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미묘한 어조에 라민이 눈을 깜빡였다.
우주선의 뒤에 있던 로켓 몇 개가, 더 빠르게 가속을 시작했다.
‘통제반과 통신은 안되지만, 상황 자체는 확인이 되는구나. 적어도 송신은 가능한 걸지도.’
그리고 우주선을 앞지른 로켓들은 하루살이들이 몰려오는 중심부까지 나아갔다.
장기체류자가 말했다.
“휩쓸리지 않으려면 조금 움직여야겠군.”
“지금 조종하죠.”
라민이 조종간에 앉아 확인했다.
장기체류자가 옆으로 와서 작업을 돕자, 라민이 말했다.
“뒤에 앉아 있어요. 안전벨트를 해두는 게…”
“무언가가 날 붙잡아 둘 필요는 없다. 난 홀로 오롯하므로.”
“아니, 위험하다고요. 뭐래는 거야.”
장기체류자가 껄껄 웃었다.
“정말 괜찮다. 작업에 집중하지. 이제 폭발하니까.”
라민은 장기체류자가 마치 예언을 하듯 말할 때마다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 감각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스크린 하나가 빛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았다.
핵폭발이었다.
우주선을 따르던 제국군의 로켓에는 하나하나 제국의 핵무기가 실려있었다.
우주 공간에서 핵폭발의 충격을 전달할 매질은 없지만, 핵분열을 통한 에너지 자체가 사라지진 않는다.
거대한 화구가 하루살이들을 집어삼켰다.
‘하나, 둘, 셋… 좋아. 전멸이다.’
핵분열로 만들어진 빛덩이가 일종의 가림막 역할을 하면서, 우주선 또한 어느 정도 보호를 받았다.
우주선은 화구 사이의 넓직한 길들을 오가며 다시 룸을 향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야.’
라민은 우주선을 몰아 화구 사이를 빠져나간 순간 자신의 나쁜 기대가 현실이 되는 것을 확인했다.
두 번째 빛살이 번쩍인다.
이미 충전을 마친 것이다.
“…이런!”
빛살은 강력하지만, 쏘아지는 빛은 아주 좁다.
점 수준은 아니지만 우주선 전체가 타격되는 건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회피만 되더라도!’
아까전 상부 추진체를 잃어버린 게 아쉬웠다.
그때 내부 통신으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고쳤다!”
그 말과 함께 붉은 빛만 점멸하던 우주선 내부의 빛이 밝게 터졌다.
장기체류자가 답했다.
“수고했다, 툴보.”
라민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동시에 우주선을 빠르게 조작했다.
우주선이 몸을 뒤트는 순간, 빛살의 빛이 우주선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피했다!’
회피 직후, 라민이 뒤를 돌아보았다.
“툴보? 툴보라고 했어요?”
장기체류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민이 되물었다.
“미치광이 툴보라고요?”
“그래. 그 오구리가 아니면 누가 이 비행선을 고칠 수 있겠나?”
미치광이 툴보가 우주선 어딘가에서 계속 말했다.
“그럼 통신도 고칠게요.”
“…네? 통신기기는 여기 있는데요?”
“다 고쳤다!”
통제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주선! 우주선! 응답하라!”
격한 목소리에 혼란스러운 우주선 상황에서도 라민이 현재 상황에 대해 간략히 요약했다.
“네? 툴보요?”
“통제반에서도 몰랐어요?”
“최고위원회도 몰랐습니다. 최고위 기밀이었어요. 승인 조차도 전부 신께서 직접 강신하셔서 기적 인증 뒤에 이루어진 겁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허가가 있었다지만 우주정거장까지 올라오는 까마득한 절차를 생각하면, 그 과정에서 아무도 들키지 않았던 건 그야말로 신이한 일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라고요?”
“신들께서 직접 손을 쓰신 모양입니다.”
“음.”
“그나저나, 한 분이 툴보 님이라면 다른 한 명은 누구죠?”
라민은 장기체류자를 바라보았다.
