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그래도 알딘은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보았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자신의 마음에 생채기가 나긴 했지만 그건 기분의 문제일 따름이다.
옛신들이 알딘을 종처럼 부리지만 그래도 천사의 죽음 따위로 시비를 걸진 않을 터였다. 알딘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지만 그래도 신은 신이었다.
‘게다가 수많은 천사 중 하나가 실패했을 뿐이지.’
하나가 실패했다면 둘을, 둘이 실패하면 셋을 보내면 된다.
‘…아니. 멍청한 생각이야. 하나가 실패했다면 그 다음은 열을 보내야지. 왜 하나씩 늘려?’
알딘은 시스템을 이용해, 옛신들의 저장 공간에 있는 천사들을 하나씩 체크했다.
천사들은 대부분 관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우리 안쪽을 서성이거나, 동면한 상태로 정지해 있었다.
각각의 천사들은 제 주인이 있다. 하지만 그 주인, 옛신들은 이제 대부분 천사들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
천사를 만드는 유행이 지나간 것도 수 만년 전이다.
과거에는 그토록 사랑했지만 이제는 천사에게 붙여두었던 이름들도 모두 잊었으리라.
자신에게 천사가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할 이들이다.
‘물론, 소지품에 손을 대는 건 들키지 않는 게 좋겠지.’
아바르틴을 정복하는 역할은 알딘이지만 시스템으로 빌려오는 그 권한이 무한하진 못하다.
과거의 일 때문에, 알딘이 죄인이기 때문에, 옛신들이 알딘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알딘으로서는 편법을 쓸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관심도 없을텐데.’
알딘은 다른 옛신의 시스템창 안에서 꺼내어진, 한줌의 천사들을 내려다보다가 자신의 소지품으로 밀어넣었다.
“알딘!”
바로 그 순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알딘은 숨을 죽였다.
‘들켰나?’
알딘은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안도했다.
크나일 아브 에넨, 그리 지위가 높은 이가 아니었다.
크나일은 날개를 펼치고 부드럽게 허공을 체공하며 발끝으로 알딘의 천공성에 발을 내딛었다.
알딘의 천공성은 어지럽고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크나일은 자신의 미적 감각에,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으로 알딘에게 경멸스런 표정을 지었다.
알딘이 공손히 말했다.
“무슨 일인지요, 오라버니.”
“또 내 시스템이 먹통이다.”
알딘이 생각했다.
‘멍청한 놈.’
침식 이후 시스템에 오류가 늘어나긴 했지만, 그중 많은 오류는 시스템에 능숙하다면 간단히 처리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크나일은 그런 단순한 오류조차도 혼자서 해결하지 못하고, 언제나 신경질적으로 알딘을 불러세워 고쳐주길 요구했다.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서둘러라.”
알딘은 시작도 하기 전에 재촉을 들으며, 크나일의 시스템창을 옆에서 확인하며 오류를 확인했다.
다만 알딘의 생각과 달리, 이번에는 크나일의 시스템창은 간단한 오류는 아니었다.
알딘은 보편적인 오류 대처법의 절차들을 순서대로 밟아나갔다.
그 모습을 크나일이 뒤에서 바라보며 말했다.
“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또 멍청한 놈이 제 창을 고장냈구나 싶었겠지. 하지만 보다시피, 아니다. 내가 손을 대기도 전에 오류가 났다.”
“…그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라버니. 그리고 침식 이후 시스템이란 오류 덩어리죠. 오라버니의 잘못은 아닐 겁니다.”
“아, 역시 그렇지? 우리 모두가 깨어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유난히 시스템 오류가 많군. 아버지에게 점검이 필요하다고 알려드려야겠어.”
알딘은 속으로 혀를 찬다.
당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가 있는데, 이런 사적인 일에 끌려다녀야 한다니.
‘그리고 너희가 깨어난 거랑 오류가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드문드문 혼자 깨어서 시스템의 유지보수를 해온 건 나라고.’
알딘은 그와 같은 생각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크나일의 문제를 거의 해결해간다.
한편으론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에 어떤 하자가 있는 건 분명해.’
