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17
중앙대륙과 서대륙, 그리고 남대륙 사이, ‘분노의 대양’.
세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조류의 흐름과, 오랜 역사 속, 아바르틴에서 가장 큰 다섯 번의 해전이 일어났던 바다임에도 불구하고, 적도를 가로지르는 온난한 해류에는 그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그저 고기압이 만들어내는 맑은 창공과 정지된 것이나 다름 없는 느린 흐름의 평온한 바다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느린 조류의 가운데 ‘폐함군도’가 존재한다.
폐함군도를 진짜 군도로 불러야할지 어떨지에 대해서는 지질학자들이 이미 결론을 내렸으나, 많은 아바르틴 사람들은 군도로 부르는데 서슴없었다.
폐함군도에는 분노의 대양의 오랜 역사가 만들어냈던 무수한 폐함들이 느린 조류를 타고 흘러들어왔고, 섬이 되지 못한 많은 암초들에 붙박혔다.
이미 침몰 되었으나 다른 배들처럼 가라앉지 못한 이곳은 배들의 저승처럼 보였다.
평화로운 곳이었다.
대전쟁 이전의 거대한 목선들은 아바르틴의 대양에 부유하는 온갖 플라스틱 쓰레기들에 파묻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였으며, 동시에 대전쟁 시기 동안 무수하게 파괴되었던 군선들은 죽은 다음에야 서로의 편을 가리지 않고 부대낄 수 있었다.
파도가 거의 치지 않는 곳이지만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수면을 때려 느슨한 흔들거림이라도 일어나면 폐함들은 끼익 끼덕 노래하였고, 서대륙과 남대륙을 오가던 철새들이 뭔가 먹을 것이라도 있는가 하며 기웃대다, 그 노래에 화들짝 놀라 허공으로 솟구치곤 하였다.
서대륙 의장 사르쵸가 폐함군도의 가장자리, 구 연합왕국의 기함 중 하나였던 폐함선 ‘천하무적’의 갑판 위에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철새들은 폐함군도를 한 바퀴 빙 도는 것 같더니, 다시 돌아가 자신들이 앉았던 자리로 내려앉았다.
철새들이 앉은 자리 아래로 흰 새똥 범벅이 된 폐함들의 모습이 보였다.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나라들의 배들이 이제는 한결같이 새똥을 뒤집어쓰고 있단 사실이 제법 유쾌해서, 사르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금새 지웠다.
이 폐함군도 뒤로, 저 수평선에서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기이한 풍경 때문이었다.
본래 폐함군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살풍경하고 황폐한 장소인 것과는 별개로 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사진기를 집어든 무수한 여행 작가들은 물론이거니와, 폐함군도보다 그 아래의 암초군을 분석하는데 더 관심이 많은 지질학자들과, 조류학자들은 세 대륙 사이에 놓여 철새들의 중간 경유지가 될 수 있는 연유를 궁금해 하였고, 전쟁 이후 지금도 조금씩 커지고 있는 폐함군도가 얼마나 대양에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려는 해양학자와 환경학자들, 그리고 폐함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각 배들이 어느 시대의 어느 연원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고고학자들까지.
많은 학자들이 크고 작은 배를 빌려 폐함군도로 들어섰기에 제국은 이들을 위한 종합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용 연한이 다 되어가는, 대전쟁 시기에 제작된 오래된 항공모함에서 연구의 편의를 돕고 있었다.
사르쵸 또한 그 항공모함을 활주로 삼아 이 폐함군도에 도착했고, 작은 보트에 옮겨타 이제 막 발을 들인 참이었다.
요즘 폐함군도는 다른 이유로 큰 관심을 받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는 폐함군도에 들르지 않았던 종류의 사람들까지 몰리기 시작하면서 조금의 소요가 있었다.
그것은 폐함군도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폐함군도에서 보여지는 풍경 때문이었다.
사르쵸는 이제 그 풍경을 바라본다.
대양의 한가운데, 저 수평선이 닿지 않는 자리에 일종의 착시라고 생각될 수직의 선이 놓여져 있다.
그것은 총길이 4.8킬로미터에 이르는 황금의 기둥이다.
구름 한점 없이도 저 기둥은 너무 높아 그 끝이 희미하게만 보인다.
‘라크락의 성창(星槍)’, ‘아바르틴의 심판’, ‘별로 가는 길’ 등 이미 수 많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저것의 본래 모습은 첫 번째 이름대로, 창이었다.
중앙 사원의 공식 발표나 아바르틴 지질학회, 제국항공우주국의 공식 조사를 찾아볼 것도 없이, 아바르틴의 수 많은 이들이 직접 그 모습을 보았다.
