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함재기들이 폭격을 쏟아낸다.
압도적인 화력 투사에도 불구하고 악마들이 만들어내는 벽은 단단하고, 쉽게 밀려나지 않는다.
어째서인지 만마가 쏟아지는 속도는 더 빨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제국의 화력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티모 그룹의 전자포가 옛신들의 천공성을 후려 갈기고, 오라즌의 수호룡이 뱉은 숨결 주문이 악마들을 녹여낸다.
길이 열린다.
라크락과 전사들이, 화력을 몸으로 받아낸 거대한 악마에게 달려든다.
이 악마는 기어다니는 인간처럼 생겼지만, 그 몸통이 텅 비어있고,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작은 악마들이 튀어나온다. 사실상의 악마 공장이다.
라크락과 전사들이 머리통을 묶어두는 사이, 만신전의 다섯 번째 사도 수확자 케이주가 거대한 낫으로 목을 내려친다.
다른 천공성에서도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플레이어 볼트는 언제나 좋은 물건에는 둘 이상의 쓰임새가 있다고 믿었다.
볼트는 자신의 가스가 악마들에게 크게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가스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저 노란 가스는 쉽게 불이 붙는다.
천공성을 일거에 소탕하는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고, 천공성의 위쪽은 불바다가 된다.
만신전의 아홉 번째 사도 불새 아루나는 빠르게 자신의 힘으로 불길을 흡수하며 진군로를 확보한다. 네 번째 사도 적기사 레딘 비알 오서가 악마들이 쏟아지기 전에 자신의 기사단과 함께 전선을 확보한다.
후방에선 별지기의 공병 부대가 후방 지원을 위해 비어있는 천공성을 차지하고, 긴급 급유를 위한 비상 착륙장이 설치된다.
한편 이 천공성의 해상으로 주변 대양의 몇 개 함대가 급파 된다.
비처럼 쏟아지고 있는 악마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다.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만마는 끝없이 꿈틀거린다.
“쉽지 않군.”
그리고 그 모든 전투를 화면 송출기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각자의 장소에서 서로의 화면을 송출기로 바라보고 있다.
어둡고 비좁은 화면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게 어색할법도 한데, 그들은 아랑곳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 다양함을 자랑하는 아바르틴의 여러 종족들에 빗대어도 이상하게 생겼다.
플레이어들이다.
“쉽지 않아.”
위즈덤은 화면을 보면서 중얼거린다.
위즈덤은 제국이 마련한 안전가옥에 남아 있었다.
안전가옥의 한켠에는 준비가 끝난 온갖 통신 장비들이 거칠게 놓여 있었고, 그 자리에서 다른 지역에 위치한 플레이어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위즈덤은 비교적 늦게 이 소통에 참여했는데, 위즈덤의 생각에 플레이어들의 평소 습관대로 시시콜콜한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위즈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면 안에서 삐딱한 자세로 과자를 집어먹고 있던 크람푸스가 말했다.
“노아는?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지역 대학 병원에 자진해서 검진을 받으러 갔지.”
“엥? 몸이 안 좋아?”
“아니, 인과율에 의한 신체 변화가 궁금하다더군. 같이 끌려갈뻔 했다.”
“그래. 쉬는 게 최고야. 휴가 받았다고 생각하라고. 알디는 축제 3일차라더라.”
모든 플레이어가 크람푸스 같은 태도를 보이는 건 아니었다.
또 다른 화면, 인간따개가 말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백업 작전이라도 짜야하는 것 아닌가? 저 악마들이 나타나는 숫자가 늘고 있다. 숫자가 많은 정도가 아니라, 출력값 자체가 커지고 있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길을 뚫을 방법이 요원하다.”
위즈덤이 지적했다.
“인간따개, 비논리적이군.”
“내가?”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것 정돈 이미 합의가 되었다. 넌 지금 불안한 거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우리가 이제 신이 아니기 때문이고.”
“….”
