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위즈덤이 양손에 깍지를 끼고 말한다.
“준비가 끝났는지는 우리가 확인해봐야겠지.”
“그럼.”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운은 만신전의 주인이고, 최고 결정권자였으며, 권한 설정상 뜻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으나, 만신전 또한 성운이 조종해야할 대상이었다. 원하는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조종에는 여러 방편이 있다. 기만? 기만도 조종의 방법이지만, 항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성운은 필요한 때가 아니면 그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언제나 더 좋은 방법은 설득이다.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네뷸라. …우리가 타천하게 되면, 우리는 신성을 잃는다. 그렇다는 말은 필멸자가 된다는 말인가?”
성운은 지체없이 답했다.
“그래.”
만신전의 신들이 술렁인다.
이미 뜻을 알고 있었던 이들은 심드렁한 태도지만, 위즈덤의 직접적인 말을 듣고나서야 그 뜻을 완전히 이해한 플레이어도 존재한다.
“그, 그럼, 저희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렇게 질문한 것은 오븐렌지다.
그저 세일러 교복을 입은 여중생이라면 거리를 좀 둬야할 사람이겠거니 싶겠지만, 목 위에 있는 것이 오븐렌지인 것을 보고나면 다른 의미로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게다가 뒤에 딸린 전기콘센트를 리본 모양으로 땋아서 포인트를 줬다. 난해하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다른 플레이어의 외형을 가지고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들 그럴만한 처지가 아니다.
성운이 답했다.
“우리가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그 죽음을 맞는다. 만신전이 깨질테니, 사후세계는 없다. 신이 아니게 되니, 봉신도 없다. 이론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면 사라지거나, 아니면 그 어떤 관측도 불가능한 세계로 가겠지.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절대 돌이킬 수 없다.”
플레이어들 사이로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적막은 길지 않았다.
크람푸스가 콧등을 긁었다.
“오래 살았잖아? 뭐 그렇게 무서울 건 없는 거 같은데.”
어슴프레한 형상의 검은 코트를 걸친 그림자, 자신의 책상 위로 두 다리를 꼬고 앉은, 인간따개가 말했다.
“그 천진난만함은 우리가 아직 신이기 때문에 그렇다.”
“뭐?”
“우리의 현재 능력은 우리가 과거 지구의 필멸자일 때와 다르다. 육체적인 능력과 정신적인 능력 모두 시스템이 도운 지고한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
“아.”
인간따개는 꼬고 있던 다리를 바꿨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멸성이 부여되면 꽤 많은 심리적 불안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두렵고 무서울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지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패배가 봉신이라는 거짓 죽음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가진 상태이기 때문이야. 육체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나타날 거다.”
성운이 흥미롭게 의견을 받았다.
“그것까진 생각 못 했는데. 우리 중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플레이어가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 여기는 이미 무서워하는 이도 있으니까, 좀더 특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지.”
인간따개는 엄지로 뒤쪽에 앉은 오븐렌지를 가리켰다.
오븐렌지는 흠칫 놀란다.
인간따개가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으며 말했다.
“물론 당장 ‘괜찮다’고 믿는 이들도 정말로 괜찮을지는 모른다. 나도, 너도.”
성운은 회의실 칠판에다 ‘정신적 문제’를 판서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다른 문제들을 짚어보도록 하지. 또 뭐가 있을까?”
사람만한 크기의 고무오리인형, RD가 풀쩍 자신의 책상 위로 뛰어올랐다.
“나, 질문!”
“말해.”
“타천이란 걸 당하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대로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성운이 답했다.
“만신전이 사라지므로 여기에 우리가 있을 자리는 없다. 만신전에 없다면 당연히 우리는 지상, 아바르틴으로 내려가야겠지.”
“하지만 필멸자의 몸을 가진다며?”
RD가 양쪽 날개죽지를 펼쳤다.
“우리의 이 몸을 그대로 가져가는 건가?”
성운이 답했다.
“아마도 그렇게 될 거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확실하지는 않아. 옛신들이나 우리가 관여하는 게 아니라, 인과율이 관여할테니까. 우리가 타천이 된다면 인과율은 최대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로 아바르틴에 튕겨낸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이 모습을 선택했었으니 플레이어의 외형 선택 자체가 뒤바뀌진 않을 거야.”
RD는 가슴을 휙 내밀었다.
잠시 아무말도 없었다.
