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41
041화
키가 2m에 넙적하고 표정 없이, 가면 같은 얼굴을 가진 트롤 상인은 얇은 나무 덩굴로 엮인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걸로 거래할 생각이 있나?”
트롤이 꺼낸 것은 철편이었다.
철편은 녹여서 다른 농기구나 무기로 쓰일 수 있어서 소금이나 비단같이 원시적인 화폐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철편은 향후 실제 금속 화폐로 발전했다.
‘철은 언제나 부족하지.’
리자드맨 상인은 철편 자체는 언제나 거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거래 상품을 골랐으니 다음은 분량이었다.
“우선 내가 가진 비단은 눈에 보이는 이만큼이다. 철편을 얼마나 줄 수 있나?”
“보이나?”
트롤은 자신의 가방 안쪽을 보여 주었다. 철편이 가득 있었다.
“모두 주지. 비단이 워낙 훌륭해서 그래.”
“오.”
리자드맨 상인은 감탄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그대로 거래를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때 인간 상인 하나가 다가와서는 리자드맨 상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이봐.”
“음?”
“비단은 나랑 거래하기로 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다른 사람이랑 거래를 하겠다는 거야?”
“…으음?”
리자드맨 상인은 당황한 것 같았다.
인간 상인이 트롤 상인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 친구랑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트롤 상인은 거래의 방해자가 나타나 다소 언짢은 기색이었지만,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러시죠. 저도 거래 후에 탈이 나는 것보다야 거래 전에 탈이 나는 게 좋습니다.”
인간 상인은 잠깐 트롤 상인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적어도 서쪽에서 왔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반면 검은 비늘 부족의 리자드맨 상인은 인간 상인을 알아보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자동성의 성주님…?”
리자드맨 상인은 말끝을 다소 흐렸다. 이마 위로 자라난 한 쌍의 사슴뿔 때문에 휘경을 알아보았는데, 한 부족의 대표답지 않은 범상한 옷차림 때문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저만큼의 비단을 고작 철 한 바구니랑 교환하려고 한 거야?”
“예. 그렇습니다마는…”
“그게 타산이 맞다고 생각해?”
“음…”
리자드맨 상인도 상인이었으므로 타산을 따지면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이 있었다.
“저는 라크락 님과 함께 왔고 수레에 얹어서 왔기 때문에 비단을 운송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주변 부족들과도 이 정도로 거래를 해 왔는데, 저 트롤 상인은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철편을 더 많이 내놓았습니다.”
휘경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저 트롤도 그걸 알아?”
“예?”
“저 트롤은 이런 비단을 처음 봤다고 말했지. 내 생각에 그건 거짓말이지만, 상품 가치가 높은 물건이란 건 나도 알아. 저 트롤은 이 물건이 정확히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 비단의 가치는 그렇다 치더라도 비단을 운송해 온 너의 수고로움은 가격을 더 받아도 된다는 말이지.”
“그 말은…”
“검은 비늘 부족의 비단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면, 아주 멀리서 왔다고 말해. 들고 오는데 아주 고생했다고.”
아직 중간 유통에 대한 개념과 원산지 표기 의무화가 없는 시대였다.
리자드맨 상인이 초조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 아닙니까?”
휘경은 이마 사이를 좁혔다.
‘그놈의 정직! 거짓말 안 하고 살면 누가 밥 먹여 줘?’
휘경은 성주가 된 이후 라크락의 검은 비늘 부족에 대한 교류를 늘렸고, 기존에 알던 자동성의 리자드맨들과 사이란 말고도 많은 리자드맨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리자드맨들을 만나자 종족의 특징이 눈에 보였다.
전반적으로 정직한 편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건 아니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피하려고 든다는 거지.’
특히 휘경은 검은 비늘 부족에게서 좀 더 그런 경향이 잘 나타난다고 느꼈는데, 부족이 가진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고 봐서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문제는 상인들 사이의 거래였다.
