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두 번째 달의 무기, 분쇄자가 두 번째 천공성을 덮친다.
두 번째 천공성은 단번에 수 백미터 하락하며 크게 흔들린다.
천공성 위의 악마들은 샘솟다가 그대로 찌그러지고, 천공성의 검은 구멍에선 한동안 악마였던 찌거기들만 왈칵왈칵 내뱉어댄다. 토해내듯 뱉어지는 피분수가 두 번째 천공성에서 샘솟아 첫 번째 천공성을 더럽힌다.
비프넨 다이알 로바네가 하늘을 바라본다.
샤차가 말한다.
-룸을 맡아줘.
-알겠다. 뒤는 내게 맡겨라.
듸데가 고개를 끄덕이자, 샤차와 세 명의 악신이 그대로 천공성을 향해 뛰어내렸다.
악신들은 이제 시스템에서 벗어났다.
이들은 이제 고대의 방식으로 싸운다.
본래 현신은 스킬이 아니다.
현신체야말로 악신들에겐 본모습이다.
단지 현신체 상태가 너무 많은 엔트로피를 요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모습을 봉인하고 있을 뿐이다.
뷀은 원초의 늑대인간이다.
스스로도 기원을 잃어버린 머나먼 마의 공간에서 태어난 이 존재는 드래곤만큼이나 거대하고, 실제로 마의 공간에 거주하는 거대한 육식동물들을 사냥하면서 지냈다. 그는 괴물 잡는 괴물이었고, 괴물들의 왕이었다. 길을 잃고 아바르틴이라 불리는 외딴곳에 빠져들기 전까지는.
절우비는 태초의 뱀파이어다.
주체할 수 없는 피의 욕구가 이 뱀파이어를 거인으로 만들었다. 이 거인은 마의 공간 어딘가에서 제물로서 길러졌으나 제 몸의 흘러넘치는 피가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모했다. 아바르틴으로 굴러떨어지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한 세계의 유일신으로 남았으리라.
절요는 기원의 요정이다.
한 현자의 마법적 실험의 산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었을 때, 절요가 탄생했다. 절요는 제 자신이 만들어진 욕구에 이끌려, 자신을 만들어낸 현자가 되기로 하였고, 마주하는 모든 존재를 집어삼켜 물리적으로 투영해냈다. 그런 현자의 지식 중 아바르틴이 있었던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샤차는 시원의 딥원이다.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마의 공간 깊은 심해 어딘가에서 살아온 이 괴물은 비늘 달린 것들의 어버이였고 촉수 뻗는 것들의 주인이었다. 샤차는 제가 원하여 아바르틴으로 왔다. 제 아이들이 아바르틴이라 불리는 커다란 구멍으로 훌쩍훌쩍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네 명의 악신이 쏟아져내리는 악마의 시체 파도 앞에 선다.
만신전과 분노하는 자의 사도들 또한 기꺼이 그들과 함께했다.
샤차가 형언하기 어려운 몸으로 촉수를 길게 뻗어올린다.
-비프넨, 두렵지 않다면 내려와라.
비프넨은 그에 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오랜시간 사용하지 않았던 자기의 무구를 찾아 자신의 천공성 안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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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심부, 첫 번째 심상 세계에서 알딘은 가만히 누워있다.
알딘은 악신들이 돌아왔고, 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음을 몰랐다.
알딘이 재빨리 파악한 것은 시스템의 권한 안쪽이다.
악신들은 시스템 밖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알딘이 집중하는 것은 자신의 몸이다.
함께 추락한 헤게모니아의 화신체가 부서지며 갈비뼈 사이를 찌른덕에 호흡이 쉽지 않다.
기침을 하자 피가 튀었다가 얼굴에 쏟는다.
옛신이 이 정도 상처로 죽을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심상 세계에서도 상처가 누적되면 확실히 죽을 것이란 전망이 선다.
‘어차피 아버지가 날 되살리겠지.’
알딘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
알딘은 도래자가 죽었을 때도, 그리고 이어지는 고문을 받을 때도, 그리고 다시 고통 받는 도래자가 악신과의 전쟁 사이에서 무기로 사용되었다가 소실 되었을 때도, 제 심장에 도래자의 지팡이를 꽂아넣었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되살아나는 것이다.
임무는 끝났다.
알딘은 눈을 감고 다른 심상 세계의 자신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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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심상 세계에서, 알딘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괴물은 허상이 맞았다.
