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휘경은 바센의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부유하는 수정 건은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제국군에게 비밀리에 알려줄 수는 있겠지만….”
바센이 드디어 바둑판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좀더 자세히 들어봅시다.”
휘경은 간략하게 부유하는 수정을 연구한 바에 대해서 말했다.
바센이 추측한 바와 같이 적들이 무언가를 소환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며, 실제로 고문헌에서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했다.
제일 중요한 건 부유하는 수정 그 자체를 공격하는 방법이었다.
단순한 현대 화기의 공격이 먹히지 않은 이유는, 부유하는 수정이 마법적 차폐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차폐막을 없에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난 뒤 바센이 말했다.
“기다립시다.”
휘경은 반문했다.
“기다려요? 위급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저희는 이미 미끼를 던져 놨습니다. 제국이 놈들의 첫 번째 공격 수단인 부유하는 수정에 대해서 제대로 대처를 못하고 있다고요. 여기서 굳이 놈들에게 경각심을 줄 필요는 없죠. 거기다 저희는 아직 놈들의 정찰 자원에 대해서 모릅니다. 최대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휘경은 전략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알지 못하므로 우선은 동의했다.
그래도 의문은 있었다.
“하지만 정작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제국은 정말로 속수무책일지도 모르는데요.”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건 아닙니다. 흠, 이렇게 하죠. 부유하는 수정의 약점은 ‘낮은 온도’라고 했지 않습니까?”
“네.”
부유하는 수정의 차폐막을 부수는 것은 0도에 가까운 낮은 온도로, 그 온도에 가까워질수록 차폐막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실제로 부유하는 수정은 현재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남대륙의 도시들에서는 관측되지 않았다. 힌트가 있었던 것이다.
“각 도시의 상황과 지역에 맞는 대처가 필요할 겁니다. 이제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동쪽으로 해안을 낀, 북위도가 높은 도시들은 그저 물을 뒤집어 씌우는 것만으로 차폐막을 상당히 약화시킬 수 있을테고, 규모가 있는 화학 공업지구가 있는 곳에서는 질소를 냉각할 수 있을테고, 기술 산업이 다소 떨어지는 지역은… 무식한 접근 방법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냉동고에 얼음을 쟁여둘 수도 있을 겁니다. 후자의 경우엔 사출 방법을 강구해야겠군요. ”
“…방금 다 생각한 거에요?”
바센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다섯 번째 수차의 연락망이라면 제국군을 경유하지 않고 민간 사업자와 유통업자들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저들이 모르게요.”
휘경은 고개를 주억였다.
이미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있었다.
지역 상수관 설비를 긴급 점검한다는 빌미로 수도 시설을 개조하고, 긴급하게 지역 화학 공업지구에 웃돈을 주며 액화 질소를 주문하고, 해안 지역에서는 폐기가 가까워지는 생선들이 있다며 냉동고에 얼음을 얼리도록 할 수 있다.
제국의 직접적인 명령들과 달리 옛신들은 물론이고, 이 자본의 흐름에 엮이는 이들 조차도 자신들이 옛신들에 대항하는데 있어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게 하죠.”
휘경이 답하자 바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도, 미안하지만 다음판은 두기 힘들겠군. 이제 움직여야 할 때가 온 거 같아.”
“아닙니다. 미안하다니요. 영광이었습니다.”
만도 훼사는 자신의 커다란 몸을 넙죽 엎드리려고 했고, 바센은 손사레를 쳤다. 바둑알이 쏟아지고 바둑판 다리가 살짝 금이 가는 약간의 소란 뒤에 바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흠, 좋습니다. 부유하는 수정은 그렇다치고, 이제 *시나리오*에 따르면 결전 체계도 준비 되었을 것 같은데요.”
“아, 그쪽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어요.”
“그럼 그쪽으로 갑시다.”
“어, 그러니까…”
기원을 빠져나온 휘경은 만남의 광장을 두리번거렸다.
