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320
다행히 그전에 장완이 먼저 일어나서 말했다.
“뭐해? 라크락! 저것 좀 말려!”
졸고 있던 라크락이 하품을 하며 깨어났다.
라크락은 누가 불렀는지도 몰랐는지 두리번거리다 헤게모니아를 발견했다.
“오, 헤게모니아. 무슨 일입니까?”
헤게모니아도 멈춰서서 라크락을 보았다.
어쩐지 동족을 만나 기쁜 얼굴이다.
“넌 또 여기서 뭐해? 총 챙겨서 나가자. 네뷸라랑 한판 붙기로 했어.”
“또 게임입니까?”
“야, 잘 들어봐. 네뷸라가 말하는데···”
헤게모니아는 설산 산악 지형에서의 분대 전술에 대해 네뷸라와 의견 차이가 있음을 간결히 설명했다. 알만한 사람이라면 소화기 전투에서의 전투 교리를 극적으로 전환할지도 모를 이야기지만, 임시 재판장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에겐 너무 뜬금없이 들렸다.
라크락은 부분적으로 헤게모니아에 수긍했으나, 역시 직접 전술을 맞대어 확인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을 거라고도 답했다.
“그래. 그래서 확인한다는 거지.”
라크락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살카잇도 옵니까?”
“당연하지.”
“또 누가?”
“레딘이랑 알마랑···”
“분대 전투만?”
“오호. 오늘 끝장을 볼까?”
라크락의 꼬리끝이 가볍게 흔들렸다.
흥미가 동하고 있다는 신호에 장완이 라크락을 불태울듯 노려보았다.
라크락이 슬쩍 시선을 피해 하늘을 바라보았다가 말했다.
“그래도 당장은 어렵겠습니다. 이것도 일인지라. 성좌가 되니 피곤한 일이 많군요.”
“···어, 뭐. 그래. 이해해. 일단 네뷸라도 못찾았으니까.”
“생각해보니 도서관에 뭔가 찾아볼 게 있었다고 하신 것 같기도.”
“그래?”
헤게모니아는 시스템 창을 확인한다.
성역은 네뷸라가 검색되지 않는다고 뜨지만, 성좌들은 원한다면 자신의 위치를 알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숨바꼭질을 해야 되는 것이다.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성좌들도 이제는 이런 일에 익숙해졌다. 정말 긴급한 경우에는 어차피 성역이 먼저 연락할 것이므로.
헤게모니아가 말했다.
“좋아. 네뷸라 찾으면 부를게. 대충 하고 빨리 끝내.”
“알겠습니다.”
장완이 외쳤다.
“뭘 ‘알겠습니다’야?”
라크락이 장완을 향해 너스레좋게 손을 흔들었고, 헤게모니아는 그대로 떠났다.
그리고 멀리 가기도 전에 방청석의 크람푸스와 시비가 붙더니, 크람푸스가 씩씩대며 헤게모니아를 따라갔다. 알딘이 보기에는 네뷸라가 빠졌을 경우를 계산해 머릿수를 맞추기 위해 헤게모니아가 일부러 시비를 걸고 넘어진 것 같았다. 알딘이 보기에 가까이 두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라크락이 또 단상을 때렸다.
“흠,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까?”
장완이 이마를 짚었다.
“넌 그냥 빠져.”
“그건 좀.”
“졸고 있던가.”
라크락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살짝 떨었다.
라크락은 장완의 말이 웃긴 모양이었다.
장완과 데미안은 이 난장판 사이에서 재판을 끝낼 의무를 가졌기에,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공감대를 세웠다.
둘은 나머지 존재들을 무시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무튼···”
데미안이 계속 말했다.
“알딘이 우리를 불러서 했던 이 게임이 일종의 사기였다는 건 말할 것도 없겠죠. 알딘은 드래곤이 숨긴 대륙도, 악신의 존재도, 두 번째 달도, 옛신의 존재도 숨겼습니다. 우리는 공정한 게임을 하지 못 했어요.”
장완은 눈가를 살짝 찌푸린 다음 말했다.
“알딘에겐 알딘의 게임이 있었어.”
“그게 면죄부를 얻을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옛신과의 고리를 끊으려고 했었다고.”
“그럼 왜 그 기회가 왔을 때 끊지 않았던 겁니까? 성운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필멸자로서 죽었습니다.”
데미안은 자신의 새장을 들었다.
그리곤 머리 높이까지 들어 알딘과 눈을 맞추었다.
