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알딘은 시스템의 손상 정도를 파악한다.
‘치명적이지만, 복구가 불가능하진 않아. 네뷸라를 처리하고 나서도 충분히 시간이 있어.’
스물 두 개의 천공성에 위기가 닥쳤지만, 옛신들의 저력은 플레이어 셋이 달려든다고해서 무너질만큼 빈약하진 않다. 7만년이라는 깊이는 결코 적지 않으니, 알딘은 그것을 믿었다.
문제는 눈 앞의 네뷸라다.
네뷸라는 물소머리뼈를 뒤집어쓰고 밤하늘과 같은 검은 망토를 둘렀다.
양 어깨에 검은 도마뱀과 백색 까마귀, 자신의 두 사도를 데리고 있다.
두 작은 짐승은 알딘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무릇 신성이 주는 압박이 없을텐데도 불구하고 이 필멸의 존재는 감히 신의 존재감에 필적한다.
‘마법을 배웠을줄은 몰랐는데.’
알딘은 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상의 힘을 바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네뷸라는 승리 이후 자신과 이야기하기 전까지 시스템의 근간이 마법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마법을 익히는데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애초에 잘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지구*를 택한 거니까. 마법이 없는 세계를.’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성운은 마법을 배워냈다.
단순히 배운 정도가 아니라, 알딘이 보기엔 조율에 도달했다.
마법사들은 현실과 꿈, 두 개의 의식을 가지는데 이러한 상태는 상당히 위험하다.
현실의 의식이 꿈의 의식을 집어삼키면 마법을 잃어버리며, 반대로 꿈의 의식이 현실의 의식을 집어삼키면 현실에 발을 붙이기 힘들어진다. 미쳐버리는 것이다.
옛신들이 마성의 정령을 만든 것은 마법이 예기치 못한 존재에게 넘어가지 못하도록 꿈을 가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선 꿈의 의식을 안정화 시키는 작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조율이었다.
조율은 현실의 의식과 꿈의 의식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마법사는 자신의 의지를 현실과 꿈에서 관철하는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시스템을 만든 도래자도, 옛신들도, 알딘 또한 신이 되기 전에 조율에 이르렀다.
현재 알딘 자신과 네뷸라는 같은 수준의 마법사라고 봐야했다.
마법이 없는 세계에서 온 네뷸라가 이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딘으로서는 의아하다.
‘고유영역이 영향을 준건가.’
그럴지도 모른다. 알딘은 안다. 항상 마법이 말썽이다.
악신이라는 변수가 네뷸라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옛신들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믿은 순간, 악신들은 마법에 간섭할 힘을 손에 넣었고 마계 심부에서 두 번째 달의 제어권을 강탈했다.
분명 그 산물인 고유영역이 네뷸라의 손에 떨어졌으리라.
‘상관없어.’
마법사로서는 동격일지 몰라도 네뷸라는 이제 시스템 바깥의 존재였다.
시스템은 부서지고 있다고해도 여전히 그 역할은 다하고 있다.
알딘은 심상 세계를 통해 손상 정도를 확인하면서 많은 기능들이 여전히 정상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알딘이 성운에게 말했다.
“유감이겠어.”
“어째서?”
“거의 다 부쉈잖아. 시간이 더 있었다면 성공했겠지.”
성운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다.
알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투다.
알딘은 도발로 받아들인다.
감정적인 흔들림으로부터 실수를 유도하는 전략이다.
알딘은 그 전략에 넘어가지 않기로 한다.
‘침착하게.’
현재 마계 심부는 성운의 심상 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시스템의 힘으로 마계 심부를 재편성할 수 있지만, 그것은 힘을 낭비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런 물리적 세계가 재현되어 있다면 알딘도 딱히 꺼릴 이유가 없다.
옛신들 사이에서 더럽고 힘든 일은 알딘의 몫이었으니, 알딘은 이런 일에 자신있다.
알딘은 지팡이를 들고 성운을 향해 달린다.
성운은 움직이지 않는다.
‘역시 시스템에 속하지 않아서 반응이 느린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신성 레벨은 비약적인 능력치, 즉 높은 육체 능력과 사고 능력을 제공한다.
알딘은 일이 쉬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부정당한다.
발목을 당기는 힘에 바닥으로 엎어진다.
단순히 균형을 잃은 수준이 아니라 낚아채어 바닥에 처박히는 고통이다.
시스템이 관여한 잘 정련된 육체이기에 큰 고통은 없지만, 세상이 뒤집어지는 걸 이해할 수 없다.
‘…무슨?’
알딘은 반사적으로 발목을 본다.
길다란, 50센치 넓이의 붉은 벨벳천이 휘감겨있다.
그리고 멀리서 그 벨벳천을 당긴 것은, 마성의 정령들이다.
“이 잡종들이…!”
알딘의 분노에 화들짝 놀란 정령들이 허겁지겁 도망친다.
