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성운이 눈을 떴다.
“알딘.”
“더 이상 할 설명은 없다.”
“역시 나는,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겠다.”
알딘은 한숨을 푹 쉰다.
“망할.”
알딘이 말한다.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마라, 네뷸라.”
“너의 약속을 믿더라도, 내가 떠나면 아바르틴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알딘이 말한다.
“우리 옛신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전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다.”
“만신전을 대신하겠다는 건가?”
알딘이 외친다.
“우리가 진정한 주인이다! 너흰 가짜다. 잡다한 악신놈들과 드래곤들을 처분해줄 것들이 필요했을 뿐이다. 너흰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알딘이 계속해서 진실을 말했다.
“저 무한한 가능세계 안에서 내가 너희를 찾아냈다! 그리고 너희를 훈련시켰다!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너희는 내가 가르친 개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다. 사냥이 끝났으니 떠나라.”
성운이 답했다.
“여기 있겠다.”
알딘이 씁쓸히 말했다.
“제발, 떠나라.”
“남아 있을 것이다.”
“넌 날 모르겠지. 하지만 난 널 안다. 내가 널 선택했으니까. 나는 너의 플레이를 좋아했다.”
성운이 말했다.
“움직이지 않겠다.”
알딘은 성운의 마음이 단단하게 박혔음을 알았다.
알딘은 몇 번이나 동요했다.
‘어쩌면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다음 순간 고개를 들어 성운과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알았다.
성운이 결단코 움직이지 않으리란 걸, 알딘은 알 수 있었다.
“널 선택한 건, 내 실수였군.”
“그럴수도 있지만, 아닐지도 모르지.”
알딘은 가로젓는다.
알딘이 선언했다.
“「게임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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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바르틴의 문명은 끝나지 않는다.
옛신의 압제도, 악신의 슬픈 운명도, 새로운 신의 *플레이*도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끝났다고 선언한다고해도, 모든 것은 계속 된다.
─┼
거대한 구덩이.
본래의 라스다실 폐허 중심부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이 구덩이는 속성이 조금 변한다.
끝모를 어둠으로만 빠져내릴 것 같던 구덩이의 내부는 밝은 빛을 내면서 타오른다.
이제 구덩이라기보다는 도가니처럼 보인다.
끓어오르는듯 번져가는 빛들은, 조금씩 실체를 가지고 있다.
그 아래, 라스다실 폐허 가장 중심부, 현실과 심상 세계의 경계, 문 뒤의 세계, 마계에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 되었나?”
둔중하고 무거운 목소리다.
알딘은 고개를 바짝 숙이고 몸을 누인다.
그렇게 하면서도 알딘은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신들은 예절을 모른다.
‘왜 그런걸까?’
신성 레벨에 차이, 즉 신격에서 차이가 있다면 상위의 상대의 심기를 긁어서는 안 될 일이다.
신격이 높으면 힘의 차이도 극명하다.
알딘은 대신격이 소신격을 괜한 빌미를 잡아 오랜 시간 고문해 죽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알딘은 그 기억을 오랜시간 떨치지 못했고, 여전히 알딘의 머리통 속에 박힌 쐐기침마냥 가지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그리 기억될 것이다.
옛신들의 예절대로, 알딘이 답한다.
“그리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라 불리는 이, 옛신들의 우두머리, 비프넨 다이알 로바네는 그늘 속에 가리워진 채 말한다.
“괜찮다, 알딘. 완벽할 필요까진 없다.”
비프넨의 뒤에 있던 옛신들이 수군거린다.
“오히려 잘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 저들의 제국이 가진 찬란함을 보라지. 아름답지 않은가?”
“모든 것이 부서진 상태에서 새것을 쌓아올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저들은 잘 해냈지.”
“반항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나? 저런 것들을 쌓아올리면 누구라도 포기하긴 어려울 테니.”
“하지만 머리에 쓴 왕관이 제것인줄 알다니.”
“마법을 모르는 존재 아닌가. 태생적 천함이 있는 것이지.”
비프넨이 말한다.
“다음 과업이 중요하겠구나.”
