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요탄은 집게발을 짤깍하고 접었다 편다. 아스타시디안 종족이 강조할 때의 제스쳐다.
“피와 살로 된 육체라는 건, 필멸자의 육체를 말합니다. 즉, 현재 그분들은 더 없이 여린 상태입니다.”
“그럼 그분들이… 아, 잠시. …아, 네. 제가 방금 하려던 말이 신성모독적일 수 있다는 사제단 조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네…. 하지만 날카로운 지성을 가지신 제국민 여러분이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요탄 기자 당신도 알겠죠.”
느닷없이 말로코의 아나운서 데스크 쪽에서 소요가 일어난다.
말로코는 담담하게 그쪽을 바라봤다가, 잠시 입술을 굳게 다문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가 말한다.
“아뇨, 이건 신성모독이 아닙니다. 저는 만신전의 신성을 모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모두의 공감대를 공유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던지려고 합니다. 요탄 기자, 답해주십시오. 신들께서는, …필멸자가 된 겁니까?”
요탄이 간략히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분들은 이제 죽을 수 있습니다.”
데스크 쪽 소요가 커지고, 사제복을 입은 사람의 인영이 가까워졌다가, 화면 앞으로 달려나오는 다른 스태프들에게 끌려나가는 모습이 잡힌다.
말로코는 잠시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고, 물을 반모금 마신다.
“…예, 잠시. 데스크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제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희 오라즌 공영방송은 원활한 방송 송출에 더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요탄 기자?”
“네.”
“계속 말씀해주시죠. 신들께서 필멸자가 되었다… 이게 정말입니까?”
요탄이 말한다.
“이와 같은 증거는 현재 사제들은 물론이고 선택받은 자들이나 성기사단이 신앙에서 비롯되는 기적들을 사용하지 못하는 현상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일이죠?”
“단순히 신들께서 필멸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만신전의 힘이, 우리가 알던 신성이… 떠나버렸다는 겁니다.”
“떠났다고요?”
요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스타시디안에게는 어려운 동작이지만, 다른 종족들과 함께 살면서 관습적으로 익힌듯 하다. 이 아스타시디안은 분명 종족이 다른 친구들이 많을 것이다.
기자 요탄이 말했다.
“우리는 이것을 ‘타천’이라고 합니다.”
“…타천. 네. 타천. 어딘가 고풍스런 말이군요?”
“실제로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문헌에서 빌려온 말입니다. 사제들과 고고학자들이 해당 현상에 대해 그리 부르기 시작했고, 천라망을 타고 빠르게 퍼졌지요.”
말로코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요탄 기자. 잠시 자리에서 대기하며 황궁의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예. 지금까지 황궁 앞뜰의 요탄이었습니다.”
요탄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말로코가 진행을 이었다.
“현재 데스크에는 ‘타천’에 대해 설명해주실 남대륙 칼론바 탐험단 단장 아로놀랑 루벨 님 나와계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단장님.”
“예. 아로놀랑 루벨입니다.”
아로놀랑은 흔히 보기 힘든 미노타우르스 종족이다.
거대한 체구 때문에 한 화면에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카메라는 부득불 뒤로 당겨지고, 제법 덩치가 있는 말로코가 상대적으로 작게 보여진다.
말로코가 안경을 고쳐쓰며 아로놀랑을 바라본다.
“타천과 같은 현상이 왜 일어난 겁니까? 천라망에는 많은 누리꾼들이 이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천라망뿐만이 아니죠. 식당과 찻집에서, 지금은 술집에서. 그리고 가족들이 있는 거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네. 신들이 다시 한 번 저희를 버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로놀랑은 가볍게 콧등을 훔친다.
“우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타천을 가지고 신들이 사람을, 제국을, 아바르틴을 버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요?”
“고문학에서 타천이란 단어는 자동적인 게 아니라 피동적으로만 사용 됩니다.”
“아, 단장님, 제국민들을 위해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스스로 타천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언제나 ‘당하는’ 거지요.”
“누구로부터 말입니까?”
