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4
004화
성운은 신성 레벨과 벌레의 소영역 레벨이 상승한 것을 확인했다.
신성 레벨은 초반에는 신앙의 제한을 늘려주는 역할 뿐이니 당장은 주목할 필요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벌레의 소영역이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겨우 2레벨이 되었을 뿐이지만, 2레벨이 되면서 ‘축복’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커스텀이 가능하겠어.’
게임 로스트 월드에서는 플레이어의 소영역이 상승하면, 그 소영역을 지지하는 신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할 수 있었다.
시스템 상 이름은 ‘신의 축복’이지만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커스텀’이라고 불렀다.
이를테면 불의 소영역을 가지고 있다면 열기에 저항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고, 풀의 소영역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 가지 풀독에 저항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진화시킬 수 있단 말이었다.
이런 축복은 종족의 외형을 변화시키고, 그 후손들에게도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다.
‘다만 문제가 있지.’
축복은 한 마리에게 내리는데도 10의 신앙이 소모 되었다.
현재 성운의 신앙은 36, 최대치는 50.
소영역 당 괜찮은 축복은 세 개 정도 되기 때문에, 겨우 한 마리에게 축복을 다 내리면 신앙을 다 소모하는 셈이다.
‘물론 그 축복을 받은 개체가 계속 자손을 번성시키면 자연스럽게 수가 불어나니까 값비싸다고 볼 수만은 없지만…’
그걸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는 법.
나중에 더 많은 소영역을 얻고 그 소영역으로 축복을 내리고 다른 기적으로 서포트를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가까운 시간 내에 라크락의 무리에게 축복을 내려 줘야만 했다.
‘신앙을 더 많이 모아야 해.’
다행히 신앙을 모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지금 단계에서도 실행할 만한 것이 많았다.
‘우선은 라크락을 제사장으로 삼아야겠지.’
제사장은 중세에 들어가기 전까지 써먹을 수 있는 직책이었다.
제사장으로 선택하면 약간의 신앙을 소비하고 꿈을 통해 적절한 암시를 내려 줄 수 있기도 했다.
게다가 라크락은 특수 능력치 하나가 높은 ‘특별한 개체’기도 했다.
『라크락(전사 Lv.1)
힘 14
지능 15
사회성 16
의지 9』
‘검치호에게서 동료를 구한 경험 덕분인가? 아니면 저 능력치가 있어서 그런 경험을 한 건가? 어느 쪽이든 의지는 좋은 능력치야.’
의지 능력치는 무언가를 도전할 때 포기를 하지 않고 부단하게 노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당장 9라는 숫자는 적어 보이지만, 일반적인 개체는 능력치가 평균일 경우 표기조차 되지 않는다.
‘그 다음은 제단. 사원 같은 건축물은 아직 무리겠지만, 제단을 만드는 건 문제 없을 거야.’
원시적인 신앙에서 신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제단은 기초 중의 기초였다.
이런 종류의 제단은 지속적인 신앙 공급을 해 줄 수 있었고, 제사장이 진행하는 제사를 통해 무리의 신앙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사를 열기 위해선 역시 제물이 필요하지.’
소영역에 맞는 적절한 방식으로 제단 위의 제물이 소모되면, 아주 많은 신앙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제물이 귀하고 중요한 것일수록, 얻기 어려울수록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증거이므로 비례해서 더 많은 신앙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었다.
‘로스트 월드 게임 초기 생각이 나는걸.’
제물과 신앙 사이의 메커니즘에 대해 알려지고 나자,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빌드에 매료되었다.
게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하고 중요한 것, 그리고 얻기 어려운 것을 제단에 바치게 한 다음 큰 신앙 자원을 얻는 것.
바로 ‘인신 공양’ 빌드.
가장 값진 것은 바로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리 오래 유행한 빌드는 아니었다.
반짝하며 높은 승률을 보장했지만 곧장 파훼 빌드가 나왔다.
인신 공양, 즉 같은 부족이나 동족을 산 제물로 삼게 되면 결과적으로 내정이 파탄나기 마련이다.