“예.”
“최대한 망가트리지 않고, 저것을 손에 넣어야겠지.”
“그리 될 것입니다.”
알딘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프넨과 옛신들은 기분이 좋아보인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데다, 이제 막 살펴보기 시작한 문명의 모습이 퍽 보기 좋기 때문이다.
‘새로운 장난감이 손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겠지.’
모든 것을 다시 손에 넣고 나면, 알딘은 또 저혼자 슬픈 싸움을 해야 할 것임을 안다.
저 부끄럼도 없이 힘을 멋대로 휘두르고 다니는 옛신들의 손아귀에서 처연한 존재들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영원히.
비프넨이 말한다.
“작업은?”
“‘타천’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늘 안에서 비프넨이 미소짓는다.
“훌륭하다, 내 딸아.”
알딘은 그 지칭에 증오한다.
그리고 한 사람을 떠올린다.
‘네뷸라, …살아남을 수 있겠나?’
─┼
두 번째 달, 룸.
듸데는 룸의 가장 위 지표면에 서 있다.
‘모든 것이 끝났다.’
두렵던 리자드맨들도 사라졌으며, 가면 쓴 대적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듸데는 「항복」했다.
혼자만이 아니었다.
숨어있던 샤차와 절요를 불렀다.
세 악신이 항복하면서 게임은 종료되었다.
항복 절차에서 대적자는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가지고 떠나도 좋다고 말했다.
룸은 기동했고, 게임의 시스템 권역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항복을 설정하고, 게임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것으로, 세 악신은 게임에서 벗어났다.
시스템을 자꾸만 호출하여도 눈 앞에 반투명한 창은 뜨지 않는다.
편리했지만, 이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룸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수복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제는 떠나리.’
물론 시스템은 남아있다.
듸데는 룸의 눈으로 아바르틴을 본다.
저곳에 여전히 슬픈 운명들이 남아있다.
‘가면 쓴 자야, 너는 너무 아둔하다.’
심부를 파괴하고, 룸을 빼앗을 수도 있었다.
물론 반파된 룸이 제 역할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옛신들을 압박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듸데 자신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가면 쓴 자야, 너는 너무…’
듸데는 뒤늦게 제국을 내려다본다.
자신의 아이들은 없지만, 오랜 친우들의 아이들이, 다소 버거운 생을 살아내고 있지만, 적어도 완전히 따돌려지진 않는 걸 본다.
최후의 적이었을 아이들 조차도.
‘…의롭구나.’
듸데 옆으로, 두 명의 악신이 다가와 선다.
유동형의 괴물 절요와, 흰 가면을 쓴 샤차가 듸데의 양 옆에 나란히 서서, 아바르틴을 바라본다.
-내 오랜 친우들.
샤차가 말한다.
듸데가 답한다.
-왜 부르는가?
사실 답하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저 삭막하나마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외우주로, 도망칠 마지막 기회다.
샤차는 아바르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샤차가 말한다.
-부탁이 있어.
듸데는 듣고 가부를 정하기로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도저히, 오랜 친우의 부탁은 거절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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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운은 가면 아래에서 눈을 뜬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듯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성운은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서대륙 바우스탄 성소.’
도시마다 있는 사원들과 달리, 성소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거나 사도, 또는 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장소들에 있었다.
때문에 만신전의 힘이 가닿기 쉬운 장소기도 하다.
그런 성소들은 성운이 신들의 ‘탈출로’로 정해둔 곳이기도 하다.
플레이어나 사도 스킬 중에는 특정한 장소와 관련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성소들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거나, 또는 성소 자체를 어느 장소에 만들 것인가 하는 것도 로스트 월드 플레이의 주요한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긴 별 의미 없는 장소지만.’
성운은 성소의 가장 깊은 바닥, 이끼가 잔뜩 뒤덮인 축축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우스탄 성소는 연합왕국에서 싸우던 어떤 용사와 관련이 있다는데, 성운도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성운도 이름 있는 용사 정도는 알았지만, 연합왕국에 용사는 너무 많았다.
