그… 설정 오타쿠 모임 아니었나? 엘다르가 나한테 먼저 귀띔을 줬을텐데. 나는 그 설정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못했어.”
“아바르틴의 고대역사 연구반.”
“그래, 그거.”
제롬이 턱수염을 만진다. 책 페이지를 스르르 넘기는 것이다.
“흠, 아바르틴의 고대역사는 신화와 전설과 실제 사건이 겹쳐져 있으니 정확하게 알 수 있는건 아냐. 우리 연구반에서 아바르틴 관련 자료를 조회하면 시스템 창에서 겹낫표 안으로 뜨니까 우리는 보통 ‘겹낫표 자료’라고 부르는데, 겹낫표 자료들 중 대부분은 현실과 신화를 섞어서 서술하고 있어. 그리고 그 부분은 사실, 지금과 같지. 사람들은 기적을 보면 사실을 적시해도 과장처럼 느낄 수 있으니까. 반대로 과장을 해도, 우리가 생각하기엔 그냥 영역의 힘을 쓴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마법일 수도 있고, 어쩌면우리가 모르는 과학 기술일지도 모르지.”
“구분이 쉽지 않다는 거군.”
“그래. 그래서 두 번째 달의 존재가 있다고 말해도 그냥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성운이 고개를 틀면서 질문했다.
“문제는 우리쪽에선 아직 관측이 안된다는 거지.”
만신전의 힘은, 로스트 월드의 세계, 즉 행성 ‘아바르틴’의 대기권에서 좀더 벗어난 자리까지였다.
그곳부터는 만신전의 ‘시스템’이 작용하지 않는다.
온갖 영역의 기적들도 아바르틴의 대기권 이내에서만 작동할 뿐, 일정한 높이부터는 신들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헤게모니아와의 마지막 게임도 그랬었지.’
그때 성운은 편법을 썼었다.
인공위성을 궤도 위로 띄웠고 거기서 가능한 투사 무기로 헤게모니아를 공격했다.
그 시점에서도 대단히 생경한 전법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허를 노리는 수였기에 헤게모니아는 당했고, 패배했다.
플레이어들은 로스트 월드의 모든 장소에 자신의 힘이 닿는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명백한 한계 안에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한계는 그리 중요한 점도 아니었다.
애초에 아바르틴 밖에 대해서는 플레이어들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적은 늘 행성 표면이 있었으니까.’
성운이 질문했다.
“그래서 두 번째 달이 뭐야?”
제롬이 말했다.
“두 번째 달이 뭐냐고 하면… 태양이 세계와 생명을 의미하고 달, 정확히는 첫 번째 달 ‘욘다’는 주기와 흐름을 의미하지.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일반 상식에 부합해. 평범하게 하나의 행성은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으니까 생명이고 달은 일정하게 아바르틴을 도니까 주기를 뜻하지. 다만 이런 뜻풀이는 신비성을 주입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좀더 상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 그래서 우리는 두 번째 달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두 번째 달은 뭘 의미하는데?”
“종말.”
성운이 흥미롭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징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군.”
“이제와서 신비주의나 상징성을 제외하고 보자면 ‘룸’은 옛신들의 최종병기 중 하나였어. 너무 능력이 많아서 우리 연구반은 그냥 종말을 의미하는 총합적인 힘이겠거니 싶었지만.”
“플레이어들이 가진 영역의 힘처럼 말인가?”
“그렇지.”
“두 번째 달인 ‘룸’이라는 게 그 정도야?”
“실질적으로 전쟁을 끝냈으니까.”
성운은 로스트 월드의 대략적인 설정을 기억해냈다.
세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자료는 아주 오래전이라서 알 수 없다.
마치 지구의 창세신화처럼 누가 창조했다거나 누구와 누구의 자식 사이에서 누가 나왔다거나 하는 식으로 복합적으로 이어져있고 정확히 무엇이 맞는지도 모른다. 종족별로, 그리고 같은 종족이라도 지역별로 다르기도 해서 그 정도의 고대 이야기는 플레이어들도 거의 알지 못했다. 이를 아바르틴의 고대역사 연구반은 ‘고대 신화’라고 정했다. 고대에 있었으면서 동시에 신화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옛신’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나타났다.
물론 이들이 등장한 때에는 옛신이 아닌 그저 ‘신’이라고 불렸고, 예의 창세신화나 고대 신화에서 신이라고 불렸던 이들이기도 했다. 그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모습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이름을 그저 빌리고 나타났을 뿐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옛신들과 수 많은 종족들은 잘 지냈고, 고대 문명을 이룩하면서 문명의 절정기를 이루는듯 싶었다.
