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제국항공우주국 통제반의 문제는 라민의 전화 한 통이 해결했다.
라민은 통화를 간략히 끊고는 고개를 들었다.
대마법사 탈레이와 시끄럽게 다투던 시모는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신경질적으로 끊으려다, 떠 있는 이름을 보고 급하게 받았다.
“서, 선생님?”
수화기 너머, 오웬이 괄괄한 목소리로 떠들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면서?”
“아, 이건 말이죠. 선생님이 신경 쓸 일은 아닌데…”
“탈레이도 거기 있나?”
“예, 어르신. ‘거기’가 정확히 어딘진 모르겠지만.”
“요즘 몸은 좀 어떤가?”
“괜찮습니다. 모두 어르신 덕입니다.”
탈레이는 엔트다.
엔트는 나무 종족이며, 신체 기관 또한 나무에 가깝다.
그럼에도 다른 생물종과 유사한 기관들로 대체되어 있다는 사실은 특별하다.
하지만 탈레이는 건강한 엔트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가 마법사라는 사실은 저주받은 자라는 말이기도 했고, 내장 기관은 엔트식 멸칭으로 ‘고깃덩어리’로 되어 있었다. 물과 영양 수액 정도만 먹는 엔트 종족에게 있어 탈레이의 존재는 그 자체로 경멸스러웠다.
그럼에도 탈레이는 살아남았다. 마법사가 되었고, 탑의 주인이 되어, 이제 그 누구도 그를 멸시하지 못했다.
최근 탈레이는 놀라운 의학적 성과를 자신의 몸에 이루어냈다.
자신의 몸을 증오하게끔 만들었던 오랜 ‘고깃덩어리’를 모조리 적출해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최고의 외과의사들과 나무의사들이 소집되었다.
특히나 나무의사의 경우 고대 유적 부근에서 살던 소수 부족에게만 전승되던 지식을 갖춰야만 했는데, 그들을 찾아서 소개한 것이 오웬이었다.
탈레이는 고깃덩어리에 부속 되어 있던 마성의 정령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엔트의 몸도 수복해냈다. 이 과정에서 탈레이의 마법적 능력은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했으며, 마즈다리가 떠난 마탑의 주인 자리를 쟁탈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오웬 스승님의 존재를 다들 잘 모르지만.’
오웬이 말했다.
“그럼 우리 대화 좀 하지.”
그것으로 이온의 걱정과, 우주국 국장 사이진의 짜증이 사그라들었다.
이야기의 결과 천공성의 지면은 상당히 넓었으며, 지원에 따라 지면을 증설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듯 싶었다. 바세니올 마탑의 지원으로 천공성을 재생하면서 애초에 그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각종 협력 단체들이 천공성으로 몰려들었고, 천공성을 개조하고 증축하는 새로운 안들이 쏟아졌다.
잡음도 다소 있었다.
천공성의 실제 지배자는 구 연합왕국에게 있으니 이들에게 즉각 반환되어야 한다는 서대륙의 제왕복권주의자들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제왕의 후손이 그들을 침묵 시켰다.
“분노하는 자께서도 바라실 일이다.”
달맞이 계획이 천공성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모이고 있었다.
불과 한 달 뒤, 라민은 제국항공우주국 파견 직원이자 우주인의 역할로 여객기를 타고 천공성으로 향했다.
‘저게 천공성이라고?’
라민 솔로스트 무엘은 과거 연합왕국의 천공성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천공성은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라민을 압도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거대한 지면이 허공에 떠 있는 이율배반적 모습은 동시에 신성모독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천공성, 이제는 ‘별지기’라는 별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땅은 또 모습이 달랐다.
천공성 별지기의 하부는 몇 단의 활주로로 되어 있었다.
전세계에서 별지기를 찾는 이들 때문에 지금 활주로는 가득 차 있었고, 여객기 기장은 관제사 통제를 받아 착륙복행하여 잠시 별지기 주위를 돌면서 비행할 거라고 알려왔다.
덕분에 라민은 별지기의 풍경을 좀더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활주로 위쪽으로는 단단한 강철로 보호받는 중앙 동력 공급망과 강화 유리로 외부의 텅빈 하늘을 볼 수 있는 천공성의 생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지상에는 각각의 지원단과 파견 직원들이 머무르는 연구 단지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라민은 이티모 그룹의 회사 마크, 제국 황실 지원단, 오라즌 중앙 사원 파견단, 제국군 총사령부 직할 본부지원단, 제국항공우주국 수직 발사대 여럿, 바세니올 마탑 상징물 등등, 여러 기관의 상징들을 보았다.
‘불과 한 달만에 만들어지다니.’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기적이 있긴 했었다.