‘그러니 이제는 관심을 잃은 성소도 많고.’
성운이 누워있던 자리는 그 용사의 관이다.
관은 이미 도굴이 끝나서 텅 비었다.
성운은 옷을 털고, ‘숨’을 한껏 들이켰다.
색으로 따진다면 녹취를 띌만한 상쾌한 공기가 성운의 폐를 들어섰다 나갔다.
성소는 각진 돌로 쌓아올린 공간으로, 열 걸음 정도를 지나면 바로 성소 밖으로 나설 수 있을만큼 작다.
성운은 성소 밖으로 걸어나간다.
밖은 이제 막 해가 떠오르고 있다.
주변에 문명의 흔적은 적다.
성소 건물 자체는 작지만, 주변은 빡빡하게 쌓아올린 작은 돌담들이 예쁜 정원처럼 꾸며져있다.
제국에서 관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연합왕국의 후예인 지방 영주가 관리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눈썰미가 제법 좋다. 서대륙 남서쪽에서 길러지는 오색의 예쁜 꽃들이 가꾸어져 있다.
성운은 가볍게 그 꽃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바로 뒤는 험한 산중이고, 아래로는 야트막한 계곡이 내려다보인다.
성운의 대강의 길을 알았다.
계곡으로 가는 길을 몇 킬로미터 가다보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관광지라고는 여기 바우스탄 성소뿐인지라 그다지 인기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라망에 여행사진을 찍어 올리는 어떤 오크 덕분에 입소문을 제법 탔다.
하지만 그런 유행 조차도 이미 지나가버려서 지금 이곳엔 성운 뿐이다.
‘아름다운 곳이군.’
다만 바우스탄 성소는 관광지 말고 다른 이유로도 유명한 곳이긴 했다.
성운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손을 뻗어 돌담의 감촉을 느끼며 걷던 성운은 날카로운 통증에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가시에 긁힌건가.’
붉은 핏물이 성운의 손에서 흘러내린다.
성운은 신성을 잃었다.
이것이 타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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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방금 말한 건 그냥 예측이지? 꼭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물어온 것은 룬다였다.
달맞이 계획 며칠 전, 만신전.
제1 회의실.
성운은 단상 위에 서 있었고, 모든 플레이어가 그 자리에 있었다.
비상소집이었다.
성운은 가로저었다.
“아니, 반드시 일어날 일이야. 우리는 승리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방식의 승리를 얻지 못한다. 옛신들이 돌아온다. 우리 만신전은 해체된다. ‘타천’이 일어난다. 우리는 모두 다 신성을 잃는다. 옛신들이 우리가 일군 제국을 지배한다. 과거의 실수가, 반복된다.”
타천.
신성을 잃고 보통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본래라면 플레이어들로서는 듣기만해도 두려운 말이었테지만…
그 말에 임춘식이 웃었다.
룬다가 돌아보았다.
“미쳤어? 왜 웃어?”
“아, 아니. 웃기잖아? 네뷸라도 언젠가 한 방 먹을 줄 알았다고. 최고의 플레이어라도, 늘상 이길 수는 없는 거거든.”
“정신차려! 우리 같은 편이야!”
솔롱고스가 대신 변명하듯 말했다.
“형님이 웃으신건, 큰형님을 믿어서 그런 겁니다.”
“뭘 믿어?”
“방책이 있으시니 말을 꺼내신 거겠죠. 아닙니까?”
솔롱고스가 돌아보자 성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방법은… 많지.”
누군가 휘파람을 분다.
위즈덤의 머리가 회전한다.
“우리가 맞이했던 문제중 가장 도전적인 과업이로군, 네뷸라.”
“그런 편이지.”
위즈덤이 말했다.
“그 타천이라는 것이 일어나면, 우리는 이 땅에 떨어져 무력해지고 신성도 쓸 수 없다. 살을 가지고 숨을 쉬는 존재가 된다. 시스템 창도 열 수 없겠지. 그것만이 아니다. 마계에서 그 옛신들이 돌아올테고 옛신들은 지금 우리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런 무력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옛신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성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