미로처럼 복잡한 곳인데다 휘경은 길을 찾는데 있어서 서툰 부분이 있었다.
두 사도를 뒤따라 걷던 사이란은 아무 말 없이 여유있게 앞장섰다.
“이쪽입니다.”
현대 건축 공학이 만들어낸 다채로운 공간을 이동하는 동안, 바센은 결전 체계에 대해 생각했다.
결전 체계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그 자체는 대단하다고 볼 수 없다.
결전 체계는 제국이 이미 가지고 있는 정찰 자원과 제국군, 기타 인적, 물적 자원을 총괄 통일해서 조종할 수 있는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제국은 다채롭고 복잡한 곳이기 때문에 만신전 조차도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황궁을 호출하거나 사원을 호출하거나 제국군을, 아니면 첩보국을, 또는 최근에는 별지기라는 또 다른 외연으로 넓혀가며 부분적으로만 움직인다.
결전 체계는 제국을 이루는 복잡한 구성들을 모두 단순화 시키고, 직접적인 명령을 즉각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단순히 명령이 아닌 만신전의 뜻. 즉 상위의 명령 체계를 제국군에게 훈련시키고, 헌법에 버금가는 초법적 조치가 마련되며, 그 뜻에 따라 필요하다면 목숨조차도 걸 수 있도록 강제화 되는 조치들이 이어진다.
‘…그러니 이건 신들께서도 건드리시지 않았던 방법이지.’
불경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지만, 신들께서 허락하셨으니 바센으로서는 잘 다루어서 신들께서 만족하시길 바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어떤 사도들은 감히 그 체계를 다룰 자격이 없다며 발을 빼기도 했는데, 그 부분은 바센이 이해하기 힘든 점이었다.
‘하, 신들께서도 다루지 못한 힘을 건드릴 기회가 왔는데 그걸 포기한다고?’
이 결전 체계를 다루는 것이 비윤리적이고 반인권적이라는 것은 바센도 알았다.
비난 받을 것이다.
‘이 체계 위에서 내가 명령을 호령하면, 제국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내 목소리만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으니까. 마치 신이 된 것처럼 말이지.’
세 사람은 결전 체계가 준비된 지휘실로 들어섰고, 권한이 없는 만도는 경례를 붙인 다음 문 앞에서 대기했다.
“좋군, 내가 생각한대로야.”
바센은 지휘실을 둘러보았다.
넓은 공간이다.
아직 직원들이 급하게 통신 설비를 연결하느라 어수선하게 선들이 늘어져있지만, 크고 작은 수많은 화면 송출기들이 무질서하게 지휘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바센의 명령을 즉각 호출할 수 있는 무선 통신사들이 족히 300명은 넘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바센이 익히 알고 있는, 이번 체계를 준비하는데 바센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을 사도들도 있었다.
“도르돌, 준비는 다 되어가는건가?”
오우거 도르돌이 슥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예, 대장군. 긴급 상황에선 즉시 전환이 가능합니다.”
“흠, 나는 자네라면 지금이라도 자릴 바꿔줄 수 있는데.”
“당치 않습니다.”
“쯧, 겸양하고는.”
도르돌이 웃고는 가로저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체계는 저보다, 대장군 당신이 더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전쟁이라면, …네. 대장군과 저는 붙어볼만 하다고 믿습니다. 온갖 변수들이 대장군에게 유리하기만 하지는 않을테니. 하지만 이것이 놀이판이라면, 아닙니다. 결전 체계를 사용하는 건 진짜 전쟁 보다는 놀이에 가깝지요. 이건 *게임*입니다.”
“흥.”
바센이 코웃음을 쳤다.
“사도 자리가 낮다고 꼽주는건가?”
“허어, 말이 되는 소릴 하십시오. 누가 대장군에게 그리 대하겠습니까.”
없는 건 아니지 않나 하고 두 사람 모두 라크락을 떠올렸지만 서로 무안하게 시선을 주고 받은 뒤 넘어가기로 했다.