뒤에서 엘다르가 말했다.
“귀엽다!”
RD가 스윽 엘다르를 꼬라보았다.
“아, 그거 아닌가요?”
RD가 짧은 팔로 자신의 가슴을 팡팡 쳤다. 풍선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이 몸은 고무란 말이지.”
“그렇지.”
“몸이 고무로 된 생물은 존재하지 않고.”
“그렇지.”
성운은 RD의 의문을 이해했다.
성운이 덧붙여 설명했다.
“하지만 필멸자의 모습이니 어떤식으로든 에너지를 얻어야만 신체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거다. 외적 변형은 몰라도 내적 변형이 일어날 거야. 우리 모두 다르게 생겼으니 어떻게 될진 솔직히 알 수 없군. 나나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RD 너나, 저기 위즈덤만해도, 솔직히 생물학적으로 난해하군. 내부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는 모른다.”
모노아이를 가진 로봇 형상의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그럼 좀더 유리한 육체 구조를 가지기 위해, 현재 외형을 바꾸는 건 어때?”
“그렇게 유효하진 않을 것 같군.”
“어째서?”
“이를테면 우리 외형 선택에서 질감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재질을 선택하진 못한다. 온 몸을 강철로, 그 내부를 근육으로 가득 채운 존재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더 강력한 존재가 될 거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건 인과율이 허락하기에는 너무 강할테니까. 게다가 그런 존재가 필멸자로서 더 유리한 존재일지도 의심스럽군.”
“흐음. 하긴 시스템이 없는 이상, 출력이 높다면 그만큼 몸의 가성비도 나쁘단 거겠지. 이해했다.”
RD가 다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쳤다.
“난 이 몸이 좋아.”
“그래.”
“내부가 고깃덩어리가 되더라도.”
“꼭 그럴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바꾸고 싶을지도….”
성운은 고개를 끄덕이곤 이번에는 칠판에 ‘육체 구성의 문제’를 써 넣었다.
성운이 말했다.
“계속 이야기하기 전에, 앞서 말한 육체를 가지고서 아바르틴으로 ‘튕겨져 나간다’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겠지.”
위즈덤이 말했다.
“가장 관심이 있는 문제다. 우리가 아바르틴으로 내려갔을 때에는 수 많은 문제들이 야기될 수 있다.”
“의견이 궁금한데.”
“우선, 경도된 열광자들이 있겠지. 만신전의 신들은 인기가 좋거든.”
“그건 문제군.”
룬다가 끼어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문제가 된다는 말이야?”
“제 목숨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이 모두 제정신일 거라고 볼 수는 없지. 신을 위해서 무엇이든 희생하겠다는 태도는 이성적이지 않다. 이성적이지 않으면, 돌발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지. 그게 군중 무리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아도… 단순히 상상해보라고. 오라즌에 만결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줄지어서 만결이 있는 장소로 오겠지. 그때의 혼란을 너는 조금도 해결할 수 없을테고.”
룬다는 그런 상상을 했고,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래. 우리를 반길 사람들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많이 있어.”
위즈덤이 말했다.
“우리는 이제 옛신이라는 적을 마주해야하니까.”
성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위즈덤이 재차 물었다.
“옛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 거지? 예측할 수 있나?”
“라스다실 폐허에서 비롯되겠지만, 이론적으로는 어디에서든지 나타날 수 있어. 놈들이 만든 시스템이니까, 우리를 타천시키고 자신들이 다시 그 힘을 회복하면 무엇이든 하겠지.”
“얼마나 강할까?”
성운이 솔직하게 말한다.
“그 부분은 미지수군. 놈들은 오래 살았고, 그러니 신성 레벨도 높겠지. 하지만 시스템의 경험치 구조를 생각해볼 때 극적이진 않을 거야. 게다가 놈들은 두 번째 전쟁도 겪었고, 무엇보다 자신을 믿는 신도들을 잃어버렸지. 게다가 우리와 악신 사이들이 전쟁으로 양쪽 다 약화되길 기다렸어. 이 말은 우리가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강하진 않을 거란 말이야. 적이 약해진 다음에야 나타나는 놈들이니까. 놈들 입장에선 시스템을 다시 손아귀에 넣는 것만으로 부족할 거라는 거지. …물론 그것만으로도 놈들과 우리 사이엔 압도적인 격차지.”
“그래. 필멸자로서 불멸자를 상대해야 될 테니까.”