만신전의 신들이 본래라면 엄청난 양의 노고가 들어야할 공사를 직접 수행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도 별지기 공사 자체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라민도 익히 안면을 트고 있는 창조물들이 거대 공사장비를 대신해 자재를 옮기거나 쌓고 있었다.
‘다들 참 바쁜걸.’
물론 제일 바쁘게 된 것은 그런 생각을 했던 라민이었다.
대기가 희박한 수준의 천공성 별지기의 고도 덕분에 로켓 발사가 수월해지면서 유인 로켓 발사 일정이 빡빡하게 잡혔다.
발사준비반과 정비반은 기적 덕분에 절대 터질 일 없으니 각오하라며 라민을 올려태웠다.
최첨단 과학의 산물인 로켓 옆에서 사제들이 종교 의식을 날마다 거행하는 건 꽤나 흥미로웠지만, 그것도 처음 몇 번일 뿐인지라 발사준비반은 신경이 날카로워진 라민이 휴식시간 동안 ‘오늘부터 나는 세속주의자’라는 챙모자를 쓰고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로켓 발사가 20회차를 넘자, 라민도 능숙해졌다.
발사준비반과 정비반 모두 라민에게 큰 기대를 걸 고 있었다.
체력적으로 연속해서 로켓에 올라타는 강행군을 버틸 수 있는 건 라민 정도였다.
“오우거는 왜 안 되죠?”
“무겁잖아요! 같은 무게면 하프빈이 여덟은 더 탈텐데. 그럴 자리도 없고요. 연료도 아까워요.”
“아스타시디안은 어때요?”
“크다는 문제는 여전히 있고, 체내 순환기계 문제로 기술적 난항이 있어요.”
“팽골리안은요?”
바로 옆에 있던, 함께 로켓에 올라타려던 팽골리안 우주인인 루루타 팔라는 라민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또 작아서 안 보인다 농담하려고 한 거지?”
“아, 작아서 안 보였네.”
“이게 진짜.”
물론 라민도 알고 있었다.
로켓과 우주선, 현재 건조중인 우주 정거장 안에서 우주인의 역할은 보다 크고 정밀한 작업을 해내는 컴퓨터의 보조장치 비슷한 것이었다.
발사 및 감속, 결속 등 많은 과정이 자동화 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인력을 써야했던 것이다.
‘나는 부품이다. 부품.’
라민과 비슷하거나 보다 작은 덩치를 가진 우주인들이 번갈아 타는 와중에, 라민은 연속 강행군으로 최고 숙련자가 되면서 리더 역할을 꿰어찼다. 물론 맡은 바 책임이 더 커졌으므로, 라민으로선 썩 기쁜 일도 아니었다.
과정 자체는 단순했다.
로켓이 쏘아올라지면, 로켓의 가장 위에 얹힌 모듈을 건조중인 우주정거장에 결합시킨 다음, 해당 모듈에 설치되어 있는 탈출선을 타고 그대로 낙하하고, 그것을 낙하 예상 지점에서 몇 중의 그물을 매단 비행선들이 낚아채어 다시 라민과 다른 우주인들을 올려다 놓는 것이었다. 이 과정 틈틈히 사제와 마법사들의 손길이 닿아 있었기에 위험천만한 곡예들도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이 왔다.
─┼
이온 이올카프 또한 별지기에 올라와 있었다.
별지기의 고도에도 불구하고 천공성 자체의 빛 공해 때문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별지기에서 관측해야 하는 것은 그저 달이었으므로,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제국항공우주국의 관측반이 별지기에 올라온 이유는 달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우므로, 즉 관측 시간이 초 단위 보다도 더 낮더라도 더 빨리 관측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있었다.
‘하지만 기동을 시작했다는 룸은 아직 움직임이 없으니…’
마법 허수아비를 활용했던 로켓 관측이 성공한 이후, 로켓 발사할 여력 대부분을 우주정거장 건조에 쏟았다.
그리고 몇 차례의 추가 정찰 위성을 보냈을 때도 두 번째 달 룸 스스로도 자신에 대한 관측을 허가하지 않았다.
마법은 파훼되었고, 즉시 파괴되었다.
‘방법은 여기서 올려다보는 것 뿐.’
다행히 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첫 번째 달 욘다의 끄트머리에서 그 모습이 보여진다.
학자들이 생각하는 룸의 출력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모습을 보이기까지는 어느 정도 대비할 여유가 있을 거라고 보았다.
‘그래도 최고위원회와 자문단에서 내린 결론에 따르면 몇 개월 정도 여유가 있으니.’