알딘은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단순 오류의 연장일 수도 있고, 옛신들이 경계하고 있는 마계 침식이 가속도가 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네뷸라가 악신들과 비슷한 방법으로 시스템에 관여를 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알딘이 확인해본 바, 네뷸라가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시스템의 문장 겨우 한 줄이었다.
그 정도라면 옛신들로부터 두 번째 달 룸의 제어권을 빼앗는데 성공했던 악신보다도 못하다.
무엇보다 지금 네뷸라는 타천한 상태다.
신과 같은 힘은 그에게 없다.
‘이 일을 마치고 서둘러 끝내자. 네뷸라만 죽이고나면 크게 걱정할 문제는 없어.’
알딘은 크나일의 문제를 해결한다.
“오라버니, 끝났습니다.”
“음? 그래.”
알딘은 창공을 바라보고 있는 크나일의 시선을 따라간다.
“뭘 보고 계십니까?”
“아니, 저기 하늘에…”
크나일이 천공성들 사이의 허공을 가리킨다.
어째서인지 붉은 빛이 감돈다.
석양인가 싶지만, 알딘은 자신의 오른쪽에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태양이라는 걸 깨닫는다.
크나일이 의아해한다.
“저게 뭐지?”
알딘은 의아해하지 않는다.
그대신 습관적으로 빠르게 시스템 창을 확인한다.
알딘이 확인하는 것은 대부분의 옛신들은 펼치는 법도 모르는, 이전 ‘게임’과 관련된 시스템 창이다.
알딘은 눈이 크게 떠진다.
「플레이어 목록
…
볼트
치스트카
헤게모니아」
알딘이 중얼거린다.
“…헤게모니아?”
크나일이 알딘을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지?”
순간 세상이 적색으로 변한다.
허공에 밝아오던 붉은 빛이 폭발하며, 그 점으로부터 무언가가 나타났다.
어딘가에서 거칠게 징을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알딘이 크나일에게 말했다.
“습격입니다!”
“습격이라니? 누가 말이냐? 필멸자들이?”
“아니, 플레이어… 새로운 신들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놈들은 모두 타천을 했잖나?”
“타천 되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저자를 막겠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지금 서둘러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려야…”
크나일이 입술을 비죽 내민다.
“난 안한다. 알아서 해라.”
“예?”
“얼굴을 보아하니 너의 실수인듯한데, 알아서 하란 말이다. 괜히 너와 엮이었다 그놈같은 꼴이 날 수는 없지.”
알딘은 어처구니가 없다.
잘잘못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알딘은 게임에 참가할 모든 플레이어를 직접 선택했다.
그리고 헤게모니아에 대해서도 알았다.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헤게모니아의 플레이를 보기도 했다.
네뷸라의 플레이에 우아함이 있다면, 헤게모니아의 플레이에는 야만성이 있었다.
알딘이 보기에 두 사람은 동급의 실력이었다.
단지 네뷸라가 상성적으로 유리할 뿐이다.
알딘에게 있어 둘 중 하나와 싸워야 한다면, 상대하고 싶지 않은 진짜 괴물은 헤게모니아였다.
“…그럼 서둘러 피하기라도 해야 합니다. 아버지에겐 제가 직접 말할 터이니…”
“그것도 싫다. 너는 우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 만약 우리의 천공성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간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오라버니!”
“말대꾸라도 하겠다는 거냐?”
알딘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허공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징소리에 천공성의 다른 옛신들이 조용히 허공으로 고개를 내민다.
알딘은 시스템 창을 조작해서, 소지품 창에서 천사들을 집어들었다.
소지품화 되어있던 천사들은 알딘의 손에서 떠나자마자 본래의 질감과 크기로, 부동의 존재에서 생기를 얻고 숨을 쉬는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날개 달린 존재들, 또는 딱딱한 백색의 알 속에 갇힌 존재들, 또는 거대한 수레바퀴 같은 존재들, 모두 천사의 모습으로 불리는 것들이 천공성 사이의 허공으로 부유했다.
천사들은 알딘의 의도대로 붉은 빛을 경계했다.
‘잠깐의 시간만 끌면 된다. 아버지에게 다시 권한을 받아 타천 시켜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부르지 않는 이상, 알딘이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알딘은 주저하다가 그 절차를 어기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자신에게 덜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거라고 판단했다.