하지만 암호를 풀어내 분명 성운이 있어야할 자리에 도달했을 때, 그 자리에 성운이 없었다.
이미 네 번째 심상 세계에서 성운과 마주했으므로 이 두 번째 심상 세계의 중요도는 떨어진다.
하지만 성운에게 보다 제대로 된 타격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심상 세계에서의 다차적인 공격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점에서 알딘의 기습은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암호 풀이가 틀렸다고?’
알딘은 초조하게 주변을 돌아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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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심상 세계에서, 마침내 마즈다리의 주문 숨결이 내뱉어진다.
직선이 아닌 곡선, 순수한 마법의 색인 마젠타빛 광선이 동굴 내부를 긁으며 알딘을 향해 나아간다.
알딘은 지금껏 준비했던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방호 주문을 일으켜세우지만, 저 빛을 막을 방법이 없음을 깨닫는다.
죽음이 닥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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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심상 세계에서, 알딘은 재빨랐다.
“움직이지 마.”
성운의 호위는 물론이고, 두 명의 사도들마저 반응하기 전에 권총을 꺼내든다. 수 만년을 사용한 도래자의 지팡이므로, 알딘은 어떤 무기의 대가들 보다도 이 권총을 겨누는데 능숙하다.
비록 세 번째 심상 세계에서는 패배가 닥쳐왔고, 두 번째 심상 세계에서는 길을 잃었지만, 첫 번째 심상 세계에서는 뜻을 이루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이 네 번째 심상 세계에서 성운을 죽인다면 알딘 자신의 승리다.
알딘이 말한다.
“아버지는 진노하셨어. 이대로라면 너는 오래 고통 받겠지. 아버지는 쉽게 질리지 않으시니까.”
“그래서?”
“…그러니 이대로 죽는 게 좋을 거란 거야. 시스템이 널 편입시키기 전에. 할 수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도 어서 자살하라고 해. 이게 내 마지막 자비다.”
성운은 의자 안쪽에 깊게 기대고 앉는다.
성운은 따분하다고 생각한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다.
게임의 후반부가 되었는데도 상대가 항복을 선언하고 나가지 않는 것이다.
물론 게임의 최후까지 집중력을 흐트리지 않아야 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게임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게임이 어느 정도 선까지 진행 되었을 때, 상대가 어처구니 없이 게임을 포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지점을 지나쳤을 때 분명 깨닫게 된다.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성운은 그런 감각을 잘 알았고, 서로간에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곧장 다음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빠르게 항복을 하고 나가곤 했다. 물론 끝까지 플레이하면 스무 판 중에 한 판 정도는 이길지도 모르지만, 성운은 그런 요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
이번 게임에서 성운에게 위기를 준 플레이어가 한둘은 아니지만, 역시나 진지하게 즐겁게 해준 플레이어는 역시나, 그리고 또다시, 헤게모니아 정도였다.
위험도로 따지자면 악신과 옛신이 헤게모니아 못지 않겠으나 악신은 따지자면 버그 플레이어였고, 옛신은 핵 플레이어다. 이 둘은 제대로 된 게임도 할 줄도 모른다. 똑같은 조건에서 플레이한다면 아마 오븐렌지한테도 패배할 것이다.
그나마 기대한 것은 알딘 정도지만 여기까지 왔는데도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으로 보아 그리 유능한 플레이어라고 보긴 어려워보인다. 물론 성운은 알딘이 해낸 나름의 게임을 존중했으나, 4만년이 되는 시간이라면 성운 자신도 해봄직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성운이 말했다.
“자비라는 변명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하지만 원망하지도 않아. 쏴라.”
알딘은 성운의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도발인지, 그래서 또 어떤 심리적인 문제로부터 자신을 공격해 허점을 만들고 기회를 얻으려는 것인지, 두려워졌다.
알딘은 성운의 미간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으로 운명을 끊는다.’
하지만 알딘은 자신이 그리고 있던 다음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쏘아진 탄환은 성운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알딘은 이상을 감지하고 곧장 방아쇠를 반복해서 당기며 탄창을 비웠다.
탄환은 모두 허공에서 멈췄다.
성운은 허공에 멈춰진 탄환 하나를 집어들더니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금새 흥미를 잃고 테이블 위에 떨궜다. 그와 함께 뒤이어 쏘아진 탄환들이 후두둑 떨어져내린다.
“…불가능해.”
알딘은 방아쇠를 달칵인다. 탄창이 비었다.
