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그럼 너도 다른 친구들과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다.
-…이 방법 뿐이야.
절요는 알고 있었다.
샤차가 말한 ‘이 방법’은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을 말했다.
시스템에서는 ‘현신’이라는 스킬이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악신들에게 있어서는 제약되어 있던 본모습을 드러내는 힘이었다.
악신들의 현신은 강하다.
지상에 현신할 때마다 그 어떤 두려운 적도 없었다.
드래곤들 조차도, 심지어 ‘옛신’들 조차도 악신들이 땅 위에 군림할 때마다 어떻게든 막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새로운 신’들은 다르다.
뷀도, 절우비도 그렇게 당해버릴 거라고 생각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샤차는 후회했다.
‘힘을 더 모았더라면. 좀더 놈들을 두고보면서 많은 걸 배웠더라면.’
절요가 말했다.
-놈들을 이길 수는 없다.
샤차가 고개를 돌린다.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건 두 번째 달 ‘룸’ 뿐이고, 이 모든 건 룸을 위한 계획일 뿐이지. 룸이 오면, 우리가 이겨.
점액질이 가볍게 흔들린다.
-…내 오랜 친우여…
친우라는 말에 샤차는 어깨를 떨었다.
과거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절망스러운 결과 뿐이다.
최후의 최후까지 믿고 있었던 두 번째 달 룸 조차도, 들통나버렸다.
당장은 놈들이, 만신전이 룸을 어떻게 대적할 것인지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만신전은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만 믿었던 일들을 몇 번이나 해내었다. 저들은 진정한 괴물이다.
-룸이 오면 승리할 거라는 그 말을, 확신하는가?
-….
-…확신하지 못하고 있구나.
점액질이 말한다.
-…룸이 제때 도착하더라도 저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오랜시간 보아왔고, 그 어떤 단언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룸과, 룸을 기동하는 그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
-우리는?
절요가 말했다.
-숨고 도망가자.
-….
-룸과는 이미 연락이 닿았다. 그는 이미 우리를 용서했다. 새로운 신들이 우리를 추적하지 못할 때까지, 최후의 최후까지, 남은 비석을 다 해체할 때까지, 시간은 남아있다. 그때까지는…
-…그게 우리의 끝인가?
절요는 한참이나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말한다.
-그래. 그게 우리의 끝이다.
-…싫어.
-받아들여야 한다.
-…죽고싶지 않아.
-안다. 하지만 오랜 친우여, 알지 않는가….
절요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우리의 아이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
-저들은 비록 괴물이지만, 응. 그렇지. 저들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괴물이지. 하지만 적어도 옛신들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건, 알아.
절요가 말했다.
-우리는 패배했고, 받아들여야 한다.
-…알겠어.
더 과감한 짓을 벌일 수도 있다.
현신한 모습이라면 샤차는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이 불쾌한 과정으로 소통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아마 적들은, 만신전은 분명 거기까지 내다보았을 것이다.
자신이 강하다고 믿고 있지만, 만신전의 새로운 신들은 그보다 훨씬, 훨씬 더 강할 것이다.
운이 나쁘다면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고서 봉신 될 것이다.
그리고 그저 과거에 존재했다는 흔적으로서 동상으로 남아, 저들의 전리품으로 소비될 것이다.
-그 끔찍한 최후에 반항조차 하지 못한다는 건가.
절요가 긍정한다.
-그래.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적들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이 아직 저기 남아 있으니까.
샤차는 시스템 창을 닫았다.
그리고 오라즌의 풍경을 오랜 시간 내려다본다.
다시금 해가 떠오를 때까지.
두 악신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
“그분은 요즘 바쁘십니다.”
만신전의 주인인 야천은 심부름꾼을 따로 두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플레이어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엘다르의 말에 따르면 ‘뭐든 직접 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렇다’는 이야기에도 동조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룬다의 말로는 ‘그 자식은 다른 사람 전부를 심부름꾼으로 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에도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야천에게도 심부름꾼 비슷한 건 있었고, 그것은 ‘비온’이라고 불리는 창조물이었다.
비온은 꽤 오래전부터 만들어졌고 특별히 야천에게 봉사한다기보다는 그냥 만신전의 이런저런 잡무를 총괄하는 역할, 즉 집사에 가까웠다. 다만 그런 역할이다보니 덩달아 야천의 말을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자리에 있었고 야천의 심부름꾼이라는 인식도 일반적이었다.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 쓴 비온 앞에 있는 것은 플레이어 ‘레드마스’였다.
