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77
277화
‘그리고 누군가 그 의도를 펼쳤고, 그로 인해서 우리가 이 세계에 온 것이라면, 그 의도를 펼칠 힘도 존재한다.’
알리바이를 가진 존재는 당연히 있다.
‘알딘’이라고 불리는 존재다.
알딘은 플레이어들을 모두 소환했고, 이 게임에 참여시켰다.
‘알딘은 누구지? 그리고 알딘의 목적은 뭐지? 왜 악신들이 참여하고, 네 번째 대륙이 존재하며, 게임의 룰이 바뀌었지?’
의문이 시작된 이상, 성운은 더는 게임의 승리만을 위해서 집중할 수 없었다.
그 이상을 바라봐야만 했다.
과거의 성운이라면 승리하는데 만족했을 것이다.
성운은 승리 기계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승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서로를 대칭으로 앉은 세 존재의 의식 안으로, 순간 심상 세계가 열린다.
‘마법.’
성운은 심상 세계를 바라본다.
이 ‘심상 입출력 기능’은 성역의 힘이 아니다.
마즈다리의 마법으로, 숨겨진 비의를 시각적 이미지로 드러내는 힘이다.
드러낼뿐만 아니라 간섭도 가능하다.
간섭이 가능하다는 말은, 간섭 당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므로, 지극히 위험한 마법이다.
만약 이 마법을 누군가의 악몽에 쓴다면 그대로 악몽에 휩쓸려갈 것이며, 누군가의 욕망에 쓴다면 그 욕망이 시전자를 덮칠 것이다.
다행히도 세 사람이 들어서는 심상 세계는 안정된 세계다.
너무 오랜시간 안정되어서, 거의 죽어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세계다.
이 심상 세계는 부스러지는 검은 모래로 만들어진 황무지고, 이 황무지 위에는 마찬가지로 검은 모래를 뭉쳐 쌓은 토성이 쌓여 있다.
이 토성의 성벽에는 백색의 문이 있는데, 이것이 성운과 마즈다리, 카일이 들어서야할 땅이었다.
백색의 문 위로 그림자가 일렁인다.
‘감시자들.’
마즈다리의 설명대로, 이 감시자들은 수 백 개의 눈이 박힌 길죽한 머리통을 지니고 있다.
길죽한 머리통은 위아래로 짜갈라지는 거대한 입과, 촘촘한 이빨이 있는데, 끊임없이 떨어지는 침으로 보아하니 무척이나 허기가 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토성 너머에서 목만 길게 빼내어 토성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없는지 끊임없이 살피고 있다.
카일이 말한다.
-야천, 이미 보안 프로토콜 해제가 완료 되었습니다.
마즈다리가 말한다.
-야천이시여, 오랜시간 감시자들에게 독이 든 꿀물을 태워 먹였다오.
성운은 고개를 끄덕인다.
심상 세계 위의 성운이 눈을 뜬다.
검은 모래와 검은 토성에서 홀로 선 성운이 천천히 걸어 백색의 문으로 다가간다.
무언가의 인기척을 느낀 것인지 감시자들은 맹렬히 킁킁대고 고개를 두리번 거리지만, 코 앞에 있는 성운을 발견해내지는 못한다.
성운은 천천히 백색의 문으로 손을 가져간다.
-오래 되었군.
성운의 오른쪽 어깨 위에, 자그마한 검은 도마뱀 하나가 올라타있다.
심상 세계의 카일이다.
카일이 답한다.
-이들의 방식은 너무 낡았습니다. 도태 되었지요.
성운의 왼쪽 어깨 위에, 백색의 새가 올라타있다.
심상 세계의 마즈다리다.
마즈다리가 답한다.
-하지만 견고하다오. 그토록 오래 신뢰할 수 있을만큼.
성운은 두 사람의 말이 모두 맞다는 걸 안다.
하지만 성운에겐 이미 열쇠가 있다.
‘긴 시간은… 아니군. 생각보다 빠르게 만들었지.’
성운은 품에서 황금 열쇠를 꺼내든다.
마즈다리는 ‘진리의 황금 열쇠’라고 부르지만, 카일은 ‘해독기’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성운은 이름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
도구는 도구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
열쇠는 문을 연다.
열쇠를 꽂아넣자, 문으로서 작동할 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고대의 문이 저 혼자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눈 먼 감시자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문이 열리고 있는데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성운은 열린 문틈으로 들어선다.
-바로 이곳이…
성운은 문 속에서 폭발적으로 빗발치는 세계의 풍광을 감지한다.
성운은 자신이 있는 심상 세계의 이름을 불렀다.
-‘마계’인가?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지만 정돈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성운의 신성 레벨에서는 불가능한 사고 능력이 아니다.
카일이 말한다.