심판의 성좌 라크락은 두 개의 천공성을 꿰어내, 그대로 해저에 처박았고, 그 다음 비스듬히 꽂힌 창을 돌려 곧게 바로 세웠다.
그리고 라크락은 그대로 떠나버렸고, 성창은 남았다.
이후 사르쵸는 서대륙 의장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성좌? 어찌 되었든 중앙 사원이 관여할 문제군. 담당자가 남기고 간 물건이니 중앙 사원이 책임지고 폐기 하시오. 물론 그전에 저 폐기물이 분노의 대양에서의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며,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할 거요.”
당연히 그 발언은 아바르틴 전체에 상당한 반향을 이끌어냈다.
세속주의자들은 성좌라는 새로운 지위조차도 신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사르쵸의 메세지를 흔쾌히 승낙했고, 위대한 승리를 이루었음에도 성좌의 물건을 폐기물로 부른 발언에 대해 열렬히 호응했다.
반면 중앙 사원과 열광자들은 대단히 분노했다.
어찌나 분노했는지, 제국이 자랑하는 엄중한 경호에도 불구하고 사르쵸는 끝내 썩은 계란 하나를 안면에 맞았다.
물론 사르쵸에겐 그 또한 정치적 책략의 일부였다.
썩은 계란 하나를 맡고 성창 환경조사 위원회 임원을 서대륙 사람들로 구성할 수 있었으니, 맞을 수만 있다면 매일 하나씩 맞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랬다면 상황이 좀 바뀌었을까.’
사르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 성창은 사르쵸의 의도 밖으로 벗어났다.
성창 환경조사 위원회는 3회에 걸친 조사 결과, 저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거의 무해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토착 생물들은 성창이 만든 파괴에 일부 휩쓸렸으나, 성창이 태양에 받으면서 만들어내는 열기 순환이 더 다채로운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도움을 줬다고 판단 내렸다. 이것을 유해하다고 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위원회 내부에서도 말이 오가는 편이었는데, 굳이 따지자면 환경 이상과 관련한 문제는 가까이 있는 폐함군도에서 더 크게 발생했다고 보았다.
사르쵸가 폐함군도에 오게 된 것은 성창 환경조사 위원회의 사실상 종료를 확정 짓기 위해서였다.
사르쵸는 자신의 분을 참아내기 위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고, 위원회와 중앙 사원, 황궁 모두 사르쵸를 존중하였다.
이제는 만신전이 아닌 만성전의 열광자들은 라크락의 성창을 성지(星地)로 지정해달라며 온갖 기관에 청원을 내보내고 있었고, 분노의 대양을 접하는 세 대륙의 공식 기관들은 이리저리 관할과 책임을 떠넘기면서 시간을 보내는 실정이었다. 제국은 학술적 목적이 아닌 경우 여행을 불허하고 있었지만, 이미 비행선을 통한 성창 순례가 공공연했다.
사르쵸는 가볍게 모독했다.
“제기랄.”
신이 아닌 성좌들과의 첫 싸움에서 사르쵸는 패배한 셈이었다.
사르쵸는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그려볼 수 있었다.
만신전은 만성전으로, 신은 성좌라는 이름으로 허울좋게 바뀌었다.
그러면서 누구나 성좌가 될 수 있다고 그 기치를 내걸었다.
하지만 17억이나 되는 사람 중에 생의 끝까지 가서 성좌가 될 이가 누가 있겠는가?
암월, [13.08.21 10:12] 본래 11만년의 시간을 보낸 옛신들이 그 신의 자격을 가졌고, 성좌들은 저 우주 밖의 우주에서 온 새로운 존재들이 차지하였다.
그리고 오직 단 한 명, ‘아바르틴의 심판자’ 라크락만이 과거와 현재의 필멸자 중 겨우 성좌의 자격을 얻어냈다.
라크락이 이룬 위대한 업적을 생각하면 사르쵸는 응당 그 자격에 동의할 수 있었으나, 그것과 성역(星域)이라 불리는 이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사르쵸는 신들과 마찬가지로 성좌들 또한 받아들이지 않을 셈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인데.”
사르쵸는 느닷없는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아니라, 분명 자신을 향한 목소리였다.
사르쵸가 돌아보자 인간 종족의 남자 청년이 서 있었다.
사르쵸는 살면서 수 많은 종족을 만나보았고, 그 얼굴도 잘 알아보았다.
사르쵸의 정치적 수완에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그 능력이었다.
여러 종족의 비음성적 신호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거나, 상대의 외견이 그 종족에서 어떤 지위, 혹은 권위를 가지는지, 그리고 아무런 정보 없이 상대가 바로 누구인지 알아차리기도 했다.