검은 정장 위에, 닉네임처럼 머리통이 붉은 화성 모양인 레드마스는 로스트 월드 게임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랭크 게임도 몇 차례 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제1 대륙 통일 전쟁에서 빠르게 탈락한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자신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건지 레드마스 스스로도 의아했지만, 그래도 레드마스는 자신이 잘 적응했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신전의 플레이어들 중에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없었고,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도 봉신된 플레이어들을 모두 되살려낸 네뷸라의 선택도 좋았다.
그래서 만신전을 위해서라면 많은 일들에 대해서 의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 문제가 좀 있었다.
“성역에 있는 건 맞지?”
“가시면 만나 뵈실 수는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플레이어를 만나는데 제약 같은 건 없다.
만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네뷸라는 만들어두지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느냐하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레드마스가 중얼거렸다.
“근데 짜증낼 거 아냐.”
“…짜증, 음, 어휘 선택에 있어서… 고민을 해야겠지만…, 네. 짜증 내실 수도 있습니다.”
“스케줄이 언제 비는건데?”
“그건 저도 잘…”
“성역에서 뭐하는지는 모르고?”
“달맞이 계획과 관련 있는 걸로 압니다.”
“그야 그렇겠지. 그거 말고는 짱박힐 이유가 없으니까. 구체적인 건 몰라?”
“으음… 죄송합니다.”
레드마스는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레드마스 스스로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신성 레벨은 다른 모든 존재들에게 그 자체로 부담감을 준다.
레드마스의 개인적인 신성 레벨은 만신전 하위권이지만 이것만으로도 플레이어가 아닌 모든 존재들과 아득한 격차를 가진다.
비온이 더듬더듬 말했다.
“그래도 가끔 절 부르시긴 합니다. 혹시 자세한 내용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성역에 불려갈 때 귀띔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아냐, 됐어. 나도 달맞이 계획 때문에 그런 거니까.”
“그렇습니까?”
비온이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자, 레드마스가 말했다.
“아, 도와줄 수 있겠어?”
“제가 말입니까?”
네뷸라에게 부탁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지만, 조직의 정치 공학적으로 볼 때, 네뷸라에게 직접 소통하는 건 쉽지 않다.
레드마스 자신은 만신전 내에서 딱히 나쁜 평가를 받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만신전은 그렇게 안 보여도 나름 계급이 있으니까.’
레드마스는 만신전의 신들의 서열과 사도들, 다른 심부름꾼들 사이의 계급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당연히 네뷸라가 가장 위에 있고, 조금 아래에 위즈덤이 있고, 그 아래로 나름 실력을 갖추거나 평판이 좋은 플레이어들이 또 배치된다.
회의를 할 때 발언권과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정도를 확인하면 알 수 있다.
레드마스 자신은 꽤나 하위였다.
‘사람이 여럿 모이면 다 이렇게 되는 거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단지 나도 향상심을 느낄 뿐이지.’
레드마스는 비온을 들여다보았다.
‘아무튼 최고 권력자에게 접근하기 힘들면, 측근에게 부탁하면 되는 거잖아?’
레드마스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자찬하고 비온에게 말했다.
“시간 좀 있지?”
“네?”
레드마스는 거의 끌고가다시피 하면서 비온을 데려갔다.
레드마스는 회의실로 비온을 데려와서 상태창을 펼치고 보여주었다.
“뭐, 별 건 아닌데 잠깐 내 설명 좀 들어봐.”
레드마스가 보여준 것은 잘 정돈된 차트와 그래프였다.
당연히 비온은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숫자도 아라비아 숫자였다. 비온도 지구의 언어를 어느 정도 습득했고 잘 읽을 수 있지만, 그래도 더 익숙한 것은 만신전의 언어였다.
“이게 뭡니까?”
“아니, 거기서부터 설명해야 되나? 하나하나 보자고. 이건 제국령 지역별 수출입 통계 자료고, 이건 통화량, 이 페이지는 전세계 기업들의…”
“…그렇게 설명하셔도 저는 모릅니다.”
레드마스가 간단히 정리했다.