성운은 순순히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는 숨어야 한다.”
“숨는다?”
성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바르틴 전역에는 만신전과의 연결이 깊어 우리가 매끄럽게 빠져들어갈 수 있는 성소들이 있다.”
“한 곳에 모이는 건가?”
“아니. 흩뿌린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드마스가 말한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성운이 받아들인다.
“그래. 그거다. 공격 목표가 흩뿌려지면, 놈들도 공격 방식을 여러 갈래로 생각해야하겠지. 피해를 받더라도 전멸당할 일은 없다.”
천천히 회전하던 위즈덤의 머리가 정지한다.
“누군가 죽을 수 있다고 상정하고 있군.”
“우리가 이길 수 있고, 그에 대한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살아남는다고 하진 않았어.”
만신전의 플레이어들은 잠시 그대로 있는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그대로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하다.
눈을 감고 있는 이도 있고, 무표정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이도 있다.
위즈덤이 말했다.
“각오가 필요한 일이군.”
성운도 동의했다.
“각자 어느 성소로 이동할지는 잠시 후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하지. 달맞이 계획 이후에는 시간이 없을테니까.”
“알겠다.”
성운은 칠판에 ‘성소 선택’을 적었다.
성운이 말했다.
“자, 또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지?”
엘다르가 헛기침을 하고는 손을 가볍게 들었다.
“말해.”
“사도들은 어떻게 되는지요?”
“사도? 중요한 문제지.”
성운은 고개를 가볍게 돌렸다.
성운이 바라보는 곳은 회의실의 문 너머다.
만신전 어딘가에는 이 회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도들이 신들의 명령을 받고 달맞이 계획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오래전부터 신들에게 봉사해왔던 것처럼.
“이번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지.”
성운은 제국의 기억이자 만신전의 영웅들을 떠올렸다가, 다시 만신전의 신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해야할 설명이 많다.
“만신전은 격월 작전이 성립하는 즉시, 모든 사도를 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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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대륙 가름 성소.
중앙 대륙 서쪽 끝, 과거 헤게모니아가 위치했던 자리로, 헤게모니아의 뜻을 받든 놀 왕자가 저 대양을 넘어가겠다 천명한 장소였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딱히 대단한 곳은 아니었다.
단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다란 절벽이 있고, 그 위에 지어진 성소가 꽤나 절경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성소 내부에서 서쪽 바다가 내려다보이기 때문에 퍽 아름답다.
“괜찮으신지? …위즈덤?”
위즈덤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커다란 털덩어리 같은 생물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아니, 이것을 ‘본다’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위즈덤은 그냥 그 생물의 존재를 느꼈고 모양을 머릿속으로 그릴수도 있었다.
다만 색감이 부족했다.
그다지 어색하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은 없다.
‘재미있군. 어떤 파동을 감지해내는 건가? 말은 어떻게 하지?’
위즈덤은 잠시 고민하지만 어렵지 않게 말하는데 성공한다.
“난 괜찮다. 노아. 넌 어떻지?”
기니피그를 닮은 플레이어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제1 대륙에서 시작한 플레이어였고, 게임의 중반부까지 분전했지만 로난테-오로반 연합의 함정에 빠져 패배했다.
노아는 단안경을 살짝 고쳐쓰고, 제 몸에 걸치고 있던 백색의 실험의를 나풀대며 말했다.
“흠, 괜찮네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말랑말랑 뽀송뽀송합니다.”
“다행이군.”
“걱정되는 건 위즈덤 쪽인데요.”
“그런가?”
노아가 지긋이 위즈덤을 바라보았다.
“실험해봐도 되나요?”
“해라.”
노아는 짧은 앞발을 위즈덤에게 뻗었다.
위즈덤은 거부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
노아가 앞발을 허우적대고나서 말했다.
“세상에, 역시.”
위즈덤은 고개를 돌리거나 하는 일도 없이 노아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아차린다.
노아는 위즈덤의 떠 있는 별모양 머리통 아래의 빈 공간으로 손을 넣었다.
“머리통이 떨어져 있어요!”
“어떤 힘이 작용하는가보군. 이런 존재인데도 필멸자인건가?”
“머리를 당겨보면 어떨까요?”
“흥미롭군. 이미 머리와 몸이 떨어져있는데, 어느 정도 거리에서 내 생존이 보장되는지 궁금하긴 해.”
노아는 쿠시싯 웃었다.