-정리가 안 되어 있군요. 상대적으로 체계화 하겠습니다. 마즈다리 그 동안…
마즈다리가 답한다.
-놈들에게서 몸을 숨길 길을 찾겠소. 아직 놈들은 몽상에 빠져 있는듯 하니 어려운 일은 아니군…
성운이 손을 내젓는다.
성운은 무수한 이미지 속에서 길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가야 할 길을 찾아내는 중이었다.
-아니, 이미 도착했다.
성운은 마계의 중심에 도착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낯익은 풍경이다.
카일이 의아해한다.
-저건…?
-노트북이군. 저건 퍼스널 컴퓨터고.
백색의 화강암에 이끼가 잔뜩 끼어 있고, 그 위로 서른 개 쯤 되는 서로 다른 모양의 책상이 아무렇게나 놓여있다.
그 책상 위에는 그다지 규칙성도 없는 컴퓨터들이 놓여져 있다.
책상 옆으로는 방금까지도 누군가 앉아 있었던 것마냥 의자들이 놓여 있다.
성운은 수를 센다. 딱 서른 두 대다.
카일이 말한다.
-놀라실 것은 없습니다. 심상 세계의 이미지 출력은 시전자의 심상을 내포할 수 있습니다.
-알아.
성운은 컴퓨터 모니터 하나에 고개를 가져다댄다.
하나의 프로그램이 켜져 있다.
『로스트 월드』
성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우스를 조작해서 정지 되어 있는 현재 게임의 풍경을 훑어본다.
세계는 제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통일 되어있고, 그 제국을 다스리는 것은 만신전이라 불리는 플레이어 동맹이다.
동맹을 이끄는 플레이어 이름은 ‘네뷸라’, 즉 성운 자신이다.
성운이 말한다.
-우리 가설이 맞아떨어졌군.
-놀랍지 않습니다.
-당연한 결과 아니겠소.
성운은 가볍게 늘어지듯 의자에 기대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다.
성운의 의문은 이와 같았다.
‘세상은 게임인가? 게임이라면, 이 게임은 어디에서 돌아가고 있는가?’
소프트웨어라면 당연히 하드웨어가 존재해야 한다.
어딘가 저장되고, 동시에 그 저장된 데이터를 다시금 드러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
외부와 상호작용 가능해야 한다.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한다.’
성운의 답은 간단했다.
아바르틴에 존재하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외부에 존재할 거라고.
아직 만신전의 힘이 닿지 않은 공간에 있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성운은 마계로 통하는 길이라고 불리는 라스다실 폐허를 조사했다.
라스다실을 지켜야 했던 이유는 헤게모니아에게서 패배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바르틴에서 마계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을 지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운은 바로 지금, 마계의 중심부에서 세계가, 아바르틴의 시스템이 세팅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성운은 결론을 내렸다.
‘지구와 아바르틴을 가르는 단 하나의 특이점, 그건 마법이다.’
이어서 진정한 결론에 다다른다.
‘시스템과 신성은 그저 마법으로 만들어낸 고도의 규칙 체계다.’
신이 신성으로 강력한 이유는, 그것이 마법으로 만들어낸 룰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신은 무적에 가까운 존재다.
따라서 본래 아바르틴에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설정된 존재다.
누군가 시스템을 만들었을 뿐이다.
-재밌군.
성운의 기탄 없는 감상을 남기고, 키보드 위로 손을 옮겼다.
-달맞이 계획을 시작하지.
카일과 마즈다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성운은 우선 게임을 내리고, 시스템 제어로 들어선다.
몇 개의 프로그램을 직접 인코딩 하면서 동시에 게임 로스트 월드의 네트워크 망에 직접 접속한다.
성운은 로스트 월드의 시스템에 직접 손을 대고자 한다.
해킹이다.
카일과 마즈다리가 개념 연산자를 부팅하고 이미지 최적화로 불온한 마계의 심상을 성운이 이해할 수 있는 로직으로 개념화한다.
수 초 뒤, 작업이 종료한다.
성운이 선언했다.
-계획은 끝났다.
카일이 질문한다.
-달맞이 계획 말이지요? 이제 달 구경을 가실 겁니까? 아니면…
마즈다리가 제안한다.
-몽혼에 잠든 옛신들이 아직 저 아래 꿈틀거리고 있으니 여기에서 좀더…
성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누군가 엿보려고 하는군. 떠나겠다.
성운은 그대로 사라진다.
마계의 문이 조심스럽게 닫히고, 문의 감시자들은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고서 누가 나갔는지도 모른다.
성운이 사라진 자리로 그림자 하나가 황급히 다가온다.
그림자는 두리번 거리다가, 컴퓨터들을 체크한다.
무언가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림자는 서성이다가, 천천히 멀어진다.