“대답해보십시오, 알딘. 저는 진실로 궁금합니다. 당신의 나름의 세밀한 계획으로 지구에서 우리를 골라 이 자리에 오도록 만들었다는 걸 압니다. 네뷸라는 당신이 옛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이 모든 걸 계획했을 거라고 말했지요.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데미안이 새장을 보다 높이 들었다.
“도대체 왜, 멈추지 않았던 겁니까?”
알딘이 답했다.
“그냥 생각이 바뀐 거지.”
“네?”
“고대의 전쟁이 끝나고 4만년이다. 초기에는 다른 옛신들로부터 벗어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벗어날 계획을 잡았지. 하지만 내 안배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생각을 바꿨지. 비프넨만 살아있어도 옛신의 시대는 이어질테니까. 너희를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그뿐이다.”
알딘의 말에 데미안은 예상했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반면 장완은 한껏 당황한 것 같다.
“아니, 알딘. 그렇게 말하면 안 되잖아. 그렇게 말하지 않기로 했잖아.”
장완이 알딘의 소매를 잡았다.
알딘은 장완을 돌아보지 않는다.
데미안이 말한다.
“결국 기회주의자였다는 말이지요.”
“맞아.”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조금 더 복잡하고, 사적이다.
알딘이 멈추지 않은 것은, 게임을 하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물론 불공정한 게임이었다.
그럼에도 이 게임의 상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플레이어였다.
그 플레이어는 다소의 불공정함 정도는 간단히 실력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플레이어 네뷸라는 랭크 게임에서 맵핵을 쓰거나 생산 속도를 올리거나, 자원 치트를 친 플레이어를 상대로도 승리를 따냈다.
그런 상대에게 알딘 자신 정도의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한들, 정확히는 불공정한 게임임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존중이었다.
‘···아니, 이것도 변명이겠지.’
알딘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더 정밀한 진실 앞에 선다.
성운을 이기고 싶었다.
박물관에서 부러진 손목으로 천공성에 사다리를 끌고 오를 때, 알딘은 게임이 끝나면 어떤 파급을 가져올 것인지는 잊은 상태였다.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 추악하게라도 이기고 싶었다.
제정신이었다면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알딘이 승리했더라면, 언젠가 도래자에게 그랬던 것처럼 후회와 반성의 나날로 제 삶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알딘은 그것이 자신의 병증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옛신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망가진 것이다.
알딘은 다시 내려놓은 데미안의 새장 옆에, 억겁창생의 빛이 요동치는 것을 본다.
알딘은 이 재판의 결말을 알아차린다.
‘이걸로··· 계획은 완성된다.’
장완이 알딘을 돌려세운다.
암월, [13.08.21 10:14]
몸에 힘을 빼고 있던 알딘의 몸이 자연히 돌아간다.
장완이 알딘의 뺨을 때렸다.
고개가 휙 꺾이지만, 지금까지 알딘이 견뎌왔던 통증들에 비하면 너무 약한 힘이라 알딘은 그 점에서 당황스럽다.
“너 미쳤어?”
알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장완을 보았다.
“죽고 싶기라도 한 거야?”
알딘은 장완에게 유감을 느꼈다.
하지만 알딘은 성운의 최지우가 아니듯, 장완의 최지우도 아니었다.
알딘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목숨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숨은 한 번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것, 또는 비프넨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성운과, 성역의 것이었다.
‘어차피 설명되지도 못 할 이야기다.’
알딘이 왜 멈춰서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설명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해받는다고 해도 알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말에 도달할 수 없었다.
‘옛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게임에 참가할 플레이어들을 세심하게 골랐다는 건 부분적으로만 옳은 말이다.
성운과 다른 플레이어들은 착각하고 있었다.
알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옛신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옛신으로부터 벗어난 영원한 안식, 즉 죽음이었다.
알딘은 자신의 목숨을 자신이 가지고 싶었다.
데미안이 말했다.
“거의 다 끝난 것 같군요.”
장완이 따져들었다.
“무슨 말이야? 밤을 새며 몇 날 며칠을 이야기해도 모자를텐데.”
때까치는 무심한 목소리다.
“이건 진짜 재판이 아닙니다, 장완. 이런 재판은 없어요.”
“그건··· 알아.”
“법률이 없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재판이 존재합니까? 그저 연민으로서 알딘에게 마지막 변명의 기회를 주려고 했던 겁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 기회를 내팽개쳤습니다. 아니, 그냥 진실을 말했을지도 모르고.”
“바보 취급 하지마.”
“당신이 떼를 쓰니까 하는 말입니다. 당신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알딘은 당신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알고 있어.”
“그럼 받아들이세요.”