‘과학 발전은 대단히 느렸을 거라고 했던가.’
많은 것들이 신들의 힘에 의존되었기 때문에 과학과 같은 기술 발전에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성운은 그렇지 않더라도 다들 잘 살 수 있긴 했겠거니 싶었다.
그 대신 이들은 예술과 문화를 발전시켰고 각 종족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국가 이상의 협력체를 조성하기도 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큰 전쟁이 있었고 옛신들 사이도 마냥 좋지는 않았다.
이런 시기가 대략 ‘수 만년’ 정도 이어졌다.
플레이어들은 각 종족의 말들이 거의 겹쳐져 공통어가 된 것이 이런 시기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했다. 공통어는 성대를 가진 종족 부터 아스타시디안처럼 별도의 발성기관을 가진 종족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소리 법칙을 가지고 있었고, 세밀한 언어들까지도 정확하게 뜻할 수 있게 정교했다.
‘지구와 비교하면 놀랍긴 하지만, 특별히 행성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야.’
거기다 그 옛신들이 플레이어와 같은 수준의 능력, 하다못해 비슷한 능력만 있었더라도 굳이 그렇게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다. 특별히 능력을 키울 것도 없이 그저 기나긴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신의 힘으로 해결한다.
‘그럼 그걸 평화롭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설정에서 이는 ‘옛신의 세기’라고 부른다.
수 만년, 그러니까 그 사이에 사는 개인들에게는 거의 영원이나 다름없는 시간일 것이다. 여러 과학적 증거에 따르면 그때나 지금이나 종족들의 기대 수명은 엇비슷했다.
하지만 아바르틴이 정말로 영원히 평화롭지는 못했다.
마법이 나타났다.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마법의 등장은 옛신의 세기 수 만년을 모두 더한 것보다도 많은 기록을 남겼다. 고대 유적이라고 하더라도 그만큼 최근 기록이라는 말이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압도적이었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들은 신에 대적할 정도는 아니지만, 신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독자적인 무리를 형성하고, 옛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따르기도 했다.
설정에 따르면 그것은 ‘악신’의 전조였다.
‘고대의 악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세계가 꼬인다.’
고대의 악, 즉 악신은 옛신이 지배하는 세상을 빼앗으려고 들었다.
악신들은 수 많은 종족들을 회유하고, 공동체를 점령했고, 신들은 어째서인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수 만년에 이른 평화가 만들어냈던 유산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세계는 갈등 아래에 놓였고 이들은 당장 지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이길 거라는 확신 없이 남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신들은 다른 방법으로만 악신에 대적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찾은 게 과학.’
기술 문명 발전의 토대는 갖춰져 있었기 때문인지 플레이어들의 발전 속도만큼 빨랐다.
중세시대의 기술 수준으로 수 만년을 보냈던 행성은 불과 수 백년이 안되는 시간 동안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신들의 힘으로 부족했던 부분들을 메꾸자 악신을 대적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악신의 등장과 함께 수 백년을 보낸 전쟁에 마침표를 찍는다.
“룸이라는 게 그 전쟁을 끝낸 최후의 무기였다는 건가?”
“그래. 굳이 부르자면 우주선? 이라기보다는 엄청 거대한 인공위성인가? 뭔가 광선 같은 것도 쏠 수 있고 요격기도 날려보내고.”
“하지만 수 백년만에 그런 걸 만들었다고 보긴 힘든 것 같은데. 우선 달에 도달하려면…”
“아, 그 부분을 이야기했어야했군.”
제롬이 말했다.
“과거에는 신들의 영역이 저 행성 대기권 이내가 아니라, 달까지였어. 그래서 신의 힘을 잘 이용하면, 개체들을 달까지 보내버릴 수도 있었지. 흔한 일은 아니어서 기록에 잘 남아있지는 않고, 아까말했듯이 그냥 상징적인 장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다면… 아마 달 뒤쪽에서 악신들이 관측하지 못하게 하면서, 옛신들이 조금씩 자원과 사람을 달로 이동시켜서 완성했겠지.”
“처음부터 비밀무기로 만들어졌단 말인가?”
“그래.”
성운은 납득했다.
행성 위에서는 악신들과 싸움으로 시선을 끌면서, 악신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장소에서 무기를 만들어 뒷통수를 때린 것이다. 애초에 비밀무기를 목표로 했으니 그게 지금까지 남아 있는 동안 발견 못한 것도 이상하진 않다.
제롬이 말했다.