‘어차피 다 사기꾼들인데!’
휘경은 어쩌면 푸른 벌레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을 필요로 한 것은 이런 경향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검은 비늘 부족의 비단은 반도 북동쪽에서 만들어진다며? 편하게 가져왔다고 한들 수고를 들인 건 사실이잖아. 그에 대한 값을 받아야지 않겠어?”
“그 말은 사실입니다마는…”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이 있지.”
리자드맨 상인은 휘경의 상인 수업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뭡니까?”
“철편의 질.”
“아.”
“다 똑같아 보이는 철편이지만 잡다한 불순물이 많이 섞였으면 무르고 약하지.”
“하지만 겉보기로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사이란 님 같은 전사가 아니면 철편을 꺾어서 무르기를 판단할 수라도 있겠지만.”
“‘저울’을 사용해. 같은 크기의 질이 좋은 철편과 비교해서 무게 차이가 많이 난다면, 그건 순수하지 않다는 뜻이지. 적어도 트롤 상인은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그 부분을 찔러서 뭔가를 더 얻어 내라고.”
리자드맨 상인은 휘경 덕분에 시장 곳곳에 놓여 있던 흥미로운 기계 장치의 이름과 쓸모를 알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휘경.”
휘경은 웃으며 리자드맨 상인을 떠나보낸 다음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가 호구 잡히면 내가 곤란하단 말이다.’
─┼
휘경은 자동성 성주가 되는 날 꿈을 꾸었다.
정말이지 이상한 꿈이었다.
휘경이 주로 꾸는 꿈은 복면을 쓰고 자신을 쫓는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는 꿈이나, 온갖 야채와 돼지고기를 푹 삶은 국물에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원 없이 말아 먹는 것 정도였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휘경은 텅 빈 자동성에 혼자 있었다.
밤이라면 모를까, 해가 하늘 가운데 떠 있는데도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집집마다 들여다봐도 사람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야. 다들 어디로 갔지?’
휘경은 소금 광산 안쪽과 내궁, 그리고 성곽 위로 올라가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성곽 위로 올라가 밖을 내다보자 사라진 성 주민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성 주민들은 성벽 밖에 도열해서는 화가 난 표정으로 휘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휘경은 어째서인지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보잘 것 없는 내가 성주가 되어서 그렇구나.’
휘경은 이번엔 내궁으로 걸어갔다.
성주와 그 가족이 기거하고 네 가문의 가신들이 업무를 보는 내궁도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성주민이나 다른 가신과 대화를 하는 대회관으로 걸어가자, 의외로 사람들이 있었다.
아버지 휘서와 다른 네 형제였다.
휘서와 네 형제들은 성 밖의 성 주민들처럼 휘경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성주의 자리는 비어 있어. 저기가 내 자리란 말이지.’
휘경은 끝으로 소금 광산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둡고 캄캄해서 앞을 볼 수 없었는데, 횃불을 들고 와야겠다 생각한 순간 반딧불이들이 나타나 불을 밝혔다.
휘경은 반딧불이를 끝까지 따라갔고, 소금 광산 가장 깊은 곳에 벽을 보고 뒤돌아선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휘경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누구시죠?”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남자는 휘경이 뒤에 서 있는 것도 모르는 듯, 검지를 살짝 들어 올렸다. 검지 위에 반딧불이 하나가 내려앉았다.
휘경은 이 남자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푸른 벌레신 님이시군요.”
휘경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예의 있는 방식으로 절했다.
“예의가 없어 보이더라도 용서하세요. 워낙에 막 자라서…”
남자는 휘경이 뒤에서 말하거나 말거나 반딧불이가 신기한 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푸른 벌레신 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지요. 막무가내로 일을 저지르곤 있지만 결과적으론 푸른 벌레신 님에게 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남자는 이제 손바닥을 펼쳤고, 반딧불이들은 춤을 추며 남자의 손바닥 안으로 사라져갔다.
