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분노로 가득찬 사르쵸의 얼굴이 비춰진다.
그 울분이 너무 커서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혀있다.
“만신전의 신들을 내놓으라고 명령을 한다고? 사람을 협박한단 말인가? 그런 날개달린 불한당들에게 꿈뻑 고개를 숙이며! 들어라! 아디오시 의원! 그 아둔한 머리통에 새겨 들으란 말이다! 이걸 기회라고 생각했나! 이건 기회가 아니다! 만신전에 이어 옛신들까지, 굴종의 사탕발림이 그토록 그리웠더냐? 꼭두각시는 제국이 아니라 니놈들이다! 그 기생하는 권력으로 어떻게든 제 배를 불리겠다는 더러운 욕심에 눈이 멀었구나. 신들이 신성을 잃어 필멸자가 되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그 일이 일어났다! 우리는 그들에게 감히 죄목을 물어 재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의회 법률에, 지극히 인도적인 절차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게 우리 제국의, 우리 사람의 법이다. 그런데 머리통에 도넛을 올린 버러지들의 말대로 한다고? 누구든 답해 봐라! 신성을 잃은 신이 신인가?”
쏟아지는 말의 파도에 기자들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타자소리까지 멈췄다.
“난 더는 우리 위에 있지 않은 존재들을 신으로 보지 않겠다. 지금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누가 감히 사람을 도구로 쓰는가! 아무도 그럴 수 없다. 절대로!”
박수가 쏟아지더니, 곧이어 기립 박수가, 의회 안의 모든 사람들이 환호를 내지른다.
기자들 중 일부도 그렇게 한다.
당황하는 것은 일부 분리주의 의원들 뿐이다.
사르쵸는 물병을 열고 벌컥대며 마셨다. 단 번에 물병이 비워진다.
심호흡을 마친 사르쵸가 다소 진정된 태도로 말했다.
“세속주의자 동지들에게 이른다. 나 사르쵸, 감히 신을 자칭하는 그 어떤 존재도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부터 의장의 권한으로 서대륙은 제국 중앙과 별개로, 대륙 자치권을 사용하겠다. 자치권이 허용하는 모든 범주에서 제국군을 운용할 것이며, 우리의 적은 옛신이다. 이상.”
─┼
“와, 저 사람 박력 엄청나네.”
휘경이 화면 송출기를 보며 말했다.
화면에는 서대륙 의회 방송이 보여지고 있었고, 이제 막 연설을 끝낸 사르쵸에게 의원들이 손을 들며 질문을 던져댔다.
휘경은 동대륙 폴리비아의 이티모 빌딩 만남의 광장에 있었다.
만남의 광장은 빌딩 70층에서 73층 무려 3개층을 모두 쓰고 있고, 격벽을 만들어 식당과 간단한 놀이 공간으로 꾸며져있다.
과거 수상 도시였던 폴리비아는 이티모 그룹의 재력을 빌려 침식되는 도시를 신기술로 완전 재건했고, 그 위에 높은 빌딩을 쌓을 수 있는 인공 지반을 만들었다.
덕분에 폴리비아는 해안 쪽에서 바라보면 바다 위에 떠오른 거대한 수상 도시처럼 보였다.
수평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높은 빌딩들은 해수면과 함께 햇살을 서로 반사시켜 인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휘경 옆에 있던 그림자가 말했다.
“사도 후보로 알고 있습니다.”
“사도 후보? 와, 절대로 안 받아들일 거 같은데.”
“그야 그렇겠죠. 신들께서도 안타까워들 하십니다.”
“응. 근데, 있잖아.”
휘경은 텅 빈 라운지를 슥 둘러보았다.
휘경은 자신의 옆에 있는 다도와 간식들을 흘겨보았다.
사도가 되었으므로 이런 물질적인 것에 의존할 필요는 없지만 휘경은 습관적으로 챙겼다.
습관적으로 챙긴다기보다는, 육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사도가 되기 전보다 더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기분상 이미 많이 먹어서, 다음 끼니는 먹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옆에 있던 그림자가 말한다.
“말씀하시지요, 휘경.”
“어….”
만남의 광장이 텅 비어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국 전체가 전시에 준하는 위급한 상황이다.
한가하게 세계적인 기업의 빌딩 만남의 광장에서 놀고 있을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다.
“…사이란, 우리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 맞아?”
그림자, 사이란 무엘이 성큼 다가와서 부드럽게 휘경의 등받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 있잖아, 사이란은 격월 작전에도 참가 안 했고.”