사르쵸는 눈 앞의 인간 남자를 훑어본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 정도일까, 버그베어 종족이라면 너무 유약하다고 할테지만 인간 종족에서라면 단정하다고 취급할 외견이었다. 메이커는 알아볼 수 없지만 좋은 옷감인 것을 보니 맞춤인듯 하다. 게다가 가장 큰 힌트가 있다. 서대륙 의장인 사르쵸 자신을 보고도 나이 차이와 지위를 무시하고 반말을 툭툭 던지는 것으로 보아 존중이 전혀 없다. 귀족이란 말이다.
‘중앙 대륙 휘가 방계의 귀족 나부랭이인가?’
방계로 추측한 것은 모르는 얼굴이었기 때문인데, 사르쵸는 상대가 자성도시 오라즌에서 휘가의 가업 중 하나를 붙잡은 지역 사업가 정도로 추론했다. 돈 꽤나 있는 열광자들이 그러하듯이 아마도 학술 집단 하나에 후원자 명목으로 기회를 잡아 저 성창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사르쵸가 말했다.
“길이라도 잃은건가, 꼬맹이?”
“아니.”
남자가 답했다.
“나는 제국의 가장 큰 정치가와 대화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야. 하지만 성내는 모습 밖에 볼 수 없군.”
사르쵸는 상대의 자신감을 존중하기로 했다.
대꾸해주기로 한 것이다.
“저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
“성좌도 신과 다름없다고 생각해서?”
“다름없다?”
사르쵸는 그 말을 되내었다.
그렇지는 않았다.
많은 것들이 바뀌긴 했다.
중앙 사원의 발표에 따르면 만신전과 만성전은 달랐다.
여전히 그들의 기도는 성좌에 가닿고, 원한다면 ‘신’으로서 섬길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여전히 사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제들은 전과 같은 힘을 가지진 못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적과 같은 일들은 타천과 함께 사라졌으며, 돌아오지 않았다.
또한 만성전은, 속된 사람들이 말하길, 만신전에 비해서 기도의 효율이 낮았다.
중앙 사원의 발표에 따르면 만성전은 이제 아바르틴의 거대한 손상인 라스다실 폐허를 복구하고 마의 공간이라 불리는 우주 밖의 우주로부터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된다고 했다.
그것은 여전히 아바르틴을 지키기 위한 힘이지만, 사람들에게 있어서 ‘덜 유용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만성전으로 뒤바뀐 이후 사람들은 많이들 신앙을 잃었다.
“···다름없진 않아. 조금 더 낫긴 하겠지. 하지만 그뿐이다.”
사르쵸는 좀더 마음을 놓고 성창을 바라보았다.
성창의 두려운 점은 온갖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옛신을 물리쳤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의 과학은 물론, 마법을 통해서도 저런 구조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고 알려졌다.
저것은 글자 그대로 만성전의 힘을 증명하고 있었다.
만성전의 신앙을 잃은 사람들만큼이나, 어떤 사람들은 만성전에 더 열광했다.
그들은 만성전이 끝내 이루어낸 업적과, 그들의 희생, 그리고 자신들도 만성전에 들 수 있다는 기대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여전히 태초의 땅과 만성전에 들어설 기회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만성전의 성좌들은 아바르틴에 선명하게 개입하고 있었다.
만성전을 믿는 사제들만이 아니라 자신의 뜻과 의지에 일치하는 존재를 직접 개입해 움직이려고 한다는 뜬소문이 천라망에 퍼져나갔다.
소문의 내용에 따르면 이제 성좌들은 개인에게 접근해 임무를 내리고, 그 수행에 따른 보상을 준다는 것인데, 신학자, 이제는 성학자들로 불리는 이들의 말을 해석하자면 그것은 부족한 아바르틴의 기적을 메꾸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직접적인 기적을 내리는 것에는 소극적으로 변했지만,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성좌들의 개인적인 작업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것과 별개로 성좌들이 신이었던 때와 달리 더 직접,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과율이 허락하는한 얼마든지 그러겠노라고 마음먹은 것처럼.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사르쵸가 말했다.
“과거에는 신들이, 이제는 성좌가. 우리 운명의 고삐를 쥐고 있는 이들이 달라졌다. 다만 조금 더, 느슨해졌을 뿐이지.”
남자가 말했다.
“그것만이 방법이라고 한다면?”
“뭐?”
“만약 어두컴컴한 길을 가고 있어 누군가 고삐를 쥐고 당겨주지 않으면, 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만다면? 그럼 그 절벽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를 위협을 받아들일 것인가?”
사르쵸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저 귀족 나부랭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물음은 사르쵸의 오랜 화두로 가슴에 남아 있었다.