때까치는 한손으로 억겁창생의 빛을 투영하는 유리구슬을 집어들었다.
유리구슬은 환한 빛으로 공명한다.
“억겁창생의 빛은 이미 결론을 내렸습니다. 배심원단도, 우리의 심판자도, 하나의 결론을 내렸음을 압니다. 재판은 끝납니다.”
장완은 흐느끼더니, 곧 울기 시작한다.
알딘은 가슴 한켠이 아프다.
알딘이 장완을 게임에 호출한 이유는 네뷸라에게 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만약 네뷸라가 별다른 문제 없이 승리를 이어간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 네뷸라의 신성 레벨이 필요한만큼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런 단순한 이유였다.
이 계획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신이나 다름 없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우는 거야?’
시스템의 힘이라면 감정을 통제하는 것 정도는 간단하다.
이성이 그러하듯이, 감정 또한 생리적인 현상이다.
울고 싶지 않다면 얼마든지 울지 않을 수 있다.
슬퍼하지 않을 거라면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과거의 알딘 자신도 장완과 다름없었지만.
라크락은 시스템 창을 통해서 여러 정보들을 확인한다.
개중엔 이 자리에 있는 배심원단과, 성역, 그리고 억겁창생의 의지가 더해졌으리라 알딘은 예상했다.
라크락은 시스템 창을 더듬더듬 지워내고는 말했다.
“자, 그럼···”
라크락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훌쩍 뛰어 단상 위로 올라갔다.
단상 위에서 정강이를 교차하며 앉은 라크락은 무릎 위로 두 손을 올리고서 모두를 내려다보았다.
“판결을 내린다.”
라크락이 말했다.
“옛신 알딘은 수 만년의 시간 동안 다른 옛신들의 명령을 받으며 수 많은 악업을 쌓았다. 비록 그것이 명령이었고, 그 명령을 거절하기 어렵도록 조정을 받았다고 한들, 그 악업의 존재 자체를 무시할 수 없다. 또한···”
툭 하고, 라크락의 꼬리가 가볍게 단상을 때린다.
이미 방청객들 또한 라크락에게 주목하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주의가 집중된다.
“알딘은 4만년의 시간 동안 플레이어를 탐색하는 동안 마음을 굳혔음에도, 최후의 순간 자신의 뜻을 뒤집어 자신의 악업을 멈출 기회가 왔었을 때, 그 기회를 포기했다. 이는 단순히 옛신 알딘의 악업을 심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존재 자체의 불안이 향후 만성전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의미한다. 심판은 복수가 아니므로,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를 염두해야만 한다.”
장완은 아무것도 듣기 싫다는듯 단상에 엎드렸다.
알딘은 몇 번이나 주저하다가, 장완의 한쪽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이제 라크락이 말로서 두 번째 심판을 행한다.
“따라서, 억겁창생의 빛이 이르니, ···옛신 알딘을 생으로서 벌한다.”
마지막 문장을 직관적으로 이해한 이는 많지 않았다.
데미안이 말했다.
“뭐라고 했습니까?”
“생으로서 벌한다. 알딘은 죽지 않고 살아 아바르틴과 만성전에 봉사할 것이다.”
“라크락, 하지만 방금···.”
“알딘의 얼굴을 보라.”
데미안은 그렇게 한다.
그리고 라크락의 뜻을 이해한다.
장완 또한 놀라운 이야기에 붉은 눈시울로 알딘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알딘의 얼굴이 절망으로 차올랐다.
“이것이 진실을 꿰뚫어본 억겁창생의 뜻이니, 옛신 알딘은 죽음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악업을 선으로 행해 대속해야 할 것이다. 이 인과가 충분히 만족할 때까지.”
알딘은 비틀거리다, 쓰러진다.
장완이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한다.
“됐어, 됐다.”
알딘은 장완의 웃음으로부터 등골이 싸늘해진다.
그것은 공포심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어 오는 감정이 있었다.
장완이 주저앉은 알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어나, 알딘.”
알딘은 고개를 들었다.
장완이 아직도 울음이 떨어지는 눈으로, 동시에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의 생은 각오 되어 있어?”
알딘은 가로젓는다.
알딘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 난, 여기서···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어야··· 그랬어야 했는데···”
장완은 알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알딘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자신을 거듭 죽임으로서 게임을 이겨나간 희생의 성좌가 알딘에게 말했다.
“그 생을 어떻게 사용할지, 가르쳐줄게.”
공포로 비워내어지던 알딘의 마음 안쪽으로, 무언가 벅차오르기 시작하였다.
끝
암월, [13.08.21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