신을 의지하기보다는 신에 대한 공포심이 더 커진다.
사회 규율이 경직되면서 제사장들은 플레이어가 의도하지 않은 제약과 법을 만들고, 그걸 어기면 제물로 바쳐 버린다.
기술 문명이 발전하기 어렵고 더 가치 있는 결과를 내줘야 할 인적 자원이 신앙으로 환산되면서 다른 빌드로 옮겨 타기도 어려워진다.
‘아, 물론 동족이 아닌 다른 종족을 산 제물 삼는 건 경우에 따라 유효하긴 하지만…’
그 경우에도 내정 대신 외교 관계가 파탄나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지구에 실재했던 아즈텍 문명처럼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런 빌드는 정석적인 빌드보다 좋을 게 없었다.
성운은 인신 공양은 염두에 두고 있지도 않았지만, 제물을 필요로 했다.
‘라크락의 무리가 도전을 할 필요는 있어.’
성운은 라크락의 무리가 위치한 장소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륙을 향해서 뻗어나가기 힘든 반도.
황야가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초기에 유용한 자원도 부족하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만 했다.
‘인신 공양까진 아니지만, 산 제물은 필요해. 기왕이면 큼직한 놈으로.’
하지만 라크락의 무리 주변에는 큼직한 놈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라크락의 무리는 황야를 내려다보는 언덕에 자리 잡긴 했지만 무리가 크다고 생각한 숲도 언덕에서 내려오는 시냇물 때문에 조성된 환경에 불과했다.
숲은 넓지 않다. 그 뒤는 다시 황야다.
이 숲에서 제일 큰 사냥감이라고 해 봐야 토끼 정도일까.
황야 깊숙한 곳으로 가면 라크락을 공격한 검치호, 검치호보다 강한 드레이크, 그런 상위 포식자들의 먹잇감인 물소 떼 같은 게 있긴 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정착을 시작한 라크락의 무리에게 다시 황야로 떠나라고 종용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일단 남은 신앙으로 라크락에게 축복을 몰아주고 생각하자.’
성운은 라크락의 무리를 내려다보았다.
─┼
라크락은 최근 자신의 몸에서 생겨나는 변화를 느꼈다.
일단 겉 비늘이 검게 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질병이 아닐까 겁이 났지만, 허물벗기를 한 이후 드러난 비늘은 매끄러운 광택과 전보다 단단하면서 부드러웠다.
마치 딱정벌레 같았다.
다른 변화도 있었다.
원래 왜소했던 라크락은 이제서야 평균적인 덩치를 갖춰 가고 있었다.
하지만 힘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움막을 짓기 위해 나무를 해 왔을 때 라크락보다 큰 나무를 짊어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숲에는 처음 보는 새빨간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라크락은 처음엔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손가락의 비늘이 없는 살갗으로 만져도 별 느낌이 없었다.
괜찮다고 생각한 라크락은 버섯을 아주 조금 뜯어 먹었고, 다음날이 되어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자 하나를 모두 먹었다.
그다지 맛있지는 않지만 탈도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라크락을 따라 빨간 버섯을 먹으려고 했던 무리의 다른 리자드맨들은 손을 댄 것만으로도 부어올랐다.
며칠 지나 붓기가 가라앉긴 했지만 독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 변화는 모두 신기한 일이었고, 라크락의 무리는 라크락의 변화에 경외심을 느꼈다.
라크락 자신도 그렇게 느꼈다.
이런 일은 이름 없는 딱정벌레 신이 내려 준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신께서 왜 이런 힘을 내게 내려 주셨을까?’
며칠 뒤 라크락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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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락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황야를 걸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였다.
몇 날 며칠을 걷던 라크락은 어떤 리자드맨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라크락이 찾던 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라크락은 내달려서 그를 붙잡으려고 했는데,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지쳐 쓰러진 라크락이 기어코 무릎을 꿇자, 등만 보이던 리자드맨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러자 밝기만 하던 하늘이 어두워졌고, 라크락이 쫓던 리자드맨의 얼굴도 어둠 속에 가려졌다.
라크락은 그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리자드맨은 손을 내밀었다.