사르쵸가 눈을 뜨며 말했다.
“받아들일 것이다. 종말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그것을 감내해야겠지.”
사르쵸가 말한다.
“하지만 사람에겐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어두컴컴하더라도 발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사람은 무지렁이 바보가 아니니까. 끝내 절벽에서 굴러떨어지더라도 기어 올라올 수도 있다. 끝내, 죽음이 우리 턱밑까지 차올라오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선택한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만성전에서 이른 것 같이 모두가 성좌가 될 수 있다면, ···그래. 성좌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장 평범한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깟 고삐쯤 당겨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자는 다소 건방지게 웃는다.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은 만성전부터 이겨야겠지.”
사르쵸는 그 웃음으로부터, 눈 앞의 인간 남자가 자신이 생각했던 그 무엇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눈 앞의 존재는 인간도, 남자도, 필멸자도 아니었다.
사르쵸가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지?”
최성운이 답했다.
“그대가 제일 증오하는 존재.”
사르쵸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런가.”
사르쵸가 말했다.
암월, [13.08.21 10:12] “사람을 비웃기 위해 온건가.”
성운이 가로젓고는 사르쵸 옆으로 다가가 다 무너져가는 난간 앞에 선다.
“제안을 하기 위해 왔다.”
“무슨 제안이지?”
성운이 성창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칼을 헤집고 지나간다.
“나의 사도가 될 생각 없나?”
이번에는 사르쵸가 웃기 시작한다.
얼마나 유쾌한 말이라 생각한 것인지 배를 부여잡더니, 난간 앞에서 쓰러진다.
꺼이꺼이 울다시피 웃던 사르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정말. 내 인생에서 제일 웃긴 말이었군.”
“몇 번인가 운을 띄운 적은 있는데.”
“정말로 와서 말할 줄은 몰랐지.”
“대답은?”
사르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지워진다.
“거절이다.”
성운의 안색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이미 예상했던 답이다.
“너라면 성좌가 될 거다.”
“혁명의 성좌 같은 게 될 거란건가?”
“그래.”
사르쵸는 성운이 성창을 바라보고 있지만, 진실로 바라보고 있는 곳은 더 먼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만성전에게 있어 아바르틴은 시작이었지만, 끝이 아니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해. 저 우주 밖 우주에… 수 많은 상처가 존재한다.”
“···끔찍하군.”
성운은 사르쵸의 ‘끔찍’하다는 말이 어느 쪽인지 가늠한다.
우주 밖 우주의 수 많은 상처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만성전의, 우주를 넘나드는 제국주의적 행보에 관한 것인지.
성운은 둘 다라고 판단했다.
“관점에 따라, 양쪽 모두에서 끔찍하지.”
사르쵸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운과 함께 성창을 향해 선다.
“하···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내 오랜 증오여, 걱정할 건 없다.”
성운이 사르쵸를 바라본다.
사르쵸는 자신의 수염을 거칠게 쓰다듬는다.
“혁명엔 성좌가 필요 없다. 모든 억압 받는 개인은 혁명의 빛을 지니고 있으니.”
성운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성운은 성역으로 사고한다.
그리고 동의한다.
“그럴지도.”
성운은 돌아서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간다.
녹슨 바닥이 끼익거린다.
사르쵸가 돌아보았다.
“벌써 돌아가는건가?”
“시간이 많지는 않거든.”
“온 김에 저 볼썽 사나운 폐기물을 집어갔으면 했는데.”
그렇게 말하며 사르쵸는 자신의 뒤에 있는 성창을 가리킨다.
성운이 돌아보며 미소 짓는다.
“저건 아바르틴을 위한 선물이다.”
“저 흉한게?”
성운이 답했다.
“시간이 지나면 아바르틴은 비좁아진다. 그럼 세속주의자들이 걱정했던 것처럼, 만성전의 힘만으로는 모든 아바르틴의 필멸자들을 보호할 수 없겠지. 믿음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럼 그대들이 원했던 것처럼, 오롯이 그대들만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해야만 하겠지. 오늘은 만성전이 이겼으나, 시간은 그대편이다. 언젠가 그대가 바라는 그날이 올 거야.”
사르쵸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날이 오면 비좁은 아바르틴에서 빠져나갈 사다리가 필요하겠지. 그때 저 성창이 도움이 될 거다. ···로켓은 너무 비싸잖나?”
사르쵸는 새로운 눈으로 성창을 바라본다.
대기를 꿰뚫고 올라가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탑.
무한한 가능성이 사르쵸의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사르쵸는 다시 성운을 찾아 뒤로 돌아본다.
성운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끝
암월, [13.08.21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