아로놀랑은 곧장 답변하지 않고, 자신 앞에 놓여있는 물병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정말로 물병을 내려다보는 것 같지는 않다.
“삭아가는 지식에게 경배를. …꽤 다수의 고문헌으로부터, 옛신들의 행적이 기록되어있고 이에 대한 타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타천은 일종의 형벌이었습니다. 신이었던 것을, 신이 아니게 만드는 거지요. 상위 신이 하위 신에게, 보다 낮은 신격에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격을 잃어버린 이들은, 그렇습니다. 예외 없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요. 죽을 수 있는 것은 죽기 때문에.”
말로코가 안경을 고쳐쓰며 말했다.
실제로 안경이 삐뚤어졌다기보다는, 제스쳐로 이목과 리듬을 잡아내는 습관이다.
“하지만 누가 만신전의 신들보다 높단 말입니까?”
아로놀랑이 말했다.
“옛신들이지요. 옛신들이 돌아온 겁니다.”
이후 뉴스는 ‘옛신’이란 무엇인지, 장황한 아바르틴의 고대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바르틴의 고대 역사는 너무 깊기 때문에 그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
많은 부분들이 고고학자의 추측이나 거의 상상과 가설로 채워져있다.
그럼에도 7만년의 기나긴 역사의 비교적 최근인 ‘악신’의 등장과 그로 인한 ‘옛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의 여파로 겪게 된 4만년의 버림받은 시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순서 자체는 일종의 맥락을 이루고 있어, 시청자가 개괄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은 없다.
“…자료를 제공해주신 남대륙 칼론바 탐험단에 감사드립니다. 아로놀랑 단장님, 옛신들이 새로운 신들을 타천했다… 그래서 만신전의 신들은 지상에 내려왔다는 거군요.”
“예.”
“단장님, 이 모든 일은 ‘달맞이 계획’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최종 작전이라고 불린 ‘격월’ 시행으로부터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았어요. 그 둘은 관계가 있는 사건입니까?”
“예, 분명 관계가 있는 사건입니다. 만신전의 신들께서, 그리고 우리 제국이 격월에 성공했죠. 아직 별지기 최고위원회 발표가 나오지 않긴 했지만, 두 번째 달이 모습을 감추며 악신들을 격퇴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거기까지 모두 사실입니다.”
아로놀랑이 말했다.
“때문에 저는 이렇게 보입니다. 세상에는 이제 만신전과 제국의 적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평화로워진 겁니다. 물론, 제국의 단합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긴하지만, 사실 그 정도는 자연스런 거죠. 제국은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길로 가게 될 겁니다. …아무일도 없었다면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옛신이 나타났단 겁니까?”
“예.”
“무엇을 노리고 말입니까?”
“그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옛신들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타천으로 미루어보아, 명확한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사실이죠?”
아로놀랑은 물병을 조용히 내려다본다.
“옛신이 만신전을 향해 타천 했다는 건, 두 신들의 관계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며, 또한, 불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말로코는 고개를 끄덕인다.
“단장님, 지금까지 타천과 그와 관련한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끝으로 질문 한 가지만 질문하고 싶습니다.”
“예.”
“조금은 사적인 질문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괜찮겠습니까?”
“예. 괜찮습니다.”
말로코와 아로놀랑이 눈을 마주한다.
말로코가 질문한다.
“단장님은 만약 옛신과 만신전, 두 신들 중 따라야한다면 누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로놀랑이 답한다.
“그야 당연히, 우리가 지금까지 믿고 따랐던, 그리하여 우리에게 끝 없이 길을 드러내주었던, 만신전입니다. 저는 노서의 신도입니다. 이제와 이 신앙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신들이 신성을 잃어버려도 말입니까? 타천에 대한 설명이 정말이라면, 이제 만신전의 신들은 저희에게 그 어떤 기적도 내리지 못할 겁니다.”
아로놀랑이 살짝 고개를 흔든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여기, 책상 위엔 아무것도 없죠. 하지만 누가 이렇게…”
아로놀랑은 느닷없이 물병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아주 조금의 물을 쏟았다.
