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일곱 시간 뒤, 남방 대양에서 발견된 로켓 내부에 삐익삐익 울고 있는 세피가 발견되었다.
세피는 다소 어지러움과 탈진 증세를 보였지만, 생명은 지장이 없었다.
다음 로켓이 쏘아지고, 기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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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항공우주국 내부 1층 휴게실.
1층 휴게 공간은 측면에 내부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전면 유리로 몇 층이나 솟아 올라 넓은 개방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지금 휴게실에 단 한 명의 사람이 앉아 있음에도 이온은 그리 넓어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낌이 든다기보다, 실제로 그렇지 않나?’
첩보국 요원이자 오우거 만도 훼사의 역삼각형 몸매는 그 어깨 넓이만 하더라도 트롤이 넷은 바투 설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그 외향 덕분에 첩보국의 비밀스런 임무에는 차마 참가할 수 없기에, 첩보국은 만도에게 각종 홍보지에 첩보국의 얼굴로 써먹기도 했었다.
만도의 이른바 ‘신화적인 거구’는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아보았다.
몇 개월이나 같이 여행을 다닌데다 딱히 모른 척하고 지나갈 사이가 아니기도 하지만, 멀리서도 잘못보고 인사하지 못한다는 건 불가능한 체구이기 때문에 이온은 만도에게 곧장 걸어갔다.
“오랜만입니다, 만도 씨.”
“오, 이온 씨. 반갑습니다.”
“라민 씨를 기다리는 건가요?”
“아, 네.”
“라민 씨는 우주인인데도 바쁘네요. 다른 사람들은 우주인 훈련을 받는 것만해도 벅차하던데…”
그 말에 만도가 깎아만든 것 같은 단단해보이는 턱을 긁었다.
“흠, 글쎄요. 그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더이상 훈련할 게 없으니까요? 곤란해하는 건 공부 정도일 것 같은데.”
“어 그런가요?”
“라민 선배가 저보다 훨씬 셉니다.”
“그야 뭐 선택받은 자니까요?”
“그런 힘을 빼고도요. 물론 단순 육체적인 힘만 말하는 건 아닌데.”
이온이 썩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만도의 겸양이 지나치다고 느낀 것이다.
만도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아주 오래 산 뱀파이어라 그렇습니다.”
“그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요. 뱀파이어는 뱀파이어 아닌가요?”
“뱀파이어는 최초의 뱀파이어 마왕 샤이븐을 1세대로 해서 다음 포옹을 하게 되면 2세대, 그렇게 4세대까지 나뉘는데, 라민 씨는 4세대죠. 일반적으로 1세대는 오우거만큼이나 강인하지만, 4세대는 포옹할 능력도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럼 약한 거 아닌가?”
“하지만 피를 많이 마시면 이전 세대만큼의 힘을 회복한다고 해요. 최근 연구라서 거의 알려지진 않았지만 포옹도 가능하고, 이론적으로는 1세대 이상의 힘도 가질 수 있다고 하죠. 오래 산 뱀파이어로 유명한 휘경 같은 분들도 단순히 신의 힘으로 이해되지 않는 용력을 발했다고 합니다. 비슷하겠죠.”
이온은 그런가보다 생각하면서 말했다.
“몸이 튼튼하다니 다행이네요. 공학반에선 걱정이 많거든요.”
“공학반? 로켓 공학반 말입니까? 이번에도 세피가 살았다면서요? 정말 굉장하지 않습니까? 이건 기밀 사항입니다만, 첩보국에서도 로켓 쏠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를 합니다. 세피가 생환할 때까지 잠도 못 자는 친구도 있어요.”
이온은 반쯤 농담으로 듣고 웃었다.
“저희도 기도합니다. 저희 잘못일 수도 있거든요. 계산이나 유도가 잘못되면 로켓에 치명적이니까요. 아, 저는 잠깐 천문반에 차 가지러 온 건데 이제 차 받아서 올라가야겠네요.”
“예, 수고하십시오. …아, 잠깐.”
몸을 돌리던 이온이 만도를 돌아보았다.
만도가 말했다.