휘경은 푸른 벌레신이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에 이유가 있다고 느꼈다.
휘경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모든 반딧불이가 사라졌다.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럴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휘경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엎드린 채 신을 향해 말했다.
“…아무도 저를 돕지 않아요.”
휘경은 그 말을 내뱉고서 등 뒤가 밝아 옴을 느꼈다.
돌아보자, 누군가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사이란 무엘이었다.
“일어나십시오.”
사이란은 휘경의 손목을 쥐고 일으켰다.
사이란은 횃불을 치켜들고 어두운 소금 광산 안을 걸어 나갔다.
“찾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온 겁니까?”
“아니, 글쎄, …잘 모르겠어.”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지요.”
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사이란, 내가 누굴 봤는지 알아?”
“누굴 봤습니까?”
“내가 누굴 봤냐면…”
─┼
그리고 휘경은 꿈에서 깨어났다.
제대로 된 침상에서 잠을 잔 것도 아니라, 내궁 성주 의자 위에서 까무룩 잠이 든 것이었다.
휘경은 처음엔 그게 여타의 다른 꿈처럼 개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러니까… 푸른 벌레신 님은 사이란이 있으니까… 가 아니라 검은 비늘 부족 리자드맨들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인가?’
휘경은 의도를 알아차리자 정말로 심적인 부담이 덜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저 푸른 벌레신만이 지지해 주겠다고 하면 그 믿음은 강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라크락과 그 부족은 실재했다.
검은 비늘 부족은 잘린 귀 부족을 내쫓는 것으로 그 힘을 증명해 내기도 했다.
‘신님, 어차피 그 친구들이 없으면 저는 빈털터리라고요. 계시를 주시지 않아도…’
휘경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신앙을 통해서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자동성은 지금 혼란한 상황이었다.
후계자 싸움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성주가 바뀌었고, 네 가문의 가주들은 휘경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상인들이 오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예전만큼의 활기를 띄지는 못했다.
이런 혼란은 안정될 필요가 있었다.
‘푸른 벌레신을 믿으면 심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어. 실제로 그 안정감이 라크락의 검은 비늘 부족에게서 온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스라라크 목상 같은 걸 팔면서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하면 어떨까?’
휘경은 자신의 자리에서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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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내려다본 성운은 조금 당황했다.
‘나는 조금 감동해서 신앙을 퍼트리길 기대한 건데…’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원하는 목표를 얻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나?’
성운의 앞으로 상태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하나의 부족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이제 이들 부족은 당신의 영역에 속합니다.」
「영역:인간」
「Lv. 1」
이제 성운은 두 종족에게서 모두 신앙 자원을 얻을 수 있을 뿐더러, 두 종족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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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를 당하는 리자드맨들을 지키기 위해 시장을 오가던 휘경은 특이한 종족을 발견했다.
인간과 닮은 외모지만 키가 더 크고 귀가 뾰족하다.
머리칼은 대체로 밝은 색으로 화려하며 눈이 커서,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라도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엘프잖아?”
자동성에서 트롤도 보기 드문 종족이긴 했지만, 더 보기 드문 것은 엘프였다.
대륙 쪽엔 강성한 트롤 부족이 존재해 자동성까지 상인들이 오갔지만, 엘프 부족은 황야를 건너서 있는, 자동성을 기준으로 북동부의 대륙 북해안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큰 상단이 황야를 건너 온 것인지 엘프는 열댓 명 가까이 되었고, 시장에 큰 좌판을 열려고 준비 중이었다.
마침 또 다른 리자드맨 상인 하나가 비단 꾸러미를 들고 엘프와 거래 중이었고, 휘경이 내용을 엿들었다.
“고운 비단이군! 아주 상등품이야.”
“철편으로 거래한다고 했지? 얼마나 줄 수 있나?”
리자드맨 상인의 말에 엘프 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커다란 상자에서 주먹만 한 주머니를 꺼냈다.
“흠, 이 정도면 되겠나?”