“…인과율이 지팡이를 총으로 바꿨어. 이 심상 세계는 외우주를 흉내냈으니 마법은… 없어야 해.”
“그렇게 생각하나?”
알딘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낸다.
“심상 세계의 구상자라고 해도 내 물건에 손을 댈 수는 없어.”
성운은 더는 못듣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인다.
그러자 알딘의 손에 붙잡혀 있던 권총이 비틀리며 테이블 위로 떨어지고, 그대로 미끄러져 테이블을 짚고 있던 성운의 손으로 빨려가듯 쥐어진다.
알딘은 뒤늦게 충격을 받는다.
성운은 상아로 마감된 손잡이를 쥐고 탄창을 빼내 테이블에 올려두고 가볍게 멈치를 당겨 총기를 상하부로 분리했다가 총강 내부를 들여다본 다음, 다시 재조립한 뒤 탄창을 끼고 슬라이드 스톱을 확인한다음 빈 방아쇠를 당겼다.
“같은 영혼이니, 이것은 내 것이지.”
하지만 성운은 자신의 말과 달리 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다시 알딘에게 밀어낸다.
“그래도 선물 받은 다른 권총이 있어서 더 필요하진 않겠군. 가져.”
알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 앞의 권총을 다시 쥐지만, 이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다.
알딘이 말한다.
“…네 번째 세계만 구상한 게 아니었나?”
“그래. 세 번째도, 두 번째도. 아, 물론 첫 번째도.”
“불가능해. 시스템이 나를…”
“시스템은 이미 부숴졌다.”
“아직 기동하고 있어.”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지. 부분적으로는 말이야.”
알딘은 가로젓는다.
저 모든 것은 허세일 터였다.
성운이 조율에 도달했다지만 그 능력이 그렇게 뛰어날리는 없다고 알딘은 믿고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였다.
지구의 인간은 아바르틴의 인간과 다른 종족이다.
마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뇌구조를 비롯한 생리학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성운이 말한다.
“약점을 극복할 방법은 항상 존재하지.”
성운은 한손으로는 검은 도마뱀 형태의 카일 라크 오라즌을, 다른 한손으로는 흰 까마귀 형태의 마즈다리를 제 손에 올린다. 두 사도는 성운의 어깨 위로 올라간다.
“너희는 마법에 너무 심취했다. 그래서 마법이 아닌 것들에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예를 들면?”
“자본이라던가.”
“우리에겐 그런 게 필요 없었다. 부족한 자원은 신앙을 통해 시스템에서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게 문제지. 아니면 기계라던가.”
“역시 필요 없어. 시스템이 곧 기계다.”
“그렇긴하지. 하지만 독점된 기술은 한계가 명확하지. 시스템은 도래자가 죽은 뒤 수 만년의 기간 동안 얼마나 발전했지?”
알딘은 대답하지 못한다.
도래자는 간간히 유지보수를 했지만 업데이트를 하는데는 한계를 느꼈다. 다른 옛신들은 시스템에 대해서 모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진 않았다.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것 같았다. 두 번째 달과 같은 물건도 첨단 과학의 산물 같지만, 사실은 신앙을 소모해서 이루어낸 기적일 뿐이고.”
“…그래.”
시스템은 만능 기계다.
신앙을 소모하면 미래의 과학 기술도 끌고 올 수 있다.
기술을 배우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냥 창조한 뒤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알딘이 말했다.
“하지만 기계 따윈 도구일 뿐이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그게 맹점이다, 알딘. 실제하는 환상이란 이너 스페이스에 집중하느라 상상력이 부족해진 거지. 시스템이 기계라면 사람도 기계다. 반대로, 충분히 발전한다면, 기계가 사람이 되기도 해.”
“…?”
성운은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린다.
그러자 테이블이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알딘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고, 두 사람이 앉았던 의자도 무너져내린다.
동시에 두 사람이 있던 밀실도 바깥쪽으로 넘어가버린다.
이곳은 하나의 세트장에 불과했다.
알딘은 무너진 가벽 주변을 돌아본다.
어두운 조명 아래, 네모난 기계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공간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기계들은 서로 엮인 전선에 열을 식히기 위한 쿨러가 맹렬히 돌아가고 있다.
알딘도 익히 아는 기계다.
컴퓨터다.
“알딘, 여긴 심상 세계가 아니야.”
성운이 말한다.
“여긴 성역이다.”
성운의 언급에 ‘성역’이 기민하게 반응한다.
「플레이어 네뷸라, 환영합니다. …손님을 데리고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