“그렇잖아도 선배한테 말해줄 것이 있는데 이온 씨에게 바로 말씀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죠?”
만도가 목을 크흠 가다듬었다.
이 오우거는 덩치에 맞지 않게 쑥스러워할 때가 있다.
“요정들 말입니다.”
“요정이요.”
“리데 오보렌을 포함해서.”
이온은 지난 몇 개월, 오랜시간 리데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이름을 들으면 설레었다.
생각해보면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눈을 감으면 함께 있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별안간 스치고 지나가니까.
묻고자 하는 질문과 듣고자 하는 답이 교차하며 이온은 리데와 헤어지기도하고 다시 만나기도 한다. 이미 머릿속으로 헤아리지 못할만큼 그렇게 했다.
이온의 상념을 읽을 길 없는 만도가 계속 말했다.
“전향하고자 하는 요정들이 있습니다.”
“…전향이라 함은?”
“자신들의 신인 악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거죠. 요정들은 평생을 신앙으로 살았지만, 악신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여기거나 의심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요정과 같은 이들은 사회에서 숨어 살아야하니 맹목적인 신앙을 따르기도 하지만, 수감 생활이 길어지고 제국이 멀쩡하니 믿음이 흔들리기도 하죠. 물론 구체적인 이유야 저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뜻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은 확실히 있습니다. 저희 첩보국이 노력한 것도 있고요. 요정들 중에는 다른 종족이 가족이나 친구인 경우도 많습니다. 모두를 배신할 수는 없죠.”
이온은 많고 많은 할말 중 하나를 겨우 골랐다.
“그럼 리데도…?”
“전향 희망자 중 하나입니다.”
“밖으로 나오는 겁니까? 곧장?”
만도가 가볍게 손바닥을 보였다.
“모든 전향 희망자가 바로 나올 수는 없습니다. 요정의 숫자가 제법 되거든요. 그리고 그들 중에는 여전히 악신을 따르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차적으로나마, 중요도가 있는 사람부터 나올 겁니다. 그리고 리데 오보렌 씨는 로켓 공학자로 우선 순위가 상당히 높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만도 씨.”
만도와 헤어진 이온은 그날 일과를 보내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지. 리데는 날 속였어. 내 연구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고자 했잖아.’
하지만 이온은 리데를 마주보기 전까지는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단정짓기 힘들다고 보았다.
때문에 만도의 이야기는 단순히 리데를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서성이는 마음을 바로 잡을 기회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온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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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전, 회의실, 상황반.
“이건 확실히 예상대로군.”
플레이어 ‘리처드’가 자신의 화면에 머리를 박아넣듯 가까이 디밀며 중얼거렸다.
왕의 예식용 갑옷처럼 전신의 금과 은으로 장식된 풀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모습이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명백한 적군이다.
이 적들은 아주 깊은 심해에서 왔고, 오랜기간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 동향을 볼 때 악신들이 언젠가는 움직일 것이라는 건 명백했다.
요정들의 전향이 그 계기였다.
인과율에 묶인 미지의 악신과 요정들이 모두 붙잡힌 절요와 달리 그나마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샤차가 행동할 거라는 건 명백했다.
시기의 문제일 뿐인지라 상황 근무를 서는 플레이어들이 오라즌 앞바다를 예의주시 하리라는 것은 최근 계속 강조되었다.
리처드가 말했다.
“내가 말했었지? 응?”
“야, 오늘 올 거란 건 내가 제일 먼저 말했었거든?”
그 뒤에서 슬리퍼를 발끝에 매달고 덜렁이는 임춘식이 대꾸했다.
리처드는 금새 수긍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아. 이제 어떻게하지?”
“뭘 어떻게 해?”
“우리가 저걸 박살내도 괜찮을까?”
그 뒤에 두정갑을 입은 솔롱고스가 중얼거렸다.
“큰형님께 보고 하셔야죠.”
“악! 나도 좀 싸우고 싶단 말이다! 그놈한테 말하면 중요한 문제라면서 홀라당 낚아채서 박살낼건데!”
임춘식이 코웃음을 쳤다.
“그럼 네뷸라보다 잘하던가.”