컴퓨터의 쿨러 하나가 한숨을 쉬듯 빠르게 회전했다가 다시 제 속도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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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마법사들이 제국항공우주국에 도움이 된다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바세니올 마탑의 현 마탑주, 엔트 탈레이가 스크린 너머로 인사하자 우주국 사람들 모두가 환호했다.
서로 친하지도 않은 직원끼리, 서로 낯섬도 잊고 모두 부둥켜 안거나 손을 마주쳤다.
대화를 진행중인 요정-예티이자 로켓 공학자 리데 오보렌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럼, 저희 일정에 맞춰서 ‘천공섬’을 옮길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럼요. 가능합니다.”
천공섬이 다시 기동한다는 건 알았지만 불안정하며 마법사들의 마법 실험의 도구로 쓰여서 그 어떤 계획에도 참여하지 못한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무엇보다도 마법사들은 폐쇄적인 사회를 이룬다.
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비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비의를 잃으면, 힘도 잃는다고 생각한다.
지식을 어떻게든 교육시켜야 한다고 믿는 과학자들과 너무나 상충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둘은 친하기 어렵다.
하지만 바세니올 마탑은 제국항공우주국에 적극 협력을 약속했다.
천공성은 하늘에 떠 있는 섬이다.
그러니 로켓 발사가 가질 수 있는 온갖 제약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
로켓 하나를 천공성의 최대 높이까지 날리려면 엄청난 양의 자원을 소모해야 되는데, 천공성에 로켓 발사대를 짓는다면 그만큼의 자원을 아낀다.
이온 이올카프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쁜 일이지만 마냥 웃을 수는 없다.
‘망할, 그럼 궤도부터 다 다시 계산해야되는데. 지금까지 축적한 데이터도 다 날아가고.’
하지만 천공성의 도움을 받는게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건 이온도 안다.
천문반은 이미 마음의 각오가 끝났으므로, 이온 또한 받아들인 상태였다.
통제반 구석에서 누군가 외쳤다.
“이티모 그룹에서 급한 연락이라는데, 어디로 연결할까요?”
제국항공우주국 국장인 사이진이 답했다.
“중앙 화면으로.”
사이진의 말에 중앙 화면에 누군가 떠오른다.
분홍색의 피부를 가진 솔로틀 여성이다.
“사이진!”
“이런, 젠장. 시모잖아?”
“그래! 나 시모야.”
발전기 발명가라는 단순한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이른바 ‘전기의 왕’ 시모가 화면 너머에 있었다.
오랜 시간에도 솔로틀 종족의 특성 때문에 어렸을 때와 크게 분간 되지 않는 외모지만, 사람들은 솔로틀의 외형만으로 쉽게 속지는 않는다.
특히나 이 유명한 솔로틀 발명가에겐 더 그랬다.
발명가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깨달은 시모는 이티모 그룹을 통해서 자신의 지위를 착실하고 공고히 올려갔으며, 사실상 무제한의 연구 지원을 받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든 손을 대는 크라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무능하지 않다는 점이 다른 사람에게 더 괴로운 점이었다. 유명한 발전기 발명가의 이름으로 연구를 함께 시작했다가 무한 성과 주의에 건강을 잃은 연구원들이 수두룩했다.
시모가 외쳤다.
“감히 내 천공성을 뺏어?”
“그대의 천공성이라니?”
“우리 계획에도 천공성이 필요하단 말이야! 그 엔트 노친네한테 뭘 먹인 거야?”
구석 화면에 있던 탈레이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사이진은 잠시 이마에 손을 가져간다.
시모가 통제반의 모습을 슥 훑어보고 인상을 썼다.
“아, 제길. 탈레이 영감이랑 연락 중이었구나? 아니, 오히려 잘 됐어. 영감 당신 잘 들어, 우리 이티모 그룹에선 이 일에 대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탈레이가 말했다.
“그딴 태도로는 천공성에 한 발자국 올릴 자리도 없다고 전해주시오.”
“듣고 있었잖아?!”
사이진은 둘 사이를 어떻게든 중재할 요량으로 손을 내저었다.
점점 통제반이 시장바닥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고 우주국 직원들이 슬슬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상황을 확인해야 하는 이온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기 위해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뭐든 쉽게 되진 않는 건가?’
그때 통제반으로 라민이 들어왔다.
이온은 라민이 간식이 담긴 바구니에 손을 뻗었다가 슬금슬금 빠져나가는 걸 보고 뒤를 잡았다.
“…도대체 뭐하러 오신 건데요?”
“아, 어…. 뱀파이어도 사탕 정도는 먹거든요?”
“네?”
“통제반 간식 바구니가 제일 훌륭하더라고요.”
“하.”
라민은 뒤늦게 책임감을 느끼는지 통제반에서 일어나는 말싸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곤소곤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게…”
설명을 다 들은 라민은 힐끗 화면을 바라봤다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라민이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아, 스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