그리고 그 작은 물웅덩이 위에 손을 대더니, 검지손가락으로 하나의 선을 주욱 그려나간다.
“선을 그어주면 우리는 그 선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이 사라지더라도…”
아로놀랑의 손가락이 쏟긴 물 밖으로 계속 나아가자, 손가락의 표면장력에서 벗어난 물들은 마찰로 더는 아로놀랑의 검지 끝을 따르지 않는다.
투명한 물방울의 선은 검지 끝과 끊어진다.
“사라지더라도, 과거에 그어졌던 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저희 향후의 지표가 되는 것이죠. …오래전 누군가 우리의 마음에 선을 그렸습니다. 더는 우리를 이끌어주지 못한다고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 선을 계속 따를 겁니다.”
말로코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1초, 2초, 3초… 방송 사고인가 싶다.
카메라 뒤에서 또 그림자가 오간다.
곧 말로코는 능숙하게 손수건을 꺼내서 아로놀랑이 책상 위에 흘린 물을 훔쳐내며 진행을 이어갔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남대륙 칼론바 탐험단 단장 아로놀랑 루벨 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화면이 작아져 말로코만을 화면에 넣는다.
말로코가 말한다.
“이어지는 소식입니다. 현재, 타천한 신들의 위치는 대체로 부정확하고, 이에 대한 보안 위험 때문에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만신전의 신들 중 한 분은 아주 경쾌한… 행보를 보이고 계십니다. 향후 영상은 현재 황궁과 중앙 사원, 제국군 등 여러 보안 사안을 검수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현장에 나가있는 나린 이오세 기자 연결하겠습니다. …나린 기자?”
말로코 뒤로 화면이 이어진다.
“네! 여기는 남대륙 파비랑 중앙 박물관의 나린 이오세입니다.”
나린 이오세의 종족은 르나르다.
비교적 작달막한 키지만 넘치는 에너지 때문에 작게 보이진 않는다.
실제로 말에 강세를 줄 때마다 몸이 리듬감 있게 움직인다.
“파비랑 중앙 박물관이라면 두두바 고무나무와 관련한… 유서 깊은 발명품들을 전시한 걸로 유명한데요, 왜 그곳에 계십니까?”
“네! 제가 여기 파비랑 중앙 박물관에 나와 있는 이유는요, 이곳에 그 유명한 만신전의 신, ‘날개접은 황금새’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황금새 님은 파비랑 성소에서 깨어나셨고 이후 파비랑 제국령이 제공하는 엄호를 받으며 파비랑 제국령의 주요 명소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계십니다!”
이후 자료 화면이 나간다.
만신전의 플레이어는 RD라고 칭하고, 신도들은 날개접은 황금새라고 불리는, 성운은 고무오리인형이라는 설명만으로 충분히 묘사된다고 보는 이가 당당히 대지를 딛고 선 모습이 보인다.
RD 옆으로는 파비랑이 자랑하는 오구리 특수임무대가 호위를 하고 있다.
오구리 특수임무대는 완전 무장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귀여워보이지만, 그 실전 능력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높아 ‘저렇게 생긴 것도 전략의 일종’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작은 체구는 소형화된 총기로도 적을 제압 가능한 현대전에서 유리한 부분이 꽤나 있었다.
RD는 파비랑의 대로를 뻔뻔하게 걸어가고, 파비랑이 자랑하는 수 많은 건축물들을 들여다보고 감탄을 하거나, 유명 관광지 음식을 쩝쩝대며 먹었다. 당연하지만 팔이 입까지 닿지 않았기 때문에 고위 사제들이 나서서 RD의 시중을 들어야했는데, 사제들은 자신들이 신을 직접 보필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굴 만면에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자료 화면 잘 봤습니다. 그런데, 나린 기자. 제가 보기엔 말입니다.”
“네!”
“황금새 님이 하고 계신 활동이…”
“네!”
“관광처럼 보이는데…”
나린이 명쾌히 답을 내렸다.
“네! 관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