“농담이네요. 그러다가 위즈덤이 죽어버리면 곤란하죠.”
“내 입장에선 곤란한 걸로 끝나지 않는데.”
노아가 또 웃는다.
자신이 지구에서는 생물학자라고 밝혔던 노아는 이번 타천에서 학자적 관심을 가졌다.
게임에 대해서 전혀 열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관심을 덜 쏟는다. 누군가의 목숨이 오가는 것 정도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노아가 말했다.
“알디도 만나야 하는데요. 고무 외피를 가진 생물이라니! 온도 조절은 어떻게 한담?”
“그럴 시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위즈덤이 더 흥미롭긴 해요. 목이 비어있는 건 전자기파랑 관련이 있겠죠?”
“즐겁다니 참 다행이군그래.”
위즈덤은 천천히 걸어서 성소 밖으로 걸어나간다.
노아의 관심 때문에 같은 성소로 왔는데, 대체로 한 성소에 한 명을 추천했지만 성운은 둘 정도의 짝 정도는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인간따개가 지적했듯이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짝을 짓는 쪽이 마음에 안정을 줄 수도 있으니까.
위즈덤이 노아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도 그때문이었다.
위즈덤이 느끼기에 노아는 조금 불안정한 플레이어였으므로, 보호가 필요했다.
노아가 위즈덤을 따라 성소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네요.”
해는 중천이다.
햇살로부터 반사되는 윤슬이 위즈덤의 머리통 어딘가에 있을 파동감지계를 가볍게 흔든다.
단순히 시각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렇군.”
노아가 위즈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저희는 그냥 정말, …가만히 있으면 되나요?”
“우리가 해야할 일이 모두 끝났으니, 기다려야지.”
지금의 플레이어들은 무력한 존재다.
다른 필멸자들의 평균 정도나 될까.
어떤 플레이어는 그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결국 움직여야하는 것은 제국이다.
그리고 사도들이다.
‘네뷸라가 사도들을 폐하겠다고 했을 때는, 다들 깜짝 놀랐지.’
하지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도를, 자신의 종교에서 폐할 수 있다.
즉, 아바르틴으로 내던져버릴 수 있다.
이런 플레이는 플레이어의 뜻대로 되지 않는 사도를 죽이기 위해서나, 아니면 사도를 유지하는 것이 플레이에 방해가 될 때 행해졌다.
시스템적으로 지원은 하지만 일명 ‘토사구팽’이라고 불려서 그다지 쓸 일이 없는 기능이긴 했다.
토사구팽 당한 사도들은 아바르틴에 떨어져서, 대충 흉신이나 신수 비슷한 중립적 존재로 취급된다.
애초에 사도를 폐해야 될 정도로, 자원이 빠듯해지는 플레이까지 했다면 그냥 ‘항복’ 버튼을 누르고 게임을 나가는 게 맞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달랐다.
‘사도들을 폐하게 되면, 옛신들이 만신전의 힘을 빼앗기 전에, 사도들의 힘을 어느 정도 유지한 상태로 아바르틴에 둘 수 있다.’
사도에서 떨어진 존재들은 만신전에 있을 때와 같은 수준의 힘을 가지진 않는다.
만신전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당연히 그와 관련된 스킬들도 유효하지 못하다.
전반적으로 약해진 상태가 된다. 만전을 기한다기엔 아쉽다.
‘하지만 만신전의 사도들은 전반적으로 높은 레벨이었어. 게다가 만신전의 사도들은 단순히 힘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도 아니니.’
옛신들에 대항하는 거대한 작전이 제국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사도들이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그들은 이제 자유로운 존재가 되었는데, 굳이 우리 플레이어를 위할 필요가 있을까?’
사도들은 중립적 존재가 되었다.
사도를 폐한다는 말을 했을 때, 가장 걱정된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중립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말은, 옛신들이 그들을 데려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위즈덤은 인간따개의 말을 기억했다.
인간따개의 말처럼, 지금의 위즈덤은 신이었을 때처럼 가속된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옅은 구름들이 흘러가는 속도로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걱정이 되지 않는군.’
위즈덤은 자신의 트롤 기사를 생각한다.
한때는 모든 것을 망쳤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수는 번복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재미있어.’
위즈덤은 상황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필멸의 존재가 되었고, 한때 자신들에게 믿음을 갈구했던 이들을 믿어야만 한다.
‘정말로 재미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