장기체류자는 여전히 헬멧을 쓴 상태로 팔짱을 끼고서 스크린만 바라보고 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아는 건 내 임무가 아니지.’
오히려 이제 라민은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두 사람을, 룸까지 데려다 놓는 것이다.
그게 라민 자신의 임무임을 알았다.
장기체류자가 고개를 돌렸다.
“문제 있나?”
“전혀요. …아 통제반 유도에요. 투사체 다섯 기, 쉽지 않겠네요.”
툴보가 통신해왔다.
“…추진체를 추가로 달았어! 더 매끄럽게 움직일 거야!”
라민은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말을 믿었다.
원래 예비 부품이 들어있는 버튼들을 조작하자, 추가로 달렸다는 추진체들이 확인 되었다.
통제반과 우주선의 라민, 그리고 툴보가 투사체를 요격할 수 있는 무기까지 만들어내면서 룸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하루살이 떼가 한 번 더 왔고, 빛살은 두 번 더 쏘아졌다.
우주선 선체가 덜덜 떨려왔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그래도 거의 다 왔어…!’
룸의 모습이 전례 없이 거대하다.
절반, 확실히 그 이상이다.
‘중앙부에 있다는 분쇄자는…?’
라민이 눈으로 확인한다.
크고 공허한, 거대한 구멍이 룸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 주변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듈들이 어떤 준비와 조작을 하고 있는듯 분주하게 기계 장치를 움직인다.
장기체류자가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군.”
“네?”
“분쇄자라는 게 거의 준비된 모양이다. 하긴 그렇겠지. 생각이 있으면 노출도가 53퍼센트를 넘기자마자 써야겠다고 생각할테니까. 놈들도 룸을 움직이는 속도를 감안해서 준비를 시작했을테고.”
“그걸 어떻게 알죠?”
“눈으로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데.”
라민은 다소 의심스런 생각이 든다.
‘뭐지 이 사람?’
장기체류자가 자기 헬멧 위를 툭툭 두드렸다.
“나 눈 좋아.”
눈이 좋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우주선 외부에 달린 스크린 해상도 이상을 볼 수 있을리는 없다.
눈이 좋으면 그냥 스크린이 만들어내는 도트나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체류자는 더는 증명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 여기서 뛰겠다.”
“…뛰다뇨?”
“뛰어오를 거라는 말이다. 그거 있잖아, 그… 작용과 반작용.”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우주선을 디딤대로 삼아서 저기 두 번째 달로 갈 거라는 말이다.”
“네?”
장기체류자가 농담이 아닌듯, 우주선 중앙 복도로 이동하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우주선도 살아남는다. 룸도 눈이 있으면 날 노리겠지.”
“아니, 이봐요…!”
하지만 라민은 장기체류자를 잡을 수 없다.
장기체류자는 너무나 능숙하게 라민의 손길에 잡히지 않고 무중력 공간을 유영한다.
우아할 정도다. 마치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 같다.
‘…몇 달 있었던 수준이 아니지 않아?’
라민은 최근에 와서는 신체능력으로 자신을 잃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황당했다.
장기체류자는 우주선 중앙 복도로 능숙하게 미끄러진다.
라민은 쫓으려다가, 우주선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좋아, 마음대로 하라고 해.’
라민은 이미 이해를 넘어선 일에 대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로 했다.
목표 중 하나가 벗어나긴 했지만, 툴보는 여전히 우주선에 남아있다.
그렇다면 우주선을 룸에 무사히 착륙시키는 것이 라민의 남은 목표가 된다.
‘무슨 역할인지는 몰라도 장기체류자와 툴보 만큼의 기밀 화물이 우주선에 쌓여 있어. 알 수 없을 뿐이지 모든 게 제 역할이 있을 거야.’
라민은 우주선의 궤적을 움직이려다, 우주선 윗 동체부 스크린을 확인했다.
장기체류자는 정말로 우주선 밖으로 나와있다.
‘황당하네 진짜.’
라민은 스크린을 힐끗 보면서, 우주선을 장기체류자가 정말로 딛고 뛸 수 있도록 각도를 미세 조종했다.