“이게 진정한 제국의 모습이야.”
“진정한?”
“제국은 자본주의 체제니까.”
비온은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시각을 보고 잠시 생각하는듯했다.
하지만 금융계 직장을 전전했던 레드마스에게는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비온이 질문했다.
“문제는 뭡니까?”
“여기랑 여기, 그래프가 좀 이상하지?”
비온은 레드마스에 대해서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거나 모르거나 그냥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을 대할 때는 가끔 그런 태도가 필요했다.
“흐름이 안 좋아. 엉켜있어.”
“엉켜있다는 건?”
“돈은 자꾸 흘러야 좋은 거거든? 그래야지 시장이 건강해지고? 최근까진 흐름이 굉장히 좋았어. 당연하지. 달맞이 계획이라니, 그런 전세계적인 이벤트에 누군들 안 끼고 싶겠냐고. 심지어 이런 흐름에 방해가 되던 세속주의자며 환경주의자며 다 설득해서 제국이 아니라 아바르틴 전체가 유기적인 생물처럼 변했지. 아주 좋았어. 솔직히 시장에 이런 말을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완벽했다고. 아름다웠단 말이야.”
레드마스가 조금 성이난듯 올라갔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투자도 잘 안하고 주기로 한 돈도 꾸물거리고 생산량도 줄었어. 겨우 몇 달 사이의 일이긴 하지만 전만큼의 활력이 안 난다는 거지.”
레드마스의 말은 무언가의 방해가 있다는 말 처럼 들렸고, 만신전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는 비온의 생각에 많지 않았다.
“설마, 또다른 악신의…?”
그렇다면 큰일 날 문제다.
적이 하나 더 있다면 만신전의 현재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달맞이 계획으론 부족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레드마스가 딱 잘라 말했다.
“아니, 아냐. 이건 그냥 사람의 문제야. 정확히는 자본주의의 문제지. 뭐야, 이거 버팅기고 있으면 다 잘 되는 거 아냐? 굳이 내 돈 투자를 해야 되나? 이런 애들도 있고 지 마음대로 방공호 만든다고 정말 삽질하는 애들도 있고. 괜히 불안해서 일단 저축부터 할까 하는 애들도 있고. 그런데 그러면 안되거든? 달맞이 계획 때문에 만신전의 신들이 다 나름대로 계획을 하는데 거기에는 신앙도 들지만, 그 무엇보다도, 돈이 든다고.”
비온은 이제서야 레드마스가 하는 말의 무게를 감지했다.
“…아주 중요한 문제군요?”
“그래. 그래서 네뷸라를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어, 음. …흠.”
하지만 성운이 바쁜 것도 사실이었고, 대외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성운은 어지간하면 부르지 말라고 비온에게 당부도 했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하필…’
레드마스가 말했다.
“위즈덤이라도 만날까? 근데 위즈덤도 바쁘잖아.”
“그렇죠.”
“아니면 내 마음대로 해도 되나?”
“사실, 달맞이 계획의 일환인 이상 재량껏 하시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마는…”
레드마스는 팔짱을 끼고 고민했다.
레드마스는 자신이 소시민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일을 잘 하고 싶긴 하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지는 건 두렵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비온도 알아보았다.
만신전에 오래 있다보면 플레이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온이 뭔가 떠올라 고개를 들었다.
“아.”
“왜?”
“해결 방법까지는 아니지만 도움이 될만한 다른 사람은 압니다.”
“누구?”
“열 한 번째 사도와는 만나보셨습니까?”
레드마스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게 누구더라?’
이제 만신전의 사도는 서른 명이 넘는다.
관계에 따라 플레이어들과는 데면데면한 관계도 많다.
비온도 직감했다.
‘누군지 모르는군.’
비온은 이해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자기 관심 분야가 아니면 그만큼 관심이 없고, 만신전은 너무 넓다.
어쩌면 비온은 자신이 답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온이 앞장서며 말했다.
“도움이 될 겁니다. 따라오시지요.”
레드마스는 비온을 믿고 뒤따랐다.
만신전의 집사 비온과 플레이어 레드마스는 만신전의 공간을 접으며 이동할 수 있다.
몇 초 뒤, 자신의 방에서 다과를 즐기던 열 한 번째 사도 휘경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플레이어 레드마스를 보고 사레에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