“야천께서 직접 명하셨습니다. 제가 지킬 것은 휘경이라고.”
“어, 그, 저. 그래. 라크락은?”
“애초에 제가 참가할 거라고 생각도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올은?”
“지아비가 지어미와 함께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 응. 근데… 우리… 너무 가깝다.”
“미안합니다.”
휘경은 멀어지려는 사이란의 턱에 살짝 손을 댔다.
사이란은 의아해하며 휘경과 눈을 마주쳤다.
휘경이 주저하다 다시 손을 뗐다.
“그래도 놀러온 건 아니니까 말이지. 신들께 무례하고 싶진 않아.”
“알겠습니다.”
휘경은 이번 계획에 대해 들었을 때 많이 놀라긴 했다.
‘타천이라니.’
하지만 타천 가능성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휘경은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고 해도, 미리 알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다면 위험은 없는 셈이다.
실제로 타천이 일어나고 옛신들이 나타났지만 아직 큰 일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주의하긴 해야겠지.’
사도들은 옛신들을 상대할 목적으로 이미 제국의 곳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는 첩보국과 제국군 사령부와 긴밀한 연관이 있었고, 송출되는 방송들을 보아하니 제국민들 대다수는 물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르쵸 정도 되는 인물도 제국군이 제대로 대비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물론 사르쵸가 직접 저런 발언을 하는 것만으로, 서대륙의 제국군 중 혁명군 출신자를 부드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휘경이 보기에 분리주의자들은 현실의 힘과 같은 강경 세속주의자 단체들 보다 더 큰 폭탄이었다.
사르쵸는 한 번의 연설로 그런 위협들을 모두 잠재웠을 뿐만 아니라 양방 대륙의 수 많은 세속주의자들을 감화시켰다.
‘야천 님의 말대로야. 판이 깨끗하게 깔리는구나.’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옛신들은 너무 오래된 기록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올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위급한 시간이었다.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지.’
하지만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옛신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되었든 공격을 하려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이상, 공격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쉽다고 할 수는 없었다.
수 많은 천공성들, 그리고 그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부유하는 수정, 그리고 옛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것까지.
특히나 만신전의 신들은 위험에 노출된 상태였다.
적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어느 정도의 방호가 적절한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신들 중 일부는 자진해서 미끼 역할을 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만신전은 충분히 안전한 방호가 보장 될 경우, 일종의 ‘유인’을 통해서 옛신들의 관측과 공격 방법을 미리 알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어느 정도가 안전한 방호인지는 역시 알 수 없으므로, 현 상황에서 자진한 신들은 거의 맨몸으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응. 하지만 괜찮을 거야.’
대비는 되어있다.
만신전은 옛신을 상대하기 위해 은밀하게 제국의 체계를 이원화했다.
하나는 드러난 권력, 바로 황궁과 제국군이다.
이들의 목적은 옛신들을 상대로 무방비하거나 제대로 된 대처를 보여주지 못하고, 수동적인 방비를 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한다.
실제 전투가 일어날 경우 모두가 결사의 항전을 해내는 방패가 되겠지만, 공격 수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다른 하나는 은밀하게 숨겨진 권력, 첩보국과 다섯 번째 수차다.
제국의 신경계라고도 할 수 있을 이 두 비밀기관은 각각 전세계의 사도들을 연결하고 의견을 긴밀하게 조합하도록 돕고 있었다.
특히나 자본의 흐름을 통해서만 연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다섯 번째 수차의 경우, 옛신들이 이 연결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것이란 근거가 있었다. 고대 유적 연구에 따르면, 저들은 제대로 된 자본주의를 이룩해본 역사가 없었다.
‘맹점인 거지. 맹점이 무서운 이유는,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지도 못하는 것에 있고.’
폴리비아의 이티모 빌딩이 이 다섯 번째 수차의 핵심 장소였다.
달맞이 계획을 핑계로 띄워둔 수 십 개의 인공위성들이 빛의 속도로 옛신들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고, 거의 무한대로 투자되는 인적, 물적 재원들이 연구 기관에서 뽑아내고 있었다.
휘경이 휴대용 단말기를 확인한 다음 말했다.
“사이란, 부유하는 수정 해석이 끝났어.”
“아, 그렇습니까?”
“마법 해석에 의하면 일종의 물리 전송 장치라고 해.”
“수송기군요. 적들이 각 도시 심부를 습격하려는 의도였나 봅니다.”
“음, 그렇겠지. 파괴 방법이 생각보다 단순하네.”