라크락은 그 손이 일으켜 주려는 건가 생각했지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느새 라크락의 품에는 물소의 두개골이 들려 있었다.
머리 사이로 솟아오른 거대한 뿔, 퀭하게 뚫린 안와와 비강, 아직 단단하게 붙은 위턱뼈의 이빨들.
라크락은 물소 두개골을 리자드맨에게 건네주었다.
리자드맨은 물소 두개골을 자신의 머리에 덮어썼다.
그러곤 다시 손을 내밀었다.
라크락은 다시 줄 게 있나 싶어 두 손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들자 리자드맨은 사라졌다.
라크락은 꿈에서 깨어났다.
─┼
“물소를 사냥해야 한다.”
잠에서 깨어난 라크락이 무리를 불러 모아서 한 첫 마디였다.
자올이 투덜거렸다.
“물소를 사냥하려면 황야 저 깊은 곳으로 가야하는데.”
자올은 본래 이 씨족을 이끌던 큰 리자드맨이었다.
라크락이 신성한 땅을 찾아내며 큰 불만 없이 자리를 넘겨주었지만, 라크락 다음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라크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없는 딱정벌레 신께서 물소를 잡길 원하신다.”
“신께서? 신을 보았나?”
“그래. 그분은 오늘 내 꿈에 나오셨다.”
라크락은 운을 떼고는, 꿈 이야기를 전했다.
누가 생각하더라도 신께서 물소를 바치길 원하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라크락의 꿈 이야기에 무리 모두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소를 잡으려면 무리의 사냥꾼 모두가 나서야 한다. 사냥꾼 모두가 떠나면 나머지 약한 이들은 누가 지키나? 사냥꾼들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너무 위험하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라크락은 반대를 표하는 자올이 싫지 않았다.
맹목적인 믿음은 다양한 의견을 배제한다.
하지만 라크락도 생각한 바가 있었다.
“나 혼자 떠나겠다.”
“뭐?”
“신께선 내 꿈에 나타나셨다. 나보고 그 일을 행하라는 뜻이다.”
자올은 으르렁거렸다.
“안 된다. 무리에 너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많다. 무리를 흩트릴 셈인가? 그리고 어떻게 혼자 물소를 잡는가?”
“보여 주지.”
라크락은 투창을 들고 일어났다.
돌로 깎은 투박한 촉을 묶어 놓은 투창은 라크락의 애병이었다.
라크락은 무리 앞으로 걸어 나가, 멀리 있는 고목을 가리켰다.
라크락은 한 번 디딤 발을 밟고 창을 던졌다.
포물선이 아닌, 하나의 선으로 그려지는 완벽한 직선이 쏘아졌다.
퍽 소리와 함께 창이 고목에 꽂혔고, 말라비틀어진 고목은 쩌적 소리를 내면서 갈라졌다.
그 경이로운 힘을 보자 자올은 주둥이를 다물었고, 무리는 환호를 내질렀다.
라크락은 자올을 돌아보곤 창을 줍기 위해, 고목이 있는 언덕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창을 뽑으려던 라크락은 언덕 아래의 풍경을 보고 멈칫했다.
라크락은 미소를 지었다.
“자올! 저걸 봐라. 우리 다툼은 신의 뜻 아래에선 부질없었구나.”
언덕 아래로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라크락이 제물로 바치고자 했던, 물소 떼였다.
큰 무리는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사냥하는데 큰 걱정이 없어 보였다.
물소 떼는 언덕 위의 물 냄새를 맡고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언덕으로 오는 기나긴 길 와중에 물소 떼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저들도 길을 잃은 게 틀림없었다.
늘 같은 장소를 이리저리 이동할 뿐인 물소 떼가 길을 잃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신의 안배가 있지 않고서는.’
무리 모두가 물소 떼를 보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신께서는 무리를 흩트릴 목적으로 라크락의 꿈에 나타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라크락은 창대를 뽑아 들고 말했다.
“신께 영광을 올리고자 하는 이는 나를 따르라!”
라크락이 앞서 나가자 무리의 사냥꾼들이 라크락을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