“꽤나 요주의를 했던 모양이야. 고대 유적 중에 보면 정말 뜬금 없는 자원 중에 ‘월석’ 같은 게 있잖나? 아마 달 뒷면을 파내서 이 땅으로 옮겨왔던 거지. 덕분에 플레이어들은 고대 유적에서 연구 자료 말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황당한 자원이나 발견하는 거고.”
하지만 질량을 어떻게든 맞췄더라도 두 번째 달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인공 건축물이라면, 관측 방법이 정밀해질 때 들통날 수 있다. 이온 이올카프가 찾아낸 것처럼 말이다.
“두 가지 질문이 있군.”
“좋아.”
“하나는 역사에 대한 질문인데, 결과적으로 옛신은 전쟁에서 승리했으면서 왜 사라진 거지?”
제롬이 가로저었다.
“그건 몰라. 두 번째 달을 사용하고 세상이 너무 황폐해졌기 때문에 그랬으려나? 악신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모든 문명과 건축물을 부숴버렸다는데, 그냥 다 관두고 싶어졌을지도 모르지. 그 다음 문명의 재건자로서 우리를 소환한 거고.”
“그런데 다시 고대의 악이 나타나버렸다?”
“아마도?”
썩 마음에 드는 답은 아니다. 어딘가 엉성하고 애매하다.
‘어차피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성운이 손을 내저었다.
“다음 질문은 이거야. 답을 가지고 있길 바라는데….”
“준비는 다 해왔어. 기대해도 좋아.”
“두 번째 달이 지금 악신의 손에 들어갔다면,”
“응.”
“왜 놈들이 당장 우리에게 사용하지 않지?”
제롬이 검지를 들어올렸다.
“내가 기대하던 그 질문이군. 정답은 ‘인과율’이다.”
“인과율.”
“우리 플레이어가 알고 있던 과학 지식을 그대로 개체들에게 알려줄 수 없었던 것과 같아. 두 번째 달 룸은 ‘인과율 밖’에 있는 물건이야.”
“현재 과학 기술과 문명의 레벨을 넘어선 물건이란 말이군.”
성운은 곧장 이해했다.
인과율 밖에 있다면, 그걸 인과율 안으로 들이기 위해선 그만큼 신앙을 소비해야만 한다.
“놈들의 신앙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그건 당장 어려울텐데.”
“놈들?”
“우리가 발견한 ‘절요’는 요정 종족을 수하로 부리고 있지. 하지만 너의 말대로라면 한놈이 더 있어. 인과율 밖에 있어서 플레이어 목록에 안 뜨고 있을뿐이지.”
“아, 확실히 그렇겠군. 흠, 플레이어 둘로도 힘들겠지. 샤차를 포함해도 셋이니까. 검은 교단은 세가 너무 줄었고.”
제롬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성운은 그대로 제롬이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제롬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과율을 넘을 다른 방법도 있지 않나?”
“무슨 방법?”
제롬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수 십년 전과 달리, 이제와서 천라망에서 활동하는 오크 랩퍼의 음원을 내려받는 일은 딱히 인과율 위배가 아니지. 과학 기술이 그만큼 따라왔다면, 놈들은 필요한 것보다도 훨씬 신앙을 덜 소모하고도 인과율을 넘어올 수 있어.”
“계산이 복잡하겠군.”
“꼭 그렇진 않아. 역사책에는 늘 답이 있으니까.”
제롬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직접 쓴 것 같은 메모들을 뒤적였다.
“물론, 아주 명확하다고 하진 않겠어. 어림 계산이야. 하지만 ‘고대의 전쟁’ 최후에 옛신의 문명이 이루었던 과학 기술 수준에 대한 몇 가지 지표가 있어. 우리 문명이 그 수준에 도달하면, 그때와 동일한 수준의 인과율이라고 할 수 있겠지.”
“우리가 발전을 멈추더라도?”
“멈추는 걸론 부족하지. 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아도, 양적으로 늘어나니까. 우리의 악신의 개입을 막아내려면, 멈추는 게 아니라 되돌려야할 거야.”
성운은 이제 그러진 못하리란 걸 알았다.
문명의 수준을 글자 그대로 되돌리더라도, 악신이 신성을 모으는 속도보다 느리다면 결국 두 번째 달을 맞이해야만 한다.
‘그보단 어떻게든 룸이 모습을 보이기 전에 대처를 해야겠지.’
성운이 질문했다.
“좋아, 제국은 궤도 밖으로 로켓도 꽤나 쐈고, 시험적인 인공위성도 존재하지. 하지만 당장은 달에 도달하기는 커녕 달 뒷면에 있는 거대 구조물과 싸울 여력은 없어. 우리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지?”
제롬은 자신의 턱수염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담담히 답했다.
“3년 3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