“제국군에게 즉시 전송할 겁니까?”
“우리 ‘대장군’ 님에게 허락을 맡는 게 좋겠지?”
휘경이 돌아보았다.
여기 만남의 광장에는 다른 사도들도 있었다.
사이란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아냐, 같이 가. 묻고 싶은 것도 있고.”
사이란은 고개를 끄덕이곤 휘경과 함께 만남의 광장 한쪽에 있는, 넓은 기원으로 향한다.
바둑을 비롯해 여러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현대식 빌딩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목재를 사용해 상당히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다.
이제 제국에는 전자 오락이나 여러 전자 단말기를 이용한 게임들이 흔해졌지만서도, 여전히 이런 오래된 게임들도 제국에선 인기가 많아서, 프로 기사들은 연예인만큼 유명한 편이었다.
텅 빈 기원 안으로 들어가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자네는 자네의 선조보다 훨씬 똑똑하군.”
“그거 참… 칭찬으로 받아들여야할런지….”
“칭찬으로 받아들여야지. 무릇 어른이란 제 후손이 저보다 나은 걸 알면 기쁜 것이거든. 훼사도 기뻐할 거야.”
“그럼 그리 알겠습니다마는… 제가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의문을 표한건, 아홉 점을 두고도 진 부분인데…”
그 말에 호쾌한 웃음소리가 기원 안으로 퍼진다.
눈에 보이는 것은 깜짝 놀랄만큼 거대한 오우거인데, 휘경은 저 첩보국 요원 ‘만도 훼사’를 이번에 알게 되었다.
휘경이 찾는 인물은 만도에 가려진 사람이었다.
만도가 빠르게 기척을 알아차리고 돌아보았다.
“어이쿠, 이런. ”
“아, 하고 계세요.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라고 한 건 야천 님이니까요.”
그 말에 만도의 몸에 가려져 있던 이가 답했다.
“오, 휘경 님. 그렇습니다. 빨리 이기고 싶다고 마음이 급해봤자 소용 없거든요. 언제나 중요한 건 적시에 움직이는 것이지요.”
휘경은 저 당당한 모습을 보자 어딘가 켕겼던 마음이 풀리는 걸 느꼈다.
제국의 최고 전략가가 하는 말이니 틀렸을리는 없다.
“부유하는 수정 해석이 끝났어요. 그 정체는…”
“소환 장치 비슷한 거겠지요.”
“아, 누가 먼저 말해줬나요?”
“흠, 글쎄요. 그것 말고 달리 생각해볼만한 게 없어서.”
휘경은 만도를 지나 반상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검은 비늘을 가진 리자드맨을 바라보았다.
이 리자드맨은 만신전의 골칫거리였는데, 신들이 주겠다는 사도 자리를 빈번하게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신들은 누구나 유능한 이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사도 자리를 주고 싶어하는데, 그걸 거절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이유는 있었다.
‘죽고 나면 드디어 편하게 쉬는 줄 알았는데, 어처구니가 없군! 안 받소! 불쌍한 내 동생 좀 보시오. 내가 하고 싶겠소? 난 이제 놀러나 다닐 거요.’
그는 그리 말하고 만신전도 아닌 태초의 평원을 쏘다녔다.
본래도 유명 인사지만 기행들 덕에 더 유명해졌다.
신들 중 일부는 ‘내기’를 통해, 사도를 권하기 시작한 탓이다.
공평한 게임을 통해 신과 대결하여 신이 이기면 그 이름으로 사도가 되겠다는 것인데, 공평함을 맞추기 위해 신들이 나름대로 페널티를 부과한 상태로 게임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도전한 모든 신들이 패배했다.
물론 이 유명한 ‘사도 되지 않은 자’에게 가장 높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도전하지 않은 최후의 신이 있었다.
야천이었다.
어떤 신이 왜 이제서야 그 리자드맨에게 도전하느냐는 말에, 야천이 답했다.
“때가 되었으니까.”
야천은 이 리자드맨을 상대로 승리했고, 자신의 사도로, 만신전의 사도 끝자리를 내주었다.
휘경이 흐뭇한 얼굴로 동격의 사도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사람의 군대로는 패배해본적이 없었다면서요. 그럼 신의 군대를 상대로는 어떨 것 같아요?”
만신전의 마지막, 서른 세 번째 사도, 바센 라크 오라즌이 웃으며 말했다.
“다를 것 있겠습니까? 제가 이제 신의 군대를 지휘할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