장기체류자가 알아차렸는지 가까운 카메라로 ‘좋다’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진짜야?’
라민이 통신으로 말했다.
“어때요? 바깥 공기는?”
“답답하군. 헬멧은 벗는 게 낫겠다.”
“네?”
라민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기체류자는 정말로 헬멧을 조작하더니 그대로 열어버렸다.
“아.”
라민은 보자마자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너무 유명한 사람이지만, 가깝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도 먼발치에서만 봤었다.
검은 비늘을 가진 리자드맨이, 한 손으로 우주선 외부 사다리를 쥐고는,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그리곤 꼬리만으로 사다리를 살짝 감고, 몸을 숙인다.
이 리자드맨은, 정말로 뛸 생각이다.
─┼
성운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성운은 문제가 있을 때, 그 해결방법이 단순할수록 좋다고 보았다.
달맞이 계획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문제는 시스템의 힘이 아바르틴 대기권 안쪽에서 끝난다는 거지.’
그 말인 즉, 플레이어가 아바르틴 대기권 밖으로 나가게 되면 신성을 잃어버린다는 말이었다.
신의 힘도 아바르틴 안에서만 쓸 수 밖에 없다.
그것만으로 룸에 대한 방어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리라 보지만, 너무 수동적이다.
반격의 기회는 거의 없다.
‘두들겨 맞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언제나 여러 해결 방안이 있다.
성운 생각에는 각자의 방향으로도 답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보았지만 구차하고 지루한데다, 다른 문제들도 있었다.
성운이 생각하는 제일 좋은 정답에 가까운 것은, 자신의 달맞이 계획이었다.
‘시스템이 대기권까지 밖에 안 닿는다면…’
성운은 쉽게 생각했다.
‘…더 멀리까지 뻗으면 될 일 아닌가?’
엉뚱하거나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분명 과거에는 이 시스템의 권역은 첫 번째 달, 욘다까지 닿아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욘다에는 신들의 흔적은 물론이고, 그 뒷편에서 두 번째 달, 룸을 몰래 건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 방안은 시스템이 존재하는 장소를 찾는 것, 즉 마계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해킹은 성공했지.’
성운은 단순히 시스템의 권역을 곧장 확장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문제가 있다.
인과율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룸 또한 시스템 권역 내로 들어오면서 즉시 움직일 수 있을테니까.
게다가 시스템 수정을 되도록 들키고 싶지 않기도 했다.
‘빠르면서도 느리게. 드러나면서도 숨겨야 한다.’
그래서 성운은 한 번의 해킹으로 이 시스템의 권역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기본값은 다음과 같았다.
「권역 설정값: 상공 552KM」
성운은 시스템을 이렇게 수정했다.
「권역 설정값: 사람이 가닿을 수 있는 곳까지.」
다만 이렇게 수정할 경우, 누군가는 아바르틴 문명의 가장 먼자리까지 떠나야만 한다.
악신들이 부단히도 방해했지만, 제국에게는 분명 우주로 나갈만큼의 역량이 있다.
성운은 제국의 평범한 사람들을 여전히 믿는다.
하지만 성운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이가 저들을 도와야 했다.
성역에서, 성운은 성역의 사도, 카일 라크 오라즌과 마즈다리에게 질문했다.
“누가 좋겠어?”
마즈다리가 말했다.
-야천이시여, 기준이 되는 단 한 명이면 충분할 거요.
카일이 말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강인해야 합니다.
이미 답은 정해졌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을 호명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최후의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
-그 어떤 공포에서도 굴하지 않고,
-불가능 따위는 코웃음 칠 수 있는 사람.
-신살자.
-신에게 기적을 쥐어주는 자.
-우리 의지의 대행자.
-만신전의 창.
─┼
사도 라크락이 우주선 위에서 황금창을 꼬나쥐고, 두 번째 달을 노려보았다.
“널 잡으러, 내가 왔다.”
라크락이 우주선을 딛고 룸을 향해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