인간따개는 순순히 인정하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크람푸스가 스낵 하나를 집어들고 흔든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맛있는 거라도 먹지 그래?”
모노아이를 가진 로봇, 블라디미르가 웃으며 말했다.
“흠, 식사. 흥미롭던데.”
“넌 기름 먹나?”
“보시다시피 그런 편이지.”
인간따개는 자신의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는다.
“난 관심없다.”
위즈덤은 현재 이 통신망 안의 플레이어들의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기에 타개책이 마땅히 생각나지도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엘다르가 분위기를 깨고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것들이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신기하네요. 저희가 경외감을 가지고 두려워할만한 존재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제롬이 말했다.
“하지만 저것들만 그런 건 아니지. 아바르틴엔 수 많은 괴물과 신수들, 여러 종족들이 지구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나 전설, 민담 속 존재들의 모습을 빌리고 있으니.”
엘다르가 말한다.
“우연은 아니겠죠.”
“우연은 아니지.”
“그럼 제롬 씨는 어느 쪽이 진짜라고 생각하세요?”
“진짜?”
제롬은 고개를 흔들었다.
책으로 이루어진 턱수염이 흔들린다.
“모두 진짜지. 둘 다 가짜라고 해도 되고.”
“더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은데요.”
제롬은 흔들렸던 턱수염을 고쳐잡으며 말했다.
“무한한 가능세계에 대한 설명이 맞다면, 서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들이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존재할 가능성은 무조건 존재하지. 세계는 여러 모습으로 무한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 둘이 연관 관계가 있는 건…”
“그런 의도를 가진 존재가 있기 때문이겠지.”
제롬이 말한다.
“우린 이미 그런 존재를 이 아바르틴에 오면서 만났지 않나? 알딘이라는 이름의?”
엘다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경외감을 가지거나, 두려움을 가질만한 세계, 즉 지구에서 저희를 선택했다는 거군요.”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면 역시 의문은 남긴 하네요. 왜냐하면 저희는 모두…”
엘다르의 말이 이어지던 중, 지루하다고 생각했는지 크람푸스가 다음 과자봉지로 손을 가져간다.
부스럭대는 소리 때문에 엘다르의 질문이 묻힌다.
다음 과자 봉지를 까던 크람푸스가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어, 근데 룬다.”
“뭐.”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듣자, 크람푸스는 룬다와 좀 서먹했던 시절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크람푸스가 말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보면 몰라?”
룬다는 꼭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붙잡고 있던 양손은 놓치지 않는다.
“기도하고 있잖아?”
크람푸스는 반사적으로 웃으려다가, 무언가 생각에 잠기더니, 고민한다.
크람푸스가 룬다에게 질문했다.
“누구에게 기도하는건데?”
“몰라. 그냥 하는 거야. …뭐, 아니면, 사도들?”
“잠깐. …위즈덤?”
크람푸스가 위즈덤을 바라본다.
위즈덤의 머리가 느리게 움직인다.
“그래. 괜찮은 아이디어군. 기도라니.”
위즈덤은 두 손을 붙잡는다.
“지금 상황에서 유일하게 우리가 쓸모를 보일 수 있는 일 아닌가?”
다른 플레이어들도 서로 눈치를 보더니 제 손들을 붙잡는다.
엘다르가 가장 빨랐고, 인간따개가 가장 느렸다.
룬다는 이전의 기도 자세를 다시 잡았다.
깍지낀 양손 위로 잔뜩 찌푸린 미간을 맞붙인다. 누구보다 간절해보인다.
“나는 헤게모니아에게 기도해야겠군. 만약 네뷸라가 실패한다면, 믿을 건 전쟁 뿐이니.”
─┼
천공성의 위.
목잘린 흑마 위에 올라선 전쟁의 신은 신앙을 확인한다.
‘신앙이 많이 오르고 있는데. …저 천공성 덕인가?’
헤게모니아가 가리킨 천공성은 별지기다.