하지만 알딘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적에 다시 집중한다. 집중하려고 한다.
순간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붉은 벨벳천이 알딘의 머리를 휘감는다.
겉보기에 아름다운 이 붉은 벨벳천은 시스템의 장애를 가져오는 불순하고 더러운 마법으로 가득하다. 그 자체로 하나의 저주다.
알딘은 저항없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가, 급히 벗어 넘긴다.
정령들이 깔깔 웃으며 사라진다.
“이런 장난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알딘의 말에, 성운은 양손을 내보이고 가로젓는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건 사실이긴 했다.
마성의 정령들은 성운이 흩뿌린 붉은 페인트를 붉은 벨벳천으로 뒤바꾸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옛신에게 대항하고 있는 것은 마성의 정령들이다.
알딘은 주변을 돌아본다.
정령들이 모두 제 입에 붉은 벨벳천을 물고 알딘을 노려보고 있다.
위에서, 아래에서, 사선으로 돌거나, 아니면 허공을 나선으로 휘감으며 부드럽게 붉은 벨벳들이 춤춘다. 알딘은 붉은 장막 안에 갇힌다.
‘망할.’
알딘은 성운에게 다가가는 것 조차도 쉽지 않을 거란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네뷸라, 정말로 마법사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면 정령들에게 손을 빌리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거다.’
알딘은 자신의 키만한 지팡이를 제 몸과 평행하게 뻗고 의식을 집중한다.
마법사에게 있어 지팡이는 일종의 보조 연산 장치이다.
지팡이라는 형태는 중요하지 않지만, 연산을 수행하는 세공 보석들을 박아넣기 위해서 대체로 막대 형태를 이룬다.
도래자의 지팡이가 알딘의 ‘두 번째’ 심상 세계를 내면화시킨다.
‘첫 번째에서 돌입할 수 없다면, 더 깊이 들어가면 그만이지.’
심상 세계의 계층은 하나가 아니다.
현실 세계라고 불리는 외우주가 하나의 뇌에 갇힌 하나의 의식으로 부대껴야만 할 때, 심상 세계의 내우주는 그 능력이 허락하는한 더 많은 심상 세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알딘이 반영한 것은 허리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환풍구다.
‘칩입의 심상은 언제나 어둡고 비좁아야 한다.’
알딘은 심상 세계에 대한 비의를 떠올리며 환풍구를 기어간다.
하지만 알딘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환풍구 아래로 보이는 철망들에, 알딘의 의식이 만들어내지 않았던 풍경들이 보인다.
‘…누군가의 심상 세계가 뒤섞였다.’
알딘은 환풍구 아래의 세계를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환풍구는 알딘이 예상하는 것 보다 너무 길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았다면 모를까 이미 이변이 일어난 이상, 접하고 있는 다른 심상 세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철망 하나를 부수며 그 아래로 내려선다.
바닥과 벽은 저급한 시멘트로 마감되어 있고, 네 개의 벽에는 녹슨 철문이 있다.
문이 이렇게 많은 이상 감옥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름다운 장식이 있지도 않으니 어딘가의 로비도 아니다. 굳이 역할을 부른다면 통로라고 부를 수 있을테지만, 그 어떤 이정표도 없으니 헤맬 수 밖에 없다.
‘이건…?’
알딘은 공간의 정체를 깨닫는다.
이곳은 미로다.
‘힌트는?’
심상 세계라고해도 인과율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길이 있다면 지나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알딘은 철문들 위에 파란색 분필로 작은 숫자들이 쓰여져 있음을 발견한다.
‘좌표? 규칙성이 있을 거야.’
알딘은 네 개의 문을 모두 열고 다음 방을 확인하지만 모두 같은 풍경임을 확인한다.
다른 것은 문 위에 적힌 숫자들 뿐이다.
시간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다.
더 깊게, 심상 세계 내부로 내려갈수록 의식의 속도는 현저히 가속한다.
현재 첫 번째 심상 세계에서의 알딘은 이제 막 정령들이 첫 번째 벨벳천을 휘감으려는 시도를 몸을 바닥으로 바짝 숙여 피하는 중이다.
‘…어려워.’
힌트는 이해했다.
소수와 관련되어 있는 암호 좌표다.
알딘의 예측 상 방의 숫자는 대략 1만 7천 개 정도 있을 것이며, 그 방 하나에 성운이 있다.
더 정확한 규칙을 찾아낸다면 성운의 뒤를 노리고 등장해서, 성운이 돌아보기도 전에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확실히 접근할 수 있을지도.’
지난한 일이지만 다행히 시스템이 제공하는 높은 지능은 이런 장소에서 쓸모가 있다.
알딘은 간단히 계산에 나서려고 한다.
창조해낸 분필로 바닥에 숫자를 써내려갈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틀렸습니다.
알딘은 목소리를 처음 듣지만 그게 누구인지 안다.