사실 그것은 희망사항에 가깝다는 걸 이온도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라면 어느 정도 대비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물론 희망을 한다고 모든 일이 희망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리데에게 받은 차를 받아서 마시던 이온은 계측기가 튀는 것을 보고, 곧장 망원경에다 눈을 가져다댔다.
이온이 비명을 질렀다.
“…안돼!”
욘다의 가장자리로부터, 검은 그림자가 실처럼 불거진다.
룸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온은 지침대로 즉각 행동했다.
비상 버튼의 뚜껑을 열고 그대로 후려쳤다.
이온 앞의 마이크에 불이 들어왔다.
“룸, 기동 확인!”
별지기 전체에 사이렌이 터져나왔다.
즉시 최고위원회가 소집되고 휴식 및 취침 중이던 별지기의 모든 인원들이 비상 상황에 맞는 자리로 내달렸다.
이온으로부터 연결된 안내 메시지가 이어졌다.
“…현재 시각으로부터, 룸 기동 확인. 모든 인원 비상 대기 위치로. 반복한다…”
땀을 뻘뻘 흘리거나 옷매무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위엄을 잃은 각 기관의 최고위원들이 허겁지겁 자리에 앉았다.
우선은 대표를 맡고 있던 우주국 국장 사이진이 최근 들어 소리를 너무 질러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자, 너, 너무 당황하지는 말고, 자…”
숨도 제대로 못쉬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비슷했다.
한 명만이 아니었다.
그때 별지기 최고위원회의 한 축이자, 최고 사제, 선택받은 자인 닉스 종족의 유마 아나루가 눈을 떴다.
“…아.”
최고위원회에 앉은 이들 모두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사제 유마가 아님을 알았다.
눈을 뜨며 발하는 빛과, 그 뒤에서 발하는 찬란한 후광만으로도 그 존재가 닉스들이 섬기는 만신전의 신 암본임을 알 수 있었다.
AR1026, 암본=유마가 말했다.
-“최고위원회. 지금 당장, 달맞이 계획을 실행하십시오.”
그 말에 모두 침묵했다.
절망적인 의견이었다.
뒤늦게 시모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목표치의 45퍼센트까지 밖에 안 되는데요!”
“시모! 너무 무례하지 않소?”
사이진이 대꾸했다가도 금안을 향해 말했다.
“하, 하지만 검은 근본이시여, 저희는 이제 막 궤도에 비행선을 올렸습니다. 저희 뿐만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계획의 절반도 달성하지 못 했습니다. 저희의 미진한 결과를 탓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그 말에, 암본=유마가 빙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고요?”
-“그대들이 만신전을 믿고 따라왔으니, 이제 만신전이 그 기대에 답할 것입니다.”
암본=유마가 고개를 들었다.
최고위원회가 위치한 회의실은 천장이 유리로 되어 있다.
아무도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두려운 것이다.
고개를 들면 창백한 욘다 뒤로, 이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룸이 보일테니까.
오직 신만이 눈을 맞추기라도 하려는듯 룸의 위치를 살핀다.
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주 눈이 예리한 사람만이 욘다의 가장자리로 아주 조금 삐져나온 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암본=유마가 말했다.
-“우리가 빨랐습니다.”
그리고 암본은 유마의 몸을 떠났다.
그 순간 암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없었지만, 만신전의 직접적인 명령을 거절할만큼 간이 큰 사람도 없었다. 어찌되었든 이 자리에 세속주의자 비슷한 사람은 없었으므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사이진이 탁상을 호쾌하게 후려쳤다.
“까짓거, 해봅시다.”
최고위원회와 비상대책반 인원들이 절대 펼치는 일이 없길 바랐던 비상 대응 책자가 모든 반에서 펼쳐졌다.
각 연구소와 대책반 직원들은 비상 대응 책자를 펼치고 욕을 해댔다.
“아니, 젠장할! 내용의 절반이 기도나 하라고 돼 있잖아?”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모두가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해대는 분주한 별지기 위에서, 최고위원회와 별지기의 연구원, 직원들이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당황한 바람에 녹초가 되었던 이온 또한 하늘을 바라보며 이제는 침착해져 있었다.
“룸, 현재 노출도 5퍼센트.”
이온의 목소리에 별지기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룸에 대한 연구는 고고학자들의 고대 유적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다.
룸은 본래 전쟁 무기가 아니다. 본래 역할은 알 수 없으나, 필요할 때에 겉모습을 바꾸며 여러가지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이 룸이었다.
때문에 노출도가 10퍼센트에 다다르면, 룸 표면에 준비되어 있던 포대들이 공격을 시작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다.
적어도 고대의 전쟁 기록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현재 노출된 룸의 5퍼센트 지표면에서 관측되는 무기 또는 건축물…”
이온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비어있었다.
룸은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만신전과 제국이, 별지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