헤게모니아에겐 다소 짜증나게도, 별지기의 최고위원회실 위에 걸린 국기에는 해당 천공성이 과거에 연합왕국 소속이었다는 걸 밝히는 의미로 연합왕국 국기도 같이 걸려 있다. 헤게모니아가 보기엔 놀리는 것만 같다.
제 기분과는 별개로, 헤게모니아는 별지기를 경유하는 전파들이 아바르틴의 상공을 공전하는 인공위성들에 가닿는 걸 볼 수 있었다.
이 전쟁은 아바르틴 전역에 송출되고 있다.
이제 제국은 전쟁의 신이 돌아온 것도, 그리고 이 전쟁의 신이 만마 앞에서 분투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걸 감안해도 양이 많아. …알 것 같기도한데.’
헤게모니아는 한손으로 악마들을 베어넘기면서, 다른 한손으로 시스템창을 조작했다.
신앙 습득에 대한 상세 통계가 떠오르고 헤게모니아는 필요한 정보를 곁눈질만으로 빠르게 파악한다.
‘역시.’
만신전과 만신전의 신들은 타천을 당해 사라진 상태.
즉, 제국은 신앙 그 자체를 잃어버렸다.
그런 순간 끝나지 않은 게임에서 세 플레이어가 복귀하면서 현재 제국이 믿을 수 있는 신앙은 어차피 셋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전쟁 장면을 포착해냈고, 이는 당연히 전쟁에 대한 신앙으로 귀결되었다.
이 순간, 헤게모니아는 아바르틴의 최고 신인 셈이었다.
‘이것까지 노린 건가, 네뷸라.’
그렇다면 정말이지 불쾌하기 짝이 없다.
헤게모니아는 누군가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감각을 즐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게모니아는 이 힘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얼마든지 즐겨주지.’
악마들이 경험치를 거의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헤게모니아도 당혹스럽긴 했다.
그렇다면 생각해둔 전략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라크락과 별지기가 나타났을 때 경우의 수가 더 늘어났고, 신앙이 회복되기 시작하는 지금은, 도중에 어처구니 없이 타천만 되지 않는다면 괜찮은 승률이라고 생각되었다.
‘제때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대로 너의 신도를 모두 붉은 땅으로 데려가버릴테니….’
헤게모니아는 카자하가 허공을 박차도록 두고는 칼을 높게 들었다.
-“들어라! 아바르틴의 수호자들이여!”
분노하는 자의 불길이 타오른다.
헤게모니아는 이미 만전의 상태가 되었다.
분노하는 자의 호령에, 살카잇 뿐만 아니라 과거 패배했던 분노하는 자의 사도 모두가 천공성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두 번째 사도 안카르데가 자신의 혈족과 함께, 정신나간 도깨비 보운다와 늑대인간 용잡이 아르에가 롭이, 그리고 지휘관 알마 알로이가 분노하는 자 뒤에 섰다.
-“전쟁은, 고통을 피하고 스스로 싸우지 않는 비겁자에게 분노한다!”
이윽고 분노하는 자의 세 번째 사도 광휘의 라이틀라가 거대한 몸을 꿈틀대며 일어났다.
-분노하는 자여!
만신전의 사도들은 경의의 뜻으로 맞서 함성을 내지른다.
-“전쟁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것들에게 분노한다!”
사도와 전사들, 별지기에서 함성이 터져나온다.
이 순간 모든 제국군은 전쟁의 신도였다.
-“전쟁은, 오늘 죽고자 하지 않는 이에게 분노한다!”
아니, 제국 모두가 전쟁을 믿었다.
화면 송출기를 보는 모두가 옛 주인임을 자칭하는 불손한 존재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었다.
저들은 한 번도 아바르틴에서 허락된 적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전장의 목소리가 말했다.
“전쟁이여! 그 분노에 함께할 기회를 주소서!”
분노하는 자가 저 악마들 사이로 내달리기 직전 말했다.
-부디 죽으라. 내 오늘 너희 모두와 붉은 땅으로 갈 것이다.
이윽고 전쟁이 만마에 들이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