네뷸라의 두 번째 사도 카일 라크 오라즌이다.
목소리만으로 존재하는 카일이 말했다.
-당신이 놓친 개념이 있습니다.
“한낯 사도 따위가 날 가르치려고 드는건가?”
-…한낯 사도.
카일은 알딘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사도가 아니라, 야천의 사도입니다.
“대단한 자부심이군.”
-자부심의 근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도망치십시오.
알딘은 어딘가에서 녹슨 철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이 미로에는 알딘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알딘은 위험을 직감한다.
이 심상 세계는 단순히 헤매게 만드는 미로가 아니라, 침입자를 처단하는 미궁이었다.
‘변수가 있었어.’
알딘은 좌표를 풀어내고 방정식을 계산해내면서 성운을 향해 이동했다.
하지만 알딘이 문을 열고 성운을 향해 이동하는 속도보다, 다른 곳에서 문이 열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알딘은 이 심상 세계가 기억의 반영이 아닌, 지극히 공학적으로 가공된 세계임을 깨닫는다.
‘심상 세계로 게임을 만들어버린건가.’
알딘은 이런 일이 가능하단 것을 들어본적도 없다.
‘이런 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알딘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다른 방편을 찾는다.
알딘은 지팡이를 들고, ‘또 다시’ 의식을 집중한다.
그리고 세 번째 심상 세계로 침잠한다.
첫 번째 세계의 알딘에게서 코피가 울컥 쏟아진다.
두 번째 세계의 알딘은 휘청이다 가장 원시적인 쓰임새로 도래자의 지팡이를 사용한다.
세 번째 세계의 알딘이 수풀 속에서 기어나온다.
주변 세계는 까치발로도 디밀 수 없는 빽빽한 밀림이다.
그나마 발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은, 높은 입구를 가진 산 속 동굴로 들어가는 길 뿐이다.
‘최단 거리로 가기 위해서는 방해꾼을 지나쳐야 한다.’
알딘은 일을 좀더 간단히 만들기 위해, 마법사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한 심상 세계를 빌려왔다.
우선 동굴을 만든다.
동굴 안에 목표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 목표가 만들어내는 ‘방해꾼’을 대면한다.
지혜와 힘이 있다면 방해꾼을 물리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알딘은 일을 좀더 단순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이 심상 세계를 짜냈다.
‘자, 그럼…’
알딘은 네뷸라가 만들어낼 방해꾼을 경계하며 동굴로 걸어들어갔다.
‘조율을 이루었다고해도 본질은 유약한 인간이야. 심상 세계를 반영하는 것은 그 심리의 근간에서 비롯된다.’
알딘은 네뷸라를 알았다.
네뷸라의 플레이는 우아하지만, 그것은 완벽주의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를 가지고 있지만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심리적 불안의 원천이 된다.
단지 네뷸라는 자신의 희망대로 이룰 수 있을만큼의 능력이 있을 뿐이다.
‘…능력은 인정하겠지만.’
완벽한 존재가 되려는 욕구 그 자체는 네뷸라가 가진 약점이다.
그 어떤 존재도 완벽할 수 없다. 저 네뷸라라고 하더라도.
이처럼 상대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면, 이러한 심상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상당히 유리하다.
‘방해꾼 또한 그런 약점을 가지고 있겠지.’
알딘은 세 번째 세계로 내려오기까지 상당히 무리를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방해꾼을 잡아내고 성운에게 도달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쉽게 풀리는 법이 없다.
-기다리고 있었노라.
알딘은 동굴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햇빛 조차도 닿지 않을만큼 깊은 어둠이 알딘의 앞에 놓여있다. 대공동이다.
-나는 언제나 옛신들의 ‘수준’이 늘 궁금했었다. 이제야 알아볼 수 있겠군.
알딘은 어둠 속에서 기어나오는 존재를 바라본다.
알딘은 알아차린다. 목소리는 네뷸라의 세 번째 사도, 마즈다리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분명, 드래곤이다.
부리 형태의 입과 온 몸을 덮고 있는 백색 깃털 덕에 드래곤의 기원이 암시되지만, 본래의 종족이 가루다일 것이라 생각되긴 힘들다. 그 체구 때문에 다소 구부정하지만, 목이 길쭉한만큼이나 팔과 다리가 길어 만들어내는 곡선들이 더 없이 맞아떨어진다. 은과 비단으로 만든 복식과 장식이 드래곤을 가꾸고 있으며, 드래곤은 한 손에 자신이 애용하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백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검을 쥐었다.
알딘은 방해꾼으로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존재를 올려다본다.
알딘은 내면의 조급함을 숨기며 말했다.
-후회할텐데.
-흠, ‘네 번째’를 생각중이군. 옛신이여, 그다지 추천하진 않겠다.
드래곤 마즈다리가 껄껄 웃는다.
-나를 상대하면서 감히 그럴 여유는 없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