바센이 투덜대며 말했다.
“나라면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걸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제국에 걸린 수 많은 목숨들도. 자네는 올바른 사람이라 그리 할 수 없다는 거고. 나는, 그렇지. 망나니 왕자 출신이라서 그럴 수 있다는 거고.”
“이것 참.”
도르돌은 입가에 미소를 놓지 못하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내는 이를 저는 더 알고 있습니다. 저보다 당신이 그분을 더 닮았고, 그래서 그분이 당신을 선택한 겁니다.”
“…그리 말하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질줄 알고?”
“없습니까?”
바센은 도르돌을 지나 지휘실 중앙에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욕심하고는. 내가 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뿐이니, 더 바라지 말게.”
도르돌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리* 말이지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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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창공.
구름 위에는 스물 두 개의 천공성이 떠있다.
이 천공성들은 지상 가까이 내려간 일흔 두 개의 저급한 천공성들과는 그 목적이 다르다.
이 천공성들은 황금과 백금의 우아한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런 장식들은 모두 마법 공학적 설계에 따라 배치 되었다.
이따금 끔찍한 시체들이 이렇게 교차하는 장식선들 사이에 꾸며져 있는데, 서로 다른 종족의 이 시체들은 고통에 찬 표정을 짓고 있으며, 실제로 그 영혼은 고통받고 있다. 시체의 몸은 마법 효력을 띄기 위해서 물리적으로 뒤틀리고 묶이고 조각되고 꿰메어져 아름답게 가공되었다. 이 가공은 모두 시체들의 영혼으로부터 마법을 추출하기 위한 역할로, 옛신들의 가장 오랜 마법 학파인 ‘고통 학파’의 마법이다.
이들 지고한 천공성들은 옛신들의 터전으로서 오랜 시간 존재해왔으며, 한때 마계로 사라졌다가, 다시 아바르틴의 창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공성들은 각각의 옛신을 주인으로 섬겼고, 저마다 그 주인인 옛신의 정해진 지위와 체계에 맞는 고도를 이루었다.
“…무언가 이상하구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자, 옛신들의 우두머리, 아버지들의 아버지, 비프넨 다이알 로바네가 100여미터의 거구로 자신의 천공성 끝에 서서 옛신들을 내려다보았다.
비프넨은 모두 열 여섯 장의 날개를 가졌고, 그 머리 위로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후광을 이고 있다. 하나의 천가지만 걸쳐 가려진 몸, 회백색 피부는 거의 드러나있고 단단하게 정렬한 근육은 완전하다는 인상을 준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완전할 것이다. ‘완전한 육체’라는 건 생물종의 숫자 만큼이나 수 많은 미학적 가치가 있겠지만 적어도 옛신의 관점에선 완벽해보인다.
“…그렇지 않으냐? 알딘.”
호명된 존재는 가장 낮은 지위의 천공성에 있는 알딘이었다.
알딘은 여섯 개의 날개를 바닥에 납작 붙이며, 자신의 천공성 위에서 몸을 숙인다.
천공성의 사이는 꽤나 멀지만 이들 천공성의 마법 연결은 긴밀하다.
바닥에 이마를 맞댄 알딘이 말한다.
“무지한 필멸자들입니다.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하지만 17억이다. 저토록 많은 숫자가 있는데, 왜 아무도 우리가 이른 일을 해내지 못하는 거냐?”
“무릇 필멸자들이란 겁쟁이들입니다. 신들이 입을 열면, 뭔가 하기보다 겁부터 먹지요. 예전부터 겪어보셨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알딘은 초조하게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제발.’
비프넨이 말했다.
“그래. 그렇군.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잊고 있었구나. 저 자그마한 존재들은 언제나 그랬지. 예전부터. 그럼 오래된 방식을 써야만겠구나.”
알딘이 생각했다.
‘제발. 안돼.’
비프넨이 말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매를 들어야 하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