알딘이 가장 높은 자리의 천공성으로 가기 위해 허공에 떠오른 순간, 느닷없이 징소리가 끊어졌다.
-너희는 나를 안다.
허공에서 갑옷을 입은 이가 걸어나온다.
암시되었던 불길함에도 불구하고, 달아오른 갑옷 사이로 솟아오르는 불길의 사나움도,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뿔투구의 웅대함에도 불구하고, 이 존재는 당장, 혼자다.
말을 잃은 기사는 어떤 점에선 초라해보인다.
알딘은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헤게모니아의 모습으로부터 약간의 희망을 느낀다.
‘그래, 봉신을 당했었지. 만약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신성 레벨이 10은 떨어졌을 걸. 현신 스킬을 겨우 사용할 수 있을 레벨일 거다. 그러니 본래는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영역으로 주변을 가꾸었을텐데, 그렇지 못한거군.’
분노하는 자가 비척대며 허공을 걸어온다.
-나는 너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존재다.
그 말에 크나일이 웃음을 터트렸다.
비장하게 말하지만 초라하기만 한, 신답지 못한 모습을 비웃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옛신들은 물론이고, 알딘 또한 하나의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플레이어에게 중요한 건 효율성이다.
레벨과 영역과 신앙이 남아돈다면 모를까, 현신과 같은 값비싼 스킬을 사용할 때는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헤게모니아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다는 걸, 이미 수 많은 게임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레벨이라는 건 결국…’
헤게모니아는 검을 들어올린다.
목표는 이미 정했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분노하는 자를 대할 때 각오를 해야한다.
헤게모니아는 자신에 대한 도발을 용서하지 않는다.
‘경험치를 채워서 올리면 그만이지.’
옛신들 중 누구도 헤게모니아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한다.
헤게모니아가 크나일의 앞으로 달려드는 것도 보지 못하고, 그 앞에서 검을 들어 베어올리는 것도 보지 못한다.
스킵이다.
관측되는 것은 크나일의 우상반신과 좌하반신이 분리되는 순간이다.
공간참은 다소의 신앙 레벨 격차를 무시해낸다.
헤게모니아는 무정하게 자신의 경험치가 상승하는 것을 확인한다.
크나일 아브 에넨이라 불렸던 옛신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고, 천공성의 가장자리로 피가 차오르더니 주르륵 흐른다.
옛신들 사이로 적막이 흐른다.
-나는 전쟁이다.
─┼
폴리비아, 이티모 빌딩 비밀 지휘실.
통신관 하나가 바센에게 보고 했다.
“대장군님. 분노하는 자, 관측 됩니다.”
“어디지?”
“…고고도에 위치한 스물 두 개의 연속체 천공성입니다.”
“하, 미쳤군. 머리를 친다?”
그렇게 말하면서 바센은 책상을 두 손으로 가볍게 때렸다.
누가봐도 만족스런 표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놀란 것 같지도 않다.
바센이 말했다.
“제군, 우리는 이제 전쟁의 신과 호흡을 맞춘다. 부유하는 수정 파괴 준비는?”
휘경이 휴대용 단말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대도시 125개소, 그러니까 9할은 끝났네요.”
“충분하군. 끝장냅시다.”
휘경이 단말기를 조작한다. 버튼을 하나 누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바센이 도르돌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사일은?”
“준비 끝났습니다, 대장군.”
“기다릴 것 있나? 발사하지.”
도르돌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봉인 되어 있던 유리 덮개를 열고 붉은 버튼을 누른다.
그 신호는 행성 아바르틴 주변을 돌고 있는 수 많은 인공위성에 가닿았다가, 다시금 제국 전역에 있는 미사일 기지와 핵잠수함으로 쏘아졌다.
각 기지 미사일 발사 사령관들이 즉시 명령을 이행했다.
달맞이 계획을 위한다는 핑계로 이루어졌던 로켓 발사 기술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기술이 되었다.
그리고 환경주의자들의 공격을 피한다는 이유로 숨겨진 전술 핵탄두들이 그 미사일에 실렸다.
쏘아진 미사일들이 향하는 곳은, 아바르틴 전역을 뒤덮고 있는 일흔 두 개의 천공성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