“나도 전혀 못하는 편은 아닌데. 마지막 달엔 100위 안에도 들었었다고.”
“최다 1위한테 그걸로 자랑하긴 좀 그렇지.”
투덜대던 상황반 세 사람 중 솔롱고스가 먼저 연락을 넣었다.
솔롱고스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까딱였다.
“흠?”
리처드가 휙 돌아봤다.
“뭔데?”
“어, 큰형님 지금 엄청 바쁘다고, 지금 상황반에서 알아서 하랍니다.”
“진짜? 왜 바쁘지?”
“오라즌 쪽 공격 자원 다 털어도 된다고 하시는데요. 그대신 신앙은 5%까지만.”
“뭐?”
리처드가 두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 정도면 세계 정복도 할 수 있어!”
“막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알아. 막기. 디펜스.”
리처드가 자신의 얼굴에 두 손을 묻고는 말했다.
“드디어 전쟁 같은 전쟁을 할 수 있어.”
“상대는 잘 쳐줘도 해적 수준인데?”
“내가 헤게모니아랑 싸울 때 어떻게 졌는지 말해줬었지 않냐?”
“…그래.”
“그에 비하면 샤차 정도면 나와 겨루기 적당한 적이지. …와, 와, 나 감동했어. 이거 봐.”
임춘식은 멋드러진 갑옷을 입고 행동은 초등학생과 다르지 않은 이 전투광을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봤지만, 리처드의 손끝이 닿은 자리를 보고는 자신도 조금 감동했다.
“엄청난 걸 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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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도시 오라즌 앞바다.
거친 풍랑과 함께 흔들리는 항구로, 먼 바닷길을 돌아온 딥원 부대들이 작살총으로 무장하고 나타났다.
온갖 대양에서 무리지어 모인 이 검은 교단의 사제들은 최후의 최후까지 남은 최정예들이었다.
이들을 이끄는 딥원 최후의 추기경 세락토는 자신의 사제들을 재정비시키고 말했다.
‘불과 한 개 사단 병력이나 모두 정예다. 위대하신 심광의 힘으로 놈들은 아직 우리 위치를…’
세락토의 바람과 달리 거대한 폭음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박격포로 발사된 조명탄이었다.
시커멓던 하늘이 느닷없이 해가 떠오른듯 청색으로 변했고, 수 십 개의 자그마한 인공 태양들이 오라즌의 앞바다를 밝혔다.
추기경 세락토는 당황했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정도는 알았다.
“엄폐하며 이동하라! 우리에겐 심해의 증오가 함께하리!”
이들의 목표는 단순했다.
오라즌을 박살낸다고해서, 이들이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제국항공우주국을 박살내면, 수 많은 일들을 지연시킬 수 있다.
두 번째 달이 제때 올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 이들의 임무였다.
“두 번째 달을 부르리라!”
조명탄 사격 직후, 초탄 박격포가 그대로 항구에 내려꽂혔다.
그대로 부대 하나가 불길에 휩쓸려나가려는 순간, 깊은 바닷속에서 검은 촉수 하나가 솟아나 폭격을 막아냈다.
살아남은 딥원들이 외쳤다.
“증오다! 우리의 증오가 왔다!”
이윽고 거대한 촉수들이 포격을 막아내며 딥원들을 지켰다.
핵공격으로 멸종했다고 알려졌던, 마지막 크라켄이었다.
거대한 촉수들은 그대로 항구의 배들을 밀어내고 끌어당기며 딥원 부대가 오라즌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크라켄은 강 하류를 따라 제 몸을 끼워넣으며 딥원의 지원을 시작했다.
크라켄의 질량으로 강둑으로 넘치는 물들 때문에 하수구가 역류하고 물살이 저층 지대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그 사이로 딥원들이 숨어들었다.
아주 멀리, 갑옷을 입은 플레이어가 오라즌을 내려다보았다.
“최후의 크라켄이 겨우 이 정도라니!”
리처드의 웃음소리 뒤로, 오라즌을 내려다보고 있던 거대한 산 하나가 흔들렸다.
이윽고 산으로만 보였던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강 하구로 기어내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